68화 신비한 고삼
"그 의미가 중대하지."
백횡이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제일 정원이 가진 영기는 제오 정원의 다섯 배가 되고 제십 정원의 열 배이다.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지. 네가 외원 제자들 중 서열이 계속 올라간다면 거주하는 정원도 점점 올라갈 거야."
그 말에 진남의 두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제일 정원과 제오 정원 사이에 그렇게나 큰 차이가 있을 줄 몰랐다.
쉽게 말하면 진남이 제일 정원에서 하루 수행하는 것이 제오 정원에서는 닷새를 수행하는 것과 같았고, 제십 정원에서 열흘 수행하는 것과 같았다.
그때 백횡이 말했다.
"남궁성은 지금 제일 정원에 살고 있어."
진남은 주먹을 꽉 쥐었다.
현령종처럼 순위가 높아질수록 대우가 좋아지는 규칙에 진남은 마음속에서 열정이 타오르고 투지가 상승했다.
한참 지나서 진남은 심신을 차분하게 하고 물었다.
"황용, 소냉, 초운 이 세 사람의 정원은 어디에요?"
만상 대회에서 일 위를 한 후로 진남은 전신의 혼을 승급시킨다고 폐관 수련을 했다. 그래서 아직 그 셋과 만나지 못했다.
백횡은 미리 준비가 있었던 듯 신속하게 대답했다.
"황용은 외문 제자 중 서열 이 위, 초운은 십일 위, 소냉은 십이 위이야. 그들 셋 모두 종문의 임무를 받고 종문을 떠나 무예 수련을 시작했어."
진남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었다. 종문 제자들은 임무를 받을 수 있었는데 무예를 단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둑한 보상도 받을 수 있었다.
진남과 백횡은 제오 정원에 도착했다.
정원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는데, 방원 백육십오 척 정도였다. 내부 시설은 간단하고 소박했다. 하지만 제오 정원에는 영기가 뭉쳐 안개처럼 감싸고 돌았는데 끊임없이 많아지고 점점 농후해졌다.
진남은 그 모습에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제오 정원의 영기가 이처럼 짙으면 제일 정원의 영기는 대체 얼마나 짙은 거예요?"
이때 곁에 있던 백횡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남 공자, 그럼 나는 먼저 갈게."
"그래요."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횡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백횡,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그 말을 들은 백횡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흥분된 기색으로 재빨리 물러갔다.
백횡에게 진남의 감사 인사는 백 알의 무왕단보다 더 진귀했다.
진남은 백횡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고는 방안에 들어와서 이번에 얻은 칠색화, 용연향, 칠종죄, 신비한 고삼과 팔천여 알의 무왕단, 주머니 그리고 만상 대회에서 얻은 구전금단을 하나하나 꺼냈다.
"보물들의 효능은 이미 알아. 하지만 고삼의 효능은 아직 모르니 고삼부터 연구해보자."
진남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고삼에 짙은 흥미가 생겨서 온통 까맣고 썩은 것 같은 고삼을 자세히 연구했다.
한참을 살펴보던 진남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봤다. 하지만 고삼이 함유한 신비한 힘을 움직이지 못했다.
"전신의 눈으로 살펴본 결과 안에 있는 힘은 엄청 강대해. 그런데 잠든 형태로 고삼의 내부에 있단 말이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고삼의 힘을 깨울 수 있을까?"
진남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눈을 반짝거렸다.
고서적에 기재된 데 따르면 신병이기(神兵利器)는 선혈로 연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강대한 천지영물도 피로 제련(祭煉)해야 했다.
"선혈로 해보자."
진남은 손가락을 깨물어 신선한 피 한 방울을 시커먼 고삼에 떨궜다.
그러자 변화가 생겼다.
검고 썩은 고삼은 진남의 피를 급속도로 빨아들이더니 화려한 흰 빛을 뿜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현묘한 흡입력이 고삼에서 용솟음치더니 손 모양으로 변해 순식간에 칠색화, 용연향, 구전금단 그리고 팔천여 알의 무왕단까지 움켜잡았다.
"이게……"
갑작스러운 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진남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남의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칠색화, 용연향 그리고 팔천 개의 무왕단과 구전금단이 모두 펑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더니 짙은 영기로 변하여 고삼에 스며들었다.
고작 세 번 호흡하는 동안에 웅장하고 방대한 영기가 모두 고삼에 흡수되었다.
우지직, 우지직.
고삼은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었다. 검고 썩은 껍데기가 한층 한층 터지고 떨어졌다. 고삼은 백옥처럼 티끌 하나 없이 아름답게 변했다.
진남은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너무 빨리 벌어진 일들이라서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드디어 정신을 차린 진남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처절한 비명이 제오 정원을 뚫고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진남의 정원 주변에서 수련하던 외원 제자들은 그 비명 소리에 깜짝 놀랐다.
'누가 이렇게 비명을 지르지?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 시각 제오 정원의 방안에서 진남은 백옥 같은 고삼을 흉측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눈에서 피눈물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칠색화… 용연향… 거기다 구전금단도 삼켰어……. 게다가 팔천여 알의 무왕단까지 다 삼켰어…….'
칠색화는 삼만 알의 선천단에 맞먹고, 용연향은 오만 알의 선천단에 맞먹었다. 구현금단은 십만 알의 선천단이고 팔천여 알의 무왕단은 팔십여만 알의 선천단에 맞먹었다. 짧은 순간에 고삼이 백만 알이나 되는 선천단을 삼킨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만 알의 선천단을 진남이 다 복용했다면 그의 무혼은 현급까지 승급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고삼이 다 삼켜버렸다.
"제기랄!"
진남은 순간 화가 나 고함을 지르면서 무혼을 방출했다. 쉬체 경지 팔 단계의 기세와 입미지경의 도의까지 전부 폭발시켜 주먹으로 고삼을 힘껏 내리쳤다.
진남은 화가 폭발했다. 진남의 역린은 단약이었다.
쿵!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진남은 강렬한 반탄지력(反彈之力)을 느꼈다. 신비한 힘이 고삼에서 폭발되어 나와 그를 밀어냈다. 그는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나서야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그러나 고삼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더욱이 상처 하나 없었다.
진남은 그 모습을 보자 더욱 화가 나 성큼 나서서 방안에 둔 칠종죄를 집어 들었다. 입미지경의 힘이 더 강렬하게 폭발했다.
이때 백옥 같은 고삼에서 갑자기 흥흥거리는 차가운 소리가 들렸다.
그 흥흥거리는 소리는 어려 보였는데 열두, 세 살 정도의 여자아이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무척 오만했다.
그 흥흥 소리에 화가 폭발한 진남이 살짝 놀랐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고삼에 사람이 있어?'
여기까지 생각한 진남은 전신의 눈을 움직여 고삼을 살폈다.
고삼을 살펴보던 진남의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더 짙어졌다. 고삼에 강한 생명의 힘이 꿈틀거리며 사람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보긴 뭘 봐! 감히 공주를 훔쳐보다니!"
목소리는 고삼에서 전해졌는데,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힘이 부족해서 곧 잠이 들 거야. 내 하인으로 이제부터 대량의 영약을 얻어와야 해."
말을 마친 목소리는 이내 잠잠해졌다.
그 말에 경악해서 넋이 나갔던 진남은 순식간에 진노했다.
'영약을 얻어오라고? 단약도 얻어오라고? 얻어오긴 개뿔!'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른 진남은 칼을 들고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
칠종죄는 일곱 개의 칼이었다. 진남은 하나하나 번갈아 가며 끊임없이 내리쳤는데 마치 귀신이 들린 것 같았다.
그 순간 제오 정원에서 폭발음만 들렸다. 마치 경뇌가 연속으로 치는 것 같은 소리에 주변의 제자들이 놀랐다.
제오 정원의 대문 앞에 수십 명의 제자들이 몰려와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설마 무예 연습 중인가?"
"여기 누가 살지?"
"내 기억이 맞다면 안에 있는 사람은 진남이라고 만상 대회에서 일 위를 한 자일 거야. 소문에 의하면 그는 입미지경을 장악하고 난심고죽림에서 천 보를 걸었대. 게다가 쉬체 경지 팔 단계에 황급 팔품의 무혼을 가지고 쉬체 경지 십 단계에 황급 무혼 구 단계의 초월급 천재를 죽였대."
"그자군! 나도 들었어!"
"허허, 너희들 며칠 전에 경매장에서 벌어진 일은 모르나 보군,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
그들은 방안에서 폭발음이 점점 커지고 점점 강렬해지자 표정에 어린 놀라움이 더 짙어졌다.
무예를 연습하는데 이렇게 큰 소리를 내는 진남이라는 자가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 중 한 사람만은 두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그 사람은 남궁 이소였다.
남궁 이소는 진남 때문에 영원히 이보전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진남을 원망했다. 게다가 남궁 이소는 형님이 진남에게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는 더욱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남궁성이 진남을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남궁 이소는 진남을 쉽게 놓아줄 성격이 아니었다.
"잠깐은 기고만장해 있게 해주지."
남궁 이소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지 두고 봐."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제오 정원의 폭발음이 조용해졌다.
수많은 제자들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큰 소리에 그들은 마음이 불편해서 수련 속도도 평소보다 훨씬 늦어졌다.
* * *
제오 정원.
진남은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기운이 쇠진하고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제자들은 그가 수련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종일 귀신이 들린 것처럼 고삼을 내리쳤다.
하지만 진남이 모든 힘을 다 소진했지만 신비한 고삼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고삼에서 나던 어린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휴."
한참 후, 진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안이 씁쓸했다.
그가 전신의 혼을 얻은 이후로 이토록 무기력한 일은 처음이었다.
진남은 고삼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고삼은 어찌 되었든 보물이었다. 게다가 칠색화, 용연향 그리고 팔천여 알의 무왕단과 구전금단을 삼켰으니 그냥 버리면 큰 손실이었다.
"너 고삼에서 나오면 두고 보자. 가만두지 않을 거다."
진남은 이를 악물고 씹을 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고삼을 들어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두었다. 보고 있자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진남은 가부좌를 틀고 전신의 혼을 방출해서 체력을 회복하려고 했다.
두 시진 후,
진남은 천천히 눈을 떴다. 바닥이 났던 체력이 회복되었다.
뿐만 아니라 두 시진의 수행을 거쳐 진남은 드디어 단약을 잃은 고통에서 벗어났다. 정신이 돌아오고 표정이 차분해졌다.
"칠색화와 용연향 등이 없으니 가난하기 그지없구나. 최근 이보전도 경매가 없다고 하니 폐관하고 전신의 혼으로 수련을 해야겠다."
진남은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눈빛이 단호했다.
외문 제자들은 경쟁이 무척 심했다. 비록 그가 만상 대회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지만, 무예 연습을 게을리하면 다른 사람에게 뒤처질 수 있었다.
진남은 단기적인 목표는 제일 정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뒤로 진남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전신의 혼과 교류를 하며 수련을 진행했다.
전신의 혼은 황급 십품의 경지에 도달했다. 허공에 서서 흡입력을 발휘하면 주변의 영기가 거대한 용, 봉황으로 변하여 서로 엉키면서 방대한 영기를 가지고 진남의 체내로 날아들었다.
만약 누군가 자세히 살펴본다면 제오 정원의 영기가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소용돌이의 중앙에는 진남이 있었다.
다행히 외원봉에 영기가 충만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진남의 수행이 다른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황급 십품은 평범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