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황급 십품 무혼
진남과 소경설은 서로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아, 경설. 지난번에 준 둔토주(遁土珠)는 아직 사용하지 않았어요."
진남은 품에서 구슬을 꺼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그랬잖아요. 이런 물건은 저에게 필요하지 않다고요."
"하지만 나는 네가 위험에 처할까 봐 걱정돼서 준 거야."
소경설은 그를 흘겨봤다. 그녀는 잠깐 멈추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 둔토주는 네가 계속 가지고 있거라."
진남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둔토주를 품에 넣었다.
"그나저나 진남, 아직 네가 감추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 거야?"
소경설은 천천히 다가오며 두 눈을 크게 뜨고 진남을 응시했다.
소경설과 진남이 매우 가까워졌다.
진남의 눈에 소경설의 이목구비가 가득 찼다. 특히 소경설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진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남은 저도 몰래 숨을 들이마시다가 소경설의 향을 맡고 콜록거렸다. 그는 소경설의 두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
"저는 감추고 있는 게 없어요."
"그래?"
소경설은 그의 대답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진남은 그런 그녀를 보고 잠깐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경설, 언젠가는 직접 보게 해줄게요."
경설이 그를 돌아봤다. 그녀는 커다란 두 눈을 반달로 구부리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기다릴게."
진남은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이내 화제를 바꿨다.
"이번에 이렇게 많은 단약을 얻었으니 폐관수련을 할 생각이에요. 사저는 어떻게 할 거예요?"
"요즘 임무를 하나 받았어. 아마 종문을 잠깐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아."
소경설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진남을 노려보며 말했다.
"현령종에는 외원이라고 해도 숨은 인재들이 많아. 그러니 성질 좀 죽여."
"음…… 네, 그럴게요."
진남은 그녀의 잔소리에 머리가 아파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됐어. 여기는 금제가 쳐져 있으니 여기서 수련하면 돼. 나는 먼저 갈게."
소경설은 발길을 돌려 대문을 나서려다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진남, 내문 제자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말을 마친 소경설은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진남은 그녀의 모습에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랐다.
"됐어. 깊이 생각하지 말자. 지금 중요한 건 전신의 혼을 승급하는 일이야."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두 눈에서 뜨거운 열기를 뿜었다.
"종문에서 포상으로 준 선천단 십만 알에 선천단 백만 알에 맞먹는 무왕단까지 도합 백십만 알로 대체 어느 정도까지 제고할 수 있을까?"
말을 마친 진남의 등 뒤로 아홉 갈래의 노란 빛이 순식간에 떠오르더니 전신의 혼이 서서히 떠올랐다.
진남은 전신의 혼을 방출한 후 수백 알의 선천단을 한 움큼 쥐더니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이 무척 호기로웠다.
전신의 혼은 떨며 이 수백 알의 선천단을 모두 삼켰다.
진남은 쉬체 경지 팔 단계의 경지를 전부 방출하고 단약을 마구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이 잔영처럼 변하여 단약을 입에 밀어 넣었는데 마치 굶주린 야수가 허겁지겁 먹는 것 같았다.
전신의 혼은 마치 밑 빠진 독 마냥 선천단의 약효를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 한 시진쯤 지났다.
진남은 무예를 수련할 때처럼 무아지경에 들어가서 선천단을 끊임없이 입에 밀어 넣었다.
한 시진 내에 그는 적어도 구천 알이 되는 선천단을 삼켰다.
지금 진남은 백만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외원 제자들 중 비할 바 없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이니 망설임이 없었다.
진남이 드디어 선천단 만 알을 삼키자 전신의 혼이 갑자기 파르르 떨더니 끝없는 위엄을 방출했다.
진남은 단약을 삼키는 것을 멈추었다.
그는 긴장감에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숨을 죽이고 이 상황을 지켜봤다.
전신의 혼 뒤쪽에서 열 번째 노란빛이 번쩍였다. 그 순간 전신의 혼이 방출하는 위엄은 황급 구품일 때보다 수배는 더 강했다.
"황급 십품, 황급 십품이야! 드디어 황급 십품의 무혼을 가지게 되었어!"
무도심이 단단한 진남이라고 해도 이 순간에는 무척 흥분했다.
현령종 내에서 황급 십품의 무혼은 명실상부한 초월급 천재였다. 황용이나 임자소 등 사람들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내문 제자 십 위인 궁양의 무혼도 황급 십품이었다. 그러니 황급 십품의 무혼이 얼마나 희소하고 강대한 존재겠는가.
"진정하자, 진정해."
진남은 심호흡하며 말했다.
"아직 구만 알이나 되는 선천단이 더 있어. 이 추세대로라면 구만 알을 전부 복용하면 전설 속의 현급 무혼이 될 수도 있어. 구만 알의 선천단이 부족하면 나에게는 또 만 알의 무왕단이 있잖아."
현급 무혼!
전체 현령종에도 진전 제자들만이 현급 무혼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현급 무혼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진남이 현급 무혼을 가지게 되면 현령종에서 재앙급 천재가 되어 가장 강한 몇몇 천교(天驕)들과 동급이 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남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무아지경에 돌입해서 선천단을 마구 입에 밀어 넣었다.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다섯 시진이 되어서야 진남은 단약을 삼키는 행동을 천천히 멈추었다.
다른 원인은 없었다. 다섯 시진 안에 그는 이미 육만 알에 가까운 선천단을 삼켰기 때문이었다.
진남이 아무리 거액의 재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꺼번에 육만 알의 선천단을 소비하고도 전혀 반응이 없는 전신의 혼을 보자 걱정이 됐다.
"대체 얼마나 많은 단약을 사용해야 현급 무혼으로 진급할 수 있는지 오늘 꼭 볼 거야."
진남은 이를 악물고 다시 단약을 집어 입에 넣었다.
시간은 또 두 시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진남은 이미 구만 알이나 되는 선천단을 말끔히 먹어버렸다.
그러나 전신의 혼은 여전히 쥐 죽은 듯 미동이 없었다.
"구만 알의 선천단으로도 진급할 수 없다니, 어쩔 수 없이 무왕단을 사용해야겠어."
진남은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번에 그는 미친 듯이 삼키지 않고 열 알을 세어서 천천히 입안에 밀어 넣었다.
무왕단과 선천단은 달랐다. 한 알의 무왕단의 약효는 선천단 백 알에 맞먹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진남이 구백아흔아홉 개의 무왕단을 복용했을 때 전신의 혼이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전신의 혼 등 뒤로 노란빛이 번쩍이고 끊임없이 떨리면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오랜 기운이 그중에서 폭발하려는 것 같았다.
진남은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무왕단 한 알을 집어삼키고 전신의 혼을 살폈다.
전신의 혼이 무왕단을 흡수하더니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하나의 목소리가 진남의 뇌리에서 울려 퍼졌다.
"전신의 혼, 전천전지, 무소불전, 무소불승……"
그는 깨달았다.
"지금 전신의 혼은 진급하는 게 아니라 어느 부위를 더 강화하는 거야."
깨닫자마자 그는 목소리의 위압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번에는 저번과 다르게 아예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어떤 힘이 이끄는 대로 진남의 의지가 신비한 곳으로 이동했다.
진남의 앞에 끝없는 어둠이 펼쳐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에 공포심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 이게 뭐지?"
진남은 당황했다. 전신의 혼을 얻은 후 이런 이상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진남이 당황할 할 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빛이 번지더니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 그 틈으로 시체 한 구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진남은 시체를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시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어둠 속에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무한한 위압을 품고 있었다.
진남은 그 시체 앞에서 보잘것없는 한 톨의 먼지보다 더 작았다.
이내 그 시체는 감고 있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두 눈을 뜨는 순간 신광(神光)이 뿜어져 나와 끝이 없는 어둠을 찢었다.
그 모습을 본 진남은 알 수 없는 현묘한 힘에 의지가 끌어내려져서 의식불명에 빠졌다.
진남이 의식불명에 빠졌을 때 그는 등 뒤에 떠오른 전신의 혼에 이변이 생기는 걸 보지 못했다.
인간 허상 같던 전신의 혼은 빛을 발산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신필(神筆)이 붓끝으로 전신의 혼에게 두 눈을 천천히 그려주는 것 같았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눈이 드디어 드러났다.
인간 허상 같던 전신의 혼은 칠색의 눈이 생기자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동했다.
"신동각성(神瞳覺醒, 신의 눈을 각성하니), 규진천하(窺盡天下, 천하를 굽어볼 수 있다.)!"
목소리가 울리더니 전신의 혼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한 쌍의 오색찬란한 눈에서 칠색의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마치 일곱 갈래의 강처럼 진남의 눈으로 흘러들었다. 한 주 향이 타는 시간이 지나자 빛이 철저히 사라졌다. 전신의 혼의 칠색 눈동자도 하얀색이 되었다.
의식불명인 진남은 태고에서 온 신비한 힘이 자신의 두 눈과 하나가 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진남은 사흘 동안 기절했다.
"씁! 저번처럼 머리가 터질 듯 아프군."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이마를 짚고 문질렀다. 대략 한 주 향이 탈 시간이 지났다.
"지난번의 꿈은 어떻게 된 거지? 그 시체는 어떤 존재일까?"
진남은 냉정함을 되찾자 온갖 의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시체가 주는 충격은 실로 컸다. 모든 천봉산을 다 합쳐도 그 시체 앞에서는 고작 먼지 같았다.
하지만 그 문제를 오래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진남은 현재 능력으로는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오래된 시체와 전신의 혼 사이에 뭔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시급한 것은 전신의 혼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는 것이야."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전신의 혼을 방출했다.
열 줄기의 노란빛에 둘러싸인 인형의 전신의 혼은 더할 나위 없이 위엄 있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하얀 눈동자를 더하니 전신의 혼은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이를 본 진남은 다시 한번 충격받았다.
전신의 혼에 눈동자가 생겨나다니?
지난번에 전신의 눈을 얻은 후 진남의 분석에 따르면 단약을 충분히 복용하면 전신의 혼은 다른 부위가 천천히 진화했다.
다만 진남은 진짜 전신의 혼의 두 눈을 봤을 때는 넋을 잃고 말았다.
"전신의 혼의 두 눈이 완전히 진화되었으니 내 전신의 눈도 더 현묘한 능력을 얻었을까?"
진남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전신의 눈으로 방 밖을 살폈다.
밖을 살피던 그는 경악했다.
오직 무왕 경지의 수사만이 정탐할 수 있게 금제를 걸었다는 정원을 그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다 살필 수 있었다.
그중에는 적지 않은 방에서 내문 제자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이는 무혼을 풀고 폐관 수련을 했다. 두 사내와 한 여인이 부적절한 성행위를 하는 것도 보였다.
모든 것이 진남의 눈에 훤히 들어왔다.
동시에 분노한 목소리가 저택에서 울려 퍼졌다.
"누구냐! 누가 훔쳐보는 것이야!"
호통에 진남은 황급히 전신의 눈을 거뒀다. 심신이 저도 몰래 흥분되었다.
방금 전을 통해 그는 전신의 눈이 강화되어 모든 것을 정탐할 수 있고 모든 금제를 뚫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전신의 눈을 가졌으니 금제, 진법, 등을 만나게 돼도 허점과 실체를 보아낼 수 있다."
진남은 자신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런 능력이면 이후 수련은 바람에 돛을 단 것 같겠군."
진남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더 이상 무왕단을 복용하면서 현급 무혼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만상 대회가 끝난 후로 외원에 가지 않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 이제는 외원에 가서 보고해야 했다.
전신의 혼을 승급시키는 일은 이후에도 시간이 충분했기에 진남은 급하지 않았다.
진남이 문을 열고 나서자 무척 반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진남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