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직접 겨루자!
임자소와 소운하 등은 제자리에 서서 모두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임자소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그는 황용을 패배시킨 후 다른 사람의 무도심이 자신보다 강인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더욱이 임자소의 눈에 진남은 한 마리 개미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단번에 임자소를 하늘에서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진남의 무도심은 그보다 더 강할 뿐만 아니라 현령종 역대 모든 천재를 초월한 것이었다.
곡조가 울려 퍼지는 난심고죽림 속, 진남은 제일 깊은 곳에 서 있었다.
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이번에 그는 천 보를 내디디고 쉬체 경지 팔 단계에 도달하였다. 온몸의 혈기가 더욱 강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무도심도 더욱 강해져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난심고죽림을 끝까지 버티니까 이렇게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구나.'
진남은 속으로 감탄하고는 난심고죽림에서 걸어 나왔다.
진남이 난심고죽림에서 나오는 순간 난심고죽림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곤 모든 고죽들이 마치 영성이 생긴 것처럼 움직여 진남에게 큰길을 내주었다.
장내의 제자들은 모두 눈을 펀히 뜨고 진남이 큰길을 천천히 걸어오는 걸 바라보았다.
진남을 보자 소냉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떨며 말했다.
"남형. 형, 형님이 천 보를 넘어 역사를 새로 쓰다니……."
소냉의 옆에 서 있던 초운의 아름다운 눈에 물기가 어렸다. 두 사람은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진남은 그들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서천을 바라보았다. 얼굴의 웃음기를 점차 거두고는 말했다.
"서천 사형, 죄송합니다. 제가 사형을 실망시켰습니다. 조심하지 않아서 임자소를 초월해 버렸어요."
말을 마친 진남은 장내를 둘러보더니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
"다들 너무 미안해. 내가 조심하지 않아 천 보나 걸어 버렸어."
팍!
서천을 포함한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호되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 얼굴이 후끈후끈 아팠다.
진남의 말은 그들을 아프게 때렸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진남이 천 보에 올라 역사를 새로 썼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대놓고 창피를 당했지만 조금도 화를 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이 사람을 얕잡아 보지 않았다면 진남이 어찌 그들을 희롱하고 창피를 주었을까?
진남은 사람들을 힐끔 보고는 더는 비웃지 않고 서천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사형, 이제 이번 시험의 결과를 발표할 수 있겠죠? 제 기억에 사형이 누가 만약 천 보의 절정에 오르면 스무 개의 청룡 영패를 얻을 수 있고 또 종문의 포상도 받을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진남을 바라봤다.
그들은 진남이 역사를 새로 쓴 놀라움 때문에 한 가지 큰 문제를 간과했다.
'진남이 천 보의 절정에 올랐으니 이번 만상 대회의 일 등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서천은 정신을 차리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전에 임자소에게 아부하느라 일부러 진남을 경멸하고 조롱했었다.
이제 서천은 더는 진남을 폐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속으로 그의 가치를 매우 높게 생각하게 됐다. 하여 그는 크게 한 걸음 나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진남이 천 보를 걸어 나가고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번 시험의 규칙에 근거하여 진남이 스무 개의 청룡 영패를 얻는다!"
말을 마친 서천이 큰 손을 휘젓자 스무 개의 파란 빛의 찬란한 영패가 순식간에 진남의 손안에 날아 들어갔다.
바로 스무 개의 청룡 영패였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진남의 손에 있는 청룡 영패에 모였다. 청룡 영패를 본 사람들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온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랐다.
스무 개나 되는 청룡 영패였다. 만약 저걸 얻으면 이번 만상 대회의 일 위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큰 상품을 얻게 될 것이었다.
"진남 사제, 종문의 포상은 만상도에서 나간 후 장로에게 보고해야만 받을 수 있다."
"네, 서 사형. 감사합니다."
진남은 서천에게 공수했다.
서천이 전에 조롱할 때 진남은 이미 그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반격했었다. 모든 걸 갚은 상황에서 서천의 태도가 변했으니 진남도 더는 상대방을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진남!"
소리를 낸 사람은 임자소였다.
임자소는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삐뚤어지고 수없이 많은 살기가 그의 몸에서 꿈틀거렸다. 두 눈에는 끝없는 원한이 담겨있었다.
임자소는 미칠 것 같았다. 평소의 품위 있고, 위선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공법전에서 진남과 투무하여 참혹하게 패하여 평생 공법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난심고죽림에서 어렵게 황용을 격파했는데 진남에게 또다시 한번 패했다.
만약 진남이 없었다면 스무 개의 청룡 영패는 당연히 그에게 속했다.
만약 진남이 없었다면 지금 눈부시게 빛날 사람은 바로 그여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모두 진남에게 빼앗겼는데 그가 어찌 미치지 않겠는가?
제자들은 임자소의 모습을 보고 순간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제자들은 임자소와 진남이 이미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 진남이 천 보를 걸어 임자소를 이기고 스무 개의 청룡 영패를 얻었으니 임자소의 원한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었다.
제자들은 점점 흥분하여 각자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임자소가 진남을 공격할 것 같아."
"임자소는 진작부터 진남에게 공격하려고 생각했어. 다만 스무 개의 청룡 영패를 얻기 위해 잠시 참았을 뿐이야."
"만약 임자소가 손을 쓴다면 진남은 당해낼 수 없을 거야."
"당연하지. 진남이 비록 천 보를 걸을 정도로 무도심이 확고하지만 무도심이 경지를 대표하는 건 아니야. 만약 임자소가 손을 쓴다면 진남은 틀림없이 죽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게다가 임자소는 오십여 명의 천재를 모았어. 그들이 힘을 합쳐 손을 쓴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
제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다만 이번엔 전과 달랐다. 전에 제자들 대부분이 진남을 멸시했다. 또 임자소에게 포섭되어 진남을 죽이려 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 진남이 천 보를 걷자 어느새 제자들은 진남에게 경외감이 생겼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과 달리 눈앞의 형세에 따라 분석할 뿐이었다.
임자소가 성큼 한걸음 나서더니 진남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두 눈에 악기를 흘리며 말했다.
"진남, 뜻밖이구나. 네가 무예 재능뿐만 아니라 무도심마저 나를 이길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두 방면에서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그러나 이 세계는 결국 무도의 세계다. 무예 재능이 뛰어나고 무도심이 확고하다고 해도 당장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 너는 여전히 폐물이다!"
말을 마치자 임자소의 뒤에 있던 소운하 등 네 명의 천재와 그의 무리가 일제히 차갑게 웃기 시작했다. 온몸의 기세가 장내를 휘몰아쳤다.
오십여 명의 천재들이 동시에 기세를 폭발시켰다. 기세는 광풍처럼 몰려왔다. 사람들은 들끓는 힘에 공포를 느꼈다.
임자소 무리는 모두 진남에게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를 내뿜었다.
임자소가 말한 대로 진남의 무예 재능이 강대하고 무도심이 확고해도 당장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천재들은 진남의 천부에 거대한 살의가 생겼다.
만약 오늘 진남을 없애지 않으면 틀림없이 거대한 후환이 될 것이었다.
소냉과 초운은 돌아가는 상황에 안색이 크게 변했다.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신속히 진남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때 기운이 쇠약한 황용이 상황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임자소, 난 네가 진 걸 인정할 놈이 아닌 줄 알았다. 네가 공격한다면 나도 네놈들과 놀아주마."
말을 마치자 황용의 몸의 기세가 확연히 변했다. 마치 사나운 짐승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의 드높은 기세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비록 난심고죽림에서 황용이 무도심에서 임자소에게 졌고 그로 인해 중상도 입었지만, 그는 반보선천의 정도까지 도달했기에 여전히 공포스러웠다.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황용까지 진남 쪽에 합세하자 비록 네 명뿐임에도 기세가 임자소 무리에 비해서 손색이 없었다.
진남 등을 본 임자소의 눈에 한 가닥의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더니 말했다.
"황용, 넌 지금 중상을 입었기에 우리의 상대가 안 된다. 그런데도 진남 쪽에 서려고? 그렇다면 나는 너를 지옥에 보낼 수밖에 없다."
임자소 뒤의 소운하 등의 무리가 살의를 끌어모았다. 임자소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그들은 남김없이 발휘할 것이다.
황용은 임자소를 힐끔 보더니, 경멸하듯 웃으며 말했다.
"몸에 중상을 입었다고 한들 너 정도는 가볍게 진압할 수 있다. 임자소! 덤비거라!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황용이 포효하듯이 외쳤다. 그의 뒤의 아홉 갈래의 노란빛이 번쩍이더니 살기와 악기를 가득 담은 거대한 혈검 한 자루가 신속히 솟아올랐다.
황용의 무혼이 펼쳐지자 장내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역시 황용이었다. 그는 설령 몸에 중상을 입었어도 여전히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좋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임자소는 황용의 말에 살의가 폭발했다. 아홉 갈래의 노란빛이 빠르게 펼쳐지더니 퉁소 무혼이 솟아올랐다.
두 천재가 이 순간 무혼을 펼치고 격돌할 준비를 했다.
제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눈을 크게 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양대 초월급 천재의 싸움, 그리고 이렇게 많은 천재들의 싸움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무왕 경지이고 내문 제자인 서천도 이 광경을 보고는 숨을 죽였다.
그러나 바로 이때,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내 말을 들어 봐."
목소리의 주인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진남이었다.
진남이 입을 열자 장내의 팽팽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진남에게 돌렸다.
'진남이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진남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이미 광기 어린 임자소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임자소, 이 모든 건 너와 나의 원한일 뿐이다. 굳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 내가 이 말을 하는 건 너희들의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원한을 직접 해결하고 싶어서이다."
진남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황당해했다.
'무슨 뜻이지? 설마 임자소와 홀로 싸우려는 건가?'
진남은 조금 멈칫하더니 천천히 허리춤에서 큰 칼을 뽑았다. 그의 눈길이 갑자기 사나워지더니 말했다.
"임자소, 배짱이 있으면 나와라! 생사를 걸고 마지막 승부를 겨루자!"
진남이 쥔 칼의 칼날이 임자소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