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입미지경
"취천일격? 포악한 이름이네요."
진남은 고적을 받더니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한 줄기 희색이 번뜩였다.
노인이 이처럼 중히 여기는 비법이니 분명 평범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여 그는 바로 고적을 펼치고 신속히 읽기 시작했다.
진남이 비법에 빠져있자 노인이 그 모습을 보았다. 그의 차가운 눈길 뒤에는 커다란 기쁨이 숨어있었다.
삼백 년 만에 처음으로 노인은 흥분하고 미칠 듯이 기뻐했다.
진남은 고적을 펼쳐 위에 적힌 내용을 보는 순간 머리가 깨질 듯했다.
고적의 제일 첫 장에 큰 글자가 한 줄 쓰여있었다.
"세상 만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넓은 바다는 끝을 알 수 없고 오래된 선산은 그 무게를 알 수 없다. 스스로 큰길을 보고, 스스로 무예를 창조하여 바다의 기를 모으고, 선산의 기를 모으고, 만물의 기를 모으고, 방원 억 리 땅의 기를 모으고, 만고 창천의 기를 모으면 바로 취천일격이 된다!"
그 한 줄을 읽은 진남의 눈앞에는 마치 하나의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난 것 같았다.
그림자는 바다의 넓음, 선산의 무게, 만물의 정화, 대지의 무궁함, 푸른 하늘의 대도를 모아 일격으로 변화시켜 전부를 멸망시킬 것 같았다.
의지와 포악함은 막을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이건 어떤 무예지?"
진남은 놀랐다. 이 생각을 형용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그가 지금껏 많은 최종 무예를 보고, 많은 최종 무예를 장악했다고 해도 취천일격에 비하면 모두 한없이 하찮아서 비교할 수 없었다.
꼬박 반 시진이 지나서야 진남은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자해만월석을 움직여 깨뜨렸기에 선배가 이 무예를 준 거구나."
진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더니 취천일격에 빠져들었다.
진남은 전신의 혼을 방출하며 심신합일(心神合一), 미치광이 같은 경지에 빠져들었다. 그는 무예 재능을 최고로 끌어올려 온 힘을 다해 취천일격을 요해했다.
꼬박 닷새 밤낮이 지났다.
닷새 동안 진남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취천일격 속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오묘함을 흡수하더니 끝내 취전일격의 기초를 장악했다.
다만 그것도 겨우 장악한 것뿐이었다. 취천일격의 많은 현묘함은 현재의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취천일격은 정말 강대하구나."
진남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복잡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만 취천일격의 시작은 패기가 넘치지만, 진술된 것처럼 바다를 모으고, 세상 만물을 모으고, 대지를 모으고, 푸른 하늘을 모을 경지까지는 도달할 수 없구나."
진남은 약간의 실망을 드러냈다.
진남은 처음 고전을 펼쳤을 때 취천일격이 나타낸 기세에 끌려 매우 기대했었다. 그러나 취천일격의 기초를 장악한 후엔 그 위능이 시작에서 서술한 내용의 천분의 일, 심지어 만분의 일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 무예는 결함이 많은 것 같았다.
이때 노인의 목소리가 차갑게 들려왔다.
"녀석, 취천일격은 내가 우연히 얻은 한 부의 잔편(殘篇)일 뿐이다. 그러나 잔편이라 해도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꿈에서라도 갖고 싶어 하는지 아느냐?"
"잔편이라고요?"
진남은 이 말을 듣고는 취천일격의 진가를 깨달았다. 그리곤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선배님, 아직 가지 않으셨네요?"
이번에 취천일격을 보는데 꼬박 닷새 밤낮을 소모했다.
'나를 닷새 동안이나 기다렸다고?'
노인이 담담하게 그를 보더니 말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네가 취천일격을 겨우 기초밖에 요해하지 못했으니 내가 시범을 보여주마."
"시범을 보여주신다고요?"
진남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선배님 감사해요!"
진남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눈앞의 노인은 경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건 무왕 경지의 수련 필기보다도 더 귀중했다. 시범에서 무예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현묘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취천일격!"
노인이 손바닥을 휘젓자 길이가 삼십 척이나 되는 거대한 팔이 나타났다. 이어서 거대한 팔에서 한 갈래 현묘한 흡인력이 폭발하여 하늘과 땅 사이의 영기를 끊임없이 끌어모아 팔 속에 말아 넣었다.
순간, 길이가 세 장이나 되는 거대한 팔이 빠르게 작아지더니 마지막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광점(光點)으로 변했다.
노인이 굽혔던 손가락을 튕기자 엄지손가락만 한 빛들이 순식간에 전방 삼 리 밖의 땅에 떨어졌다.
이어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더니 삼 리 밖의 먼 땅에서 한 줄기 광채가 솟구쳐 올랐다. 마치 거대한 뇌구(雷球)가 하늘에서 떨어져 터지는 것 같았다.
방원 일 리의 토지가 순간 사라지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진남은 눈앞의 이 광경을 보고 완전히 넋을 잃었다.
그는 엄지손가락만 한 빛이 이렇게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위력이라면 설사 무왕 경지 강자도 순식간에 없앨 수 있겠지?'
충격을 받은 진남은 한참 후에야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그는 이를 악물고 온몸의 정력으로 놀라움과 두려움을 억눌렀다.
이어 가부좌를 틀고 전신의 혼을 내보냈다. 그는 심신합일의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진남의 머리에는 노인이 손을 휘두르던 그 광경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거대한 팔이 날아오르더니 천지의 영기가 모여와 하나의 엄지손가락만 한 빛을 이루었다.
진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끊임없이 그 광경을 되짚어가며 깨달음을 얻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햇살이 내리쬐어도 그는 절대 움직이지 않고 초식에 깊게 빠져들었다.
밤이 깊어지고 진남은 굳게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깨달았다.
그는 삼판 금련을 복용하고 반보 입미지경에 도달했었다. 그리곤 노인의 시범을 보고 하루 동안의 수련을 통해 그는 끝내 이 장벽을 뚫었다.
일념통달(一念通達), 일념입미(一念入微).
콰르릉!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진남의 몸에서 신검합일 원만 경지의 도의가 솟구쳐 나왔다. 이어 하늘과 땅을 뒤집을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검의가 신속히 응집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응집되어 점점 칼의 허상을 이루었다.
칼은 진남의 모든 의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입미지경이었다.
노인은 이 광경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속의 기쁨을 억지로 눌렀다. 검의를 몸속에 모으고 묵직한 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가르침을 주어 고맙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남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왜냐하면 노인의 한 수는 그에게 취천일격을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입미지경을 설명한 것과 같았다.
때문에 진남은 순조롭게 장벽을 깨고 입미지경에 들어설 수 있었다.
노인이 시범을 보인 건 각별하게 마음을 쓴 것이었다.
"허튼소리 그만하거라.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그만 떠나거라."
노인은 그를 보더니 담담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
진남은 묻고 싶은 게 아직 많았다. 그러나 노인이 이미 축객령(逐客令)을 내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전 물러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남은 숨을 들이마시고 노인을 향해 정중하게 세 번 절을 한 후 돌아서 떠나갔다.
노인은 산꼭대기에 서서 천천히 사라지는 진남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반 시진이 지나자 그의 얼굴에 가득했던 차가움이 천천히 사라졌다. 그는 미친 듯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꼬박 삼백 년이야! 삼백 년 만에 나에게 희망이 생겼어. 희망이 생겼어!"
웃음소리가 우레와 같이 작은 산봉우리를 산산조각 냈다.
* * *
진남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동굴로 돌아왔다.
이미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해 만상 대회가 끝날 때까지 이제 마지막 나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남이 동굴로 돌아왔을 때 초운과 소냉이 이미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진남은 두 사람을 훑어봤다.
두 사람이 요 며칠 사이에 크게 강해진 걸 발견했다. 초운은 쉬체 경지 구 단계에 도달했고 인기합일 대성의 경지를 장악하여 예전의 음살 공자보다 더 강해졌다.
소냉은 며칠 동안 무왕 강자의 수련 필기를 탐독해서 인기합일이나 경지에 대한 이해가 크게 높아졌다.
초운과 소냉은 진남을 보는 순간 눈에 놀라는 기색이 드러났다.
그들은 진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지만, 그 평범함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위압이 있는 걸 느꼈다. 그들 두 사람은 무서워 벌벌 떨었다.
그들은 불과 엿새 만에 진남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제고되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초운과 냉소는 놀라는 동시에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 노인과 함께한 엿새 동안에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지?'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진남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반드시 청룡 영패를 찾아야 해요. 우리는 실력이 크게 제고되었기에 이제 흩어져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청룡 영패를 쟁취할 기회가 더 커질 거예요."
진남은 약간 힘이 빠졌다.
그는 이번 만상 대회에서 삼 위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있는 한 장의 지도로는 숨겨놓은 스무 개의 청룡 영패를 찾을 수 없었다.
상승된 그의 경지는 지금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초운과 소냉의 얼굴에 모두 웃음기가 떠올랐다. 초운이 먼저 말했다.
"진남 사제, 사제가 떠난 이 엿새 사이에 큰일이 일어났어. 그 일 때문에라도 우리는 반드시 힘을 합쳐야 해."
그 말에 진남은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소냉을 바라보았다.
소냉은 웃음기를 거두고 허리춤에서 짐승 가죽으로 된 서신 한 통을 꺼내며 말했다.
"남형, 우선 이 서신부터 보시오."
진남은 서신을 받아 펼쳐보곤 표정이 변했다.
서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 소운하(肖雲河)는 임자소 사형의 부탁을 받고 이 서신을 씁니다. 모두 알다시피 오직 다섯 장의 지도를 모아야만 스무 개의 청룡 영패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임자소 사형의 손에는 두 장의 지도가 있습니다.
세 장의 지도가 부족하기에 서신으로 모든 사형제에게 알립니다. 만약 지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도를 가지고 섬 가운데로 오십시오. 다섯 장의 지도를 다 모으면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청룡 영패는 각자의 능력으로 쟁취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 편지를 얻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소운하는 어떤 사람이죠?"
진남이 물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이 동굴은 은폐되어 있어서 일반 제자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소운하는 무슨 능력으로 이 서신을 전한 거지?'
'이 서신의 내용으로 볼 때 소운하는 서신을 모든 제자들에게 전달한 것 같다. 만상도는 족히 방원 천 리가 되고 모든 제자의 위치도 임의로 정해졌는데 어떻게 이 서신을 제자들 손에 전한 걸까.'
소냉이 진남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 서신은 이틀 전에 얻은 거요. 소운하는 십 대 천재 중에서 일 위요. 쉬체 경지 십 단계에 도달했소. 그리고 소운하의 무혼은 하급의 요수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오. 그는 이번에 '불새'라고 불리는 요금(妖禽)을 다뤄 서신을 온 만상도에 있는 수사의 손에 전달했소."
"요수를 다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