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신비한 노인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진남의 온몸에서 신검합일 원만 경지의 검의가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 세차게 밀려왔다. 석굴 전체가 한기에 싸였다.
그 순간, 삼판 금련의 현묘한 힘이 풀려나 현묘한 청류로 변하더니 진남의 뇌로 흘러 들어갔다.
“이게 세 쪽짜리 금련의 묘한 용도인가?”
진남의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눈앞의 무도세계가 갑자기 밝아지고 넓어졌으며, 줄곧 그의 머릿속에 갇혀있던 많은 문제들이 모두 쉽게 해결되는 것을 느꼈다.
무도 경계가 하나의 장벽이었다면 삼판 금련을 복용한 후 장벽은 바로 부서져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삼판 금련이 이렇게 묘한 용도가 있을 줄 몰랐어. 역시 천지보물이야. 그렇다면 신검합일의 원만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까? 어서 전설의 입미지경을 연구해보자.”
진남이 혼잣말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신합일의에 들어섰다.
그가 무치 상태에 들어가자, 진남의 뇌 속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림자는 손에 칼을 들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때로는 경뢰도법, 때로는 백보비공을 펼쳐 보이며 이 두 가지 무술의 많은 오묘함을 잇달아 표현하였다.
이 그림자가 바로 진남이 이해하고 터득한 무도의 오묘함이었다.
바로 이때, 한 사람의 형상이 천천히 진남의 등 뒤에서 떠다니기 시작했다.
전신의 혼이 스스로 나왔다.
전신의 혼이 풀리는 찰나, 진남의 뇌에서 끊임없이 칼질을 연마하던 사람의 그림자가 갑자기 변했다.
백현팔보, 심지어 이름 모를 검술, 권술, 장법 등등의 무술은 무궁무진한 무예의 다른 오묘한 의미를 표현해냈다.
진남은 이 순간 뇌 속의 인영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현묘한 상태에 들어갔다.
시간은 계속 흘러 닷새가 지나고 초운과 소냉이 수련에서 깨어났다.
소냉, 초운 두 사람 모두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특히 소냉은 쉬체 경지 팔 단계를 돌파했고, 신검합일의 소성경지까지 장악해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지게 되었다.
초운은 기운을 숨기고 석굴 안을 한 번 들여다본 뒤 나지막이 말했다.
“진남 사제는 이번에 얼마나 있어야 출관할 수 있을까?”
소냉이 그녀를 쳐다보며 지난번이 생각나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를 방해하지 맙시다.”
그때 갑자기 압도적인 기운이 석굴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소냉과 초운은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
초운과 소냉은 실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삼판 금련을 먹고 경지가 대폭 제고되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강력한 기운에 심신이 떨렸다. 마치 무수한 칼이 온몸에 꽂힌 듯 오싹했다.
몇 번의 호흡이 지나고 압도적인 기운이 사라졌다. 초운과 소냉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이내 석굴을 바라보았다. 이때 진남이 천천히 석굴에서 나왔다.
지금의 진남은 여전히 쉬체 경지 칠 단계의 수행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운은 다 사라져서 마치 평범한 사람 같았다.
초운과 소냉은 십 대 천재로 견문이 넓었다. 그들은 당연히 이 평범한 기운을 알고 있었다. 이는 하나의 경계를 돌파하고 하나의 경지를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초운은 먼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물었다.
"진남 사제, 신검합일의 원만 경지를 돌파했어? 전설의 입미지경에 이른 거야?”
곁에 있던 소냉이 그 한마디에 깜짝 놀랐다.
무도의 경지에는 인기합일 위에 입미지경이 있었다.
듣는 소문에 의하면 입미지경을 장악하면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위능을 가지게 되는데 단계를 뛰어넘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식은 죽 먹기라고 했다.
설마 진남이 삼판 금련을 먹고 입미지경을 돌파했다는 말인가?
진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하게 웃었다.
“입미지경이 어디 그리 쉽습니까. 저를 과대평가하셨습니다.”
초운과 소냉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을 마주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진남이 입미지경에 이르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런 기운이 폭발했을까?
두 사람은 진남이 많은 비밀을 털어놓기 싫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초운과 소냉은 오해했다. 진남은 확실히 입미지경에 이르지 못했다. 그는 삼판 금련을 복용하고 전신의 혼이 주는 깨달음 하에 자신의 무도를 소화하며 많은 오묘함을 익혔다. 그러나 입미지경에 발을 반쯤 들였을 뿐 돌파하려면 거리가 있었다.
다시 말해, 현재 진남은 하나의 장벽에 도달했었다. 그 장벽을 돌파해야 입미지경을 돌파할 수 있었다.
초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더 이상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진남 사제, 우리 이제 어디 가? 만상 대회가 열흘밖에 남지 않았어.”
이 말을 들은 진남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재 그의 수행은 쉬체 경지의 칠 단계 달하고 반보입미(半步入微)를 파악하여 쉬체 경지의 구 단계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황용, 임자소 같은 초월급 천재나 혹은 쉬체 경지 십 단계인 최고의 천재를 만나지 않는다면 진남은 모두 이길 수 있었다.
수련은 충분했다. 이제 청룡영패를 반드시 쟁취해야 했다.
지난번 음살 공자를 죽여 청룡영패 두 개를 가졌다. 그래서 진남에게는 이제 세 개의 청룡 영패가 있었다.
십 위 안에 들 수 있을 확률은 높았지만, 삼 위 안에 들려면 불가능했다.
진남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반드시 다른 청룡 영패를 쟁취해야 해. 내 손에 지도가 하나 있으니 다른 네 개의 지도를 찾으면 스무 개의 청룡 영패를 찾을 수 있는데……"
"손에 지도가 있어?"
초운은 약간 놀랐다. 그러나 이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만상도는 사방이 천 리나 되는데 우리 어디 가서 다른 지도 네 개를 어떻게 찾아? 그리고 나머지 지도 네 개를 다른 사람이 이미 찾았을 수도 있어.”
소냉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 다섯 장을 다 모으기엔 너무 힘들었다.
진남도 이 문제를 생각했지만, 지금으로선 나머지 지도 네 개를 모을 방법이 없었다.
그때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희들 중 누가 진남이냐?”
진남, 초운, 소냉, 등 세 사람의 안색이 동시에 변하고 온몸이 순식간에 팽팽하게 굳어지며 싸울 태세를 취했다.
진남은 깜짝 놀랐다. 지금 그의 경지라면 임자소라 할지라도 감쪽같이 그의 곁에 다가올 수 없었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 소리의 출처를 바라봤다.
석굴 입구에 노인이 서 있었다. 삼베 두루마기를 걸친 노인의 얼굴에는 세월이 깊은 주름을 남기고 가서 무척이나 차갑고 엄숙해 보였다.
세 사람은 당황했다.
만상도에 노인이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만상도는 현령종이 제자들의 시련을 위해 사용했던 곳이었다. 반드시 전송대진을 가동해야 도착할 수 있었다. 혹은 수행이 무왕 경지를 넘어서야만 만상도 주변의 독무를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세 사람은 표정이 동시에 변했다. 눈앞에 있는 이 노인이 무왕 경지를 넘어선 존재일까?
진남은 깊게 심호흡했다. 그는 전신의 눈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눈앞의 노인은 평범하지 않았다. 선노와 같은 수준의 존재였다.
진남은 온갖 궁금증을 억누르며 공수하고 인사했다.
"선배님, 제가 진남입니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요?”
“나와 함께 어디로 가자.”
신비한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두 명은 여기서 기다리거라.”
소냉과 초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진남을 바라봤다.
‘강대하고 신비한 노인이 왜 진남을 찾을까?’
진남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 후배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선배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내력도 모릅니다. 그래서 따라갈 수 없습니다.”
소냉과 초운 모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들 두 사람 모두 진남이 감히 거절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신비한 노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삽시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무거워졌고 위압이 가해졌다.
소냉과 초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위압 아래서 그들은 마치 개미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에게 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진남은 위압감에 온몸이 팽팽하게 굳고 흐르는 피마저 천천히 굳어졌지만, 표정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만약 이 노인이 그를 죽이러 왔다면 한 수로도 세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노인이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니 그들을 결코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진남은 노인의 신원을 물었다.
노인은 한동안 노려보더니 위압을 거두고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똑똑하다. 하지만 다음에는 거절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 명을 거절한 사람들은 다 죽었다.“
”너에게 선 사제가 준 영패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말에 진남은 잠시 멍하더니 이내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선 사제의 영패? 이 노인이 선노를 사제라고 부른다고? 그렇다면, 지금 이 신비한 노인이 선노의 사형인가? 선노의 사형이라니 얼마나 무서운 존재일까?’
진남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재빨리 공수하고 말했다.
“선배님, 선노의 사형일 줄은 생각 못 했습니다, 방금 실례했습니다. 선배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십시오.”
진남은 선노를 매우 존경했다.
선노는 진남이 그의 남해월아석을 부서뜨렸을 때 진남을 탓하지 않고 도리어 그에게 진귀한 자룡적아령을 주었다. 진남은 선노에게 매우 큰 은혜를 입었던 것이다.
신비한 노인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큰 손을 저어 고적 두 권을 던져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 둘은 여기서 기다리거라. 이 고적 두 권은 너희들이 시간을 보내라고 주는 거다.”
신비한 노인이 진남을 보며 말했다.
“나를 따라오거라.”
진남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초운과 소냉에게 눈짓하고는 속히 신비한 노인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초운과 소냉은 그 자리에 서서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 두 사람은 눈앞에 벌어진 모든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신비한 노인은 누구지? 선노는 또 누구지? 진남과 그는 무슨 관계지?’
두 사람은 바닥에 있는 고적(古籍)을 바라봤다.
초운과 소냉의 얼굴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소냉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왕의 수련 필기? 두 권이나 되는데?”
깜짝 놀란 두 사람은 모두 숨을 들이켰다.
무왕 경지까지 오른 강자의 수련 필기 가치를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귀중했다.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아무렇게나 두 사람에게 던져주다니?
초운과 소냉은 방금 전의 신비한 노인의 내력이 매우 평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초운이 고적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얼굴에 허탈한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진남 사제는 아마 신입 제자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짐작할 수 없는 사람일 거다.”
그녀는 처음에 궁양 사형이 부탁했을 때 진남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하지만 단지 호기심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전혀 진남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남을 호숫가에서 만났을 땐 그녀는 진남이 너무 날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진남이 예상 밖으로 음살 공자를 죽였다. 게다가 방금 전에 나타난 신비한 노인까지 더하니 진남은 매우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진남 사제, 언젠가는 내가 네 비밀을 밝혀낼 거다.”
초운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마음속에 가득한 잡념을 거두고 소냉과 함께 동굴로 들어가 수련할 준비를 했다.
무왕 경지 강자의 수련 필기를 얻었으니 그들은 시간 낭비하지 않고 서둘러 수련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