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삼판 금련
이를 본 진남은 전신의 혼을 거두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는 음살 공자와는 아무런 원한이 없었다. 하지만 음살 공자가 진남에게 말끝마다 폐물이라 하고 무릎까지 꿇으라고 했다. 그래서 음살 공자가 도망가자 진남은 주저하지 않고 추격했다.
진남은 적에겐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도망가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진남은 손을 내밀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음살 공자의 몸을 더듬어서 잡다한 물건들을 다 꺼냈다.
음살 공자의 몸에는 많은 암기가 숨겨져 있었다. 비도, 화살 등등이 있었는데 그 위에 독극물을 발라서 상대를 음해하는 데 사용했다.
이때 진남의 눈이 빛났다. 음살 공자의 몸에서 두 개의 청룡영패와 삼백 알의 선천단을 찾았다.
“허허. 역시 십 대 천재답게 부자구나.”
진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즉시 두 개의 청룡 영패와 선천단을 전부 품에 넣었다.
뒤이어 진남은 조금도 머물지 않고 음살 공자의 시체를 메고 훌쩍 숲속으로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삼판 금련이 있는 호숫가.
혈장무가 천천히 거둬지고 있어 호수의 대략적인 윤곽을 드러났다.
그러나 호숫가에 있는 모든 제자들은 이런 변화엔 주목하지 않고 숲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이제 한 주 향의 시간이 흘렀으니 둘 사이에 승부가 났겠지?"
"하하하, 내가 보기엔 진남이 음살 공자의 손에 죽지 않았으면 중상을 입고 위태롭게 목숨을 건졌을 거야.”
"혼자 음살 공자를 추격하다니, 겁도 없지. 이번에 죽지 않았어도 목숨이 간당간당할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음살 공자는 십 대 천재 중의 서열 사위인데 진남이야 쉽게 죽이겠지.”
"진남이 반드시 죽는다에 한 표 걸겠어.”
“……”
제자들은 하나같이 흥분한 얼굴로 내기까지 벌였다.
다만 모두 진남이 중상을 입는 다거나 반드시 죽는다에 표를 걸었다.
초운은 제자들의 말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점점 짙어져 갔다.
지금 그녀는 내심 진남이 중상을 입어도 좋지만 절대 죽으면 안 된다고 기도하고 있었다.
한편 소냉은 걱정은 되었지만 긴장하지 않았다.
동굴 속에서 소냉은 진남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위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진남이 강력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설마 지더라도 죽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감각이 예민한 제자가 소리쳤다.
"누가 왔어.”
순식간에 장내가 고요해졌다.
소냉, 초운, 그리고 모든 제자들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봤다.
숲속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떠올랐다.
모두가 긴장해서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 온 것 같았다.
음살 공자나 진남이나 모두 명성이 높고 무혼이 황급 팔품에 이르는 최고의 천재였다.
그래서 다들 자연스레 이 전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숲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잘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모든 사람의 눈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왜냐하면 숲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 진남이었기 때문이다.
진남이 앞으로 다가와 어깨에 멘 시체를 버렸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하군.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실망시키게 됐네.”
그의 한마디에 모든 사람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시체를 바라보았다.
소냉, 초운 그리고 제자들까지 모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시체는 음살 공자였다.
장내가 물 뿌린 듯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의 호흡이 멈췄다. 바늘이 바닥에 떨어져도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이내 소냉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여전히 충격받은 눈으로 목소리마저 떨며 물었다.
“진남, 음, 음살 공자를 죽, 죽였소?”
진남은 담담하게 그를 힐끗 쳐다보며 되물었다.
"왜? 어디가 이상하오?”
이상하기만 할까?
너무 충격적이었다.
소냉은 침을 꿀꺽 삼켰다. 비록 전체 제자 중 진남이 비장의 실력을 가졌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지만 음살 공자를 죽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 순간, 모든 제자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모두 몇 번이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진남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졌다.
음살 공자마저 죽임을 당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진남 앞에서 날뛰겠는가?
진남은 이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새로 들어온 제자들을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알기로 너희 무리 중에 임자소와 연합하여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또 너희 모두 내가 음살 공자와 싸울 때 나를 비꼬았지."
진남의 말에 제자들은 마음을 졸였다.
‘진남의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설마 우리에게 손을 대려는 것은 아니겠지?’
진남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말했다.
"지금 너희에게 기회를 주마. 당장 썩 꺼지거나 나와 싸우거나 선택해!”
모든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 요란하게 움직이며 하나같이 도망쳤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스무 명의 신입 제자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진남의 짧은 말 한마디에 제자들이 놀라서 넋을 잃고 잽싸게 달아났다.
진남이 음살 공자의 시신을 메고 온 이유였다.
무도세계에서 대부분 무인들은 세력을 믿고 약자를 괴롭혔다.
진남은 임자소 덕분에 모든 신입 제자들에게 미움을 샀다. 적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죽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음살 공자의 시체로 위엄을 세운 것이었다.
이제 이십여 명의 제자들이 앞으로 진남 앞에서 두 번 다시 반기를 들지 못할 것이다.
"진남 사제."
이때 충격을 받은 초운이 그를 불렀다.
그녀는 물기를 머금은 듯한 눈빛이었다. 목소리는 뼈를 녹일 것처럼 부드러웠다.
"이렇게까지 강한 줄 몰랐어. 음살 공자를 죽일 만큼 강했다니.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야."
진남은 초운의 매혹적인 모습에 가슴이 떨려 기침을 하며 정색했다.
"초운 사저, 제가 단독으로 추격한 건 자신 있기 때문이었어요.”
초운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다 내 탓이야. 네 실력을 과소평가했어.”
이 말은 초운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녀는 그전에 진남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그녀는 줄곧 한 가지를 간과했다. 궁양 사형이 진남을 더없이 중시하는데 진남의 실력이 안 좋을 리가 있을까?
"초운 사저. 양형과 나는 사형 사제입니다. 사저가 양형과 친하다고 하니 굳이 우리끼리 인사치레는 하지 맙시다.”
진남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 초운 사저만 괜찮다면 함께 삼판 금련을 따러 가죠.”
진남이 이 말을 하자 초운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삼판 금련은 더없이 진귀했다. 그녀는 진남이 혼자 차지할까 걱정했다. 진남의 실력이라면 그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진남 사제, 고마워."
초운의 웃음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아 참, 진남 사제. 나를 사저라고 부르지 말고 운 누이라고 불러.”
“아, 좋아요. 운 누이.”
진남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초운이 풍기는 유혹을 그도 느꼈다.
다만 진남은 남녀의 일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소냉이 갑자기 외쳤다.
"혈장무가 걷혔소!"
진남과 초운은 앞을 바라보았다.
호수에 덮였던 혈장무가 마치 어떤 신비롭고 강한 존재에 빨려 들어간 듯 긴 용이 되어 숲속으로 빠르게 멀리 날아갔다. 호수의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났다.
세 사람 앞에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호수는 맑고 투명했는데 안에는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호수 위에는 영기가 둥둥 떠 있어 마치 호수 영지를 방불케 했다.
호수의 맞은편에 있는 석굴이 드러났다. 그 석굴 입구에는 금빛 연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한 송이 선련처럼 빛났다.
진남 등 세 사람이 동시에 찬 숨을 들이마셨다. 의심할 여지없이 눈앞에 펼쳐진 이 연꽃은 희귀한 삼판 금련이었다.
다만 보물이 눈앞에 있어도 세 사람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의 관찰한 바로 혈장무는 적어도 이틀은 지나야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제 겨우 반나절이 지났다.
진남은 전신의 눈을 슬며시 움직이며 사방 삼 리의 모든 것을 다 눈에 담았다.
뒤이어 진남은 어떤 신비한 힘이 먼 곳의 숲에서 뿜어져 나와 혈장무를 흡입하는 것을 발견했다.
전신의 눈을 동원해도 도대체 어떤 존재가 혈장무를 흡입하는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먼저 이 호수에 위험한 게 없는지 봅시다"
진남이 말하면서 자갈 몇 개를 주워 들고 호수를 향해 던졌다.
몇 개의 자갈들이 허공을 뚫고 호수 위를 때리더니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호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위험한 건 없는 것 같다."
초운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혈장무가 걷힌 것이 이상하긴 해. 내 생각에 삼판 금련을 빨리 가져가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바로 물러가자. 혹시 무슨 이변이 있을 수도 있잖아.”
진남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현시점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자 진남은 앞장서서 호수를 향해 몸을 날려 석굴에 먼저 도착했다.
“이게 삼판 금련인가?”
진남은 눈앞에 놓인 연꽃을 응시했다.
연꽃은 손바닥만 했는데 꽃잎이 세 조각이었다. 조각마다 금빛으로 빛나고 현묘한 힘을 담고 있었다.
진남은 즉시 꽃잎 따서 가운데 두 쪽을 떼어 주며 말했다.
“한 사람이 한 조각씩이에요.”
초운과 소냉도 망설이지 않고 꽃잎을 받았다.
"가요, 초운 사저. 내가 찾은 은신처에 가서 삼판 금련을 복용하고 흡수해요.”
진남이 말하면서 몸을 날렸다.
세 사람이 떠난 뒤 맑은 호수 위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뭉쳐졌다.
* * *
진남과 두 사람은 다시 이전의 석굴로 돌아갔다.
소냉과 초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두 석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삼판 금련 꽃잎을 복용하고 연화할 준비를 했다.
진남도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몸을 돌려 석굴 가장 깊은 곳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금빛 연꽃 꽃잎을 꺼내 들었다.
"이제 삼판 금련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한번 보자.”.
진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금련 꽃잎을 집어삼킨 후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금련 꽃잎이 진남의 전신으로 흘러들었다. 화염에 휩싸인 듯 진남의 온몸이 타올랐다.
동시에 웅장하고 순수한 기운이 그의 몸속에서 솟아오르며 그의 사지와 오장육부를 적셨다.
"굉장한 영기로구나.”
진남이 눈을 떴다. 그는 깜짝 놀랐다.
웅장한 영기는 적어도 스무 알의 선천단 정도에 해당하며 또한 영기의 순도 또한 선천단과는 비교가 안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꽃잎 세 개 중 하나만 사용했는데 이 정도였다. 세 쪽을 함께 먹었다면 그 속에 담긴 영기는 얼마나 컸을까?
진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마음속의 온갖 생각을 억누르고 전심전력으로 웅장한 순결한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 사흘이 지나서야 진남은 비로소 순수한 기운을 몸속에 녹여냈다.
진남의 육신이 이전과 달라졌다.
그가 쉬체 경지의 칠 단계를 돌파했을 때, 그의 체내 살갗, 근육, 골격, 내장은 철판처럼 단단해졌다.
지금 금련 꽃잎의 영기 아래 진남의 체내 혈기가 세차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는데, 마치 한 줄기 강처럼 온몸을 돌았다.
아직 쉬체 경지 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육신의 힘은 칠 단계의 절정이었다. 보통의 칠 단계와 비할 바가 못 됐다.
“쉬체 경지는 십 단계로 나뉘는데 각각 살갗, 근골, 내장, 혈기를 연마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금련 꽃잎의 작용 하에 나의 혈기는 이미 팽배하게 솟아올랐어. 이제 마음을 다잡고 수련한다면 쉬체 경지 팔 단계도 돌파할 수 있을 거야.”
진남은 눈을 뜨고 맑은 눈빛으로 그가 수련해야 할 방향을 차근차근 가다듬으며 정리했다.
진남은 경지를 급하게 승화시키지 않았다.
삼판 금련이 가장 귀한 것은 경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무도(武道)적 깨달음을 제고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 삼판 금련의 진짜 묘한 용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