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소냉을 다시 만나다
진남은 이장운의 죽음을 보고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그는 적을 상대로 마음이 약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놈 몸에 단약이 얼마나 있는지 보자."
진남은 앞으로 나아가 이장운의 몸을 더듬거리더니 옥병 두 개를 꺼내어 열어 보았다. 옥병 안에는 각각 열 알의 선천단이 들어 있다.
"선천단이 스무 알이나 있어. 꽤 부유한 놈이었구나."
진남은 기뻐하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단약을 가져갔다. 그리고 진남은 신속하게 움직여 자염화 다섯 송이도 모두 챙겼다.
"아까 발견한 곳에 돌아가서 자염화를 연화해야겠어."
진남은 마음을 먹고 전신의 눈을 펼쳐 몸을 움직였다. 잠시 후 진남은 은밀히 숨겨져 있는 석굴에 도착했다.
석굴은 높이가 약 육 척 정도 되었는데, 매우 좁아 딱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었다.
석굴 깊숙한 곳에 이르자, 사방이 구십 척이나 되는 웅덩이가 있었다. 웅덩이는 물이 맑고 파란색 빛을 띠고 있어 아름다웠다.
진남은 다섯 그루의 자염화를 잘게 부수어 보라색 즙을 만들어 웅덩이에 넣었다.
맑던 웅덩이가 자색으로 변했다. 짙은 빛깔의 웅덩이에 영기가 넘쳐났고, 은은한 향까지 풍기기 시작했다.
"어서 자염화의 효능을 확인해 보자."
진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훌쩍 웅덩이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웅덩이에 들어서는 순간 진남의 얼굴빛이 확 달라졌다.
날카로운 고통이 온몸의 피부를 통해 전해졌다. 마치 무수한 바늘이 모공에 꽂히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고통에 진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머릿속에선 그에게 어서 이 웅덩이에서 벗어나서 통증으로부터 멀어지라고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씁……!"
진남은 냉기를 들이켰다.
"안 돼, 절대 포기할 수 없어!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고 있어. 반드시 경지를 높여야 해. 아파서 죽을지언정 떠날 수 없어!"
진남은 격렬한 고통 속에서 나지막이 신음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웅덩이 속에서 버티기 시작했다.
천천히 시간이 흘러갔다.
고통이 점점 더 심해졌다. 연못에서 숨 한번 쉬는 것이 엄청난 고난이었다.
이 순간 진남의 뇌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줄 같았다. 진남은 줄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이를 악물었다.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정신을 잃고 죽을 것만 같았다.
다섯 시진이 지나자, 연못 속 진남의 온몸이 빨갛게 되었다. 마치 칼날에 긁혀 상처가 난 것 같았다. 자염화 즙은 상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너무 큰 통증으로 인해 저절로 육체가 찢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는 동안 웅장한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밀려 들어와 오장육부와 온몸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불과 다섯 시진 동안의 고통이 닷새 동안 무혼을 풀어 힘들게 연마한 것과 같았다.
"더…… 더……! 이 정도로 부족해!"
진남은 이를 악물고 소리를 질렀다. 다리에 납덩이를 채워 넣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열두 시간이 지났을 때 진남의 몸에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서 웅덩이의 보랏빛 즙을 말끔하게 빨아들였다.
웅덩이의 물이 다시 맑아졌다.
진남의 통증에 일그러진 얼굴이 드디어 천천히 가라앉아 평온하게 바뀌었다. 그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진남의 체내에서 방대한 힘이 용솟음쳤다.
"드디어 쉬체 경지 육 단계를 돌파했어."
진남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의 팽팽한 힘을 느꼈다.
"이 정도면 쉬체 경지 칠 단계에 뒤지지 않겠구나. 그저 수행이 부족해 쉬체 경지 칠 단계를 돌파할 수 없는 것뿐이야.“
보통 자염화 한 송이면 쉬체 경지의 수사가 쉽게 쉬체 경지 칠 단계를 돌파할 수 있었다.
이번에 진남은 한 번에 자염화 다섯 송이를 쓰고 영기를 섭취했으니 거대한 힘이 그의 육신을 쉬체 경지 칠 단계 수준으로 만든 것은 당연했다.
"이장운 같은 상대는 이제 한방에 꺾을 수 있어.“
진남은 평정을 되찾았다.
이제 그는 쉬체 경지 육 단계를 돌파했고 육체는 쉬체 경지 칠 단계에 가까워졌다. 그는 새로운 힘에 대해서 감이 왔다.
보통 쉬체 경지 육 단계의 수사는 주먹 한 방에 큰 나무를 두 토막 낼 수 있었다.
반면 진남이 주먹을 한번 날리면 큰 나무가 폭발하여 가루가 될 것이었다.
쉬체 경지의 육 단계가 되니 진남의 내장은 이전에 강화된 근골, 피륙과 비슷해졌다.
"자, 이제 선천단 스무 알을 복용해 보자. 전신의 혼을 황급 구품까지 돌파할 수 있을까?"
진남은 지체하지 않고 전신의 혼을 방출한 뒤 선천단 스무 알을 전부 삼켰다.
긴장하며 잠시 지켜봤는데도 전신의 혼은 꿈쩍하지 않았다. 진남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 선천단 스무 알을 포함하면 그는 족히 일흔 알의 선천단을 복용했다. 이것은 칠천 알의 쉬체단과 맞먹었다. 이렇게 많은 단약을 먹었는데도 전신의 혼의 등급이 오르지 않았다.
"됐어. 지금 중요한 건 경지를 제고하는 거야. 전신의 눈을 계속 가동하여 천지의 영물을 수색하자. 필경 나의 경지는 이미 쉬체 경지 육 단계의 절정일 것이야. 자염화 수준의 천지 영물을 찾는다면 쉬체 경지 칠 단계까지 돌파할 수 있어. 그 정도가 되면 청룡영패도 노려볼 수 있을 거야."
진남은 즉시 석굴을 빠져나와 사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진남은 두 시진 동안 주변을 수색했지만 어떤 천지의 영물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다.
멀지 않은 곳의 숲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진남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남, 당신이요?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소?"
그는 소경설의 동생 소냉이었다.
진남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전신의 눈을 통해 이미 소냉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가 소냉을 피하지 않은 것은 첫째는 진남의 수행이 소냉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가 됐고, 두 번째는 소경설 때문에 소냉도 진남을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신 경지가……?"
소냉이 진남의 경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쉬체 경지 단계를 높인다고 해도 소용없소. 많은 제자들과 임자소의 미움을 샀으니 죽음을 피하기 힘들 것이오."
진남은 그를 담담하게 한번 보고는 말했다.
"알려줘서 고맙소."
말을 마친 진남은 머물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소냉과 쓸데없는 대화를 하기 싫었다.
진남이 돌아서는 것을 보고는 소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진남에게 이렇게 쉽게 무시당할 줄 몰랐다.
소냉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잠깐만. 진남, 당신과 내가 협력해야 할 일이 있소."
"협력?"
진남이 돌아서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소냉을 바라보았다.
소냉은 그의 시선을 느끼고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당신은 우리 누나가 발굴한 천재이고, 또 쉬체 경지 육 단계라 나한테 도움이 좀 되니까 협력하자는 거지, 아니면 어림도 없소."
"그렇소?"
진남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말했다.
"그럼 협력하지 맙시다."
말을 마친 진남은 다시 몸을 돌려 떠날 자세를 취했다.
"아니, 잠깐……."
진남이 이런 식으로 나오자 소냉은 다급한 표정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청룡영패와 연관 있는 거요. 만약 우리 둘이 협력해서 성공한다면 당신과 공평하게 나누겠소!"
그 말에 진남은 발길을 멈추었다.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진남은 담담하게 물었다.
"청룡영패? 당신은 청룡영패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소?"
만상 대회가 시작할 때 다섯 명의 장로들은 제자들에게 만상도에는 모두 서른 개의 청룡영패가 있다는 것만 알려주고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만상도는 방원 천 리나 되는 거대한 섬이었다. 그런데 소냉은 청룡영패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소냉이 말했다.
"만상도에는 현령종의 선배들이 많은 지도를 남겼소. 지도에는 수많은 만상도의 보물이 기록되어 있소. 어떤 지도에는 청룡영패가 기록돼 있소. 청룡영패가 표시된 지도는 모두 다섯 장인데 장마다 두 개의 청룡영패가 표시되어 있소."
여기까지 말한 소냉은 숨을 돌리고 다시 말했다.
"듣는 소문에 의하면 지도 다섯 장을 모아야 열 개 이외의 나머지 스무 개 청룡영패도 찾을 수 있다고 하오."
이 말을 들은 진남은 속으로 삼 할만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그가 자염화를 발견한 건 전신의 눈을 사용해서였다. 하지만 이장운은 지도를 보고 자염화를 찾았다고 했다.
진남은 한참 망설이더니 물었다.
"우리 어떻게 협력하겠소?"
진남의 급선무는 경지를 제고하는 것이었지만 청룡영패도 반드시 얻어야 했다.
"나는 원래 그 지도를 가지고 있었소. 그런데 십 대 천재 중 서열 구위인 왕맹(王猛)이 빼앗아갔소."
소냉의 눈에 차가운 빛이 번지며 살벌하게 말했다.
"당신이 나와 협력한다면 왕맹은 내가 대적하겠소. 그의 주변엔 쉬체 경지 칠 단계의 제자가 두 명 더 있소. 당신이 그자들을 막아주면 되오."
말을 마친 소냉은 이내 진남을 바라보았다.
사실 소냉은 진남과 협력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줄곧 진남을 경멸하고, 진남을 매우 업신여겼다. 진남이 많은 사람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혼자만으로는 왕맹을 상대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이고 진남과 연맹을 결성할 수밖에 없었다.
진남은 소냉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진진하게 물었다.
"십대 천재라는 게 뭐요?"
현령종에 들어온 후 진남은 줄곧 공법전에서 무예를 배우거나 수행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잘 알지 못했다.
"신입 제자들 중 두 부류의 서열이 있소. 첫 부류는 양대 초월급 천재, 황용과 임자소요. 그 아래가 바로 두 번째 부류인 십 대 천재요."
"십 대 천재는 누구나 무혼이 황급 팔품에 달하오. 순위는 경지에 따라 정해졌소.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는 십 대 천재 중 서열 십 위요."
말을 마친 소냉은 진남을 한 번 더 쳐다봤다.
진남은 황급 팔품 무혼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천재 중의 하나였다.
다만 진남이 임자소와 이백이십 명 제자들의 미움을 받았으므로 곧 죽을 사람이라 포함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군."
진남은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당신과 협력하겠소."
진남은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비록 소냉에게 호감은 없었지만 다른 제자에 비해 믿음이 있었다.
어찌 됐든 소냉은 소경설의 동생이고 진남은 소경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도의 동선을 기억하고 있소. 지금 바로 출발합시다. 그곳에는 요수가 지키고 있지만, 왕맹들을 오래 막지 못할 거요."
소냉은 진남이 협력하자 기세가 살아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신법절학(身法絕學)을 발휘하여 몸을 날렸다.
진남은 소냉이 초조해하는 걸 보고 고개를 살짝 흔들더니 곧바로 따라갔다.
* * *
두 사람은 숲속에서 한 주 향이 타는 시간 동안 걸어서 큰 나무에 도착했다.
소냉이 실눈을 뜨고 앞을 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소리를 내지 마오. 저들이 요수를 죽인 뒤 우리가 움직입시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운을 거둔 뒤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호수가 있었고, 호수의 중앙에 석좌(石座)가 드러나 있었다. 석좌 위에는 옥패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옥패는 옅은 청색 빛을 뿜고 있었다.
옥패 두 개가 바로 청룡영패였다.
진남은 시선을 돌리자 세 청년이 끊임없이 무혼을 방출해서 호숫가의 요괴와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살벌한 기세로 요괴와 부딪히며 맑은 호수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