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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40화 (40/1,498)

40화 자염화(紫焰花)

"운이 좋군. 방원 삼 리 안에는 아무도 없어."

진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신의 눈을 거둬들이려고 하던 그는 문득 주변에서 특이한 것들을 발견했다.

"저 풀은 온몸이 영롱하고 나무의 절반만큼 자란 것을 보니 취령초(聚靈草)잖아? 그리고 저기 취령초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온통 시커먼 나무는 바로 고뢰목(古雷木)이 아닌가?

고뢰목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음흉함을 견디는 힘을 지녀 각종 방어 도구나 장신구를 만드는 데 쓰이는 무척 귀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진남의 눈에 비친 놀라움이 점점 커졌다.

잠깐 사이에 그는 전신의 눈을 통해 이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무려 십여 가지의 천지 영물을 발견했다.

십여 가지의 천지 영물은 비록 가치가 높지는 않지만, 만상도가 무예를 연습하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었다. 만상도엔 수많은 천지 영물이 자라고 있었다.

"만상도에 이렇게 많은 천지의 영물이 있다니. 전신의 눈이 마침 방원 삼 리 안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니 방원 삼 리 안의 적을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지의 영물도 찾아낼 수 있잖아?"

진남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점점 흥분되었다. 전신의 눈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좋아. 이제 전신의 눈을 펼쳐 수행을 높일 수 있는 천지의 영물들을 찾자."

진남은 곧 마음을 굳히고 지체하지 않고 전신의 눈을 굴리며 몸을 움직였다.

현재 진남은 경지가 너무 낮았다. 만상도에서 스스로를 제대로 보호할 능력이 없었다. 더구나 임자소와 이백이십 명의 제자들 모두 그의 적이었다.

그래서 급선무는 청룡 영패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경지를 제고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진남의 긴 수색이 시작되었다.

천지의 영물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두 무리의 신입 제자를 만났다.

두 무리의 신입 제자들은 하나 같이 수위가 쉬체 경지 팔 단계에 이를 정도로 실력이 막강했다. 진남은 전신의 눈을 이용하여 신입 제자들을 피했다.

그 과정에서 진남은 폐관 수련하기 좋은 곳을 찾았다. 영기가 농후하고 은밀한 곳에 있어서 발견하기 매우 어려운 곳이었다.

"휴, 한 시간 동안 연속해서 전신의 눈을 펼치고 백현팔보를 사용했더니 이제 체력이 좀 떨어지는구나. 좀 쉬어야겠다."

지친 진남은 큰 나무 위에 서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백현팔보를 펼치는 것은 체력 소모가 크지 않았다. 체력 소모가 큰 것은 전신의 눈 때문이었다.

전신의 눈을 펼칠 때 많은 집중력이 요구됐다.

진남은 한 시진을 쉬고 정신력을 회복하였다.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날아갔다.

일 리 정도를 지나던 진남은 삼 리 앞 지점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깊은 연못을 발견했다.

연못의 한가운데에는 꽃들이 몇 송이 있었다. 꽃의 꽃잎은 생김새가 이상했고, 색은 찬란한 자색이었다.

그 꽃들을 본 순간, 진남은 이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자염화(紫焰花)잖아?"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흥분해서 신속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자염화는 아주 진귀한 천지의 영물이었다. 꽃잎을 따서 복용하면 백독을 해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계를 돌파하고 경지를 높일 수 있었다.

자염화는 쉬체 경지의 수사에게는 일종의 수련 성약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 진남은 자염화를 보는 순간 차분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응?"

진남은 이 리를 전진한 후 갑자기 멈추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진남은 삼 리 밖에서 어떤 제자가 빠른 속도로 자염화가 있는 연못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제자의 목표는 다름 아닌 자염화였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나를 죽이겠다고 했던 제자들 중 한 명이네. 쉬체 경지 칠 단계군."

진남이 혼잣말을 했다. 눈에서 한 줄기 서늘한 빛이 번뜩였다.

"나는 반드시 자염화를 가질 거야. 어차피 저놈은 나랑 적대적일 테니까 좋게 말해서 못 알아들으면 사정을 봐주지 않을 거야."

말을 마친 진남은 몸을 움직이더니 백현팔보를 펼쳐 길을 재촉했다.

한 주 향의 시간이 지난 후에 진남은 쉬체 경지 칠 단계인 제자보다 먼저 연못에 도착했다.

둘레의 길이가 삼십 척 정도인 연못엔 천지의 영기가 지극히 그윽했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무려 다섯 송이의 자염화가 보랏빛 불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진남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다섯 그루의 자염화를 꺾으려고 급하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잠시 후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조급한 움직임으로 수림을 빠져나와 바닥에 내렸다.

그림자는 바로 진남이 전신의 눈동자를 통해서 발견한 제자였다.

그 제자는 아직 진남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첫눈에 지담 중앙의 자염화 다섯 송이를 보며 무척 흥분했다.

"하하! 우연히 얻은 지도였는데 다섯 송이나 되는 자염화를 얻을 줄이야! 나 이장운(李長雲)이 이렇게 운이 좋다니!"

이장운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때 그가 진남을 발견했다. 이장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살기가 번뜩였다.

"거기 누구냐!"

"네놈은……진남?"

이장운은 진남을 보곤 잠시 당황했다.

신입 제자들 중엔 진남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이백이십 명의 제자와 임자소 그리고 다섯 장로가 위압적으로 눌렀을 때 진남이 되려 호통을 친 순간이 이장운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진남은 담담하게 이장운을 바라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장운은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운이 이렇게나 좋을 수가! 자염화 다섯 송이뿐 아니라 너를 만나다니. 너만 죽이면 임자소와 다섯 장로들이 나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겠지!"

이장운은 이렇게 말하며 한껏 들떠 있었다.

진남의 경지는 쉬체 경지 오 단계의 경지밖에 되지 않았다. 진남이 황급 팔품 무혼을 가지고 있고 신검합일 대성의 경지를 장악했다고 해도 이장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장운의 얼굴에 조롱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다만 이장운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진남을 우연히 만난 것 아니라 진남은 일찌감치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남은 이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장운이라고 했지? 너는 나와 철천지원수도 아닌데 굳이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그리고 네 수준으로 나를 죽이겠다니 너무 설치는구나?“

"너 같은 폐물 따위가 감히 나에게 설친다고 하다니."

이장운의 얼굴에 순식간에 노기가 떠올랐다.

"내 지금 당장 너를 죽이겠다.“

이장운은 말을 하는 동시에 손을 썼다. 그는 온몸을 힘껏 날렸다.

쉬체 경지 칠 단계의 힘을 담은 주먹이 폭발적으로 튕겨 나갔다. 이 한방으로 진남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작정이었다.

"백현팔보!“

진남은 편안한 안색으로 이장운을 바라보더니 순식간에 한 줄기 연기로 변했다 흩어지며 그의 주먹을 가볍게 피했다.

"응? 대단한 신법무예구나! 내 주먹을 피하다니."

이장운은 약간 놀랐다. 하지만 이내 하찮다는 듯이 미소를 띠고 말했다.

"진남, 이게 네 비장의 무기냐? 그럼 내가 속도라는 게 뭔지 보여 주지!“

이장운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그의 등 뒤에서 일곱 갈래의 노란 빛이 피어나고 거대한 독수리가 그의 등 뒤에서 떠올랐다.

이것이 바로 이장운의 수계 무혼(獸系武魂) 신뢰광매(迅雷狂鷹)였다.

"하하하, 진남! 나의 신뢰광매 무혼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게 속도다. 설령 너의 신법무예가 아무리 현묘하다 해도 나의 무혼과 비교할 수는 없지. 너를 산산이 부숴주마!"

이장운의 뒤에 있는 신뢰광매 무혼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날개를 펼쳤다. 신뢰광매의 두 발톱이 이장운의 어깨를 잡고는 날개를 치며 날아갔다.

신뢰광매와 함께 한 이장운이 회오리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진남을 향해 덮쳤다. 매우 빠른 속도여서 아무리 백현팔보라도 뿌리칠 수 없었다.

이를 본 진남은 백현팔보를 아예 거두고는 가만히 서서 이장운을 바라봤다.

이장운은 진남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흥분해서 소리쳤다.

"진남, 내게 죽임을 당한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해라! 최강의 일격으로 보내주마, 폭렬붕권(爆裂崩拳)!"

이장운의 몸 전체가 급강하하며 진남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까 날렸던 한방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한방에는 이장운의 전부 힘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터질듯한 기세까지 얹어져 마치 진남을 다 터뜨릴 듯한 강한 공격성이 있었다.

일반적인 쉬체 경지 칠 단계조차도 받아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폭렬붕권? 좋아! 한번 보자. 쉬체 경지 칠 단계의 힘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진남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온몸에서 전의를 내뿜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허리춤의 큰 칼을 즉시 칼집에서 꺼냈다. 신검합일 원만의 경지의 검의가 순식간에 사방을 덮쳐 서늘해졌다.

진남이 칼을 꺼내자 한 줄기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무수한 검의들이 빛이 되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이장운을 덮쳤다.

이장운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얼굴에는 흥분이 사라지고 당혹함만이 가득했다.

"검의가……대성경지가 아니야? 어떻게 원만의 경지에……! 악!"

이장운은 충격으로 말도 끝까지 하지 못하고 한마디 비명을 질렀다.

신검합일 원만 경지의 한방이 이장운의 폭렬붕권을 베었다. 무수한 검의가 이장운의 몸을 가격했다.

원만 경지의 검의에 맞자 쉬체 경지 칠 단계인 이장운의 몸이 충격으로 날아갔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상처를 입었다.

"진남, 네가 신검합일 원만 경지에 이르렀다니……. 내가 비록 지금은 네놈을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임자소만 찾는다면 그때는 네놈의 마지막이다!"

이장운은 원통하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무혼을 재촉하여 신속하게 도망쳤다.

그는 신검합일 원만 경지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진남의 상대가 아니었다. 진남과 더 싸우다가는 목숨이 위험했다.

그래서 이장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이장운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무려 다섯 송이의 자염화였다. 진남에게 자염화를 전부 빼앗긴 꼴이 됐다.

"도망가려고?"

진남은 이장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진남의 기세가 더없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온몸의 힘을 모두 손에 든 칼에 넣고 손을 뗐다.

큰 칼이 슉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모습이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온 수풀에 곧 무수한 한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비공도법의 유일한 초식 백보비도(百步飛刀)였다.

백보비도는 펼치면 백 보 안에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장운은 벌써 백육십 척을 도망쳤다.

그는 진남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가 신뢰광매 무혼으로 날아온 거리는 진남의 무예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안전하다고 생각된 이장운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진남, 이 교활한 놈. 경지를 숨기다니. 나중에 내가 꼭……"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장운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매서운 한기를 내뿜는 칼이 허공을 뚫고 날아와 그의 등을 관통했다. 칼 속의 검의가 이장운의 몸속 오장육부를 모두 갈아버렸다.

"너, 너……“

이장운은 힘겹게 고개를 돌리고 충격이 가득한 얼굴로 진남을 바라봤다. 그는 '너'를 내뱉을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이장운은 이전에 진남을 멸시하던 것이 생각나 머릿속에 후회가 가득했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었다.

이장운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나서 바닥에 곤두박질쳐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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