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언제든지 상대해주겠다
백발노인과 다른 네 명의 장로들 눈에서 노기가 번뜩였다.
그들의 노기는 분명 진남을 겨냥한 것이었다.
다섯 장로들이 보기에 황용과 임자소는 심혈을 기울여 키워야 하는 초월급 천재였다.
그들은 고작 황급 팔품의 무혼을 가진 진남이 임자소를 공법전에 영원히 출입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초월급 천재.
그런 그에게 평생 공법전에 발길을 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잔인한 일이었다.
그러니 다섯 장로들이 얼마나 분노했겠는가!
전송대진을 운행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다섯 장로들은 아마 당장에라도 진남에게 직접 손을 썼을 것이었다. 설령 규칙에 얽매여 진남을 죽일 수는 없어도 폐인으로 만들었을 것이었다..
백발노인이 싸늘한 어조로 소리쳤다.
"네 이놈, 진남! 고작 쉬체 경지 오 단계 쓰레기가 감히 종문의 초월급 천재의 앞길을 방해하다니!"
"모든 제자들은 들어라! 만상도에 들어가면 진남을 죽이거라!"
나머지 네 명의 장로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임자소는 장로의 말을 듣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는 다섯 장로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설령 현령종이라도 무도의 세계에서는 결국 진정한 천재만 중시했었다.
이백이십 명의 제자들은 비웃음이 잔뜩 담긴 눈빛으로 진남을 바라봤다.
'장로들마저 너를 죽이라고 하는구나. 이제 진남 네놈이 살아남을 길은 없다.'
백옥도장의 거대한 금빛 진법 가운데서 이백이십 명의 제자와 임자소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거대한 살기를 내뿜었다. 살기는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진남을 후려쳤다.
뿐만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다섯 장로도 마치 거대한 다섯 개의 높은 산처럼 압도적인 살기로 진남을 내리눌렀다.
무거운 두 방향의 살기에 진남의 그림자는 더없이 작아졌다. 마치 거대한 살기에 부서져서 가루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남은 자신에게 닥친 불리한 상황에도 여전히 말이 없었다.
처음에 그는 임자소와 이백이십 명 제자의 살기를 받으며 온몸이 뻣뻣하고 피가 굳었다. 그리고 다섯 장로의 기세에 눌렸을 땐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때 진남이 웃었다.
모든 사람이 쳐다보는 가운데 진남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은 자조적이기도 했고 사람들은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웃음에는 깊은 분노가 담겨있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진남을 보고 의아해했다.
임자소는 더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흥! 진남, 뭘 웃고 있느냐? 네놈이 지금 무릎을 꿇는다고 해도 이번에는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텐데."
"왜 웃냐고?"
진남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번졌고, 웃음소리도 더욱 커졌다.
"하하하, 왜 웃느냐고 물어보다니. 정말 웃기는구나, 내가 왜 웃는지도 모르다니."
말을 마친 진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분노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분노는 임자소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이백이십 명의 제자를 향한 것이기도 했으며, 다섯 장로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모두가 진남의 얼굴에 드러나는 분노를 보고는 황당해했다.
이런 상황에 진남의 얼굴에 분노한 기색이 떠오르다니?
두려워하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도 부족할 상황인데?
공중 위의 다섯 장로조차도 이런 때에 진남이 분노를 드러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무엇에 분노한 걸까?
"나는 고작 새파란 신입 제자입니다. 겨우 쉬체 경지 오 단계죠. 그런 제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연합해서 나를 죽이라고 하는 겁니까?"
진남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가 참 우습네요. 임자소를 도와주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죽이라고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진남이 분노했다.
진남이 현령종에 들어온 이후 만약 임자소가 먼저 찾아와서 그를 업신여기지 않았다면 그는 굳이 임자소와 다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말할 것도 없이, 진남과 이백이십 명의 제자는 아무런 원한이 없었다.
그러나 이백이십 명의 제자들이 임자소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또는 임자소의 혜택을 보려고 진남에게 살의를 일으키고 그를 죽이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진남이 놀랐던 것은 현령종의 다섯 장로들이 공개적으로 임자소를 지지한 것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정말 웃기는군."
백발노인이 이 말을 듣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근거로 너를 죽이려 하느냐고? 임자소는 무혼 등급이 황급 구품에 이르렀고, 쉬체 경지 구 단계다. 너 따위 폐물이 견줄 수준이 아니란 말이다."
"왜?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느냐? 너무하다고 생각되느냐? 이것이 네놈이 속한 무도 세계이다. 폐물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러니 잔혹할 수밖에."
임자소와 다른 이백이십 명의 제자들은 백발노인의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에 진남은 폐물이었다. 폐물을 죽이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전혀 필요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진남은 다시 한번 웃었다.
"전에도 한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지. 폐물은 죽어야 한다고. 그는 오히려 내게 죽임을 당했지. 당신들에게 묻고 싶소. 무슨 근거로 나를 폐물이라고 하는 거요?"
진남의 물음이 뜻밖이라 순간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폐물이라고 해도 당신들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소. 그러나 당신들은 오늘 나를 원수처럼 여기며 나를 조롱하고 심지어 짓밟으려 했소."
진남이 장내를 한 바퀴 둘러보며 날카롭게 말했다.
"이렇게 됐으니 나도 당신들 얼굴을 한 명 한 명 전부 다 기억하겠소. 만약 나를 죽이고 싶으면……"
여기까지 말한 후 진남의 뒤에는 여덟 갈래의 노란빛이 세차게 솟아올랐다. 커다란 사람의 형상이 땅 위에 우뚝 솟았다. 전신의 혼이 진남의 등 뒤에 떠서 강한 패기를 풍겼다.
진남의 기세가 공격적으로 변했다.
"언제든 상대해주지."
백옥도장에서 한 사람이 이백이십 명의 제자들을 향해 포효했다.
마치 아주 보잘것없는 개미가 하늘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진남이었다!
진남은 비록 쉬체 경지 오 단계이고, 황급 팔품의 무혼에 불과했지만, 이백이십 명의 제자와 임자소의 살기를 마주하고, 다섯 장로의 압박을 받아도 조금도 움츠리지 않았다.
진남은 전신의 혼의 주인이었다. 전신의 혼은 하늘과 땅에서 무소불전(無所不戰), 무소불승(無所不勝)이었다.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들은 진남이 이백이십 명의 제자와 임자소 그리고 다섯 장로들의 위압적인 살기에도 기세를 올려서 포효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진남의 배짱이 대단하구나. 그런데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배짱을 부리는 거지?'
장내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임자소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하하하! 언제든지 상대해주시겠다고? 그러면 나도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마. 도대체 네가 무슨 재주를 믿고 설치는 건지 어디 한번 보자고."
다른 신입 제자들은 냉소를 지었다.
그들은 좀 전까지는 임자소와의 거래 때문에 그리고 임자소와 막려의 체면을 생각해서 진남을 죽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남이 미워졌다. 그들은 임자소와 거래가 아니더라도 진남을 죽이고 싶어졌다.
진남은 정말 너무 방자했다.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설치기 때문이었다.
공중에서 백발노인이 싸늘하게 진남을 한 번 쳐다보았다. 이어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전송대진을 발동하겠다."
말이 떨어지자 백옥도장 아래의 거대한 진법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제자들이 전부 빛에 감싸였다.
빛이 사라지고 나니 백옥도장의 삼백여 명의 제자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백발노인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우리 종문이 대체 어떤 제자들을 뽑았는지 보시오. 황급 팔품의 무혼이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방금 전송대진을 운행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손을 써서 진남을 불구로 만들었을 것이오."
다른 장로들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
그중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허허, 화내지 마시오. 그놈은 오만하게 날뛰다가 결국 모든 제자들에게 밉보였으니 만상도에 들어가면 무조건 죽을 것이오."
이 말을 듣고 다른 장로들과 백발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진남을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됐소. 죽은 사람한테 화낼 필요 없소. 이번에 누가 일위를 할지 내기나 합시다. 황용일 것 같소, 아니면 임자소일 것 같소?"
백발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다른 네 명의 장로들이 각자 의견을 말했다. 그들은 만상 대회로 큰 도박을 했다.
* * *
만상도는 외딴 바다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방 천 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섬은 일 년 내내 '고청무(古靑霧)'라 불리는 안개가 둘러싸고 있었다. 고청무는 오래된 청색을 띠고 있었는데 보통의 흰 안개와 달리 강한 독을 품고 있어 무왕 경지의 강자도 함부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만상도에는 영기가 넘치고 위험한 짐승이 다양하게 존재했다. 기이한 꽃과 풀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더군다나 수많은 미지의 위기와 기연이 가득 차 있어서 무인들이 단련할 수 있는 절호의 장소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현령종의 역대 장로들이 수많은 공을 들여 만상도에 전송대진을 배치하고 현령종 백옥도장과 연결하여 신입 제자들을 위한 시련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만상도의 어떤 숲.
하늘에서 파도 같은 파문이 일었다.
곧이어 금빛이 번쩍이더니 사람의 그림자가 허공에 불쑥 나타나 떨어졌다.
그림자는 진남이었다.
진남은 나타나자마자 백현팔보를 펼쳐 연기처럼 땅 위에 내려앉았다.
진남이 땅에 떨어지자 한쪽 수풀 속에서 갑자기 짐승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사나운 기색을 풍기는 맹호가 수풀 속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오더니 입을 쩍 벌리고 진남을 향해 달려들었다.
맹호는 놀랍게도 쉬체 경지 오 단계의 수준이었다.
"죽음을 자초하는군!"
진남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순식간에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큰 칼을 뽑아 단칼에 내리쳤다. 예리한 검의가 순식간에 솟아올랐다.
맹호의 황금빛 눈동자가 굳어졌다. 온몸이 굳어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강력한 검의를 맞고는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져 피를 뿌렸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다시 한번 숲속에서 울려 퍼졌다. 무려 여덟 마리의 맹호가 번개같이 진남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섯 숨 쉴 시간조차 안 됐는데 쉬체 경지 오 단계 수준의 요괴 호랑이가 아홉 마리나 나타나다니. 만상도에 괴물이 가득하구나."
진남이 중얼거렸다. 그는 표정 변화없이 날렵하게 달려들었다. 신검합일 원만의 경지에 이른 검의가 순식간에 세차게 일더니, 한없이 차가운 빛이 사나운 요괴 맹호 여덟 마리를 모두 감쌌다.
열 번 호흡할 시간 동안 쉬체 경지 오 단계 수준의 맹호 여덟 마리가 모두 잘려 죽었다.
사방의 숲이 다시 조용해졌다. 더 뛰쳐나오는 요수가 없었다.
진남은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말했다.
"전송대진은 무작위로 전송하여 사람마다 낙하하는 위치가 다 다르다고 했지? 전신의 눈으로 사방에 적이 될만한 제자가 있는지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진남이 전신의 눈동자를 방출했다. 그는 방원 삼 리를 자세히 살폈다.
그가 이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건 그가 이백이십 명의 신입 제자와 임자소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진남은 비록 그들의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제자들 중의 강자를 만난다면 아직은 싸울 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