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후회할 것이다
임자소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황용이 그의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체면을 깎을 줄이야.
그러나 임자소는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황용의 경지가 그보다 두 개나 높았기 때문이다. 임자소는 황용과 부딪힐 자신이 없었다.
'그럼 황용이 날뛰면서 내 체면을 깎게 내버려 둬야 한단 말인가?'
임자소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고민하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의 표정은 더는 어둡지 않았다.
임자소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용, 너는 나보다 경지가 높다. 그건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서 날뛰어도 된다고 생각지 말거라. 경설 낭자 곁에 있는 진남은 막려 사형마저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도 최고 천재다!"
진남과 소경설은 임자소의 말에 동시에 표정이 싸늘해졌다.
'진남에게 시선을 돌리게 해서 자신의 난감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이간질해서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다니, 정말로 뻔뻔하구나.
아니나 다를까.
이 말이 끝나자 장내의 모든 사람의 눈길이 다시 한번 진남의 몸에 쏠렸다.
"오? 막려마저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고?"
황용의 얼굴에도 흥미가 떠올랐다. 한 쌍의 큰 눈이 진남을 쳐다봤다.
그러나 한번 쳐다보더니 얼굴에 바로 짙은 실망이 드러냈다.
"고작 쉬체 경지 오 단계구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폐물일 뿐이군!"
장내 사람들이 조롱하는 눈빛으로 진남을 바라봤다.
그들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진남이 간덩이가 부어 파벌 내의 막려 사형한테도 공공연히 도전했잖아. 방금 황용이 대놓고 폐물이라고 했는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말을 들은 진남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폐물이라고? 난 무혼을 각성한 지 이제 겨우 이십 일밖에 안 된다. 설령 황용 너라도 나를 폐물이라고 부를 자격은 없을 거다."
말을 마친 진남의 몸에서 한 갈래의 예리한 검의가 하늘로 솟아올라 장내를 휩쓸었다.
모든 제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의 눈길에 놀라움이 솟아올랐다.
"이십 일? 이십 일 만에 쉬체 경지 오 단계에 도달했다고? 게다가 이건 검의잖아?"
"허……. 짧디짧은 이십일 내에 쉬체 경지 오 단계에 도달하다니. 그리고 무혼은 적어도 황급 팔품이야. 그뿐만 아니라 검의는 적어도 신검합일 대성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발사할 수 있는데, 과연 진남은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
"그래서 소경설 사저가 직접 진양과 온 거구나."
"이제 알겠어. 어쩐지 전에 진남이 막려에게 막 대들더라니!"
"……"
장내의 충격은 얼마 가지 않았다.
이내 다들 정신을 차리고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현령종에서 낙하왕국의 각 성지에서 데리고 온 천재들이기에 박식하고 경험이 많았다.
황용의 눈에 의아함이 스쳐 갔다. 그는 다시 한번 진남을 훑어보더니 이를 보이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구나.방금 내가 한 말을 취소하겠다. 넌 확실히 폐물이 아니다."
황용은 임자소에게 이용당해 진남을 위협했다. 이용당했다고 해도 결국 황용 자신이 섣부르게 행동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책임은 황용이 져야 했다.
황용이 스스로 머리를 숙이자 진남은 황용에 대한 인상이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황용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힘만 믿고 뻔뻔하게 나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진남은 엷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용에 대한 적의도 사라졌다.
임자소는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고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쉬체 경지 오 단계, 신검합일 대성이면 어때서? 역시 폐물잖아. 폐물을 상대하는 데엔 한 초식이면 족하다."
제자들은 모두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자소가 비록 황용보다는 못해도 쉬체 경지 팔 단계이고 무혼은 황급 구품이었다.
그리고 방금 진남의 무혼이 황급 팔품이란 걸 확인했다.
만약 진남이 임자소와 싸우면 실제로도 진남은 임자소의 한 초식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때 소경설이 말했다.
"임자소, 여기는 백옥 도장이지 서로 모욕하는 곳이 아니다."
소경설의 말투는 싸늘했다.
"그리고 네가 황급 구품 무혼이라도 내 눈엔 너도 하찮을 뿐이다. 한 초식도 쓰지 않아도 너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말이 끝나자 소경설의 몸에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경설에게도 이렇게 무서운 면이 있을 줄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자소의 안색이 굳어졌다. 소경설이 진남을 위해 자신과 얼굴을 붉힐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소경설이 말한 건 사실이었다.
비록 그의 무혼이 황급 구품이라고 해도 소경설을 넘어서려면 일이 년의 짧은 시간 내에는 절대 불가능했다.
"흥!"
임자소는 소경설의 위협을 모른 체하고는 진남을 향해 한마디 했다.
"만상 대회 때 두고 보자."
말을 마친 임자소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는 제자들 속에 들어가 한 무리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 번씩 손뼉을 치면서 웃었는데, 마치 소경설에게 위협을 당한 적 없다는 듯이 일부러 과장하는 것 같았다.
황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혼자서 수행에 들어갔다.
황용을 귀찮게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소경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온몸의 기세를 거두고 진남을 향해 말했다.
"임자소의 위협을 마음에 두지 말거라. 이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만약 그가 다시 너를 찾아 위협을 한다면 나한테 말하거라, 내가 없애버릴 테니."
지금의 진남은 무혼과 수위를 따지자면 전혀 임자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또한 방금 현령종에 들어온 진남이 어찌 배경이 있는 막려와 비할 수 있을까?
진남은 소경설의 뜻을 이해했다. 그는 그녀의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는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설, 안심하세요. 전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이 업신여기려고 해서 업신여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진남은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리고 임자소는 나중에 후회할 거예요."
소경설은 생각 밖이라는 듯 진남을 바라보았다.
'진남의 자신감은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데 어떻게 임자소를 후회하게 만든다는 걸까?'
그러나 소경설도 어찌 된 영문인지 그의 말을 믿고 있었다.
백옥 도장은 열기가 뜨거웠다. 새 제자들은 서로서로 인사를 하며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
막려와 임자소의 미움을 산 탓인지 진남이 있는 쪽으로는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진남은 오히려 소경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게 여겼다.
갑자기 먼 곳에서 방대한 기운이 발사되어왔다. 마치 광풍이 불어오는 것처럼 방대한 기운이 순식간에 백옥 도장을 가득 채웠다.
장내 제자들의 안색이 변하더니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진남도 호흡을 멈칫했다. 압력이 무왕 경지가 뿜어낸 것보다 컸기 때문이다.
이때 소경설이 한쪽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장로께서 오셨어……"
진남의 온몸이 뻣뻣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백발노인이 허공에 뜬 채 큰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한가하게 산보하는 것 같은 가벼운 걸음새였다.
백발노인은 두 눈으로 백옥 도장을 훑어보았다.
노인은 황용과 임자소를 발견하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렁차게 말했다.
"황급 구품 무혼이라, 좋구나. 너희 두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내가 너희 두 사람의 성장을 면밀하게 주시할 거다."
말이 떨어지자 임자소의 얼굴에는 오만함이 드러났다.
반면 황용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장내의 다른 제자들은 다들 부러움과 질투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장로가 황용과 임자소만을 언급하는 걸 당연하다고 여겼다.
백발노인은 다른 제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여기에 있는 새로운 제자들은 아마도 만상 대회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만상 대회는 열흘 후 열린다. 그날 날이 밝기 전에 너희들은 모두 여기 백옥 도장에 모여있거라."
백발노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새로 들어온 제자들은 만상 대회가 열리기 전 열흘 내에 공법전으로 가서 무예를 선택할 기회를 한 번씩 가지게 된다. 구품 무혼을 가진 황용과 임자소는 두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무예 선택을 마치면 외문 제자들이 너희들을 맞이하여 너희들에게 숙소를 안내하고 수행을 하도록 도울 거다."
말을 마친 백발의 장로는 몸에서 살기를 일으키더니 서늘하게 말했다.
"다들 모두 명심하거라. 만약 열흘 내에 감히 사적으로 무예를 비교하거나 격투를 하면 모두 규율을 위반한 것으로 처리하고 종문에서 쫓아낼 거다."
말을 마치자 백발의 장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신속히 떠났다.
마치 새로 들어온 제자들 중에서 오직 임자소와 황용만이 그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것 같았다.
백발의 장로가 떠나자 장내의 제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황용과 임자소에게 눈길을 돌렸다.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경외감이 가득했다.
황용은 이를 드러내고 웃더니 돌아서 떠났다.
반면 임자소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제자들 사이로 걸어가 여러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친근해 보였지만 임자소의 얼굴에 띤 오만함은 누구든 읽어낼 수 있었다.
"흥!"
이 광경을 본 소경설은 혐오감을 드러냈다.
"임자소는 정말 위선적이군."
소경설의 마음속에서 임자소는 이미 막려와 같은 등급이었다.
그러나 진남은 그녀의 불만을 듣지 못한 듯 두 눈에 한 줄기 빛이 반짝이며 말했다.
"경설 사저, 저에게 공법전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요?"
소경설이 진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이 진남은 역시 타고난 무치(武痴)였다. 일단 무예와 연관되기만 하면 다른 모든 건 모두 뒷전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소경설이 진남을 마음에 들어 하는 점이었다.
"현령종의 공법전 안에는 오직 무예만 있는 게 아니야."
소경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법전 안에는 현령종의 여러 강자들이 남겨놓은 수련 필기도 있어. 매우 진귀한 거지. 공법전 안의 규칙에 대해서는 안에 들어가면 알게 될 거야."
"여러 강자들이 남겨놓은 수련 필기요?"
진남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였다. 가슴이 살짝 설렜다.
'현령종은 낙하왕국 사대 종문 중의 하나라 역사가 유구해. 현령종에서 나온 강자들은 수없이 많지. 그렇다면 이 공법전 안에는 얼마나 많은 강자의 수련 필기가 있을까?'
진남의 모습을 본 소경설은 웃으며 말했다.
"기억하거라. 이번에 공법전에 들어가면 닷새 후에는 꼭 나와야 한다. 그때 내가 공법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여기까지 말한 소경설은 기색이 엄숙해지더니 또 말했다.
"진남아, 넌 지금 경지가 낮으니 무예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반드시 경지를 높여야 한다."
진남은 소경설의 말에 끄덕이며 말했다.
"시름 놓으세요, 경설. 닷새 후엔 꼭 올게요."
진남의 대답에 소경설은 안심했다. 그리고 몇 마디 더 당부하려 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진남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진남은 공법전에 수많은 강자의 수련 필기가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더는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바로 공법전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