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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29화 (29/1,498)

29화 천재 그리고 또 다른 천재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진남을 본 소경설은 감동했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살짝 굳히며 말했다.

"막려, 너……"

소경설의 말이 끝나지도 전에 진남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막았다.

진남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태연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는 막려의 강대한 기세 앞에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소? 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어느 장로의 아들이거나 어느 장로의 제자겠지. 근데 그게 무슨 소용 있소?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아시오?"

이 말을 할 때 진남은 오만하게 몸을 곧게 세웠다.

주위 제자들은 모두 눈을 끔뻑이며 진남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진남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 쉬체 경지 오 단계인 주제에 감히 막려에게 대들었다. 또한, 소경설이 그를 직접 데리고 백옥 도장으로 오기도 했다.

이 두 가지만 보더라도 소경설 옆에 있는 자의 신분이 만만치 않다는 걸 설명했다.

막려는 당황했다.

그는 새 제자가 감히 자신에게 대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소경설을 음흉하게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면서 말했다.

"네가 누군데…?"

막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막려는 원래 상대의 내막을 잘 알기 전에는 반드시 조심스레 행동했다.

"귀를 잘 씻고 들으시오."

진남이 웃으며 말했다.

"난 진남이라고 하오. 낙하왕국의 사람이오. 이번에 경설 사저에게 뽑혀서 현령종에 들어왔소. 다시 말해 나는 현령종의 사람이오. 현령종의 외문 제자요."

그 말에 모두 어이없어했다.

소경설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녀는 하마터면 큰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좀 전까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만하게 말해놓곤, 이제 와서 그저 평범한 외문 제자라니. 하하하.'

하지만 사람들은 이내 눈치챘다.

진남이 막려를 가지고 논 것이었다.

막려는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두 눈에 살기를 품고 진남을 노려봤다.

그가 언제 새로 들어온 외문 제자에게 이렇게 조롱당한 적이 있던가?

막려는 속에서 분노와 살의가 치솟았다.

그러나 그는 손을 쓰지 않았다.

아무리 배후세력이 강대하다고 해도 현령종의 규칙을 위반하면 그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막려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분노를 가라앉히고는 웃었다.

그는 비아냥거렸다.

"쯧쯧,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진남이라고 했지? 현령종의 제자가 되면 천하무적이라도 된 줄 아느냐? 현령종 제자가 되는 건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겸손해지지 않다가는 나중에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될 거야."

마지막 한마디는 명백한 위협이었다.

소경설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막려, 지금 진남을 위협하는 거냐? 진남은 내가 현령종에 데리고 온 사람이다. 네가 진남을 건드린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무왕 경지에 도달한 소경설의 위압이 폭발하면서 장내를 뒤덮었다.

막려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분노한 소경설에게 겁을 먹고는 말을 바꿨다.

"하하, 위협한 거라니, 그럴 리가! 한데, 진남이 네가 데려온 새 제자라고? 쉬체 경지 오 단계밖에 안 되는데, 어찌 그런 놈을 데려온 거야. 하하하"

막려는 잠깐 말을 멈추고 진남을 향해 음흉하게 웃었다.

"마침 잘됐다. 나도 이번에 데려온 아이가 하나 있다. 그 아이에게 미리 말해놓으마. 만상 대회 때 진남과 친하게 지내라고 말이다."

말을 마친 막려는 크게 웃더니 검은 연기처럼 순식간에 백옥도장에서 사라졌다.

소경설은 콧방귀를 뀌고 온몸의 기세를 거두었다.

그녀는 뭔가 생각났는지 진남을 보며 말했다.

"진남아, 막려는 현령종 삼 장로의 아들이다. 비록 무혼은 황급 칠품이지만 경지는 나와 비슷한 수준이야. 막려는 뒤끝이 있는 사람이라 그가 앙심을 품으면 언젠가 보복을 당할 수 있어. 진남아, 방금 네 행동은 너무 충동적이었구나."

마지막 한마디에 소경설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았다.

진남은 도리어 태연하게 웃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경설 사저, 무도 세계는 조심하고 굽실거려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그가 당신을 괴롭히는 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설령 그가 종문 제자여도 나는 똑같이 대했을 거예요. 만약 내 경지가 충분했다면 오늘처럼 이렇게 말로만 끝낼 게 아니라 직접 그와 생사전에서 승부를 가렸을 거예요."

말을 마친 진남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전신의 혼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비굴하게 굴면서 무사하기만 바라겠는가?

여러 번 자신을 도와준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그가 어찌 곁에서 지켜만 볼 수 있겠는가?

소경설은 그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눈에 여러 가지의 감정이 스쳐 갔다. 눈물이 살짝 맺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소경설은 이내 감정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백화가 만발하듯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진남 사제를 알게 된 건 정말 좋은 일이야."

진남은 소경설의 미소에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백옥도장에서 강대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퉁소 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도장에 순식간에 살기가 가득찼다.

현령종의 새 제자들은 그들이 모이는 자리에 이토록 거대한 살기를 내뿜으며 오는 사람이 있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진남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놀라서 돌아보았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이 나타났는데 그의 뒤에 노란빛이 번쩍거렸다.

노란빛은 무려 아홉 갈래나 되었다.

아홉 갈래의 노란 빛 가운데 붉은 옥퉁소가 있었다. 퉁소 소리는 바로 그 옥퉁소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걸 본 제자들이 깜짝 놀랐다. 진남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아홉 갈래의 노란빛……!

무혼이 황급 구품이란 말인가?

현령종에서 황급 팔품의 무혼도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었는데 무려 황급 구품의 무혼이라니.

등급은 한 단계 차이에 불과했지만 그 위력의 차이는 엄청났다.

"아! 임자소(林子蕭)다!"

많은 제자 중에서 쉬체 경지 칠 단계의 한 청년이 소리쳤다.

얼굴에 경외심이 가득했다.

"전에 임자소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그는 황급 구품 무혼을 갖고 있댔어! 게다가 무혼을 각성한 지 삼 개월 만에 수행이 쉬체 경지 팔 단계에 도달했댔어!"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숨을 들이쉬었다.

임자소를 보는 눈길에 경외심이 가득했다.

임자소가 누구든 간에 황급 구품을 가졌다는 것으로도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백옥 도장에 있는 새 제자들 중 누가 임자소와 어깨를 견줄 수 있겠는가?

임자소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못 본 척했다.

그는 두 눈을 소경설에게로 돌렸다. 그리곤 낮은 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미인이 그림에서 나왔는지 마치 선녀가 내려온 듯 청순하구나."

"이 말이 그저 한 마디의 시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그런 여인이 있었구나."

임자소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진지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경설 낭자, 당신과 친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임자소는 마치 소경설 옆에 서 있는 진남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소경설만 바라봤다.

진남은 임자소의 행동에 대해 화내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이 순간을 이용하여 임자소의 '화소 무혼(火蕭武魂)'을 자세히 살폈다.

소경설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임자소의 무혼은 황급 구품이라 그녀보다 한 등급이 높았다.

그래서 미래의 수행이 어디까지 도달할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그런 자였다.

하지만 소경설은 왠지 그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

소경설이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임자소의 가늘고 긴 눈에 싸늘한 빛이 일더니 진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설 낭자가 대답하지 않는 게 혹시 이놈 때문입니까? 방금 막려 사형을 만났습니다. 경설 낭자 옆에 폐물이 하나 있다고 하더군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정말이군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임자소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나 소경설과 진남의 표정은 동시에 싸늘해졌다.

소경설은 자신이 왜 임자소에게 아무런 호감이 안 생기는지 알아차렸다.

'이 자가 바로 막려가 낙하왕국에서 찾아낸 초월급 천재구나!'

진남은 임자소와 아무런 원한이 없었다. 그런데 막려의 말만 듣고 임자소는 이렇게 오자마자 진남을 비웃었다. 그러니 진남이 어찌 좋은 표정을 보이겠는가?

'임자소, 설마 황급 구품 무혼이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백옥 도장 주위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감히 막려에게 대드는 진남이 황급 구품 무혼을 가지고 있는 임자소에겐 어떤 반응일지 보고 싶었다.

임자소와 진남을 지켜보던 장내의 사람들은 갑자기 마치 혈하(血河)가 강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피비린내가 가득한 기세가 물밀듯 밀려왔고, 원망과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새로운 기세는 임자소가 풍기는 기운보다 더 강하고 사나웠다.

임자소의 웃는 얼굴도 굳어졌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돌아봤다.

웃통을 벗은 한 사나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뒤에도 마찬가지로 아홉 갈래의 노란빛이 떠 있었다. 아홉 갈래의 노란빛 속에 피 같은 큰 검이 걸려있었다.

장내를 꽉 채운 피비린내는 바로 큰 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또 한 명의 황급 구품 무혼의 초월급 천재란 말인가?

게다가 사내의 경지는 임자소를 초월해 쉬체 경지 십 단계에 도달했다.

이 광경에 진남도 깊게 숨을 들이켰다. 전에 관찰한 마흔세 명의 사람에 또 지금 여기 있는 황급 구품 무혼의 초월급 천재 두 사람을 합치면 그가 주의해야 할 사람은 마흔다섯 명에 달했다.

진남도 순간 압박을 느꼈다.

'역시 현령종은 사대 종문이라 그런지 천재들이 한데 모였구나. 황급 구품 무혼인 사람이 이미 둘이나 나타났어. 그리고 이건 고작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지. 황급 구품 무혼의 초월급 천재가 얼마나 있는지, 황급 팔품 무혼인 사람이 또 얼마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어.'

진남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무슨 영문인지 거대한 압박 속에서 진남의 혈류는 되려 흥분한 것처럼 평소보다 배가 빨라졌다.

그의 심장박동도 점점 빨라졌다. 마치 가슴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두 명의 황급 구품 무혼의 초월급 천재가 나타나자 그의 신체와 본능이 오히려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임자소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황용(黃龍), 내가 무혼을 방출하니 너도 나를 따라 무혼을 방출한 거야?"

황용이라고 불리는 사내가 콧방귀를 뀌고 히죽 웃더니 귀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패배자는 조용히 입 다물고 있거라. 혹시 불만 있나? 그럼 앞으로 나와라. 내가 한 방에 죽여줄 테니."

황용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백옥 도장에 있던 다른 제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은 방금 임자소가 나타났을 때 그의 기운에 눌렸었다. 그런데 새로 온 황용이 임자소보다 더 강대하고 더 악독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황용을 만나거나 혹은 임자소를 만나면 그 결과는 어떨까?

장내에 있던 거의 모든 제자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은 바로 부단히 고개를 흔들어 허튼 생각을 서둘러 지워냈다.

'쉬체 경지 팔 단계, 쉬체 경지 십 단계의 황급 구품 무혼인 천재와 싸우려고 한다는 건 그냥 죽고 싶어 환장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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