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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21화 (21/1,498)

21화 설마?

방화가 나타났다.

그는 원래 방자하고 오만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방화는 지금 잔뜩 겁에 질렸다.

방씨 가문 서열 삼위 천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위풍당당한 모습은 전혀 없었다.

"나, 나는 패배, 패배를 인정……"

방화는 연무대에 오르자마자 더듬거리며 패배를 인정했다. 체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흉포한 진남을 마주하니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방화는 휘황찬란한 미래를 두고 이 자리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살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이 채 끝나지도 전에 천둥소리가 울리고 차가운 빛이 스치더니 방화가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진남은 인정사정없이 방화를 단칼에 내리쳤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연무대에 흩날리는 피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방씨 가문 서열 삼위의 천재가 허무하게 죽었다.

진남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방여룡 공자와 같은 생각입니다. 폐물들은 용서를 빌 자격도, 투항할 자격도 없어요. 오직 죽음뿐이지요."

그의 말에 방씨 부자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고대에 앉아있던 백횡은 화가 잔뜩 나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 장로가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감히 나서서 그녀의 위엄에 도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진행되는 순서에 분위기가 더 이상해졌다.

삼십삼 호, 진남 등장, 상대는 방씨 가문 서열 사 위 천재!

삼십사 호, 진남 등장, 상대는 방씨 가문 서열 오 위 천재!

전투마다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칼질 한 방에 방씨 가문의 서열 사 위, 서열 오 위의 천재들이 모두 진남에게 찢겨져서 죽임을 당했다.

진씨 가문 사람들도 침묵하고 방씨 가문 사람들도 침묵했다.

심지어 소경설도 약간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진남은 방씨 가문이 진씨 가문을 도발해서 화가 났다.

그런데 묘하게도 화가 난 진남의 상대가 연속 네 번 모두 방씨 가문의 제자였다.

게다가 상대는 일반 제자도 아니고 방씨 가문에서 방여룡 바로 아래 서열의 네 명의 천재들이었다.

미지의 힘이 암암리에 진남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마치

'감히 진남을 도발해? 좋다. 그럼 진남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지.‘

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방려, 방여룡을 포함한 방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연무대 위에 있는 진남을 멍하니 바라봤다.

방씨 가문의 네 명의 천재가 잠깐 사이에 전부 죽었다.

백년 넘게 임수성의 양대 가문으로 굴림해 온 방씨 가문에서 한꺼번에 네 명의 정상급 천재를 잃었다.

방씨 가문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

천재들을 잃으면 이제 방씨 가문을 책임지고 이끌 사람은 방여룡 말고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도 없었다.

가문이 강대해지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여러 명의 천재들이 힘을 합쳐야 가문이 계속 강성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이들은 가문의 기둥들이었다.

그런데 진남이 순식간에 방씨 가문의 기둥을 무너뜨린 것이다.

백횡 장로는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몸 안의 흉포한 기세가 보일 듯 말 듯 했다.

백횡 장로와 방씨 가문은 은밀히 거래한 사이였다. 진남이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네 명의 천재를 죽이는 행위는 백횡의 뺨을 때린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백횡 장로가 두둔하려는 가문을 진남이 업신여겼다.

백횡뿐만 아니라 방씨 부자도 두 눈이 시뻘게지고 온몸에서 살기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쳤다.

그나마 약간의 이성이 남아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아마 미쳐 날뛰었을 것이다.

"진남, 네 이놈!"

방여룡은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목구멍으로 화난 소리가 계속 밀려 나왔다.

그는 마치 폭주 직전의 야수 같았다.

"오늘 네놈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억하겠다.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거라!"

방여룡은 으르렁거리듯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황급 육품의 무혼을 가진 임수성의 진정한 제일 천재인 방여룡이 언제 이런 억울함을 당해봤겠는가?

그러나 그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성질을 못 참아서 소경설을 화나게 한다면 그가 아무리 황급 육품의 무혼을 가진 천재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방씨 가문이 파멸할 수 있을 정도의 재난을 가져올 수 있었다.

때문에 방여룡은 하늘을 찌르는 살기를 겨우 억누르고 말로 진남을 위협할 수밖에 없었다.

진남은 그 말에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날카롭게 말했다.

"하하하, 감히 날 협박해? 네가 진씨 가문 제자를 불구로 만들 때 이런 날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거야? 네놈이 먼저 시작해놓고는 이제 와 나를 협박하다니, 웃기지도 않는구나."

진남의 기세가 변했다. 마치 백횡을 도발하던 때처럼 횡포했다.

진남은 방여룡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억울하면 올라와서 나와 싸워보든가, 올라오지도 못하면서 아래에서 협박이나 하고 있다니. 창피한 줄이나 알아라. 방여룡, 너는 그저 폐물일 뿐이야. 입 좀 다물고 있어!“

방여룡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뺨을 힘껏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끝없는 분노가 방여룡의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다.

그는 힘껏 고함을 지르고 연무대에 올라 진남을 패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마치 쇳덩이를 달아맨 것처럼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다.

방여룡뿐만 아니라 다른 방씨 가문의 제자들도 분노가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분노 속에 다른 깊은 감정을 감추고 있었다. 그건 바로 두려움이었다.

방여룡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방여룡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이 순간 누가 진남의 위엄을 당해내겠는가.

잠시 후.

이번 대회를 주지하는 재판관이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시합이 끝났다. 다음 단계로 진급한 사람은 진남, 진장공, 방여룡……"

진남, 진장공 그리고 방여룡만이 다음 단계로 진급했다.

하지만 방여룡만이 진급했어도 방여룡과 방려는 마음이 놓였다. 방씨 가문의 사람들도 시름을 놓았다.

일방적인 학살과도 같았던 첫 번째 관문 시합이 드디어 끝났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관문에서는 무혼의 경지가 중요했다.

높은 수행 경지를 빼면 진남은 뭐가 남을까?

고작 황급 일품의 무혼을 가진 폐물이었다.

폐물 따위가 방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칠 순 없었다.

소경설도 결국 폐물의 편을 들지 않을 게 뻔했다.

"진남, 첫 번째 관문이 끝났다. 네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두 번째 관문에서 두고 보자. 네놈의 명성이 자자한 대단한 무혼을 드디어 보겠구나. 하하하!"

방여룡이 연무대에 올라서며 진남을 비웃었다.

그러나 방여룡은 비웃으면서도 진남을 심하게 조롱하지 못했다.

그는 진남이 또 어떤 말을 해서 체면을 깎을까 무척 두려웠다.

방여룡은 끓어오르는 살기를 눌렀다. 결과가 나오면 진남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진남은 방여룡을 힐끗 보곤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진남은 말없이 여전히 냉담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연무대에 올라온 진장공이 시큰둥하며 말했다.

"방여룡, 빈정대지 말지? 진씨 가문에 인재가 없는 줄 알아? 오늘 한번 보자. 네가 각성한 무혼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나대는지 말이야."

진장공은 방여룡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아까 백횡 장로가 방씨 가문을 두둔해줄 때 진장공은 조심스럽게 행동했었다.

하지만 소경설이 진씨 가문을 보살펴 주니 그는 더 이상 방씨 가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방여룡이 황급 오품의 무혼을 각성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소문이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방여룡이 황급 오품의 무혼을 가졌다고 해도 진장공은 두렵지 않았다.

진장공은 자신 있었다.

자신이 숨겨둔 한 수로 방여룡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장공의 기세가 드높아지니 진씨 가문 사람들도 덩달아 흥분했다.

진씨 가문의 집사와 장로들이 방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

현령종의 제자가 되려면 지지해주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무혼의 등급이었다.

방여룡이 어떻게 진장공에 비하겠는가?

"여기가 어디라고 어릿광대가 나대?"

방여룡은 진장공을 한껏 무시했다. 그는 폐물 보듯 진장공을 쳐다봤다.

'진남처럼 수행이 높은 것도 아니면서 내가 조심스러워할 줄 알았나?'

방여룡의 눈에 진장공은 그저 어릿광대에 불과했다.

그의 말에 진장공은 버럭 화가 났다.

제자 심사의 첫 번째 관문에서 진장공은 진남에게 나설 기회를 다 빼앗겼다.

그래서 그는 이 자리에서 방여룡을 조롱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방여룡에게 비웃음을 당하자 무척 화가 났다.

게다가 방여룡은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진장공은 방여룡을 죽기 직전까지 후회를 모르고 날뛰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방여룡을 마음속 필살(必殺)명부에 기록했다. 진남과 같은 등급이었다.

"그만하고 두 번째 시합을 준비하거라."

이때 백횡 장로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위엄 있는 말투였다.

"두 번째 관문은 간단하다. 그저 무혼을 방출하면 된다."

사람들은 백횡 장로의 일그러진 얼굴이 어느새 기쁜 표정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약간의 살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의문스러웠다. 아까 진남이 그렇게 도발했는데 화가 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사실 지금 백횡은 마음속 분노가 말끔히 사라지고 기쁨이 남아있었다.

그 뒤엔 곧 방출할 살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두 번째 관문은 무혼의 등급을 겨루는 것이었다.

백횡이 황급 일품의 무혼인 폐물인 진남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방여룡은 이번 심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천재였다.

방여룡이 무조건 이번 대전에서 현령종에 발탁될 것이었다. 그리고 현령종에 들어간 후에도 방여룡의 재능이면 지위가 낮을 수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소경설도 더 이상 진남과 진씨 가문을 감싸고 돌지 않을 게 분명했다.

'소경설의 보호가 없으면 내가 진남과 그의 가문을 신경 쓸 필요가 없지.'

백횡 장로는 빨리 두 번째 관문을 끝내고 진씨 가문을 탄압하고 진남을 괴롭히고 싶었다.

진남에게 자신의 미움을 사면 어떤 결과가 있는지 평생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진장공은 기다리기 힘들었던 차에 백횡 장로가 입을 열자 얼른 한 걸음 나섰다.

온몸의 기세가 순식간에 용솟음쳤다.

다섯 갈래의 노란 빛이 진장공의 뒤에서 번쩍거리더니 위풍당당하고 흉악한 백호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백호가 입을 벌리고 포효하자 패기가 장내를 휩쓸었다.

다섯 갈래의 노란 빛!

황급 오품의 무혼이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들끓었다. 특히 진씨 가문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흥분했다.

반대로 방씨 가문의 제자, 집사 그리고 장로 등은 위엄 있고 패기 있는 황급 오품의 무혼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황급 오품의 무혼은 임수성 최고의 천재만 가질 수 있었다.

"황급 오품, 수계 무혼, 주기능 공격. 강대한 무예를 연마하고 인수합일(人獸合一)한다면 위력이 더 강력해지겠지. 대단하군."

소경설은 눈에 한치의 놀라움도 없이 담담하게 평가했다.

황급 오품의 무혼은 그녀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진장공은 무척 기뻤다.

백횡 장로보다 더 강대한 소 장로가 직접 그의 무혼을 평론했다는 것은 그녀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소 장로."

진장공은 흥분을 억제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돌아선 그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하고 오만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진남과 방여룡을 동시에 쳐다봤다.

"하하하, 내 무혼이 어때? 너희들도 무혼을 불러내 봐. 진남의 무혼은 이미 봤고, 방씨 가문 소주가 얼마나 대단한 무혼을 각성했는지 궁금하네?"

진장공은 말투에는 조롱과 경시가 한껏 담겨 있었다.

진씨 가문 사람들도 점점 흥분해서 더욱더 경멸스런 시선을 방씨 가문 사람들에게 던졌다.

"하하하!"

방여룡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무척이나 잔인하게 들리는 웃음이었다.

"진장공, 잘 들어. 넌 페물에 불과해. 너 따위 폐물은 감히 내 앞에서 입을 열 자격도 없어."

"뭐? 네놈이 감히……!"

진장공이 바로 진노했다.

'방여룡이 나를 폐물이라고 하다니. 황급 오품의 무혼을 가진 내가 페물라고? 방여룡이 황급 오품의 무혼을 각성했다고 하지 않았어? 왜 이렇게 날뛰는 거지?'

진씨 가문의 사람들도 노기등등했다.

'방여룡이 왜 저렇게 날뛰는 거지? 설마 황급 오품보다 더 높은 무혼을 가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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