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얕보지 말거라
"진남아, 안 된다."
진남이 대답하기 전에 진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장공은 황급 오품의 무혼이다. 네가 쉬체 경지 사 단계라고 해도 그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오늘 너는 충분히 훌륭했다. 나는 이만하면 됐다. 가주 자리는 중요치 않단다."
진천은 이미 심정이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아들이 쉬체 경지 사 단계인 것을 보여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하하하!"
진장공이 크게 웃었다. 그는 두 눈에 핏발이 서서 진남을 죽어라 노려봤다.
"들었지? 네 아버지도 나와 싸우지 말라고 하네! 네가 신비한 것을 만났고 경지가 높아도 소용없어! 똑똑히 알고 있어. 너는 폐물이야!"
주변의 집사들도 고개를 살짝 저었다. 지금 진남이 진장공과의 싸움을 승낙한다면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진천의 말대로 지금 경지는 진남이 진장공보다 강대하지만, 여전히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진남은 눈에 차가운 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좋아. 네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나도 사양 안 해. 내 너와 싸울 테니까 약속을 꼭 지켜라."
진남이 말을 뱉자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특히 진천은 안색이 더 무거워졌다.
집사들과 장로 그리고 진철패 등 사람들은 놀라는 것도 잠시고, 이내 조롱하는 기색을 보였다.
정말 진남은 주제도 파악 못 하고 날뛰었다.
설마 쉬체 경지 사 단계의 수행이면 진장공과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남은 황급 오품의 무혼이 단지 장식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하하하, 그래 네가 대답한 거다. 진남아, 오늘 내가 수련한 고급 무예를 보여 주마."
진남이 싸움을 승낙하자 진장공은 날듯이 기뻤다. 진남의 말속에 담긴 오만함을 신경 쓰지 않고 쉬체 경지 삼 단계의 기세를 전부 터뜨렸다.
그의 등 뒤에서 노란빛 다섯 개가 솟아올랐다.
어흥!
위풍당당한 맹수의 울음소리가 울리더니 거대하고 흉악한 백호의 허영이 진장공의 뒤에 솟아올라 황급 오품 무혼의 위엄을 풍겼다.
진장공이 온 힘을 다해 손을 휘두르며 무혼을 움직였다.
"백호포식(白虎撲食)!"
진장공은 사나운 시선으로 몸을 살짝 구부렸다. 마치 백호가 된 것 같았다. 그의 뒤에 있던 백호 무혼도 똑같은 동작을 했다. 커다란 호랑이가 허리를 굽히고 입을 크게 벌리자 어금니 두 개가 서늘한 기운을 번뜩였다.
사람 한 명과 맹수 한 마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 짙은 살기를 풍겼다.
진장공이 손을 휘두르자 자리에 있던 집사들의 표정이 충격으로 바뀌었다.
"허! 듣자 하니 이 고급 무예는 연마하기가 가장 어렵지만, 연마만 하면 사람과 무혼이 하나가 되어 움직일 수 있다고 했지. 마침 진장공 공자의 무혼도 백호구나."
"이 무예는 진짜 진장공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군."
"고작 보름 동안에 이 무예를 익히다니 황급 오품의 무혼은 역시 다르구나. 하하하. 이제 진남, 이 폐물은 죽을 일만 남았군."
"흥, 진남이 주제 파악을 못 해 그렇지. 신비한 것을 만났다고 천하제일이 되기라도 한대?"
"하하하. 진장공 공자가 폐물을 어떻게 혼내는지 보자고."
집사들은 다시 또 들끓었다.
그들은 진남과 진장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들은 한방이면 진남이 진장공의 거대한 백호에게 갈가리 찢길 거라고 믿었다.
진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그는 바로 손을 쓸 계획이었다. 어찌 되었든 진남이 다치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진남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천천히 허리춤에서 흑철검을 꺼냈다.
"무혼 방출을 하지 않아?"
진장공이 입술을 핥는 모습이 굶주린 호랑이 같았다.
"비록 황급 일품의 쓰레기 무혼이지만, 잘만 다스리면 지금 들고 있는 검보다는 나을 텐데?"
진장공이 보기에 진남은 이미 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진장공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 할 일은 끊임없이 진남을 조롱해서 조금 전의 모욕을 씻어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진남의 말에 진장공은 피가 거꾸로 솟구칠 뻔했다.
"너 같은 쓰레기를 상대하는데 무혼까지 사용할 필요가 없지."
진남은 칼을 들고 서서 옅게 웃었다. 그는 여전히 진장공을 무시하고 있었다.
주변의 집사들은 그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진남이 얼마나 오만하면 진장공을 이토록 무시하는 걸까?
"너, 너……! 너 정말 죽고 싶어!"
진장공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얼굴이 벌게져서 이 한 마디를 내뱉더니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는 살기를 뿜으며 진남을 향해 사납게 돌진했다.
진장공이 달려들자 그의 뒤에 있던 거대한 백호도 같이 움직였다. 멀리서 보면 사람과 맹수가 하나가 되어 큰 발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큰 발이 진남을 갈가리 찢을 듯 후려쳤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호랑이 울음소리가 하늘에 울렸다.
잔뜩 긴장한 진남의 시선이 전에 없이 예리해졌다. 그도 진장공이 이 고급 무예로 쉬체 경지 사 단계를 손쉽게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쉬체 경지 오 단계도 쉽게 막아 내기 힘들 것이었다.
하지만 진남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진남의 두 눈이 감겼다. 그의 심신에서 현묘한 기운이 흘러 나왔다.
진남이 손에 들고 있던 흑철검은 마치 무언가 끌린 듯 진동하면서 웅웅웅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백호포식이라는 대초식 앞에서 한없이 미약했다. 하지만 이 싸움을 지켜보는 집사들은 모두 쉬체 경지 오 단계 이상의 수행을 한 자들이라서 예리하게 느꼈다.
"이건……!"
이 장로와 삼 장로가 헛숨을 들이키며 소근거렸다.
"저건 설마 말로만 듣던 신검합일이 아니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진남이 칼을 휘둘렀다.
그의 칼끝은 날카롭고, 패기가 넘쳤다. 천둥소리 같은 폭발음이 들리고 차가운 빛이 의사대전 전체를 내리찍었다.
한칼에 상대를 죽인다는 경뢰검법!
흑철검의 살기가 순식간에 퍼졌다.
진장공은 한순간 멍해졌다. 그는 진남의 손에 있는 그 별 볼 일 없는 칼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위력을 뿜어낼 줄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진남의 예리한 칼 빛이 마치 썩은 나무를 꺾듯이 거대한 백호에 부딪혔다. 위풍당당하던 백호가 순식간에 예리한 칼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악!"
한 가닥의 처량한 비명이 울렸다. 진장공의 몸이 마치 단칼에 줄이 끊어진 연같이 통째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한 방에 승패가 갈라졌다.
의사대전에 있는 모든 자들은 눈이 모두 휘둥그레져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짧은 장면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정말 진장공이 패했단 말인가? 진씨 가문의 제일 천재가?
황급 오품 무혼을 펼친 진장공이 무혼을 펼치지 않은 진남을 이기지 못한단 말인가?
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남아, 너……."
진천은 아들의 성장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의 검법은 중급 무예 경뢰검법이 아니냐? 하하하, 역시 내 아들이구나! 검법을 이 정도까지 연마하다니. 비록 진정한 신검합일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미 첫걸음을 뗐구나!"
진천은 물론 모든 사람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나타났다.
진남이 사용한 것이 중급 무예라니!
중급 무예와 신검합일의 첫걸음을 떼어 황급 오품 무혼과 고급 무예를 펼친 진장공을 이기다니!
순식간에 모든 집사, 장로들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들은 바로 전에 진남이 무혼 등급이 낮고 수행이 약하다고 비웃었다가 진남의 쉬체 경지 사 단계를 보여 줘서 한번 체면을 깎았다.
방금 그들은 또 진남이 진장공과 결전하는 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라고 비웃었다가 또 한 번 체면이 깎이었다.
현장의 많은 사람은 저도 모르게 어릴 때의 진남의 전설적인 경력이 생각났다.
황급 일품 무혼이면 또 어떤가?
천재는 역시 천재였다.
진남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에는 더 이상 비웃음과 무시가 없었다. 비록 황급 일품 무혼의 잠재력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 진남은 확실히 강했다.
진남은 승자이다. 어찌 됐든 그가 승자이니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너, 너……."
진철패는 손가락으로 진남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을 부들부들 떨고 낯빛이 시퍼레지더니 연이어 '너'를 부르더니 화가 나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원래 진천이 퇴위하고 진철패가 진씨 가문의 가주가 되는 건 거의 확정적이었는데 진남이 나타나고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철패가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가 아무리 화가 나고 분노해도 속으로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상이 생겼던 것이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수 없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냔 말이야!"
비명이 울리더니 얼굴이 피범벅이 된 진장공이 일어서더니 미친 듯이 소리쳤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나를 이길 수 있냔 말이야! 나야말로 천재야, 내가 천재라고! 넌 그저 폐물이야, 넌 그저 폐물이란 말이야!"
진장공은 완전히 정신을 놓고 횡설수설했다.
고작 황급 일품의 폐물이 무혼을 쓰지 않은 상황에서 고급 무예를 펼쳐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격파했는데 그가 어찌 제정신일 수 있겠는가?
진남은 겉으로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돋아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진천의 말대로 진남은 신검합일의 경지의 첫 단계에 들어섰기에 방금 펼친 놀라운 검법은 이미 체력을 엄청 소모한 것이었다.
"말하거라!"
진장공이 계속 소리 질렀다.
"이 쓰레기야, 말하거라……."
진남은 비록 체력을 많이 썼지만, 두 눈에서 여전히 차가운 기세를 뿜어냈다.
"진장공, 너의 황급 오품 무혼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자신을 너무 높게 보지 말거라. 그리고 네가 진씨 가문의 제자인 걸 봐서 특별히 너한테 한마디 충고하지.
너는 나의 상대가 아니다, 나중에는 더욱 나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얕잡아 보지 말거라."
"너……!"
진장공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고 안색이 퍼레졌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장내의 집사들은 얼굴이 또 한 번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마치 진남의 '사람을 얕잡아 보지 말라'는 말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진남, 난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쓰레기는 결국은 쓰레기다. 네가 오늘 나를 이긴들 무슨 소용 있어? 난 앞으로 현령종의 제자가 될 거지만 넌 앞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버지, 우리 갑시다!"
진장공은 진남의 눈에 담긴 한기를 느끼고는 가슴이 후들거려 더는 말하지 못하고 진철패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