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말도 안 되는 일
쿵! 쿵! 쿵!
순간 진남의 뇌리에서 한 번, 또 한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힘을 가진 커다란 손바닥이 하늘 위에서 떨어졌다. 마치 진남을 산산조각 내려는 것 같았다.
이때, 사람 모양을 한 전신의 혼이 살짝 고개를 드는 거 같았다. 진남을 덮치던 손바닥이 순간 멈추더니 그의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진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 힘을 다해 그 의지를 느꼈다.
"이 손바닥이 가진 의지는 매우 횡포해. 한 방이면 무소불훼, 무소불멸……"
진남은 세세하게 그 기운을 느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진남의 생각이 한 단계 승화했다.
바로 의지 단련이었다.
천천히 시간이 흘러갔다. 진남이 손바닥 자국 아래에 앉아 있은 지도 하루가 지났다.
석벽 앞에 앉아 있는 진남은 생기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호흡도 잠깐 멈췄고 마치 조각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다음 순간 진남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시선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뿜어졌다. 그 빛은 실체가 있는 것처럼 석벽에 꽂혔다.
진남이 지금 풍기는 기운은 무형 중에 횡포한 압력을 느끼게 했다. 쉬체 경지 오 단계가 주는 위압감을 훨씬 뛰어넘은 기운이었다.
"오늘 깨달음도 수확이 크구나. 하지만 지금 내 수행이 낮아서 손바닥 자국의 의지를 겨우 쥐꼬리만큼 느낀 게 아쉬워."
진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이 손바닥 자국이 어느 '무왕' 급의 강자가 남긴 거라고 확신했다.
무왕 손바닥 자국의 의지는 지금 진남의 실력으로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쥐꼬리만큼이라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전신의 혼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무왕의 의지를 넘보다 다쳤을지도 몰랐다.
"이제, 경뢰검법을 한 번 시험해보자."
진남은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흑철검을 꺼내고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잠시 후.
진남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들고 있던 흑철검을 순식간에 휘둘렀다.
쿵!
천둥소리가 울렸다.
음침한 칼 빛이 횡포한 기운을 풍기며 마치 진남과 한 몸이라도 된 듯이 석벽을 베었다. 견고한 석벽에 깊은 칼자국이 새겨졌다.
"이 한방에 나와 칼이 마음이 통한 느낌이 들었어. 지금의 나는 신검합일의 경지에 조금 들어선 것 같아. 방금 내리친 칼은 쉬체 경지 오 단계라도 해도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거야."
진남은 기뻤다.
석굴로 온 것이 큰 수확이었다. 만약 저 손바닥 자국이 없었다면 진남은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됐어. 이제 용호산맥에 온 지도 닷새가 지났어. 아버지도 쉬체단을 다 준비했을 테니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진남은 눈을 반짝이더니 석굴에서 나와 산 아래로 내려갔다.
* * *
같은 시각.
임수성 진씨 가문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종문 회의 중이었다.
진씨 가문 의사대전 안.
진천은 가장 윗자리에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무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아래에는 대장로 진철패 그리고 이 장로, 삼 장로가 있었다. 세 장로는 안색이 모두 좋지 않았다. 특히 진철패는 얼굴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세 장로 아래 자리에는 진씨 가문의 집사 서른여 명이 있었다.
의사대전에는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 모든 건 며칠 전 진씨 가문에서 벌어진 큰 사건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진씨 가문의 가주 진천이 가문에서 수행 자원을 받지 않는 대가로 한 번에 오백 알의 쉬체단을 가져다 진남에게 주겠다고 한 일 때문이었다.
오백 알의 쉬체단은 진씨 가문 제자들이 다섯 달 동안 수행하는 자원이었다.
만약 진남이 여전히 제일 천재라면 문제없었다.
하지만 진남이 어떤 사람인가? 진씨 가문의 제일 폐물이 아닌가?
오백 알의 쉬체단을 폐물에게 주겠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리 진씨 가문은 매달 종문 회의를 하오."
진천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종문 회의는 가문의 크고 작은 일들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자리오. 그런데 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소? 말할 사람이 없다면 이번 종문 회의는 이만 끝내도록 합시다."
아래에 앉은 집사들은 그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진씨 가문이 임수성이 대가문이 된 이래 한 번도 종문 회의를 일찍 끝낸 일이 없었다.
"제가 할 말이 있습니다."
이때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말을 한 사람에게 쏠렸다. 진장공이었다.
진씨 가문의 규정대로라면 종문 회의에는 제자들은 참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장공이 진씨 가문의 제일 천재가 된 후로는 여기에 있을 자격을 가졌다.
진장공은 흰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소매에 금테까지 둘러 기품이 있어 보였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쉬체 경지 삼 단계였다.
아무리 황급 오품의 자질이라고 해도 십수일 안에 이 정도 경지를 수련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진장공은 가문이 주목하는 천재라서 수행 자원이 풍부했다. 이런 수행 자원 덕분에 진장공은 지금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쉬체 경지 삼 단계는 진씨 가문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진장공이 고작 열 며칠에 이런 수행을 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 속도라면 진장공은 미래에 어떤 경지에까지 갈 수 있을까?'
의사대전의 집사들은 동시에 이 질문을 떠올리고 모두 진장공을 쳐다봤다.
그들은 시선에서 진장공의 환심을 사려는 속마음이 드러났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진장공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얼굴에 오만한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그가 종문 회의에 참석한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제일 윗자리에 있던 진천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해 보거라."
진천을 바라보는 진장공의 눈빛은 매서웠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
"가주, 저는 진씨 가문의 제일 천재인데도 매달 열 알의 쉬체단 밖에 가져가지 못합니다. 가문의 보살핌을 받아도 한 달에 스무 알을 넘지 않지요! 가주께 묻겠습니다. 무슨 근거로 오백 알의 쉬체단을 진남 같은 폐물에게 줍니까? 그가 단지 가주의 아들이기 때문입니까?"
회의장이 순식간에 긴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진장공의 이 발언은 분명 아버지인 진철패의 용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집사들의 시선이 진철패에게 향했다. 진철패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집사들은 그의 눈에 서늘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보아냈다.
진천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곤 되돌리더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오백 알의 쉬체단은 내 아들을 보살펴주려고 한 게 맞다.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진씨 가문에서 수행 자원을 하나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따져본다고 해도 진씨 가문이 손해 볼 건 없다."
"하하하!!"
그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진철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비꼬며 말했다.
"진씨 가문에서 손해 볼 게 없다니? 알잖소. 우리 진씨 가문의 쉬체단은 일 년에 정해진 수량만큼 밖에 만들지 못하오. 그런데 오백 알을 당신의 폐물 아들에게 준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오? 당신은 가주면서 수행 자원을 천재에게 주지는 못할망정 폐물에게 주다니……! 내가 볼 때는 당신도 진씨 가문의 가주가 될 자격이 없소!"
그의 말은 마치 벌집을 건드린 것 같았다. 의사대전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리에 있던 집사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그들은 진장공, 진철패 부자가 진천을 가주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 * *
진남은 진씨 가문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그는 가문의 누구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리한 진남은 그를 지나치던 진씨 제자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부러움과 질투 섞인 시선을 보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진남은 그들에게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감지했다.
"보아하니, 아버지가 쉬체단 오백 알을 얻은 모양이구나."
진남은 자신에 대한 그들의 시선이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쉬체단 오백알을 얻은 것이라 추측한 것이다.
진씨 가문 제일 '폐물'이 오백 알이나 되는 쉬체단을 얻었으니, 진씨 가문 제자들이 어찌 진남을 질투하고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악의에 차서 비아냥거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남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정원으로 향했다.
진남이 정원에 들어서자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주, 이건 가주가 소주를 위해 얻어온 오백 알의 쉬체단입니다."
진남이 돌아보니 검은색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정원에 서 있었다.
중년 사내는 피부가 검고 표정이 차가웠다. 그의 몸에서는 사람이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살기가 풍겨서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게 했다.
진남도 이 자를 알았다. 진천의 측근 호위무사 철삼(鐵三)이었다. 진씨 가문에서 진천에 버금가는 실력자이자 진천의 심복이었다.
"고맙습니다."
진남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의 시선이 한 줄 한 줄 세워놓은 옥병에 머물렀다. 옥병에서 풍기는 짙은 영기에 저도 몰래 마음이 흔들렸다.
이건 오백 알이나 되는 쉬체단이었다. 이 쉬체단을 복용하면 전신의 혼은 대체 얼마나 승화할 수 있을까?
철삼이 진남의 행동을 살피더니 잠잠했던 눈에 순간 한기가 서렸다.
진남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들고 물었다.
"삼숙, 아버지는요?"
"종문 회의 중입니다."
철삼은 감정 없이 대답하고 돌아서서 정원을 나가려고 했다. 몇 걸음 옮기던 그는 순간 멈추었다.
진남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삼숙, 왜요?"
철삼은 진남을 노려봤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에 서린 한기가 숨김없이 흘러나왔다.
"소주,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소주는 그저 폐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가주께 쉬체단을 오백 알 얻어달라고 하다니요! 이 일 때문에 가주께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아십니까?"
진남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무언가 알 것 같았다.
"삼숙, 무슨 일이 생긴 거죠?"
철삼의 두 눈에 한기가 더 짙어져서 혐오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십니까? 그럼 제가 알려드리죠. 이번 종문 회의에서 대장로와 사람들이 이 일로 가주를 쫓아내려고 합니다! 가주께서 진씨 가문의 가주 자리에서 쫓겨난다면 소주 때문이라는 걸 기억하십시오."
철삼의 몸에서 살기가 풍겼다.
철삼은 진남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진남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그래서 진남이 눈치채지 못하게 안전하게 보호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진남이 진천에게 쉬체단 오백 알을 요구했다는 것을 안 이후로 철삼의 진남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무려 쉬체단 오백 알이었다.
폐물이 쉬체단 오백 알을 요구하다니! 이건 제 아버지를 해치는 일이 분명했다.
철삼은 심호흡을 세 번 하면서 살기를 누르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는 이곳에 한시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철삼이 대문을 나서려고 할 때 뒤에서 화가 난 고함이 들렸다.
"이것들이 아버지를 쫓아내려고 해?"
강렬한 기운이 화가 난 고함과 함께 폭발했다.
철삼은 놀라서 저도 몰래 돌아섰다.
그의 시선이 정원에 있는 화가 잔뜩 난 진남에게 닿았다. 진남에게서 풍기는 우렁찬 힘에 그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 눈에 충격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진남이 쉬체 경지 사 단계에 도달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