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후회할 자격도 없어
진남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몸을 휙 움직이더니, 오른손에 든 흑철검을 휘둘렀다.
이내 천둥 같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번개처럼 빠른 빛이 스치더니 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란호의 몸이 허공에서 횡포한 칼을 맞고 바로 두 동강이 났다.
경뢰검법. 칼을 휘두르면 반드시 죽는다는 검법.
"이 검법은 과연 대단해. 중급 무예 중에서도 아마 최상급일 거야."
진남은 눈앞의 피비린내 나는 광경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는 흥분되었다.
경뢰검법이라면 진남은 쉬체 경지 사 단계인 사람과 겨룰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경뢰검법은 초급단계야. 아직도 더 연마해야 해."
진남은 이내 차분해졌다. 그는 조금도 교만하지 않고 외로운 늑대처럼 몸을 솟구치더니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 이틀 동안, 진남은 완전히 전투에만 몰입했다. 그중 가장 처절한 전투는 쉬체 경지 사 단계와 맞먹는 요괴 원숭이와의 싸움이었다.
요괴 원숭이는 매우 사나웠다. 결국 진남이 이기기는 했지만, 그도 요괴 원숭이에게 맞아서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덕분에 이번 싸움에서 진남은 거대한 수확을 거두었다.
경뢰검법 위력이 더 강해진 것이다.
그래도 진남은 그 요괴 원숭이들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숲속을 어슬렁거렸다.
요괴 원숭이와 싸우면서 입은 중상이 지금은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요괴 원숭이 정도의 요수를 또 만나게 된다면 진짜 위험할 수도 있었다.
지금 시급한 것은 주변을 샅샅이 뒤져 천지영약(靈藥)이 있는지 찾아보고 부상을 치료하는 일이었다.
주변을 수색하던 중 진남은 이상할 정도로 짙은 영기가 앞쪽에서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토록 짙은 영기라니, 앞쪽에 반드시 천지영물이 있을 거야."
진남은 마음이 동하여 몸을 날려 짙은 영기를 뿜어내는 쪽으로 향했다.
얼마 후 진남은 밀림의 깊은 곳에 하얗고 작은 연못을 발견했다. 그 연못 위에는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건……"
진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기원지(靈氣元池)?"
영기원지란, 천지의 영기가 모여 만들어진 연못이었다. 십 척 정도 크기의 영기원지는 쉬체단 오십 알과 맞먹었다.
"뜻밖에도 영기원지를 만날 줄이야. 원기를 회복하고도 남겠어."
진남은 기쁜 마음에 성큼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두 사람의 목소리가 뒤쪽 숲에서 울려 퍼졌다.
"형님, 앞쪽에 진짜 영기원지가 있어요?"
"내가 왜 너를 속이겠어? 이건 내가 아주 오래된 지도에서 찾아낸 거야. 그러니 거짓일 수 있겠어?"
"그럼 됐어요. 영기원지만 있다면 우리 두 형제는 수행을 더 높이 돌파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우리 진남을 한바탕 때려줍시다."
"한바탕 때려주겠다고? 그걸로는 부족하지!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놈을 폐물 중의 폐물로 만들어 줄 거다."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두 그림자가 빠르게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둘은 영기원지를 발견하고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진남을 보자 표정이 굳어버렸다.
진남도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표정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의 두 사람은 진옥과 진효였다.
진옥과 진효는 그들이 조금 전까지 언급했던 진남이 그들 앞에 멀쩡하게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어안이 벙벙했다.
"진남, 네가 왜 여기 있어?"
진효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물었다.
"하하하하, 저놈이 왜 여기 있든 무슨 상관이야!"
진옥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진남아, 천당으로 가는 길로 안 가고 문도 없는 지옥에 왔구나! 여기는 무예각도 아니고 진씨 가문도 아니다. 저번에는 그렇게 난리를 부리더니 대체 무슨 재간이 있는지 내 오늘 한번 보자."
진옥의 몸에서 금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놀랍게도 쉬체 경지 이 단계였다.
진효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기운도 폭발했는데 쉬체 경지 일 단계였다.
두 형제는 진남에 대한 증오로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진남이 진씨 가문에 있는 한 둘은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진남의 부친이 진씨 가문의 가주이기에 그들은 감히 미움을 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용호산맥에서 진남을 만났다. 여기서는 진남을 죽인다고 해도 진씨 가문에서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진옥과 진효는 진남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진남의 표정에서 두려움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진남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진남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전혀 꺼리지 않고 담담하게 웃었다.
"내가 무슨 재간이 있냐고? 너희들같이 파렴치한 놈들은 알 자격도 없어."
진효와 진옥은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놈이? 정말 상황 파악도 못 하고 날뛰는구나.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 이렇게 큰소리를 치다니!'
"진남!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전에 당한 수모가 생각난 진효는 두 눈이 시뻘게져서 크게 호통쳤다. 그의 뒤로 무혼이 솟아오르더니 끊임없이 세 갈래의 노란빛을 내뿜었다.
무혼 장검을 잡은 진효는 맹호처럼 달려들었다. 장검은 차가운 빛을 번뜩이며 쉬체 경지 일 단계의 힘을 싣고 사납게 달려들었다.
진옥은 만면에 냉소를 띠며 뒤에 서 있었다. 지금 그는 나설 생각이 없다. 진효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진남이 진효를 때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진남이 열 개의 쉬체단의 힘을 빌려 먼저 쉬체 경지 일 단계를 돌파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진효도 쉬체 경지 일 단계를 돌파했고 황급 삼품의 검무혼까지 있으니 진남과 같은 폐물이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는가.
이때, 제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던 진남이 갑자기 움직였다.
진남은 허리춤의 흑철검을 뽑지 않고, 다만 성큼 앞으로 다가가더니 큰 주먹을 휘둘렀다.
이 권법은 지난번에 진효와 싸울 때도 사용한 저급한 무예인 붕권이었다.
"또 그걸로 나를 이기려고? 내가 새로 배운 무예, 추수검법(秋水劍法)을 보여 주마!"
진효가 비웃으며 하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효가 들고 있던 장검이 이내 한 줄기 잔영이 되어 마치 가을 물처럼 와르르 흘러내렸다.
추수검은 중품 무예로 진효의 검무혼과 맞물려 위력이 더욱 커졌다.
권법과 검법이 부딪혔다.
그 순간 진효 얼굴에 띤 냉소가 갑자기 굳어졌다. 뒤이어 그의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두려움이 가득 찼다. 그는 입을 벌리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한 글자도 내뱉지 못했다. 거대한 힘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우르릉!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더니 진효의 몸이 거대한 힘에 산산이 조각나고, 수많은 살점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진남은 진효를 주먹 한 방에 바로 때려죽였다. 심지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기회도 주지 않았다.
진남의 안색은 더없이 평온했다. 그의 쉬체 경지 삼 단계의 힘으로 진효 같은 일 단계를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
진옥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동생 진효가 무혼을 사용하고도 싸움에서 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권법 한 방을 맞고 육체마저 산산조각이 날 줄이야.
"진남! 내 동생을 죽이다니, 너도 이제 죽었어!"
진옥은 화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치솟았다.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려서 미친 듯이 진남을 죽이고 싶은 욕망뿐이 가득했다.
그의 등 뒤에서 네 갈래의 노란빛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빛 속에 서늘한 기운을 뿜는 큰 활이 떠올랐다.
진옥의 무혼은 황급 사품의 한빙궁(寒冰弓)이었다.
"죽어라!"
진옥이 고함을 지르며 한빙궁을 들고 만월 모양으로 잡아당겼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한빙궁에서 한빙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한빙 화살은 진옥의 강력한 한 방이었다. 쉬체 경지 삼 단계인 사람도 이 초식을 만나면 당해내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진남이 흑철검을 꺼내 휘둘렀다.
천둥 같은 폭발음과 함께 칼 빛이 번뜩였다. 마치 허공에 나타난 번개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펑!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날아오던 한빙 화살이 칼 빛을 만나더니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져버렸다.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뭐야? 이 정도 능력밖에 안 돼?"
진남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방금 그 초식은 내 힘을 반 정도밖에 안 실었어."
"너!"
진옥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며 입을 크게 벌렸지만 마치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그는 쉬체 경지 이 단계의 수행에 전력을 다해 황급 사품 무혼의 가장 강력한 한 방을 날렸다. 그런데 진남은 힘의 반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이럴 수가!
"그럼……, 네 수행이 설마 쉬체 경지 삼 단계를 돌파한 거야……?"
진옥은 문뜩 깨닫고 진남을 죽어라 노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럴 수가? 너는 황급 일품의 폐물 무혼이잖아. 어떻게 쉬체 경지 삼 단계를 돌파한 거야?"
이치대로라면, 황급 일품의 무혼으로는 쉬체 경지 일 단계를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진남이 쉬체 경지 삼 단계를 돌파했다고 했다.
수많은 쉬체단이 있다고 해도 연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각성 의식을 치른 지도 며칠 지나지 않았잖아! 보름 동안 진남이 어떻게 쉬체 경지 삼 단계를 돌파한 거지?'
"황급 일품의 폐물 무혼?"
진남은 콧방귀를 뀌었다.
"진옥, 너도 참 멍청하구나. 내가 정말로 황급 일품의 무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좋아. 오늘 똑똑히 알려주지. 네가 말한 폐물이 과연 누구인지!"
진남의 말이 끝나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등 뒤로 일곱 갈래의 노란빛이 피어났다. 전신의 혼이 확 떠올랐다.
"이게……"
진옥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눈앞의 거대한 인물 형상을 한 무혼이 내뿜는 위압감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특히, 무혼의 뒤에 번쩍이는 일곱 갈래의 노란빛은 너무 눈부셔서 진옥은 눈도 똑바로 뜰 수 없었다.
진남이 황급 칠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다니!
"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없어……."
진옥은 순간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는 황급 일품의 무혼이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이런……"
진옥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진남에게 했던 온갖 비아냥들이 생각났다. 진남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고 그 장면을 다시 회상해보니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황급 칠품의 무혼을 가진 자를 폐물이라고 비웃다니? 게다가 협박까지 했어. 이 말이 밖으로 전해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큰 웃음거리겠어.'
황급 칠품의 무혼은 임수성을 통틀어 오십 년에 겨우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했다.
진남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이제야 상황이 파악된 것 같구나. 그럼 이제 네 동생과 함께하거라."
진남이 들고 있던 흑철검이 '웅웅' 소리를 내며 살기를 사방에 내뿜었다.
"악!"
진옥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마를 쿵쿵 바닥에 찧으며 웅얼웅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부, 부탁이야. 나, 나를 죽이지 말아줘……"
진옥이 말을 채 마치기 전에 칼 빛이 번뜩이더니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갔다.
진남은 그의 시체를 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 나에게 무릎을 꿇고 빌지 말라고. 그래 봤자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그때는 내 말을 안 듣더니?
다음 생에 다시 사람이 된다면 너희 형제 두 사람 모두 너무 나대지 말고, 함부로 누구를 얕잡아 보지도 말아라. 파렴치하게도 살지 말고! 아니면 지금처럼 나중에 후회할 자격도 없을 테니까."
말을 마친 진남은 돌아서서 걸어갔다.
진옥, 진효 두 형제에게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