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내가 보내줄 것이다
진남은 진옥에게 전혀 악의가 없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진옥이 비아냥거리니 그도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내 동생을 때렸어?"
진옥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
진남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동생은 옛정도 무시하고 발로 내 정원의 대문을 걷어찼어. 게다가 말로 나를 모욕하고 때리려고 하고 단약도 빼앗으려고 했지. 하지만 나는 그저 때리기만 했어."
"그저 때리기만 했다고?"
진옥은 화가 나서 말했다.
"진남, 내 동생이 네 단약을 뺏는 게 무슨 잘못된 일이냐? 너 같은 폐물이 쉬체단을 가지고 있어 봤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지."
진남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는 진옥이 이렇게 염치없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상대방이 이런 염치없는 말을 내뱉자 진남은 더 예를 차리지 않고 말했다.
"너와 네 동생은 역시나 똑같은 물건들이구나. 염치없고 의리 없는 모습에 구역질이 난다."
"뭐?"
진옥 마음속의 화가 드디어 폭발했다. 그는 이 폐물이 감히 건방지게 나오자 호통을 쳤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말을 마치자 진옥은 앞으로 한발 내디뎠다. 쉬체 경지 일 단계의 기운이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등 뒤의 노란빛이 번쩍이자 그는 바로 무혼을 움직여 진남에게 강렬한 한 방을 날렸다.
이때, 응노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 층에 울려 퍼졌다.
"무예각 내에서는 싸움을 금지한다. 진옥, 네 놈이 오늘 그 규정을 어겼으니 평생 무예각에 한 발짝도 들이지
말거라!"
응노의 말은 한 바가지의 찬물이 되어 진옥의 머리에 끼얹었다.
"응노, 죄송합니다. 앞으로 절대 무예각의 규정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진옥의 화는 온데간데없이 사그라지고 연신 사과를 했다.
그는 응노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가문의 천재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규정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 했다. 평생 무예각에 올 수 없다면 그 손해가 막대했다.
말을 마친 진옥은 고개를 돌려 진남을 지독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너!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 다음에는 나를 만나지 않도록 기도해라. 다음에 만나면 네 사지를 뜯고 단전을 망가뜨려 버리겠다. 폐물보다 더 못한 폐물로 만들 것이다."
"그래?"
진남의 얼굴에는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싸늘하게 말했다.
"나도 똑같이 돌려주지. 나를 만나지 않도록 기도해라. 그때 가서 무릎 꿇고 빌어도 소용없어. 나는 절대 염치없고 의리 없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너, 너……! 네 이놈!"
진옥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으로 진남을 가리켰다. 어찌나 화가 나는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옥이 황급 사품의 무혼을 각성한 이후 가문의 장로들과 제자들 모두 그에게 공손하게 대했다. 그런데 고작 황급 일품인 폐물에게 여러 차례 모욕을 당하다니!
"네 이놈 두고 보자!"
한참이나 끙끙거리던 진옥은 그 한마디를 내뱉고 자리를 떴다. 그는 잠시라도 무예각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진남이 또 무슨 기막힌 소리를 한다면 화병에 걸려 죽을 것 같았다.
진남은 냉담한 표정으로 진옥의 위협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예나 보자."
진남은 이내 감정을 다스리고 돌아서서 서적을 집어 들고 하나하나 살폈다.
"능운보(淩雲步), 이 무예를 사용하면 육체는 흐릿해지고 그림자도 없어 다른 사람이 잡기 어렵다."
"옥석장(玉石掌), 이 무예를 제대로 수련하면 장은 옥석같이 물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과 창으로 뚫을 수 없다. 손바닥에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다."
"고산비검(孤山飛劍)……"
"벽악창법(劈嶽槍法)……"
진남은 하나하나 샅샅이 훑어보았다. 역시 무예관 이 층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중급의 무예의 위력은 저급한 무예가 완전히 비할 바 못 되었다.
진남은 열몇 권의 고서적들을 읽어보았지만, 그가 원하는 무예를 찾지 못했다.
"응? 경뢰검법(驚雷劍法)?"
진남의 시선이 누렇게 바랜 고서적에 이끌렸다. 고서적에는 네 글자가 마치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 것 같이 휘날렸다. 마치 칼로 각인한 것 같기도 했다.
진남은 흥미가 생겨 그 고서적을 들었다.
"경뢰검법, 칼을 휘두르면 마치 강력한 천둥 같고, 빠르기는 번개 같아서……"
족히 반 시진 정도 읽어본 진남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책이야!"
진남은 칼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열여섯이 되던 해에 스스로 검법 무예를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검법은 위력이 세지는 않았다.
경뢰검법은 진남의 마음에 꼭 들었다.
이때 무예각에 몇몇 사람이 더 들어왔다. 그들 모두 진씨 가문의 천재 제자들인데 쉬체 경지 일 단계를 돌파하고 무예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그 제자들의 의아해하는 시선을 받으며 진남은 담담하게 서적을 가지고 돌아섰다.
무예각에서 돌아온 후 진남은 원락의 대문이 수리된 것을 확인했다.
그는 약간 의아했다. 필경 그는 현재 진씨 가문의 제일 '폐물'이기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맞았다.
의문스러운 마음으로 대문을 열자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왔느냐?"
진남이 고개를 들어보니 중년의 사내가 온화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복식은 간단했지만, 풍기는 위엄이 사람들을 벌벌 떨게 했다.
중년 사내는 진씨 가문의 현 가주이자 진남의 아버지.
진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선천 경지'(先天境地)에 도달한 강자 진천이었다.
진천은 진남이 들고 있는 서적을 보더니, 시선이 멈칫했다. 곧 진남을 자세히 살피더니 이상해서 물었다.
"남아, 쉬체 경지 일 단계를 돌파했느냐?"
"네."
진남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준 단약 덕분입니다."
"그래……?"
진천은 여전히 의문스러웠다. 열 알의 쉬체단의 힘이 강대하기는 하지만 진남의 무혼은 황급 일품이 아닌가! 어떻게 쉬체단 열 알만으로 이렇게 빨리 돌파할 수 있지?
진남은 진천이 의심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맞다, 아버지.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진천은 가문의 가주로서 처리할 일이 태산 같았다. 평소에 진남과 만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진천은 안 보이는 곳에서도 묵묵히 진남에게 관심을 보내고 있었다.
"네 정원의 대문이 부서졌다는데 어찌 와보지 않을 수가 있느냐?"
진천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바로 말하거라. 이 진천의 아들은 아무도 괴롭힐 수 없다!"
말이 끝나자 진천의 몸에서 한줄기 엄청난 살기가 솟아올랐다. 그 기운은 횡포하고 맹렬했다.
진남은 살기등등한 아버지를 보자 도리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버지. 이런 일은 아들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진천은 믿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진남은 쉬체 경지 일 단계였다. 진씨 가문의 막 각성한 제자들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남아, 사실 아비가 이번에 온 것은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이다. 낙담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거라."
진천의 말투에는 짙은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이후에 수련할 때 단약이 필요하면 찾아오거라. 이 아비는 믿는다. 너는 앞으로 강자가 되어 큰일을 해낼 것이다."
여기까지 말한 진천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황급 일품의 천부면 또 어떠한가? 진남이 내 아들이라는 것만으로 나는 자랑스럽다.'
진남은 멈칫하더니 이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한 말을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진천은 진남의 모습에 시름이 놓였다.
사실 그가 오늘 온 다른 목적은 진남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천재에서 한순간에 폐물로 전락한 낙차를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진남이 투지를 잃지 않은 모습에 진천도 시름을 놓았다.
"아버지,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요."
진남이 입을 열었다.
진천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아라. 무슨 일이냐?"
"저도 과분한 부탁인 것을 압니다만 아버지 저를 반드시 믿으셔야 해요……"
진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단약이 필요합니다. 백 알의 쉬체단이 필요해요. 만약 이백 알, 아니 오백 알의 쉬체단이면 더 좋아요!"
말을 마친 진남은 조심스럽게 진천을 바라보았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려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진씨 가문의 모든 제자가 한 달 동안 수련하는 자원은 겨우 백 알의 쉬체단이었다. 그런데 진남은 방금 최대 오백 알의 쉬체단을 부탁한 것이었다.
하물며 진남은 지금 진씨 가문의 제일 '폐물'이었다. 오백 알의 쉬체단을 폐물에게 주는 일은 진천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진남이 이렇게 많은 단약이 필요한 것은 전신의 혼 때문이었다. 전신의 혼은 단약을 먹으면 등급이 높아졌다. 진남이 스스로 쉬체단을 얻으려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진천에게 부탁을 해서 많은 단약을 얻어야 전신의 등급을 단숨에 높일 수 있었다.
진남은 전신의 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진천이 안 믿을까 말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이건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충격적인 소식이라 우선 말을 아낀 것이다.
만약 전신의 혼에 대해 말한다면 진남이 천 알, 아니 만 알의 단약을 부탁해도 진천은 어떻게든 얻어올 사람이었다.
진천은 역시나 깜짝 놀랐다. 그는 진남이 단약을 터무니없이 요구할 줄 몰랐다. 잠시 고민하던진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 * *
진천의 약속을 받고 난 뒤, 진남은 며칠 동안 수행에만 빠져 있었다.
전신의 혼이 등 뒤에 떠 있고, 천지의 영기가 훅훅 빨려왔다. 진남의 들숨과 날숨에 따라 영기가 마치 기다란 뱀처럼 진남의 체내로 들어갔다.
전신의 혼이 황급 칠품으로 승급된 후 수련 속도도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그럼에도 진남은 사흘이나 걸려서야 쉬체 경지 수행을 이 단계로 겨우 끌어올렸다.
"쉬체 경지는 십 단계로 나뉘는데 한 단계 올릴 때마다 체력이 강화되지. 뒤로 갈수록 쉬체 경지를 올리기가 어려워지고 영기도 더 많이 필요해. 내가 전신의 혼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긴장을 풀면 안 되고 계속 노력해야 해."
진남의 의연한 눈빛으로 수행에 빠져들었다. 강대한 전신의 혼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행의 길은 그리 만만치만은 않았다.
이토록 강대한 무혼을 가지고 있었는데, 쉬체 경지 이 단계의 수행은 실로 너무 낮았다.
* * *
같은 시각.
진씨 가문 의사대전(議事大殿).
진천은 보라색 초피(貂皮) 외투를 걸치고 제일 윗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람한 덩치의 그에게서는 장내를 압도하는 위압감을 풍겼다.
아래에는 세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맨 앞에 앉은 노인은 금포를 입고 있었는데, 안색이 붉고 윤기가 흘렀다. 그는 진천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처음 의사대전에 들어섰을 때부터 그는 진천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노인은 진철패(秦鐵霸)였다. 진철패는 진씨 가문의 대장로이자 진장공의 아버지였다.
진철패 뒤에 앉은 두 명의 노인는 각각 진씨 가문의 이 장로, 삼 장로였다. 모두 진씨 가문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장로와 삼 장로는 조심스럽게 뒤에 앉아 눈빛을 반짝이며 진천과 진철패의 눈치를 살폈다. 진장공이 무혼을 각성한 후로 대장로와 가주의 갈등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가주, 오늘 대체 무슨 일로 우리를 불렀소?"
진철패가 찻잔을 들며 담담하게 물었다.
이 장로와 삼 장로도 의문스러웠다. 사실 문중 회의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있었다.
"대장로가 물었으니 솔직하게 말하겠소."
진천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오늘 여러분을 모신 것은 통지할 게 있어서요. 가주의 명의로 쉬체단 천 알을 진남이 수행하는 데 보내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