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127화 (122/122)

# 127

37. 콧노래

“TV를 보는데 네 얼굴이 나오더라. 반갑기도 하고 예전 일도 생각나서 와봤는데 반갑지 않은 얼굴이다?”

반갑지 않느냐고? 농담이라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만일 당시 장갑의 능력을 있었으면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게 했을 것이다.

“…우리가 반가워할 사이인가요?”

조해수는 두삼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하긴 그렇긴 하지. 나도 너만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서 마음이 아프거든.”

“효자네요.”

“내가 좀 그래. 하하하!”

비꼬는 투로 말했는데 곧이곧대로 듣는 뻔뻔함.

그는 그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 전엔 명절 때도 평소에도 섬을 찾은 적이 없었다.

‘상대해 봐야 내 기분만 더러워지는 인간.’

솔직히 확고하게 정리한 현재 섬에서 있었던 과거는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못했다.

처음에 놀랐던 건 파블로프의 개처럼 과거의 경험으로 인한 일시적인 조건 반사였을 뿐이다.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를 멈추고 가려 했다.

“아저씨랑 더 할 얘기 없네요. 이만 가볼게요.”

“잔깐! 난 할 얘기가 있는데 어쩌지?”

“무슨 얘긴지 모르지만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 지금 헤어지면 잊고 넘어가겠지만 얘기를 시작하면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와아~ 세월이 좋긴 좋구나. 내가 말을 하면 아무 말도 못 하던 꼬맹이가 TV에 나온다고 ‘후회’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 말이야. 근데 병원에서는 알고 있냐? 네가 살인자라는 거?”

“알죠. 제가 섬에서 죽을 환자를 살려서 헬기에 태워 보냈다는 건 말이죠. 왜? 병원에 말하고 싶으세요? 이제 보니 저기 원장님 비서실장님이 계시네요. 저분한테 소문 좀 내달라고 부탁할까요?”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른 건지, 아님 낯선 사람이 있음을 CCTV로 확인을 하고 달려온 건지 비서실장이 두 명의 경비원과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경비원을 보자 한발 물러났다.

“워워~ 싸우자고 온 거 아냐. 그저 과거의 약속을 깬 사람에게 이유를 물어보기 위해 온 것뿐이야.”

“약속을 깼다? 뭔 약속이요?”

“잊지 않았겠지? 나에게 했던 말. 두 번 다시 침을 잡지 않겠다는 약속 말이야.”

“그런 약속이 있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거랑 다르네요? 아저씨가 섬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저와 우리 부모님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냈고 그 대가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는 얘긴 들었네요.”

“…오호라~ 시치미를 떼겠다는 건가?”

“됐습니다. 과거의 일로 말다툼하고픈 생각 없으니까. 용건을 말하세요. 지금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많아서요. 알다시피 TV에 출연해서 그런지 바쁘네요.”

그는 두삼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길 기다린 건지 씨익 웃으며 다가와서 속삭이듯 말했다.

“요즘 내가 사정이 좀 그래서 말이야. 작은 가게라도 했으면 하거든. 막 인기가 치솟고 있는 지금 네가 잘못된 침술로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라도 나봐, 어떻게 되겠어? 서로서로 좋게 해결하자는 거지.”

결국 찾아온 이유는 돈 때문인가?

두삼은 잠깐 고민하는 척하며 물었다.

“…돈을 달라는 겁니까? 얼마나요?”

“흐흐흐! 나야 많을수록 좋지. 하지만 각자 사정이라는 게 있잖아. 듣자하니 네 사정이 요즘 좋다며? 그러니 지난번 줬던 것만큼만 줘.”

“3억요?”

“크크! 아닐걸. 그건 자네 부모님한테 물어봐. 자! 이건 내 전화번호. 한 일주일 정도 서울에 머물 테니까 연락해. 나 기다리는 거 싫어하고 입 가벼운 거 알지? 늦으면… 알아서 생각하고. 하하하!”

그는 두삼의 어깨를 툭툭 치곤 웃으며 가버렸다.

두삼의 그의 뒷모습을 보는 대신 그가 남긴 전화번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때 비서실장이 다가왔다.

“한 선생, 괜찮아요?”

“아! 실장님. 별거 아닙니다. 과거 악연이 있던 사람인데 얘기를 조금 했습니다.”

“혹, 도와줄 거라도?”

“아닙니… 아! 얼핏 원장님께 듣기론 병원 직원이면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사실이에요. 상담 및 병원 관련된 일은 무료로 변론까지 가능해요. 개인적인 것이면 케이스 별로 약간의 비용은 들어갈 겁니다. 필요하면 불러줄까요?”

“그래주시면 좋겠네요. 아! 이왕이면 실력 좋은 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죠.”

분명 그냥 넘어가자고 말했는데 듣지 않은 건 조해수였다.

‘한 번 당했다고 누굴 호구로 알고 있어. 상대하기로 한 이상 두 번 다시 내 얼굴을 보기 싫을 정도로 철저하게 상대해 줄게.’

진료실로 돌아온 두삼은 기다리는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후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응, 아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잘 지내시죠?”

-우리야 항상 그렇지. 근데 TV에 나오면 나온다고 하지 그랬냐. 네 아빠가 어제 다른 곳에서 듣고 와서 말하는데 깜짝 놀랐어.

“별것도 아닌데요. 아버지도 잘 계시죠?”

-네 아버지 요즘 바쁘다. 유형식품인지 유령식품인지 거기 납품 담당자가 됐거든.

“예? 또 사업하시는 건 아니죠?”

-돈도 없는 양반이 무슨. 이 동네 사람들이 복분자도 납품하는 곳이라더라.

엄마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인터넷에 유형식품이라고 친 후 검색을 해봤다. 그러다 유형식품이 납품하는 기업의 이름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려F&D. 고정운 회장의 또 다른 선물인 건가?’

한편으론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가슴 철렁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믿을 만한 회사네요.”

-그렇다고 하더구나. 회사에서 차까지 내줘서 요즘 신이 나서 다니고 있다.

“술 먹고 운전하시는 건 아니죠?”

-같이 다니는 청년이 있어서 괜찮을 거다.

안부를 적당히 물은 두삼은 본론을 꺼냈다.

“엄마, 예전에 저 문제 생겼을 때 합의금 줬었잖아요. 그때 각서 받았다고 했는데 혹시 아직 있어요?”

-…그건 왜? …혹시 문제 생겼니?

“아뇨.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문제가 생길 게 어디 있어요.”

-그럼? 똑바로 얘기해.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각서를 내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조해수가 찾아왔다는 얘길 했다. 한데 돈 달라고 했다는 얘긴 안 했는데 어머닌 단번에 찾아온 이유를 맞혔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왜? 또 돈을 달라디?

“엄만 신경 쓰지 마세요. 변호사로 사서 본때를 보여줄 테니까요.”

-알았다. 잘 보관해 놨으니 보내줄게.

“지금 차 보낼 테니까 차편으로 주세요. 참! 운전사가 낯을 가리니 차 트렁크에 넣어주시면 돼요.”

하란은 자신의 차에 이어 두삼의 차도 자동 운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줬다. 그에 운전을 잘하는 루시를 보낼 생각이다.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변호사는 마지막 환자를 보고 난 후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무척 바쁘네요. 한강대학병원 담당 로펌의 홍인규입니다. 일이 있다고요?”

“예, 변호사님.”

“먼저 얘기를 들어볼까요?”

두삼은 섬에서 있었던 일과 해결 과정을 일일이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조해수와 만났을 때 녹음해 뒀던 내용까지 들려줬다.

그는 녹음까지 꼼꼼히 듣고 난 후 말했다.

“돈을 주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줬군요?”

“당시 변호사를 알아볼 만큼 저희 가족은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꽉 막힌 섬, 조해수의 말에 적으로 돌아선 주민들, 매일처럼 계속된 조해수 형제자매의 협박, 전 버티려 했지만 부모님은 버티지 못하셨죠.”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떻게 하길 원하죠?”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전 가능한 모든 것을 하고 싶습니다.”

“각서가 있고, 오늘 돈을 요구한 녹음본이 있으니 돈을 돌려받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협박을 통한 갈취를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섬 사람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방법을 쓸 수 있겠지만 한두삼 씨 얘기를 들어보니 해줄 것 같지 않고요.”

“그들이 매일처럼 와서 협박한 내용이 녹음이 되어 있다면요?”

“오! 그때도 녹음을 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CCTV도 있죠. 화질은 좋지 않지만.”

섬에서 약간 정신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해도 매일처럼 와서 지랄거리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없었을까?

있었다. 마음 한 구석의 악마는 그들을 죽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지 못한 건 이성의 힘이 더 컸기 때문이다. 복수도 당연히 꿈꿨다.

그래서 증거들을 모았다. 부모님이 돈을 쥐어주자 하루아침에 섬에서 사라졌기에 그냥 흐지부지된 것이지 증거물은 없어지지 않았다.

녹음과 CCTV 영상 모으는 것이 어쩌면 직캠 마니아가 된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오버인가?

아무튼 엿 먹일 건 고이 집에 있었다.

“확인을 해봐야 정확히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협박을 통한 갈취로 형사 고발이 가능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그리고 지불한 금액에 대한 이자까지 받을 수 있겠군요.”

“변호사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병원 일이 아니고, 금액은 3억이라고 했나요? 아! 아직 정확히 모르겠군요. 대충 예상하면 2, 3천만 원 정도 들어갈 겁니다.”

“많지 않네요?”

“한강대학병원에서 지원을 하니까요. 보통의 경우 성공 보수금도 따라 요구를 하니 비싸게 느껴지는 거죠.”

“그렇군요. 전 제가 느꼈던 바를 그들 역시 확실히 느꼈으면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준 금액을 제외하곤 성공 보수금으로 드리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손해배상 금액과 이자를 얼마를 받던 모두 성공 보수금으로 주겠다는 말입니까?”

“예. 얼마 되지 않으면 돈을 더 드리죠.”

“하하하! 아닙니다. 그러지 않아도 확실하게 해드릴 겁니다. 한강대학병원은 우리 로펌에서도 큰 클라이언트거든요. 하지만! 때에 따라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성공 보수금이 걸리니 솔깃해집니다. 없던 힘까지 짜내야겠군요.”

“그럼 짜내주세요, 변호사님.”

어차피 잃었다고 생각한 돈이다. 진행 상황에 따라 모두 포기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그나저나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TV에 나왔다고 찾아온 사람이 자신이 잘살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떠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 * *

3억으로 알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조해수에게 자그마치 6억이라는 돈을 건넸음을 각서를 보고 알게 됐다.

6억이나 건넨 부모님의 행동에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을 위해 한 일이고 오래 전에 한 일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게다가 이젠 돌려받을 거 아닌가.

일과를 마치고, 뇌전증 환자를 치료하고, 마지막으로 이상윤의 기마사지를 마치고 나니 9시가 넘었다.

빵빵!

터덜거리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타려는데 맞은편 차가 헤드라이트를 깜박이며 빵빵거렸다.

뭔가 싶어서 쳐다보니 낯익은 얼굴이 차에서 내렸다.

“주해인? 네가 웬일이야?”

“저녁이나 사달라고 할까 해서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일이 많아서. 전화를 하지 그랬어?”

“그럼 일찍 나올 순 있었고?”

“…아니. 그래봐야 이 시간이었네.”

“풉! 밥 사줄 거야? 말 거야?”

치마의 구김을 보니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사줄게.”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조용한 곳이면 더 좋고.”

“괜찮은 곳이 있어. 따라 와.”

각자의 차에 올라 향한 곳은 이경도의 음식점이었다.

나흘 만에 나은 그는 이방익과 두삼에게 언제 오더라도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그 이후 두 번째 방문.

전과는 달리 작지만 야경이 아주 예쁜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나 여기 알아. 예전에 한 번 왔었어. 야경 예쁘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그나저나 뭘 먹는다?”

“새로 생긴 S코스 먹어봐. 맛있더라.”

“헐~ 가격이 만만지 않은데?”

“오래 기다렸는데 이 정도는 사줘야지.”

“사양하지 않을게. 근데 단골인 봐? 여기 식사하려면 족히 몇 달은 걸린다고 들었는데.”

“병원 선생님이랑, 애인이랑, 두 번밖에 못 와봤어. 그냥 요리사랑 좀 알아.”

“…애인 있었어? 전엔 그런 말 없었잖아?”

“지난달부터 사귀기 시작했거든.”

“…예뻐?”

“당연한 걸 왜 물어? 더 먹고 싶은 건 없어?”

“와인 먹고 싶어.”

들어온 직원에게 S코스 두 개와 와인을 주문했다.

미각을 되찾은 이경도가 새로운 요리들로 구성한 S코스는 다시 먹는데도 맛이 끝내줬다.

한데 정작 저녁을 사달라던 주해인은 음식보단 와인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천천히 마셔. 취하겠다.”

“취하려고 마시는 거야.”

“…안 좋은 일 있었어?”

“…그렇게 보여?”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뚫어지게 보다가 말했다.

“혹시 남자도 육감이라는 게 있나?”

“뜬금없이 웬 육감?”

“그런 거 있잖아. 이성 친구의 마음이 변했는지 변하지 않았는지, 헤어지자고 말할 것인지 아닌지 느껴지는 거 있잖아.”

“빤히 어제랑 오늘이 다른데 남자라고 왜 모르겠어. 그저 둔한 사람이 있을 뿐이지 그건 남녀완 상관없다고 생각해.”

“…그래? 그럼 너도 알았겠네?”

임동환이 민청하에게 정성을 쏟고 있는 걸 안 모양이다.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자신에게 밥을 사달라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뭘 알았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무겁다. 다른 얘기나 하자. 경해대 병원은 요즘 어때?”

시치미를 떼고 화제를 전환하려 했지만 실패다.

“후후! 여전히 착하구나. 요즘 동환 선배가 조금 이상했어. 바빠서 그렇다고 말했는데 바빠서라기보단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느낌이랄까. 오늘도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병원 일로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며 다음에 만나자고 연락이 오더라. 그래서 아는 사람의 차를 빌려서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

“솔직히 틀리길 바랐어. 밤새 기다려도 좋으니 선배가 진짜 일하기를 바랐어. 한데 웬 여자랑 나오더라.”

주해인은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당장 나가서 누구냐고 묻고 싶었는데… 온몸이 떨리면서 꼼짝을 못 하겠더라. 두 사람이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차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비참해지더라.”

꿀꺽꿀꺽!

비참함이 다시 떠올랐을까, 그녀는 가득 따른 와인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이거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해인이 본 여자는 민청하가 분명할 것이다.

임동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민청하의 경우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눈에 보였었다.

남녀 문제는 끼어봐야 손해다. 아예 3자라면 모를까 자신 역시 한발 걸치고 있는 셈이니 더욱 그렇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네가 본 사람이 키 크고 예쁘장한 아가씨라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냐. 흉부외과랑 한방센터랑 함께 작업할 일이 있어서 다니는 거야.”

“…알고 있었어?”

“소문이 돌아서 알아본 거야. 여자랑은 아는 사이기도 하고.”

“뭐 하는 여자야?”

“올해 흉부외과 전문의가 됐어.”

민규식 원장의 딸이라는 말은 삼켰다. 왠지 그 말까지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조금 진정되지 않을까 싶어 자신이 보고 느낀 걸 말했다.

“내가 볼 땐 민청하는 동료 그 이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어. 그러니…….”

“뭐야, 바보같이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거야? …하아~ 정말 기가 막힌다.”

그게 그렇게 해석되는 거냐?

이젠 모르겠다. 말은 말고 그냥 얘기나 들어주며 술이나 따라줘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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