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123화 (118/122)

# 123

35. TV 출연(2)

“혹시 오늘 나오는 환자를 담당한 한 선생님?”

“그렇긴 한데 누구세요?”

“하하하! 안녕하세요. 현성병원의 일반외과 전문의 이상윤입니다. 반갑습니다! 하하하!”

“…아, 네. 한두삼입니다.”

“하하하! 젊은 분이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들어서요. 한번 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뛰어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하하하! 겸손하시네요.”

두삼은 헤프게 웃는 이상윤이 참 실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와 번잡스럽게 구는 것도 한 이유였는데 무엇보다도,

‘서문희 선생님 덕분에 하라 얼굴을 이리저리 봐서 그런가? 얼굴과 목소리는 웃고 있는데 눈빛은 전혀 웃고 있지 않는 느낌이야.’

착각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인사나 하자고 찾아온 사람을 박대하면서 쫓아내는 것도 이상했다.

“겸손이 아니고 사실이죠. 앉으세요. 이왕 오셨으니 촬영 전까지 얘기나 나누시죠.”

“하하하! 화통하시네요.

“제가 준비한 건 아니지만 드세요. 근데 일반외과도 현성병원이라면 세분화되어 있을 텐데, 아닌가요?”

“하하하! 맞습니다. 내분비 및 유방, 간담도, 위장 및 소장, 대장항문으로 나누어져 있죠. 하지만 저는 한 가지 분야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서 현재 일반외과 전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제가 타고난 재능이 괜찮아서… 하하하! 이건 은근히 자랑하는 거 같아서 민망하네요.”

민망하다기 보단 우쭐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

‘서른 초중반에 불과한데 자부심인지 자만심인지 모르겠네. 그러나 방송에 출연할 정도면 실력이 상당한 건 사실이겠지.’

엄 PD라면 웬만한 의사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문득 두삼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한 생각인데 자신의 자랑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낯 뜨거워라. 저렇게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떠벌리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네.’

“내가 담당했던 환자는 위암이 소장, 대장은 물론 간까지 번진 상태였죠. 다른 병원에서 모두 포기했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공했나 보군요?”

“물론이죠. 수술도 잘됐고 현재 경과도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왜 내 환자가 다이어트하는 환자에게 밀려야 했을까요?”

“…네?”

“왜 내 환자가 첫 회에 나가지 못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 묻는 겁니다. 생명을 구한 것과 살을 뺀 것, 어떤 중요하고 어떤 것이 더 감동적일 것은 빤한데 말입니다.”

‘하아~ 이 인간 설마 그걸 따지러 온 거야? 자신이 첫 회가 아닌 것에 자존심이 상한 모양인데…….’

어이가 없었다.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따져야 했다.

“…그걸 왜 저한테 묻죠? 엄 PD에게 물어보세요.”

“엄 PD는 오늘 촬영을 하면서 직접 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왔습니다.”

“저도 엄 PD처럼 직접 보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군요. 무슨 설명을 할까요? 그냥 다이어트를 시켰고 방송하라는 대로 한 것뿐인데 설명을 하라니 뭘 설명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하죠. 생명을 구한 것 대단합니다. 하지만 제 환자보다 당신의 환자가 더 중요하다는 말에는 동감할 수 없네요.”

“생명이 걸린 일이니까 당연히 더 중요하죠!”

“치료의 우선 순위를 정한다면 그쪽 환자를 먼저 치료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생명은 동등합니다.”

“…하아~ 환자의 죽음을 안 겪어봤을지도 모를 한의사라 그런가 말이 안 통하는군요.”

이 인간이!

뭔가 울컥 치솟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사실이니 반박은 할 수 없었다.

‘하긴 이번에 겪었던 일은 양의학 의사들에겐 인턴이나 늦어도 레지던트 2년 안에 겪고 지나갈 일이지.’

인정을 하고 나자 마음이 편했다. 그에 차분하게 그의 말에 대처할 수 있었다.

“말하자고 찾아온 건 이 선생님인데 그런 말을 하니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니 굳이 더 얘기할 필요가 없겠네요. 이만 가보시죠. 촬영 전에 조금 쉬어야겠네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네요. 뭔가 배울 게 있을 거라 생각한, 방송에서 공정성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습니다.”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꾹 참았던 게 억울해진다. 싸우겠다고 온 거라면 그에 걸맞게 상대해주면 된다.

“일반외과라 해도 한의학에서 배울 게 많을 텐데요. 하긴 찾지 않는데 보일 리가 없겠죠. 그러니 환자가 우리 병원으로 왔는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 과에서 고치지 못했던 환자를 한강대학병원에서 고쳤다고 말하는 겁니까? 내가 기억하기로 그런 환자는…….”

없다고 말하려다 보니 그런 환자가 있었다. 자신이 담당했던 VIP 환자였는데 실패하고 한강대학병원으로 옮겼고 최근 그가 나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당장 한강대학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상해 그러지 못했었다.

“…나연섭을 고친 게 한의사라는, 아니, 당신이라는 얘기요?”

비꼬기 위해 나연섭의 일을 들먹인 거다. 한데 이상윤이 나연섭을 언급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두삼이 놀라자 사실이라고 생각한 건지 이상윤의 얼굴은 처음으로 구겨졌다.

“…….”

그는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며 노려만 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획 하니 돌아서 나가 버렸다.

쾅! 하고 닫힌 문을 보던 두삼은 두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겼다!”

두삼은 싸움은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말싸움은 말을 못 하고 돌아서는 이가 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초등학생보다 못한 인간이 칼을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이겼다고 기분이 좋진 않았다.

이상윤 때문에 살짝 기분이 안 좋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노형진이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절 보자고 하셨다고요?”

“형진 씨? 와아~”

만일 복도에서 만났다면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자신이 받은 분장이 예술이라면 노형진의 분장은 마법이었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는데 분장으로 또렷해진 눈매와 콧날, 턱선, 거기에 헤어스타일이 더해지자 완전히 딴 사람이다.

“많이 바뀌어서 몰라보겠어요!”

“…저도 거울을 보면 제가 아닌 것 같아 어색해요. 얼른 지워 버리고 싶습니다.”

“왜요? 전 보기 좋은데요. 가급적 앞으로도 오늘처럼 하고 다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장만 3시간 걸렸는걸요. 집에선 절대 못 할 일입니다.”

“…3시간이면 무리긴 하겠네요.”

“근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어요?”

“아! 내 정신 좀 봐. 배 쪽의 처진 부분 잠깐 보려고요.”

“너무 빨리 뺐죠?”

“약간요. 촬영 끝나고 현재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병원에 계속 와요. 마무리는 확실히 지어야죠. 오늘만 살짝 꼼수를 쓰자고요.”

“…….”

노형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곤 정중하게 고개를 90도로 굽히며 말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제 인생을 바꿔주셨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두삼은 그의 행동에 검지로 이마를 긁었다. 기분이 뿌듯해지면서 쑥스러운 순간이다.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최근 느끼고 있는 말을 했다.

“행복해지세요. 그러면 저도 기쁘겠네요.”

“…그러겠습니다. 꼭! 그러겠습니다.”

“흠! 이제 옷 벗어봐요. 이런 곳에서 이런 말을 하니 꽤 이상하네요.”

“선생님도 참…….”

농담으로 조금은 가벼워진 분위기에서 노형진은 와이셔츠를 풀고 바지를 살짝 내렸다.

보기 싫은 처진 뱃살을 혈을 꾹꾹 눌러 최대한 당기게 만들었다.

“살짝 당기네요. 근데 선생님,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안 돼요. 계속 이러다가 당기는 힘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고무줄이 터진 팬티처럼 되어버려요.”

“…상상만으로 끔찍하군요.”

치료를 거의 마쳤을 때쯤 다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고 스태프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선생님, 촬영 시간이……! …죄, 죄송, 하시던 일 계속 하세… 요.”

스태프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귀까지 붉어진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두삼은 자리에 앉아 있고 노형진은 그 앞에 서서 바지를 반쯤 까고 있으니 무슨 그림처럼 보일지 빤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치료하고 있습니다!”

두삼과 노형진은 동시에 소리쳤다.

오해(?)를 풀고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MC가 서게 될 무대 중앙을 기준으로 좌측엔 연예인 패널들이, 우측은 의사들이 앉게 배치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MC를 맡게 된 개그맨 은주열입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잘생긴 개그맨으로 코미디보다 MC를 더 자주 맡고 있는 은주열은 예의바르게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이로 보자면 어린 자신에게도 깍듯이 대하는 걸 보니 왜 그가 많은 인기를 누리는지 알 것 같았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와 악수를 한 후 테이블 앞에 적힌 자신의 이름이 있는 곳에 가서 앉았다. 속속 도착하는 의사들.

두삼은 일어나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어느새 헤픈 웃음을 지으며 여기저기 인사하고 다니는 이상윤은 물론 패스했다.

스튜디오는 한동안 인사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는데 엄 PD의 소리에 정리가 됐다.

“촬영 시작 2분 전입니다. 작가들에게 설명은 들었겠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불이 꺼져 있는 상태에서 MC인 은주열 씨가 핀 조명을 받으며 멘트를 하며 나올 겁니다. 그리고 패널, 의사님들 순서로 소개할 거고 그때 스튜디오 전체에 불이 들어올 겁니다. 앞 테이블에 모니터 보이시죠? 거기에 작가의 글이 올라 거 보시면서 말하거나 행동하면 될 겁니다. 자! 어차피 오늘 하루 종일 촬영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가지십시오. 빨리 퇴근하고 싶으시면 긴장하시고요. 카메라 다 준비됐죠? 시작합시다.”

불이 꺼졌다. 오로지 카메라와 촬영 장비의 불빛만 번쩍이고 있다.

번쩍! 무대 뒤편의 ‘뉴라이프’라 적힌 글이 비치며 핀 조명이 MC 은주열을 비췄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의학 예능 프로그램 뉴라이프의 은주열입니다.”

휘익! 짝짝짝! 와아!

패널과 의사들은 일제히 박수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의학 예능이라고 하니 생소하시죠? 하지만 감동과 잔잔한 웃음이 함께할 수 있는 뉴라이프를 보시면 의학예능의 진수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저를 도와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할 패널분들을 소개합니다!”

패널 쪽에 불이 들어왔고 그들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은주열은 한 명씩 소개를 한 후 근황과 프로그램에 임하는 자세 따위를 물었다.

실수가 있거나 해도 나중에 편집으로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컷!’소리는 없었다.

“음, 이거 꽤 지루하군.”

뒤에 있는 오십대 초반의 의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처럼 TV를 보면 고작 길어야 5분 정도 나올 장면을 30분 넘게 찍고 있었다.

[혼잣말하지 마세요!]

아직 의사 소개 시간이 안 되어서 모니터로 내용을 전할 수 없었는지 박기영이 큰 스케치북을 맞은편에서 들어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자! 다음은 사연 신청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실 의사군단을 소개합니다! 한 분, 한 분 각자의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라고 평가받는 분들로 시청자 여러분께 감동을 선물할 것입니다!”

드디어 불이 들어왔다. 살짝 눈이 부셨지만 인상을 찌푸릴 정돈 아니었다.

“상단 좌측에 계신 이명호 선생님부터 간단히 시청자분들께 자신에 대해 알려주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세명대학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이명호입니다. 저는…….”

때론 길게 때론 짧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하단 가장 좌측에 앉은 두삼은 마지막 차례였다.

‘내 차례군.’

자신의 차례가 오자 두삼은 패널 뒤쪽에 위치한 카메라를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뉴라이프 시청자 여러분 한강대학병원 한방센터의 한의사인 한두삼입니다. 저희 병원을 대표로 해서 나왔지만 최고는 아니고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크으~ 한 선생님, 제가 최고라고 소개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어떻게 됩니까?”

MC 은주열이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최고로 소개하시면 제가 병원에 어떻게 출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에?”

두삼의 말에 은주열은 특유의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패널 중 개그맨 한 명이 재빨리 치고 나왔다.

“푸하하하! 선배님, 임자 만나셨네요. 한 선생님이 말이 옳습니다. 만일 제가 다른 프로그램에서 최고라고 소개를 받으면 선배님은 어떻겠습니까?”

“댁은 최고가 아니니 최고라고 소개받을 일은 없을 텐데?”

이번엔 다른 패널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이 일로 수다를 떨었다.

‘휴우~ 농담도 못 하겠군.’

평범하게 뱉은 한마디가 이렇게까지 될 거라곤 두삼은 예상하지 못했다.

은주열이 나서서 정리를 하고 나서야 다시 정상 진행되었다.

“다들 절 물어뜯지 못해 난리네요. 특히 너! 너! 주의 깊게 지켜보겠어! 흠! 아무튼 한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실수를 했네요. 그저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라고만 말하죠. 설마 이 표현도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 정도에서 타협을 볼까요?”

“헐~ 의외로 뻔뻔한 면까지… 농담입니다. 여러분도 곧 보시겠지만 오늘 사연자를 담당하게 된 한 선생의 실력을 보시게 되면 제가 왜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느 정도인데요? 선배님?”

또다시 말을 치고 나오는 개그맨 패널들.

“벌써 말해주면 재미가 없지. 직접 확인하세요.”

“그리 말하시니 궁금해지네요. 그나저나 한 선생님 잘생기지 않았어요?”

“그걸 인제 봤어요? 난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호호호!”

…….

TV로 패널들을 볼 땐 편하게 앉아서 말 조금 하고 많은 출연료를 번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처절하다 싶을 만큼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말 중엔 재미없는 말이 더 많았는데 편집이 해결해 줄 것이다.

“저희들끼리 떠드는 건 그만하고 이제 어떤 사연자가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지 보기로 하죠.”

촬영팀 위에 달린 커다란 TV 화면이 켜지며 처음 봤을 때의 노형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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