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121화 (116/122)

# 121

34. 사람은 죽는다(4)

“오늘 하늘 정말 좋다.”

아직 푸른 새싹들이 만개하진 않았지만 날씨는 포근하고 하늘은 깨끗했다.

“오늘 따라 왜 그렇게 하늘만 보고 있어?”

운전, 아니, 운전석에 앉아 휴게실에 산 오징어를 찢고 있는 하란이 물었다.

“글쎄, 하늘나라에선 아픈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어서. 하하하!”

“강제 휴가를 얻었다며? 그럼 병원 생각은 그만하지? 왜 두고 온 환자가 걱정돼?”

“아니. 어제 떠난 환자가 지금은 잘 뛰어놀고 있었으면 해서.”

“아이를 고쳤나 봐? 아이 걱정은 그만하고 오징어나 씹으며 옆에 있는 사람 걱정해 주는 건 어때? 자!”

두삼은 그녀가 내미는 오징어를 앙 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늘을 보고 피식 웃은 후 하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근데 루시에게 운전을 맡겨놔도 되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머! 지금 절 무시하시는 거예요? CPU 개수는 500개에 불과하지만 초당 1,000조의 연산을 처리할 수 있어요. 물론 네트워크가 불안해서 자동 주행을 할 때는 그에 훨씬 못 미치긴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안내할 수 있어요.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돌발 상황에선 인간의 반사 신경이 훨씬 빠르거든.”

-아니거든요. 아무리 인간의 반사 신경이 빨라도 전후좌우에서 오는 차량의 속도…….

“시끄러워, 루시. 운전에나 신경 써. 그리고 오빠도 기계랑 싸우지 마. 내 프로그램 실력을 못 믿는 거야?”

“…헤헤! 그럴 리가. 근데 요즘 드론은 어쩌고 자율 주행 차에 관심을 보이는 거야?”

“둘 다 비슷해. 드론의 경우 정부에서 비밀리에 연구하길 원해서 발전된 형태의 경우 집 내부에서만 운용되고 있어.”

“에? 갑자기 웬 정부?”

“한동안 집 근처에 수상한 사람들이 어슬렁거린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

당연히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옥탑방에 사는 한미령을 위해 올라가는 곳에 안전문과 철망까지 만들어서 달았으니 말이다.

“설마 그 사람들이?”

“응. 남산 정보부처에 이상한 신호가 감지되어서 와봤대. 그러다 나에 대해 알아보고 접근한 거고.”

“그래서 드론 기술을 넘긴 거고?”

“놀이 삼아 시작했는데 세금 감면 해주고 놀이는 알아서 하라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어째 대단한 사람을 애인으로 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드론 하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근데 집에 있는 3D 프린터는 드론밖에 못 만드는 거야?”

“아니. 프린터에 맞는 3D 도면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어.”

“그럼 의수나 의족은?”

“가능해. 한동안 3D 프린터로 아프리카 내전 지역의 손발 없는 아동들을 위해 20불 정도면 의수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유명해지기도 했지. 물론 튼튼한 재료를 쓴다고 하면 가격은 올라가겠지만.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병원에 지뢰를 밟아 발목을 잃은 군인을 치료하고 있거든. 근데 의족이 너무 조악해서.”

“그래? 한번 만들어 볼까?”

“…그게 그렇게 쉬워?”

“어려울 것 없어. 이미 의수, 의족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있을걸. 센스랑 칩은 구매하면 되고. 프로그래밍이야 내가 하면 돼.”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의족과 의수를 만들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루시가 운전하는 차는 빠르게 악양으로 달렸다.

민규식이 준 강제 휴가, 말이 휴가지 토, 일 쉬는 거다. 아무튼 덕분에 악양에 들리기로 했다.

마음을 정리하는 데 이곳만 한 곳이 있을까.

악양에 들리기 전에 먼저 들른 곳은 항상 들르는 제첩국 가게였다.

“이야~ 여기 보니 오빠 만났던 생각난다. 이곳에 들렀던 덕분에 오빨 만났고 엄마를 살리게 된 거잖아.”

“그러게…….”

“그때 오빠 참 까칠했었는데. 나중에야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지금처럼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점수 좀 더 딸 걸 그랬다.”

“피이~ 엄마 구해주는 순간 만점이었거든.”

“그래?”

두삼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가게로 들어가 제첩을 먹고 이봉래와 노혜자에게 줄 제첩을 산 후 악양으로 출발했다.

“만수 씨 가게에 들를 거지?”

악양에 이르자 하란이 물었다.

“들러야지. 매번 이것저것 보내주는데 인사는 해야지. 희진이가 아프지 않은지도 확인하고.”

오토바이 가게 앞에 차를 대자 누군가 싶어 백만수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다 차에서 내리는 두삼을 보곤 눈이 엄청 커졌다.

그리곤 얼른 다가와 안았다.

“이 자식, 추석이랑 설날 땐 내려올 줄 알았더니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잘 지냈죠, 형?”

“잘 지내다마다. 근데 야이, 나쁜 놈아! 그때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하냐?”

“하하! 덕분에 매번 좋은 것들 받아먹고 있잖아요. 치료비 줄 생각 말고 앞으로도 종종 보내줘요.”

“그거야 당연한 거고. 가만 있어봐라. 너 올 때 주려고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었다.”

“됐어요! 주려고 하면 앞으론 형 피해 다닐 거예요. 삼촌이 조카 치료도 못 해줘요?”

“그래도…….”

“돈 얘기는 여기서 끝! 퉤퉤퉤!”

어릴 때 장난하듯이 말을 하자 백만수도 어쩔 수 없는지 ‘고맙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그제야 하란을 봤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근데 저 아가씨는……!”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두 사람?”

“네. 사귀고 있어요.”

두삼이 말하기도 전에 하란이 먼저 밝혔다.

백만수는 처음 두삼을 봤을 때보다 더 놀란 눈으로 축하를 해줬다.

“우와! 두삼이 너 땡잡았네.”

“땡은 무슨… 삼팔 광땡이죠.”

“…지랄을 한다. 자자! 누추하지만 들어와요.”

오토바이 가게 내부는 예전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백만수는 다방에 커피를 시키려고 했는데 마시고 왔다고 거절했다.

“희진이는요?”

“어릴 때 못 한 거 다 해볼 생각인지 요즘 애 엄마가 쫓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나다닌다. 오늘은 휴일이라고 진주 실내 수영장에 갔다.”

“이상 증상은 없고요?”

“전혀.”

“혹시 이상 증상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요.”

“그래. 근데 무슨 일 있는 거냐?”

“무슨 일은 그냥 고향 구경 온 거지. 잠깐만, 형네 딸내미들을 위해 몇 가지 사왔는데 줄게.”

선물을 건네준 후 조금 더 대화를 한 후에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이봉례와 노혜자는 집에 없었다.

“두 분 다 어디 가셨나 본데? 일단 짐은 놔두고 방에서 쉬고 있어. 얼른 성묘 다녀올게.”

간단하게 술과 음식, 풀을 베기 위한 낫을 챙기는데 하란이 말했다.

“할 일도 없는데 나도 갈래.”

“험하진 않은데 풀이 있어서 바지로 갈아입어야 할 거야.”

“갈아입지, 뭐. 저 방 쓰면 되나?”

그녀는 작은 짐 가방을 들고 들어가서 편하지만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뭐랄까 부모님께 첫인사를 가는 복장 같다고나 할까.

‘고마운 여자.’

할아버지께 성묘를 같이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두삼이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소한 행동에도 배려와 위함이 담겨 있었다.

“고마워.”

“뭐가?”

“이것저것 다. 그리고 옆에 있어줘서.”

“…새삼스럽게. 나도 오빠가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두삼은 하란의 손을 잡고 성묘를 위해 뒷산으로 올라갔다.

사실 두삼은 몰랐지만 하란의 행동은 그녀가 두삼에게서 느끼는 배려와 위함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란은 두삼이 일하는 모습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몸에 배여 있는 배려할 줄 아는 행동과 생각에 마음을 주게 되었다.

‘오빠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약간 앞에서 걸으며 자신은 험한 길로 가면서 하란은 편안한 길을 걷게 하는 두삼을 보며 하란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배영옥 역시 두삼을 좋게 봤는지 하란을 볼 때마다 어찌나 칭찬하는지 두 사람이 사귀게 된 것은 배영옥의 칭찬도 한몫했었다.

물론 걱정한 부분이 없진 않았다.

좋아하고 있음을 연신 알렸음에도 고백하지 않는 모습에 혹시 사귀게 되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데 모든 경상도 남자가 그러지는 않듯이 두삼은 꽤 달콤하고 애정 표현도 잘했다.

바쁜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오빠, 저기 봐요.”

“어디? 드론?”

하란은 팔짱을 껴오며 드론을 보라고 했다. 드론은 하란의 말을 들은 듯 아래로 내려오면서 사진을 찍으려 했다.

“훗! 편하긴 하네.”

두삼은 손으로 V를 만들었다. 틈틈이 사진을 찍으며 대나무 숲을 지나자 언덕이 나왔다.

할아버지 산소는 언덕에서 살짝 올라가다가 사람이 다니면서 만든 작은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야 있었다.

“이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있어. 조심.”

15미터쯤 내려가자 산소가 나왔다. 아저씨가 자주 오시는지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상석(죽의자의 밥상 역할을 하는 네모반듯한 돌)에 작년 백만수가 보내줘서 담근 도라지 술과 명태포, 과일을 놓은 후 하란과 함께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친 후 봉분으로 다가가 막 자라기 시작한 잡초를 뽑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여긴 제 애인이에요. 우하란이라고 하는데 이름만큼 얼굴도 예쁘죠? 자주 왔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 때 인사도 못 드렸네요. 제가 무슨 일 때문에 온지 아시죠? 다 커서도 일이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를 찾네요.”

잡초 뽑기를 한 후 봉분 한 켠에 작은 홈을 만들어 담뱃불을 붙여 올려뒀다.

할아버지는 담뱃잎을 직접 말아 가끔씩 태우셨는데 담배로 대체했다.

텁텁한 입을 몇 번 쩝쩝거리며 봉지 안에 넣고 온 방석을 꺼내 바닥에 깔았다.

“앉을래?”

“응.”

봉분을 등지고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보는 풍경을 바라보며 앉았다.

“여기 풍경 좋다.”

“그런가? 어릴 때 항상 보던 곳이라 그런지 나한텐… 음, 뭐랄까. 표현이 안 되네. 하하! 그냥 고향이야.”

“고향. 멋진 말이네.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서울 쌍문동이 내겐 그래. 뛰어다니던 골목, 언덕 아래 있던 학교, 문방구. 그곳에 가면 하나하나 기억이 나. 지금은 비록 아파트촌으로 변해 버렸지만.”

“이곳도 그럴까?”

“글쎄? 워낙 외진 곳이라 크게 바뀌긴 않겠지만 조금씩 바뀌겠지. 근데 아까 할아버지랑 대화하는 거 들어보니 무슨 고민 있는 것 같은데?”

말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금세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병원에서 사람이 죽었어.”

묻지 않았다면 모를까 묻는다면 감추는 것 없이 말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시 느꼈던 자신의 마음까지 얘기를 하다 보니 얘기는 제법 길었다. 하란은 손을 잡고 조용히 들었는데 가끔 손을 꽉 잡아주거나 토닥거려 주자 많은 위안이 되었다.

얘기가 끝나자 하란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그 때문에 그제 술 냄새가 그렇게 풍겼구나.”

“그랬나? 정신은 멀쩡했는데.”

“마시는 거야 사회생활 하다 보면 당연해. 대신 너무 많이 마시진 마. 솔직히 내가 의사가 아니라 오빠 마음을 다 이해하진 못해. 괜찮은 충고 역시 못 하겠고. 다만 오늘처럼 들어줄게. 함께 술도 마셔주고.”

어설픈 위로보다, 마음에 닿지 않는 위로보다 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응, 그럴게. 이만 일어날까. 할아버지도 이제 다 드셨겠다.”

어느새 꺼져 있는 담배를 땅에 묻고 술과 음식은 고수레로 뿌린 후 산에서 내려왔다.

이봉래와 노혜자도 일을 마치고 왔는지 와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잘 지내셨어요?”

“두삼이 왔구나! 허허! 우리야 항상 그렇지. 할아버지 뵙고 오는 거야?”

“네. 항상 잘 관리해 주셔서 감사해요.”

“늘상 하는 일인데, 뭐. 그리고 작년이랑 올 초엔 만수가 기계 가지고 와서 싹 해주고 갔어. 그나저나 서울 가서 잘됐나 보네? 아가씨도 잘 지냈지?”

이봉래가 옆에 있는 하란을 보며 물었다.

“네, 어르신. 또 폐 끼치러 왔네요.”

“폐는 무슨. 여보, 저녁에 고기나 구워 먹읍시다. 면에 가서 고기 좀 사와.”

“알았어요.”

“어르신 저랑 같이 가요.”

“아이고~ 아니에요. 손님은 가만히 있어도 돼요.”

“아니에요. 차로 가면 금방인데요. 오빠, 다녀올게.”

하란은 노혜자를 데리고 장에 다녀오겠다며 쌩하니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봉래가 흐뭇하게 말했다.

“얼굴도 예쁜 아가씨가 마음은 더 예쁘네. 저 아가씨 놓치지 마. 내가 보기에 저만한 아가씨 없다.”

“…아저씨도 참. 사귄 지 얼마 안 됐어요.”

“사귄 기간이 중요한 게 아냐. 딱 보면 모르겠냐? 그리고 저 아가씨 예전에 여기 머물 때부터 너 마음에 들어 했었어.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이럴 땐 그저 네네 하고 인정하는 게 속편하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었고.

“참! 김 원장 집 아들내미 그 누구지? 면에 한의원 차린 녀석 말이야.”

“김장혁이요?”

“그래, 그 녀석.”

“그 자식이 왜요? 행패라도 부렸어요?”

“행패는… 너 어디 사느냐고 두어 번 찾아왔다가 의원 접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그래요? 아버지 따라 진주에 간 거 아니에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건가? 다음에도 이상한 짓 하면 그땐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다. 물론 지금은 관심조차 없지만 말이다.

“그럴지도. 아무튼 조심해라. 그 집 인간들 그 할아버지 때부터 상종 못 할 인간들이야. 그리고 얼마 전에 네 할아버지랑 친했던 중국 양반이 왔다 갔다.”

“예? 할아버지께 친한 중국 지인이 계셨어요?”

“너 태어나기 한참 전에 한동안 이 집에서 머물렀단다. 오려면 좀 일찍 올 것이지. 쯧쯧!”

“혹시 연락처라도 남기셨습니까?”

문득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궁금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아니.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갔단다.”

“뵐 수 있었으면 한번 뵀으면 했는데, 아쉽네요.”

“다음에 혹시 오면 연락처 받아놓으마. 이제 슬슬 고기를 먹으려면 간단히 채소라도 준비해 둬야겠구나.”

“저도 도울게요.”

“됐다. 쉬러 왔으면 쉬어.”

“몸을 움직이는 게 쉬는 거죠.”

별채 한쪽에 마련된 비닐하우스에서 상추와 대파들을 따서 씻고 있는데 하란이 돌아왔다.

한데 백만수 가족과 함께였다.

“삼촌!”

불과 1년도 안 되어서 훌쩍 큰 희진은 토끼처럼 뛰어와 안겼다.

“얼굴이 새까만 게 아주 건강해 보이네.”

“다 삼촌 덕분이에요.”

“하하하! 아빠, 엄마 덕분이기도 하지.”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혹시 다시 꼬이고 있는 건 아닌지 몸의 상태를 살폈다.

열심히 뛰어노는 아이답게 튼튼했다.

낯을 가리는 희진의 동생과도 인사를 한 후 저녁을 준비를 서둘렀다. 별채의 평상으로 부족해 본채에 있는 평상까지 옮겨서 자리를 마련하고 상을 차렸다.

해가 지기 직전인 이른 저녁.

치이익!

한쪽에서 고기가 구워지고 다른 한쪽에선 희진과 그 동생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한손에 맥주 혹은 소주를 들고 간만의 만남을 즐거워했다.

하하하! 호호호!

말주변이 좋은 백만수의 너스레에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한데 혼자 말하기 지겨웠을까.

“두삼아, 너도 재미있는 얘기 좀 해봐. 옛날에 너 말 잘했잖아. 병원에서 재미있는 일 없었어?”

“음, 많았죠. 환자 중에 장에 가스가 잔뜩 쌓여서 온 사람이 있었어요. 진맥을 해보니 출구 앞에 딱딱하게 굳은 변이 막고 있더라고요.”

“야야! 밥 먹을 때 꼭 더러운 얘기를 해야겠냐?”

“비위 약하신 분은 귀를 막으셔도 돼요. 아무튼 관장을 하려고 했더니 너무 딱딱해서 호스가 안 들어가는 거예요. 이럴 땐 긁어내야 하는데 그러긴 싫더라고요.”

“으으~ 상상해 버렸어.”

형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질겁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 하지만 얘기를 멈추라는 말은 없었기에 계속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꽉 다물고 있는 괄약근을 풀어서 관장약과 호스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야 했죠. 경락으로 괄약근을 풀었어요. 그리곤 여유 공간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배를 살짝 눌렀어요. 그 순간 ‘삐이이익!’ 하는 피리,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환자나 저나 간호사나 모두 민망한 순간이었죠. 이럴 때일수록 머뭇거려선 안 된다 싶어 배를 주물렀죠. 한데 누르는 강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가 나더라고요. 멋진 곡을 완성하고 나서야 겨우 뒤처리를 할 수 있었어요. 전 그때 의사가 아닌 음악가인 줄 알았다니까요.”

호호호! 하하하!

다행히(?) 사람들은 웃어주었다.

그에 기운을 얻어 병원에서 있었던 즐거웠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병원에서, 아니, 환자를 고치면서 아팠던 기억보다 재미있고, 뿌듯하고,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이 훨씬 더 많았음을.

어느새 어두워져 많아지고 있는 밤하늘의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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