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34. 사람은 죽는다(2)
“어레스트! 기관 삽관! 바로 제세동기 준비하고! 환자 가족에게 알려!”
전철희의 반응은 마치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빨랐다. 심폐소생술을 하며 주변에 있는 의사들에게 말한 후 두삼을 봤다.
“원인을 찾아!”
“예!”
응급실에서의 경험 때문일까 두삼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기운으로 내부를 살폈다.
“심근경색입니다. 오른관상동맥이 막혔… 아! 좌회선지동맥 역시 막혔습니다!”
“일단 제세동기부터! 손 떼! 200J!”
손을 떼자마자 제세동기가 환자의 가슴에 닿았다.
순간 환자의 몸이 들썩했다. 하지만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300J!”
하지만 소용없었다. 다시 시작된 심폐소생술. 전철희는 방법이 없느냐는 듯 쳐다봤다.
“뚫어보겠습니다.”
이준호의 얼굴 쪽 혈도를 뚫는 것처럼 뾰족하게 만든 기운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오른관상동맥과 좌회선지동맥으로 향했다.
‘전체적으로 혈전과 요독 물질이 너무 심해.’
빠르게 나아가는 기운에 연속적으로 걸리는 것들이 있었다.
도착 전에 기운이 사라질 것 같았기에 몇 개의 기운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뒤따르게 만들었다.
푹! 푸푹!
막혀 있는 곳을 기운들이 연신 찌르자 혈전은 버티지 못하고 뚫렸다.
“뚫렸……!”
겨우 뚫었다고 생각했다.
한데 혈액 속 혈전과 요독 물질은 혈도 속 노폐물과 달리 열기로 태워서 날려 버릴 수가 없었다.
피를 따라 돌려던 혈전은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뭉쳐 혈관을 막아버렸다. 게다가 이번엔 세 곳이 동시에 막혀 버렸다.
기운을 세 곳으로 다시 보냈다. 그리고 다시 뚫었다. 한데 심폐소생술로 인해 인위적으로 돌던 혈액은 더욱 빨리 혈관을 막았다.
심장은 물론 뇌로 올라가 뇌경색까지 만들었다.
“…….”
“헉헉! 왜? 상황이 안 좋아?”
“…혀, 혈전이 심장은 물론 뇌까지…….”
이번에 막힌 곳은 다섯 곳. 입술을 깨물며 다시 기운을 보냈다. 결과는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역시나 뚫으면 그 혈전들이 다시 다른 혈전들과 합쳐져 작은 혈관을 막아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흘러 다른 곳을 막아버렸다.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싸움임에도 두삼은 최선을 다해 기운을 보냈다.
기운은 빠르게 사라져갔지만 뚫고 말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툭툭!
전철희가 어깨를 치지 않았다면 기운이 다 떨어질 때까지 계속했을 것이다.
그를 봤다. 전철희는 고개를 아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두삼의 어깨를 꾹 잡으며 사망 선고를 했다.
“사망 선고하겠습니다. 이권혁 님, 15시 03분 사망하셨습니다.”
“…….”
갑자기 귀에 이명이라도 생긴 건지 ‘위이이잉!’하는 소리가 머리 전체를 울렸다.
환자를 데리고 온 딸인지 며느린지 모를 여자가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만일 전철희가 어깨를 두르고 밖으로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그 모습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아, 네…….”
“얼굴색이 많이 안 좋아. 나랑 잠깐 시원한 음료수나 한잔할까?”
“아, 아닙니다. 일이 있어서…….”
“가는 길에 잠깐이라도 숨 좀 돌려. 늦는다고 탓할 사람 없을 거야. 그리고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만… 의사는 신이 아냐. 수고했어. 와줘서 고맙고.”
그는 등을 몇 번 쓰다듬어 준 후 치료실로 들어갔고 두삼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걸었다.
그저 혈관에 기운을 둘러주러 온 것뿐인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환자의 얼굴, 보호자의 우는 모습, 마지막으로 전철희가 수고했고 고맙다고 한 말이 울컥하게 만들었다.
두삼은 눈에 보이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칸으로 들어갔다.
“…크윽!”
참으려 했음에도 침통한 소리와 함께 눈물이 주룩 흘렀다.
“크흑! 흐으윽! 큭!”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음에도 계속해서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과거 할아버지의 주검을 봤을 때완 달랐다. 그때는 분명 슬픔이었다.
살아생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데 두 번 다시 인사하지 못하고, 웃지 못하고, 안지 못한다는 것에서 오는 슬픔.
한데 오늘의 눈물은… 잘 모르겠다.
슬픔, 살리지 못한 데에서 오는 미안함, 무기력함, 그리고 의사가 된 후 본 환자의 첫 죽음 등이 잘 버무려져 만들어낸 울음 같았다.
특히, 응급실에서 사람을 살리고 들었던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을 환자가 죽고 난 후에 듣게 되니 더 슬퍼지는 기분이다.
민규식도, 전철희도 환자의 삶과 죽음 여부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한 말이었으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라고 한 말이었으리라.
“아는데… 크흑! 아는… 데…….”
눈물이 난다.
인간이 인간의 죽음 앞에 운다.
* * *
“안녕하세요, 한 선생님.”
양태일이 꽤 피곤한 얼굴로 인사했다.
“…어, 그래. 당직 했냐?”
“네, 그렇습니다.”
하루 지나고 나니 토끼처럼 붉어졌던 눈도 괜찮아졌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다운된 기운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난 건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근데 기운이 조금 없어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지금 네가 날 신경 쓸 일은 아닐 텐데? 내가 시킨 건 완벽하게 하고 이러고 있는 거냐?”
“…죄송합니다.”
아! 자신의 감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에게 풀려 하다니, 최악이다.
학교 다닐 때 자신의 감정을 후배들에게 푸는 조교가 있었다.
소개팅이 잘못되거나 교수한테 깨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후배들을 괴롭히는 인간이었는데 두삼이 엄청 싫어했었다.
한데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와 별다르지 않다. 더 최악이 되기 전에 얼른 바로 잡아야 했다.
“아무래도 얼마나 늘었는지 봐야겠다. 도 간호사님 커피 한 잔 가지고 진료실로 들어와.”
“…예! 선생님.”
실험체가 되어준다니 침울해하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입이 한 잘못을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도 간호사의 커피를 마시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가운과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일단 오른팔부터 해보자.”
“마취용 침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마취용 침은 필요 이상으로 찌르지 못하도록 만든 침으로 두삼이 주문해서 만든 침이었다.
“그걸로 하면 잘할 것 같아?”
“아무래도 이거면 깊이보다 찌르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실험해 봤냐?”
“안마실 안마사님들이 도움을 주셔서…….”
“성공은 했고?”
“세 번 중 두 번은 성공했습니다. 아직 전신마취는 못 해봤지만요.”
“그럼 해봐.”
눈을 감고 있자 침이 하나둘씩 꽂혔다. 그리고 마지막 침을 꽂는 순간 오른팔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왼팔.”
기에 대한 믿음이 커진 건지 양태일은 왼팔 역시 단번에 해냈다.
“잘하네. 뽑고 이번엔 상반신을 마비시켜 봐.”
침을 뽑자 혈을 막고 있던 기운이 흩어지며 양팔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칭찬에 힘을 얻은 건지 그는 상반신, 오른다리, 왼다리, 하반신까지 단번에 해냈다.
하지만 전신마비를 할 때 다소 위험한 혈이 있어서인지 두 번 실패했다.
실패를 했으니 무슨 말을 해줄까 잠시 고민했다. 사실 양태일 정도의 실력이라면 경험적인 것과 환자의 병명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당장 의원을 개업해도 괜찮았다.
물론 현재 병원의 과장급에 이름을 날릴 정도 되려면 부족하지만 말이다.
“음, 잘했어. 근데 잘했다고만 하고 피드백이 없으면 네가 서운할 거 아냐?”
두삼은 드레싱카에 있는 침을 들었다.
“왠지 서운하진 않을 것 같은데…….”
“너무 심하게 움직이진 마라. 잘못하면 엉뚱한 데 찌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제가 차라리 누울… 아!”
그가 말하려 할 때 손을 뻗어 그의 뒷목과 어깨로 내려오는 부분에 빠르게 침을 꽂았다.
찌를 때마다 따끔 하는지 그는 움찔댔지만 개의치 않고 마무리까지 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갑자기 축 처지며 무너졌다.
두삼은 얼른 그를 잡으며 말했다.
“환자가 얌전히 누워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그리고 환자와 너만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시침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시침을 할 수 있어야 진짜 실력이야. 시침이 잘못됐을 때 두려움? 당연히 있겠지. 그럼 없어질 때까지 연마해.”
“…알겠습니다.”
“좋아. 일 갔다 올 동안 네가 풀어 봐봐.”
“…전신마비 상태에서 어떻게 풉니까?”
“나도 모르지. 침대에 올려줄게.”
양태일을 진료용 침대에 올려준 후 밖으로 향했다.
“선생님! 한 선생님! 야이…….”
욕을 하려다 생각해 보니 공식적으로 잘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최근 조부가 남긴 책을 보고 두삼이 시킨 일을 하느라 잠이 부족했다. 특히 어젯밤 다른 과의 레지던트 2년 차와 함께 당직을 섰는데 어찌나 들들 볶던지 한숨도 못 자고 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잠깐 어젯밤 일을 생각하는 사이 양태일은 잠이 들었는지 심하게 코를 골았다.
“무슨 일이에요?”
천 간호사가 양태일의 외침에 놀랐는지 물었다.
“별거 아니에요. 피곤한 것 같아서 좀 쉬게 해뒀어요. 제가 올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냥 쉬라고 말하시면 될 텐데.”
“청개구리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양 선생님이 너무 FM적이긴 하죠.”
“그럼 다녀올게요.”
특실로 향했다. 한데 좋은 일도 한꺼번에 오듯이 나쁜 일도 한꺼번에 오는 모양이다.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한 선생! 지금 아파트에서 투신한 여성이 병원으로 오고 있어. 상황이 많이 안 좋다니 수술실로 가기 전까지 자네가 도와줬으면 해. 최악의 경우 같이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 보고.
“…알겠습니다.”
서둘러 뛰어갔다. 아직 도착 전.
대기 중이던 노상철과 레지던트, 간호사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나자 노상철이 말했다.
“마지막 인원까지 왔으니 밖에서 기다리자. 너희 둘은 안에서 대기하고.”
환자가 정말 많이 위급한 모양이다. 한강대학병원의 경우 웬만큼 급한 환자가 아닌 경우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응급실 문턱을 들어서면 인계를 받는다.
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가운을 입은 채 밖을 나가는 것은 위생상 결코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 구급차를 기다리는데 노상철이 헛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험! 어제 좋지 않은 일 있었다며?”
“…뭐, 딱히…….”
“처음이었냐?”
“…….”
눈앞에서 환자가 죽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섬에서 할머니는 살려서 헬기에 태웠으니 말이다.
“철희한테 들었다. 네 표정을 보고 설마 했다는데, 진짠가 보네.”
“…표정에 다 드러나나 보군요?”
“환자의 죽음을 처음으로 보면 열에 일곱은 너랑 비슷하게 얼빠진 표정을 지어. 물론 우리 쪽에서야 워낙 많은 사람이 죽으니까 첫 죽음에 대한 판단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
“나머지 셋은요?”
“화장실로 달려가 울지. 지금 생각하면 좀 그런데 나는 후자였어. 하하!”
응급실 앞쪽에 있는 조경수를 초점 없이 보던 두삼이 물었다.
“…언제쯤 익숙해질까요?”
“글쎄, 익숙해지는 날이 있을까.”
“…선생님 정도라면?”
“왜? 나만큼 죽음을 보게 되면 익숙해질 것 같아? 내가 이상한 건지 모르지만 그저 처음보다 덜 슬프다는 것과 더 잘 참을 수 있게 되는 정도랄까.”
“…그렇군요.”
“난 말이야, 죽음이 익숙해지면 그땐 이 짓 때려치울 거야. 환자의 주검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으면 내 인간성이 죽었다는 증거일 테니. 그러긴 싫거든.”
“그럼 어떻게 버티십니까?”
퍽!
그는 등짝을 치며 말했다.
“술이 있잖아. 외과 의사들이 괜히 주당인 줄 아나? 다른 걸 하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도 없고. 쩝! 얘기는 다음에 하자. 온다! 다들 긴장해!”
노상철은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말했다.
문득 그의 표정을 보니 현재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와 같이 죽음에 맞서는 모습인지, 아님 죽음에 두려워하는 모습인지.
애애애애애애앵~ 애앵~ 애애애앵~
구급차가 울면서 빠르게 응급실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