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31. 두삼을 원하는(?) 사람들(4)
“한 선생, 이쪽 턱을 살짝만 부풀려 볼래?”
“이쪽요?”
“응, 거기. 보면 살이 빠지면서 턱선이 도드라졌잖아. 거기가 파여 있으면 전체적인 인상이 깡말라 보이거든.”
“해보겠습니다.”
서문희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서서히 변화하는 하라의 얼굴을 보다가 집중하고 있는 두삼을 흘낏 봤다.
‘한 선생만 도와준다면 장담컨대 1년 안에 내가 원하는 성형을 정착시킬 자신 있어. 자신의 능력을 모르는 건지, 아님 모른 척하는 건지…….’
그녀가 성형 프로그램과 비슷하다고 사전 성형이라는 붙여준 그의 기술은 사실상 성형 프로그램과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성형 프로그램은 흔히 뽀샵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의 아류에 불과했다. 즉, 수술을 했을 때 이런 얼굴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집도의의 실력, 환자의 상태, 성형 부작용 따위는 하나도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가령 양악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마법과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그 절반만 나와도 성공이다.
가끔 운 좋게 프로그램 이상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기적처럼 드문 일이다.
한데 두삼의 가상 성형은 달랐다.
턱을 깎았을 때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그 외에는 최선의 상태를 만들어본 후 그에 맞춰서 시술을 하면 됐다.
그리고 오늘 보니 그의 기술은 기운을 이용해 코를 높이거나 주름을 없애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일부러 무리한 걸 시키는데 척척 해냈다.
그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음이 분명했다.
“됐습니다. 더 할 곳이 있나요?”
“보자. 음, 난 마음에 드는데 하라 씨는 어떤지 모르겠네. 하라 씨, 볼래요?”
침대 위에 있는 거울을 하라에게 건넸다.
“어머! 크게 손본 것 같지도 않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하라는 살짝 바뀐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거울에서 얼굴을 못 뗐다.
“어디 나도 봐봐! 와아~ 예쁘다, 하라야!”
강가영도 가세했다.
“혹시 다들 잊고 있는 것 같아 말씀 드리는데 오늘 한 건 얼굴 성형이 아니라 고통 치료였습니다만?”
두삼이 말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 두 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썼네요. 저 이만 가볼게요. 서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과 같은 시술에 맞는 약 좀 처방해 주시겠어요?”
“응. 그럴게.”
“감사합니다. 부탁은 나중에 말씀해 주세요.”
“한 선생 고생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다닥 떠나는 두삼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서두르는 걸 보니 미안해지네. 나중에 사과할게, 한 선생.’
사실 그녀가 부탁하려 했던 건 치료에 참여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거의 특실에 상주하고 있는 그녀는 그가 치료를 할 계획임을 알고 강가영과 하라와 얘기를 어느 정도 맞춰놓은 상태였다.
한데 먼저 부탁을 해온 것이다. 솔직히 그때 조금 놀랐다. 바쁜 와중에도 환자의 아픈 부위만을 보지 않고 정신적인 면까지 고려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의사라 그런가? 아님 한 선생이라 그런 건가? 점점 마음에 드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성형에 관심이 없다는 정도였다.
“선생님, 이대로 가능할까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하라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깼다.
수술 부작용으로 그렇게 고통 받다가 두삼을 만나 방금 치료를 받았음에도 다시 성형에 관심을 보이는 하라가 그리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돈이 되고 홍보가 되는 환자였다.
‘내 시술이 안전하기도 하고.’
“걱정 말아요. 차선의 방법도 있으니까요. 일단은 몸이 완전해질 때까진 지켜보다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말해요.”
사실 그녀가 한강대학병원을 그만두려는 진짜 이유는 수술을 하기 싫어서였다.
화상 환자같이 진짜 성형수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다만 미용을 위해 하는 수술에 지쳐 버린 것이다.
수술을 한 지 거의 20년, 수많은 환자를 수술했는데 부작용이 일어나거나 수술 결과가 나빴던 환자들이 없었을까.
솔직히 꽤 있었다.
그들 중엔 재수술을 통해 괜찮아진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고치지 못하고 병원 차원에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고치지 못한 이들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10년 전에 한 명, 작년에 1명 총 두 명이었다.
새로운 치료 방법이 나와 전화를 걸었는데 돌아온 건 자살했다는 부모의 눈물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 순간 오만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에 10년 전부터 연구하고 생각해 오던 안전한 성형을 알려보자고 결심하고 병원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정말 자연스럽네요. 위험 부담도 없고요.”
강가영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죠. 그리고 최근엔 자연스러움이 대세잖아요. 얼굴이 바뀜에 따라 보충하거나 기존의 시술 역시 제거하기가 쉬워요.”
“한 번 시술하면 몇 년 정도 가죠?”
“2년 정도요.”
쁘띠 성형이라고 불리는 주사를 통한 시술은 최근엔 몸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물질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재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녀가 개발한 약물은 최소 2년 정도는 유지됐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시 제거가 용이하고요?”
“물론이죠. 녹이는 물질만 살짝 넣어도 몸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가 되어 사라지죠.”
“좋네요. 사실은 약물보다 서 선생님이 보는 미적 안목이 놀라워요. 먼저 이렇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한 선생님의 시술은 말할 것도 없고요.”
강가영은 이사라서 그런지 오로지 예뻐지는 것만 생각하는 하라와 달리 사업가적인 마인드로 바라보았다.
“확실해지면 회사에 보고해서 연습생 몇 명에게 시술시켜 봐야겠어요. 맡아주실 거죠?”
“일단 확신부터 드릴게요.”
눈에 들고자 했던 오늘 계획은 일단 성공이었다. 다만 두삼이 기운으로 만든 공간에 물질을 어떻게 완벽하게 넣을지가 관건이었다.
* * *
“양태일 씨가 가져온 검사 자료를 살펴봤지만 현재로서는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뇌 쪽이나 척수 쪽 이상이 아닌가 싶은데 신경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저희 병원 신경과에 예약을…….”
“아닙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양태일은 검사하느라 벗었던 옷을 주섬주섬 입고 진료실을 나섰다.
벌써 사흘째, 한강대학병원에서 이틀 동안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팔이 왜 마비가 되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다른 병원을 왔지만 하는 말은 다르지 않았다.
“…답답하네. 아버지 기분이 이랬을까?”
기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증명해 보라고 했었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대답을 했지만 그의 이성을 만족시킬 만한 답은 없었다.
그래서 믿지 않았다.
한데 특이한 한의사를 만나게 되어 막상 자신의 팔이 왜 마비가 되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하니 방법이 없었다.
“훗! 기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건가?”
스스로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여겼는데 이번 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졌다.
병원에서 나온 그는 다른 병원으로 갈지, 아님 패배를 인정하고 한강대학병원으로 갈지 고민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택시에 올랐다.
“남부터미널로 가주세요.”
패배를 인정하기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남부터미널로 간 양태일은 고향인 전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전주 외곽에 위치한 한의원으로 들어갔다.
한옥을 변경해서 깔끔하게 지어져 있는 곳인데 손님이 없는지 조용했다.
“어머! 태일이 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한의원의 유일한 직원, 외사촌 누나가 양태일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양태일이 하기 싫다는 걸 그의 아버지가 겨우 설득을 해 보낸 수련의 자리였는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내려왔기 때문이다.
“너 미쳤니? 최소한 6개월은 머물기로 이모부랑 약속한 거 아냐?”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그럼?”
“나중에 말해줄게. 아버진?”
“의원실에 계시지.”
접수대 옆에 난 복도로 가자 바로 문이 보였다.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책을 읽다가 양태일을 본 양시철의 얼굴에 놀람과 실망감이 동시에 스쳤다.
“그만둔 거 아니에요.”
“…그럼 병원에 있을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아버지께 사죄드리러 왔어요.”
“네가 나한테 사죄할 일이 뭐가 있는데?”
“많죠. 기가 있으면 증명하라고 생떼 피웠던 거, 한의사 그만두겠다고 한 거. 그 외에도 말 무지 안 들었잖아요.”
“…며칠 사이에 철이 든 건 아닐 테고, 무슨 일 있었냐?”
“그러게요. 그냥저냥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던 수련의 생활인데, 며칠 만에 완전히 바뀌어 버렸네요. 근데 아버지, 아직도 기가 존재한다고 믿으세요?”
“그래, 기는 존재한다. 너도 언젠가는 믿게 될게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이제 믿기로 했어요. 사실 선배에게 말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먼저 아셨으면 해서 온 거예요.”
“네가 기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니 기쁘다만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자세히 말해주면 안 되겠니?”
양태일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두삼과 있었던 얘길 했다.
“절 담당하게 된 선생님이 제가 시침을 하는 걸 보고 단번에 기를 믿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꽤 실력이 좋은 의원인가 보구나.”
“좋죠. 몇 번의 시침으로 제 왼팔을 못 움직이게 만들었으니까요.”
“…팔을 마비를 시켰단 말이냐!”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무튼 이렇게 만든 후 그러더군요. 팔을 못 쓰게 된 이유를 정확하게 자기에게 설명하라고요. 그래서 사흘 동안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기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더군요.”
“팔을 줘봐라.”
“괜찮습니다. 제가 인정하면 풀어주기로… 했습니다.”
설명을 듣는 것보다 아들의 팔이 더 걱정이 되는지 양시철은 얼른 다가와 양태일의 맥을 잡았다.
“…여러 군데의 맥을 막았구나. 네 할아버지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이지만 짐작 가는 곳이 있다.”
“…느껴지세요?”
“희미하게. 내가 선천적으로 기가 약해 시침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아신 네 할아버지께서 맥 잡는 법이라도 제대로 배우라면서 전수해 주셨거든. 뜸과 경락마사지를 통해 풀 수 있을 것 같구나.”
풀 수 있다는 말에 놀라면서도 그동안 자신이 아버지를 얼마나 무시하고 있었는지 깨닫곤 얼굴이 붉어질 만큼 부끄러웠다.
“…아, 아니에요. 확실하게 패배했음을 인정하려면 이대로 가는 게 낫습니다.”
“하긴 풀어버리면 그것도 이상하겠구나. 하지만 불편하지 않겠니?”
양시철은 수긍을 했음에도 안쓰러운지 팔을 놓지 않고 물었다.
‘아버진 언제나 이러셨는데 그동안 난 뭘 본 건지… 이성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알량한 지식으로 건방졌던 건지도.’
울컥해지는 마음에 얼른 화제를 돌려야 했다.
“근데 선배 의사 중에 야사를 좋아하는 이가 있었는데 재미난 얘기를 하더군요.”
“무슨 얘기 말이냐?”
“과거 한의학계에 3대 문파와 8대 세가가 있었다는 얘기였는데 그중 8대 세가에 전주 양씨가 언급이 되어서 말이에요. 혹시 할아버지께서?”
양태일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전혀 몰랐다.
다만 전주 한의원 중 양씨는 자신의 집안뿐이라 혹시나 싶어 물어본 것이다.
“8대 세가라니…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지.”
“맞다는 말씀이세요?”
“할아버지의 실력이 일대에서 제일 좋긴 하셨지. 이 집에도 항상 손님들이 끊어지지 않았고.”
“왜 그런 말씀을 안 하셨어요?”
“…말한다고 달라질 게 있었을까?”
맞는 말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의 자신이었다면 듣는다고 해도 ‘아 그랬어요?’라고 별다른 감흥 없이 반응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훌륭한 의원이 널 담당하게 된 것 같아 다행이구나.”
“훌륭한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저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대단한 것 같아요.”
“허어~ 실력을 봤을 때 연배가 제법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단하구나. 네게 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분 나빠 하지 말고 옆에서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하려무나.”
“믿기로 한 이상 기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억지로 설득해 보낸 수련의 과정이었다. 한데 집을 떠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사이에 확 바뀐 아들을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일부터 출근을 해야 하니 이만 가볼게요. 제대로 휴일과 휴가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 다시 올게요. 그동안 건강하시고요.”
“태일아, 잠깐만!”
양시철은 떠나려는 아들을 불렀다. 그리곤 뒤쪽 책장에서 오래된 책 몇 권을 꺼내서 건넸다.
“이건 네 할아버지가 쓰신 책이다. 네가 한의학에 대해 진중하게 관심을 보일 때 주려고 했던 것인데… 이제야 주게 되는구나. 어떨지 모르지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거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양시철은 환하게 웃으며 양태일의 감각 없는 팔을 꽉 잡았다.
얼마 만에 보는 환한 웃음인지.
양태일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들키기 싫어 얼른 한의원을 나왔다. 그리고 한참 멀어진 후 돌아서 중얼거렸다.
“늦은 만큼 최선을 다해 배우고 오겠습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