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29. 중독(3)
촤악! 촤악!
이른 아침 물을 가르며 수영을 하다 보면 환자에 대한 걱정도, 쌓여가는 일에 대한 걱정도 사라지고 오로지 앞에 있는 턴 마크에만 집중하게 된다.
‘3초 후에 턴을 하면 되겠어. 3, 2··· 응?’
턴 마크 지점에 길고 잘빠진 다리가 나타났다.
고개를 드니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하란이 끝에 앉아 발을 찰방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수영만 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제 슬슬 나갈 시간이다.
“아무 생각도. 수영을 하다 보니 다 잊어먹었어.”
“수영을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근데 오빠 수영하는 거 보면 신기해. 어떻게 얼굴을 들고 수영을 해?”
“어릴 때 강에서 수영을 배워서 그래.”
“난 연습해도 자꾸 몸이 가라앉아서 안 되던데.”
“그걸 왜 연습을 해. 난 네 자세가 훨씬 좋던데. 수영하는 모습이 마치 인어 같아.”
“피이~ 그건 언제 봤대?”
“큼! 사람이 어떻게 계속 수영만 하냐. 쉴 땐 쉬어야지. 나가자.”
수영장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부엌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홀란다이즈 소스 대신 자신만의 소스를 올린 에그 베네딕트를 만들었다.
다 만들었을 때 출근 준비를 마친 하란이 왔다.
“맛있겠다. 잘 먹을게, 오빠.”
“소스를 조금 바꿔봤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다. 이건 만수 형이 보내준 봄나물로 만든 샐러드.”
“희진이는 잘 있대?”
“응. 늦바람이 무섭다고 요즘 밖에서 들어오질 않는대. 겨울 동안 얼굴이고 손이고 다 튼 모양이야.”
“다행이네. 가끔 오빠 고향이 생각나는 거 알아?”
“그래? 그럼 다음에 한번 갈래?”
“좋지. 근데 갈 시간은 있고?”
“요즘 나보다 더 바쁜 사람이 누군데.”
“그래도 누구완 달리 하루 이틀쯤은 뺄 수 있거든.”
“오케이! 그럼 나도 뺄 테니까 한번 가자. 참! 여사님이랑 여행가는 게 내일이지?”
“응. 아버지 산소에 들릴 겸해서 가는 거라 일요일엔 돌아올 거야.”
“그럼 여사님 건강 체크는 일요일 날 저녁에 할까?”
배영옥의 건강 체크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가게를 할 때 아침에서 저녁으로 옮겼다가 이젠 하란의 집에서 하기로 했다.
“알았어. 그렇게 말해둘게. 와아~ 이거 진짜 맛있다.”
“많이 먹어. 그리고 이거······.”
두삼은 잠깐 쭈뼛거리다가 올 때 가져왔던 쇼핑백 두 개를 건넸다.
“뭐야?”
“이번에 상품권이 생겨서 어머니 가방 사드리러 백화점에 갔었는데 너랑 여사님이 생각나서 샀어. 내 눈엔 예뻐 보였는데 너한텐 어떨지 모르겠다. 보증서 있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
“마음에 들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냐?”
“그냥 알아. 고마워, 오빠. 잘 쓸게.”
“내가 고마워. 널 만난 다음부터 모든 일이 술술 풀렸는데 ···그동안 너무 받기만 했어.”
“오빠가 나한테 해준 거에 비하면 오히려 적지.”
“아니거든!”
“맞거든!”
“그럼 서로 고마운 걸로 하자.”
“그래.”
맛있게 아침을 먹고 각자의 차에 올라 출근을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두삼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말하기가 갈수록 힘드네.”
수영과 식사를 같이할 때마다 ‘나랑 만날래?’라는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데 결국 말하지 못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가방을 건네며 사귀자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엉뚱한 소리나 하고······.
“좀 더 높이 올라가면 말하기 쉬우려나? 아무튼 오늘도 시작해 보자!”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댄 후 탈의실로 갔다.
두삼은 현재의 기분이 어떠하든 환자를 대할 땐 가급적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하려 한다.
자신의 기분을 환자가 느끼길 바라지 않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몸과 마음이 생각을 따라 변하기 때문이었다.
고백하지 못한 마음을 털어내고 긍정적으로 고연아를 치료하자 끝마치고 내려올 때쯤엔 콧노래가 나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한방센터의 복도로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공동희가 게시판에 뭔가를 붙이고 있었다.
“여어~ 공 팀장, 뭐 하나?”
“보면 몰라? 일하는 중.”
“무슨 일인데?”
“어제 어느 몰상식한 인간들이 병원을 모텔로 착각했나 봐. 그 때문에 공고문을 붙이고 있다.
“에? 진짜?”
“말도 마라. 어떤 사람은 큰일 일어난 줄 알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그래서 잡혔어?”
“잡히기는. 병원 중앙에 있는 야외 휴게실이 울리는 구조잖아. 그래서 찾을 수가 없었어. 망할 인간들 창문이라도 제대로 닫고 할 것이지.”
가만! 야외 휴게실 방향이라면······. 설마?!
“근데 웃기는 게 뭔지 아냐? 그때 우리 직원이 거기에 있었는데 사람들 표정이 가관도 아니었단다. 민망해하면서도 남자들은 다들 존경의 표정을, 여자들은 부러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더라.”
“쿨럭! 그, 그래서?”
“감기 걸렸냐? 아무튼 찾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찾기 전에 끝이 나서 결국은 못 찾았어.”
“···어딘지 짐작도 안 되는 거야?”
“됐으면 이러고 있겠냐? 아무튼 어젠 경찰들이랑 CCTV보느라 하루 다 보냈다.”
휴우~ 다행이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 수고해라. 난 이만 가볼게.”
“그래. 근데··· 두삼아.”
특실로 가려는데 공동희가 불렀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뜸 수업 언제 해? 내일 해?”
“아니. 내일은 장 선생님이 친구분들이랑 놀러 가신다고 쉬기로 했어. 근데 그건 왜?”
“다른 건 아니고··· 험!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줄까 해서.”
그렇게 질색하던 녀석이 갑자기 자진해서 도움을 주겠다니 수상했다.
“너, 애인 있었냐?”
“내가 없을 것 같이 보이냐?”
“그게 아니라 뜸의 효과를 봤는지 묻는 거다.”
“···약간?”
공동희는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약간을 표시했다. 그러다 물끄러미 쳐다보자 약간이 조금씩 커졌다.
“에휴~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냐. 나중에 치료받을 때 뜸도 놔줄게. 됐냐?”
“고맙다, 친구야!”
어째 어긋난 뼈를 바르게 해주는 것보다 더 고마워하는 것 같다.
고백도 못 하는 주제에 남의 연애질을 위해 뜸을 놔주겠다고 하는 스스로를 책망하며 7층 특실로 갔다.
한데 특실로 들어가자 처음 보는 여의사가 복도에서 태블릿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응? 밑단이 한 줄인 걸 보면 본관 의사인가 본데.’
한강대학병원의 양의사의 복장과 한의사의 복장은 일반인들은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병원 관계자라면 알아볼 수 있게 밑단이 조금 달랐다.
한의사는 밑단의 줄이 두 줄이었다.
무슨 일로 왔나 알아보려고 다가가자 여의사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상당한 미인으로 중년의 나이지만 세련미와 원숙미가 물씬 풍겼다.
“안녕하세요. 한방의학센터의 한두삼입니다.”
누구냐고 물으려다가 가운의 가슴께에 적힌 ‘성형외과 서문희’라는 이름을 보고 인사만 했다.
“아! 당신이 한 선생이군요. 성형외과의 서문희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진선이에게 얘기를 들어서인지 낯설지가 않네요.”
“소아과 김진선 선생님요?”
“네. 동기예요.”
“그러시군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선생님.”
“그럴까? 참! 올 때 맛있는 커피 사왔는데 같이 한잔할까?”
특실 한쪽에 마련된 탕비실로 들어갔다. 크기가 작지 않아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기에 좋았다.
알고 사왔는지 취향이 비슷한 건지 병에 담긴 달콤한 커피였다. 그녀는 한 모금을 마시더니 말했다.
“한 선생이 마스크맨 맞지?”
“풉! 쿨럭!”
“후후! 맞네. 뭘 놀라? VIP실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걸.”
“···그렇습니까?”
“지금까지 한 선생과 비슷한 경우가 없었을까? 꽤 많았어. 원장님의 인재에 대한 욕심은 굉장하시거든. 물론 한 선생처럼 마스크까지 씌우면서까지 비밀스럽게 한 경우는 없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소문을 유추해 보면 한의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어. 마지막으로 한의사 중 누가 가장 집중 받고 있느냐만 찾으면 되는 거지.”
지금까지 이상한 별명도 얻으며 숨기려고 애썼던 게 바보짓이었단 말인가.
“너무 걱정 마. 그렇다고 소문을 내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그런데 내가 이곳에 온 이유 궁금하지 않아?”
대화는 서문희가 주도하는 형세였다.
“어떤 일을 맡으셨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성형에 대한 조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그러니 한 선생은 평소대로 하면 돼.”
단지 조언을 위해 성형외과의 전문의를 보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네?”
“아, 아닙니다.”
“아니긴. 한 선생 얼굴 근육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내 앞에선 웬만하면 솔직하게 말해도 돼. 과가 과인지라 작은 얼굴 근육의 움직임만으로도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정도는 알아.”
배우고픈 능력이다. 그러나 부럽다는 마음과 함께 속마음을 들킬까 살짝 두려워진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솔직히 말씀드리죠. 부려먹기 좋아하시는 원장님이 조언이나 하라고 선생님을 여기로 보내시진 않으신 것 같습니다.”
“호호! 원장님에 대해 잘 아네. 하지만 조언하라고 보낸 것 맞아. 다만 일을 시키려는 것보단 퇴직하려는 날 위한 선물 같은 거지.”
“퇴직 선물요?”
“응. 더 늦기 전에 내 병원을 낼까 고민 중이었거든. 근데 원장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여기로 보냈어. KM과 인연이라도 맺으라는 거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하라에게 프로포폴을 누가 줬는지도 알 것 같았다.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잊기로 한 일이다.
“그러시군요.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참! 근데 걸크러시 성형 기록은 한 선생이 직접 한 거야?”
“성형 기록이 아니라 치료를 위해 저만 알아보게 작성해 놓은 건데요. 그걸 어떻게?”
기록이라 부를 만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알아볼 정도로만 표시를 해둔 수준이다. 한데 그걸 알아본 모양이다.
“전에 그들에 대한 의료 기록을 본 적이 있어서 알아본 거야. 내가 좀 그런 쪽으론 머리가 좋거든. 아무튼 혹시 성형외과에 대해 공부한 적 있어?”
“아뇨. 해부학적으로만······.”
“그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알 수 있었지? 한 선생은 진맥을 하면 인체 내부의 모습이 MRI처럼 보이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되는데?”
추리의 여왕이냐?
“알았어. 대답은 들은 걸로 할게.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 마스크맨이 한 일들이 설명이 되지.”
얼씨구,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다.
왠지 벌거벗은 느낌이 들어 그녀와 얘기하는 게 꽤나 피곤하다.
‘아니! 다르게 생각하면 서문희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고연아의 근육을 새롭게 자리 잡아 몸매와 얼굴을 최대한 고친다는 계획을 세워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처음 하는 일이니 분명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한데 만약 서문희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떨까?
모르긴 해도 시간을 단축하고 배우는 것도 많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VIP실을 드나들 만큼 실력 있는 의사이지 않은가.
‘다만 입이 가벼우면 곤란한데.’
민규식표 보증 마크가 찍혀 있으니 어느 정도 안심은 되지만 확인은 해야 했다.
“선생님, 뜬금없고 실례되는 말인지 알지만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갑자기 진지해지니 살짝 무섭네. 얼마든지 해.”
“환자의 비밀을 지키듯이 후배에 대한 비밀도 지켜주십니까?”
“환자든, 친구든, 선후배든 그들이 소문내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비밀 보호 의무를 저버린 적 없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물론 한 선생에 대해 내가 유추한 것 역시 혼자만 알고 있을 거야.”
그저 확인을 하는 거다.
서문희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온전히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물론 능력이 드러난다고 해서 귀찮아질 뿐 피해가 있을 것도 없다.
“아! 물론 한 선생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도움은 청할 순 있겠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비밀로 해주신다니 마음이 좀 편하네요. 어떻게 예상하고 계신지 모르지만 제가 기운을 조절할 수 있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소문이 많아.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말하니 조금 놀랍네. 그런데 그것 말고도 할 말이 있지 않아?”
“정말 선생님껜 뭔가를 못 속이겠네요? 부러운 능력입니다.”
“솔직히 별로 좋은 능력은 아니야. 남편 바람피우는 것까지 단번에 알아챘거든.”
“아! ···그런 뜻에서 말씀드린 건······.”
“괜찮아. 위자료 두둑이 챙겼거든. 그리고 그 돈으로 내 병원을 차리려는 거고.”
서문희처럼 사람의 표정을 보고 진실 여부를 파악할 정도는 되지 못하지만 말과 달리 마음까지 정리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 궁금하니까 무슨 능력이 있는지 말해봐.”
“다른 건 아니고 기를 이용해서 일시적으로 사람의 얼굴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진짜?”
“보여 드릴까요?”
무협지에 나오는 것처럼 얼굴과 골격을 바꾸는 역용술은 아니다. 그저 살짝 코를 높이거나, 눈 밑에 애교살을 넣거나, 입꼬리를 올리게 만들거나 따위의 간단한 것들이다.
이 능력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기를 이용해 이효원의 다리 근육을 고정시켰던 방법을 얼굴에 응용하는 것뿐이다.
고연아를 보면서 그런 방법을 떠올렸고 몇 번 자신의 얼굴에 실험을 해봤었다.
문제는 미적 감각이 없는지 조금씩 고치면 얼굴이 더 어색해진다는 거였다.
코를 높이면 좀 더 잘생겨질 거라 생각해서 코를 살짝 높였더니 훨씬 못생겨졌다.
“나한테 해보겠다는 거야? ···아프거나 이상이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지?”
“전혀요. 살짝 피부가 늘어나긴 하는데 그 역시 흔적 없이 원상 복구시킬 수 있어요.”
“···알았어. 그럼 해봐. 난 항상 미간 끝이 높았으면 했거든. 미간 끝만 살짝 높여줘.”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얼굴로 손을 뻗자 움찔하던 그녀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두삼에게 얼굴을 맡겼다.
두삼은 그녀의 머리를 감싸 쥐듯이 잡고 엄지로만 코끝을 살살 문지르거나 눌렀다.
피부를 늘린 후 적당량의 기운을 미간 끝 피부와 근육과 뼈 사이에 보내 모양을 만들었다.
“···다 됐습니다.”
“벌써? 상당히 빠르네. 근데 어째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다? 혹시 실패한 거야?”
“그건 아닙니다. ···거울을 보세요.”
서문희는 묘한 얼굴로 두삼을 본 후 거울을 봤다. 그리곤 요리저리 살피는데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하지만 표정과 달리 목소리는 다름없었다.
“부기가 빠지는 안정화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지?”
“···네. 그게 끝입니다. 많이 이상합니까?”
“한 선생이 보기엔 어때?”
“···하기 전이 더 자연스럽고 예쁩니다.”
“내 생각도 그래. 내가 처음 성형수술을 했을 때 여대생이 왜 날 원망의 눈초리로 봤는지 알 것 같아.”
“···풀어드리겠습니다.”
“아니 잠깐 기다려. 이거 얼마나 가는 거야?”
그녀는 높아진 미간을 만지며 물었다.
“심하게 계속 만지면 며칠 안 갑니다. 만지지 않으면 얼마나 갈지는 잘······.”
“음, 그렇단 말이지.”
그녀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한 선생 미적 감각 없지?”
“···그런 거 같습니다.”
“기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리콘이라고 생각할 때 좌우 비율은 어떻게 했어?”
“똑같이 했습니다.”
“한 선생 혹시 얼굴 좌우가 완벽하게 똑같은 사람 본 적 있어?”
하란이 떠올랐다. 하지만 완벽하게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고개를 흔들자 그녀는 말했다.
“좌우가 완벽한 사람은 없어. 즉, 모든 사람은 좌우가 달라. 그래서 어색하지 않으려면 그 차이까지 맞춰주는 게 좋아. 그래야 사람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보여. 내가 시키는 대로 해봐.”
두삼이 다시 얼굴을 잡자 그녀는 설명했다.
“방금 두께에서 2㎜ 정도 줄여봐. 그리고 왼쪽은 그보다 1㎜ 더 줄이고. 그다음 실리콘의 끝부분을 자연스럽게 각이 지도록 하고 눈 쪽으로 조금 넓혀봐.”
그녀의 말에 따라 미간에 있는 기운을 재조정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 차례 더 재조정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어때?”
“···분위기가 살짝 도도하게 바뀌긴 했는데, ···아름다우세요.”
그녀의 요구 조건이 까다롭긴 했지만 사실 처음 자신이이 한 것에서 크게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한데 결과는 너무 달랐다.
“내 생각도 그래. 성형을 쉽게 생각하지 마. 작은 시술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야.”
“명심하겠습니다.”
“음, 이번엔 입술을 살짝 올려볼까? 차가운 인상이면 남자들이 잘 다가오질 않거든.”
“······.”
“뭐 해? 어서 하지 않고? 배워야지.”
성형은 중독이라더니 배움을 가장해 중독에 걸린 사람이 또 한 명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