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29. 중독(2)
“천천히 다리를 굽혔다가 펼게요. 배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껴 봐요.”
두삼은 고연아의 다리를 잡고 물리치료를 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물리치료지 운동을 시키는 거다.
살이 오르는데 그대로 두면 나중에 다 나아도 움직이기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좋아요. 열 번만 더 할게요.”
“···보통 한 번만 더 한다고 하지 않아요?”
“연아 씨는 한 번만 해도 되는데 제 이두박근 때문에 열 번을 하는 거예요. 근육 괜찮지 않아요?”
“······.”
농담이 아니라 고연아를 운동시키면서 자신도 운동이 되고 있었다. 일거양득이랄까.
“자, 다음은 복근 운동할 거예요. 침대에서 하기 힘드니 내려가죠.”
“···복근 운동은 안 하면 안 돼요?”
“인상 쓰지 마요. 말했죠. 연아 씨는 지금 인상을 쓰면 인상 쓰는 근육이, 웃으면 웃는 근육이 발달하는 상황이니까 편안한 표정을 지어요.”
“자세가 이상하잖아요!”
“뭐가 이상해요. 내가 연아 씨 다리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도 이상하게 보면 이상해요. 이리와요.”
두삼은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바닥에 깔린 매트에 앉았다. 그리고 같이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사실 남들이 보면 민망한 자세가 맞다. 그러나 자신이라고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다.
“후··· 이제 슬슬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연아 씨 생각은 어때요?”
“···귀, 귀에 입김 불어넣지 마요!”
“아! 미안해요. 그래서 대답은요?”
“···싫어요.”
“왜요?”
“정신과 치료는 수없이 받았어요. 그들이 하는 얘긴 다 똑같아요. 효과도 없었어요.”
아직은 시기상조인가 보다. 목소리에서 싫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일단 물러났다.
“딱 맞는 선생님을 못 만나서일 수도 있어요. 어느 병원에선 못 고쳤는데 다른 곳에 가서 바로 고치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무튼 급한 건 아니니 생각해 봐요.”
“···그럴게요.”
“끄응! 그럼 열 개만 더 하고 끝내죠.”
“······.”
물리치료 후 한약을 먹이는 것으로 고연아의 치료를 끝냈다. 그리고 잠을 재우려고 할 때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자는 대신 창밖을 보고 싶어요.”
“···그렇게 해요.”
처음 보이는 변화라 잠시 의아했지만 표정이 나쁘지 않았기에 침대를 조절해서 창 쪽으로 옮겨주었다.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까지 하다니?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혹시 몰라 원 여사의 방에 들러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말한 후에 VIP실에서 내려왔다.
곧장 한방센터 특실로 가야 했지만 두삼은 한방부인과로 향했다.
고연아의 일과 달리 KM엔터테인먼트의 일은 비밀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 혼자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이 일할 사람을 구하러 가고 있다.
“고생하십니다.”
“어머, 한 선생님이 여긴 웬일이세요?”
처음 보는 접수대의 간호사가 예상외로 반겨줬다.
“제가 혹시 간호사님들께 인기가 좋은가요?”
“호호! 도 간호사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물론 인기도 꽤 있으시고요.”
“그런 줄도 모르고. 앞으로 꾸미고 다녀야겠네요.”
“호호호! 참 재미있으시네요. 근데 저희 과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성지숙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전해 드릴 테니 잠깐 기다리시겠어요? 지금 환자보고 계시거든요.”
대기석에 앉아 5분쯤 기다렸을까 간호사가 손짓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안경을 쓴 성지숙이 웃으며 반겨줬다.
“어서 와, 한 선생.”
“안녕하세요, 선생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제일 바쁜 안마과 한 선생이 그런 말을 하면 놀리는 것 같거든. 호호! 농담이야, 앉아.”
성지숙의 성격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시원시원하고 활달했다. 두삼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성격을 무척 좋아했다.
“안 그래도 안마과에 가서 상의할 일이 있었는데 먼저 와주니 고맙네.”
“무슨 일인데요?”
“한 선생 용건부터 먼저 듣고 말할게.”
“다른 건 아니고 KM엔터테인먼트 일을 혼자하기에 벅차서 협조 좀 구하려고요.”
“센터 차원에서 하는 일이니 당연히 도와야지. 한데 나이 많은 나는 아닐 테고, 이은수 선생?”
성지숙은 단번에 두삼의 의도를 알아챘다.
“네, 선생님. 물론 선생님이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더 얘기하면 진짜 내가 갈 거야.”
“······.”
얼른 입을 닫았다. 윗사람을 데리고 일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훗! 너무 솔직하네. 알았어. 데리고 가.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어. 하나는 우리 과에도 필요하니까 너무 부려먹지 말라는 거.”
“그야 당연하죠. 다른 조건은요?”
“막장 드라마 찍지 마. 그땐 내가 용서 안 한다.”
“에? 그게 무슨······?”
“류현수 선생이랑 척질 일 하지 말라는 거야.”
“에이~ 선생님도 참! 저 그런 놈 아닙니다.”
“알지만 세상사 생각대로 되는 거 아니니 조심해.”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처럼 들리는 건 착각일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근데 저희 과와 상의할 얘기라는 건 무엇인지?”
“사실 우리 과에 오는 중년 환자들 중에서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꽤 있어. 특히 안마과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관심이 많더라고.”
“예뻐지고 싶은 건 연령과 상관없으니까요.”
“그렇지. 사실 그냥 안마과로 넘겨주면 되는 일인데 문제는 우리 과의 매출도 신경 써야 해서 말이야.”
“비만 클리닉을 공유하자는 말씀입니까?”
“공유까지는 아니고. 우리 과로 온 환자는 우리가 맡는다는 거지. 다만 안마사들이랑 안마과에서 쓰는 시술은 공유해야겠지.”
“그 문제는 이방익 선생님과 얘기해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 선생님과는 당연히 얘기할 거야. 그저 한 선생의 의견은 어떤가 싶어서.”
“전 상관없습니다.”
현재 매출로만 봐도 비만클리닉이 사상체질과로 갈 일은 없었다. 공유하게 되면 안마사를 조금 더 늘려야 하겠지만 어차피 필요하면 뽑아야 했다.
“한 선생은 찬성이라는 거지?”
“예, 선생님.”
“알았어. 나머진 이 선생님과 내가 얘기할게. 가봐도 좋아.”
인사를 하고 성지숙의 진료실을 나와 이은수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설명을 한 후에 데리고 나와 특실로 향했다.
“그러니까 제가 할 일은 식사와 선배··· 한 선생님과는 별도로 치료를 하라는 거죠?”
“응. 식단은 짜놨는데 이 선생이 봐서 조정해도 좋아. 이건 식단과 내가 진맥해서 기록해 둔 환자들의 상태.”
태블릿을 넘기자 그녀는 천천히 살폈다.
“···두 명을 제외하곤 상태가 꽤 안 좋네요?”
“그러게. 도대체 어떻게 관리를 한 건지. 안마를 통한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도무지 시간이 안 나서 말이지.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잘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네 실력이라면 걱정할 거 없어. 특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비밀이야. 특히 현수에겐 절대 말하지 마. 그 자식은 입이 너무 가벼워.”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네요. 근데 이 기록, 선생님이 진맥을 통해 알아낸 거예요?”
“왜, 이상한 게 있어?”
“아뇨. 진맥을 통해 이렇게까지 알아낼 수 있나 싶어서요.”
같이 일하게 되니 이런 단점이 있을 줄이야. 조심해야겠다.
“···내가 진맥을 조금 잘해.”
“이 정도면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 왔다. 점심은 지금 준비 중일 테니까 저녁부터는 이 선생이 책임져. 그리고 진맥도 직접 해보고.”
“네, 선생님.”
특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팀장과 매니저가 앉아 있던 소파에 두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중 세련된 정장 차림의 여성이 일어나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한두삼 선생님. 송 팀장 대신에 오게 된 강가영 이사예요.”
30대 초반? 중반? 젊어보는데 이사라니, 실력이 좋거나 KM의 강기철 대표의 친인척인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여긴 오늘부터 특실을 맡게 된 이은수 선생입니다.”
“반가워요, 이 선생님. 잠깐 한 선생님과 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이 선생, 진료해.”
이은수가 진료실로 들어가자 앉아 있던 다른 여자도 같이 들어갔다.
둘만 있게 되자 강가영이 말했다.
“먼저, 송 팀장과 김 매니저 일은 사과드려요.”
“아닙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워낙 많은 아티스트들을 소수의 인원이 관리를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있었네요.”
“이해합니다. 그리고 교체를 해달란 건 걸크러시의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한 일입니다.”
“잘하셨어요.”
간단히 체면치례 인사가 오가고 강가영은 본론을 꺼냈다.
“걸크러시의 상태에 대해선 보고를 받았어요. 다른 것 때문은 아니고 2주, 아니, 정확하게 10일쯤 남았네요. 그 안에 제대로 컨디션을 회복할지 묻고 싶어요.”
“불가능합니다.”
“···확고하시네요?”
“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습니다. 특히 하라 씨의 경우 심각합니다. 퇴원이야 자유지만······.”
“선생님이 퇴원이 안 된다고 하면 행사를 취소할 생각이에요. 다만 한 선생님이 같이 움직이는 건 어떤지 묻고 싶네요. 상주 비용은 물론 상응하는 돈을 지불할 생각이에요.”
한가하다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다.
“죄송합니다.”
“원장님껜 저희가 말씀드릴게요.”
“말하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불가능할 겁니다.”
만일 지금 간다고 하면 고연아의 아버지 고정운이 가만히 있을까 싶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면 치료를 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지켜봐도 되죠?”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네요.”
안 그래도 현 간호사를 불러서 옆에 있으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라의 병실로 갔다. 그녀는 멤버 혜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혜리 씨는 조금 이따가 진료를 받아야 하니 방에 가 계세요. 기분은 어때요, 하라 씨?”
“···안 아프니 살 것 같아요. 다만 감각이 없으니 이상해요.”
“정신은요?”
“독한 약을 먹은 것처럼 약간 나른하고 멍해요. 문득문득 우울해지는 것 같고요.”
“짧은 기간이지만 두 종류의 약물을 꾸준히 복용했으니 당연히 그럴 거예요.”
“···중독인가요?”
“글쎄요. 정신적으로 어떤지 모르지만 육체적으로는 중독 증상이 보이네요.”
“어떻게 해야 하죠?”
“오늘은 몸 안에 있는 나쁜 기운을 날려 버릴 거예요. 그다음 컨디션이 어떤지 보기로 하죠. 가슴과 얼굴 통증은 몸이 정상을 찾으면 치료를 시작하고요. 이제 침대에 편하게 엎드릴래요?”
“혜원이 언니가 말한 마사지를 하는 건가요?”
“맞아요. 근데 혜원 씨가 뭐라고 했는데요?”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편안하고 좋았대요.”
“하하! 그건 다음에 해줄게요. 오늘은 몸이 아주 뜨거워질 거예요. 그 뜨거움을 이용해 나쁜 기운을 날려 버릴 생각이에요.”
“찜질방과 비슷한가요?”
“음, 그거랑은 조금 달라요. 다만 참지 않아도 돼요. 특실이라 방음이 엄청 잘되거든요.”
설명을 하려니 어정쩡하다.
오늘 마사지는 그녀의 차가운 음의 기운을 촉발시켜 자신의 뜨거운 양의 기운을 만나게 함으로써 기운을 폭발시켜 나쁜 기운을 태워 버리는 방법이다.
직접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할 순 없지만 아마 극도의 쾌락을 느끼게 될 것이다.
“······?”
“하하··· 그냥 꿈을 꾼다고 생각하세요.”
“그럴게요.”
하라가 엎드리자 손을 풀던 두삼은 강가영을 흘낏 보곤 다가갔다. 그리고 시술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한 선생님 말씀은 하라가 오르가즘을 느끼게 된다는 건가요?”
“예. 그것도 아주 심하게. 혹시 놀라서 방해를 할까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놀랄 정도라는 건가요? 설마 동영상에서 보던 이상한 짓을··· 크흠! 아니겠죠?”
“당연히 아니죠! 그저 안마일 뿐입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니 가볍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알겠어요. 시작하세요.”
강가영은 혹시나 허튼짓을 할까 가까이 다가가 두삼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평범했다. 목부터 시작해 어깨, 허리, 자신이 보고 있는지 골반은 근처는 손도 대지 않고 허벅지, 종아리까지 부드럽게 주물렀다.
하라가 가볍게 신음 소리를 냈지만 마사지를 받을 때 기분이 좋으면 흔히 내는 소리였다.
‘훗! 호들갑 떨 때 알아봤다. 여자 친구가 어지간히 연기를 잘하나 보네.’
강가영은 두삼이 여자들의 오르가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의 손가락이 살짝 구부러지며 찌르듯이 안마를 하면서부터 상황이 조금씩 바뀌었다.
“아항~”
갑자기 후끈한 열기가 퍼지면서 몸을 살짝 비틀며 콧소리를 내는 하라.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뭔 짓을 했나 싶어 두삼을 봤지만 그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연예계에 종사하면서 많은 이들을 상대하다 보니 남자들의 표정과 시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 장담컨대 하라의 몸을 주무르면서도 그의 눈엔 일말의 사심도 없었다.
오히려 땀을 흘리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하라의 신음 소리는 거의 우는 듯한 소리로 바뀌었다. 언제 땀이 났는지 흠뻑 젖은 얼굴과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은 영락없이 절정에 이른 여자의 그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느낌이기에··· 헉! 내가 무슨 생각을.’
멍하니 하라를 보고 있다가 든 자신의 생각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 그녀는 시선을 두삼에게 돌렸다.
진중한 모습으로 마사지에 집중하는 그를 보자 비로소 음란마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