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98화 (93/122)

# 98

29. 중독(1)

쨍그랑!

“아악! 아파! 아프다고!”

서둘러 올라간 특실. 소란은 하라가 있는 맨 끝 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걸크러시 멤버들과 특실 간호사가 막고 있는 입구를 비집고 들어가자 내부가 보였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당연 하라였다.

그녀는 피로 물든 손에 화병 조각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해를 했는지 완전히 벗고 있는 상체엔 어설프게 베인 자국들이 여러 개 나 있었다.

“아파! 너무 아프다고! 미쳐 버리겠어! 제발! 이 고통을 없애줘!”

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만졌을까, 그녀는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외쳤다.

두삼은 솔직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점심시간 이후에 잠깐 들러 그녀의 얼굴과 가슴 신경을 마비시켜 뒀었다.

‘풀린 건가?’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풀린 적이 없다고 해서 풀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

‘고통을 호소하면 부르라고 했는데······. 일단 진정부터 시켜야겠어.’

우선은 이 상황을 끝내는 게 우선이었다.

“하라야, 진정해. 선생님이 오셔서 아프지 않게 해주실 거야.”

송길동 팀장이 언제든 달려갈 자세를 취한 채 진정시키려 했다.

“언제 오는데! 그러지 말고 주사를 놔주든지, 약을 줘. 오빤 몰라. 얼마나 아픈지··· 윽! 또, 또 아파! 다, 다 뜯어내 버리고 싶어. 이익!”

하라는 들고 있던 화병 조각으로 다시 가슴 부근을 그으려 했다.

하필이면 몇 번 그었던 곳이라 이번에 잘못 그으면 뼈까지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안 돼!”

큰소리를 외쳐서 시선이 쏠리게 한 후 무작정 달려들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면 깜짝 놀라 얼어붙거나 무의식중에 다가가는 이를 향해 공격을 해야 정상이다.

두삼 역시 그런 본능을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한데 그녀는 듣지 못했는지 자신의 가슴 밑을 긋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젠장!’

양손을 뻗었다.

왼손으론 그녀의 팔을 잡고, 오른손으론 긋고 있는 가슴을 움켜쥐며 엄지로 화병 조각을 말아 쥐었다.

보기에 따라선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는 요상한 자세였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기엔 상황이 위험했다.

게다가 손으로 먹고 사는 의사라면 절대 해선 안 되는 짓이었다.

그러나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말도 안 되게 강해진 손아귀 힘.

예상대로였다. 그녀의 손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멈췄다.

그런데 하라는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게 화가 났을까 더욱 힘을 줬다.

‘뭐, 뭐야? 뭔 힘이 이렇게 강해?’

건장한 성인 남자의 힘보다 훨씬 강했다. 물론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대로 힘 대결을 하게 되면 그녀의 팔이 부러질 가능성도 높았다

.

두삼의 손이 하얗게 빛났다. 그리고 스며든 빛이 그녀의 목 쪽으로 가서 전신마취를 시켰다.

툭! 하고 화병 조각을 떨어뜨리며 그녀의 몸이 늘어졌다. 두삼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얼른 그녀의 등과 다리를 지탱하곤 안아들었다.

“현 간호사님, 드레싱 카 부탁드려요.”

안면이 있는 VIP실 간호사 중 두 명이 특실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라를 침대에 눕힌 다음 베인 상처들을 소독하고 약을 바른 다음 거즈를 덮었다.

“외과 선생님을 모셔올까요?”

마지막에 난 상처를 보고 현 간호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봉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다섯 바늘 정도면 되니 제가 할게요. 대신 혈액 검사를 해주시고 상태를 예의 주시 해주세요.”

다행히 제때 막아서면서 신경이나 근육이 다치진 않았고, 외과 의사만큼은 아니더라고 봉합은 제법 했다. 다만 상처의 감염은 주의해야 했기에 조치를 취했다.

화병 조각을 쥐고 있느라 다친 손까지 드레싱을 마친 후에야 일어났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문에서 서성이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안정됐으니까 다른 멤버분들은 걱정 말고 식사들 하세요. 천 간호사님은 여기 청소 좀 부탁드릴게요. 혹시 모르니 위험한 것들은 치워주시고요.”

“네, 선생님.”

“그리고 두 분은 저 좀 보시죠.”

두 사람을 비어 있는 병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문까지 꼭 닫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하라 씨에게 먹인 거 주세요.”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송길동 팀장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진짜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설마 하라 씨가 고통 때문에 자해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죠? 횡설수설하는 말, 비정상적인 힘, 깨어나면 자신이 뭘 했는지도 모를 겁니다.”

“···설마?”

“네. 환각제를 복용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주시죠.”

송길동 팀장은 대답 대신 일그러진 얼굴로 매니저를 돌아봤다.

“너냐?”

“···네? 아, 아닙······.”

“이 새끼야! 죽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말해! 여기에 있었던 사람이 너랑 나밖에 더 있어?”

팀장도 덩치가 좋았지만 매니저도 덩치가 좋았다. 한데 팀장이 멱살을 잡고 뒤로 밀자 매니저는 맥없이 벽까지 밀렸다.

“티, 팀장님··· 저, 저도 모릅니다. 하, 하라가······.”

“하라가 직접 먹었다는 헛소리할 생각 마! 걸크러시 내가 키운 애들인데 내가 모를까! 뭘 먹였어? 뭘 먹였냐고, 이 새끼야!”

“그, 그게··· 하라가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그만······.”

매니저는 고개를 숙이며 호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두삼은 얼른 상자를 받아 열어보았다.

1, 2㎖ 정도의 액체가 들어 있는 앰플이 몇 개 있었다.

“GHB?”

흔히 물뽕,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리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처지는 느낌이 드는 환각제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복용한 겁니까?”

“그게······.”

“똑바로 말해, 새끼야!”

윽박지르지 말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 때문인지 술술 말하니 그냥 내버려 뒀다.

“···한 달 정도 됐습니다. 성형수술 후 몇 달이 지나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술을 먹지 않으면 잠도 못 들 정도였어요.”

“진즉에 보고를 했어야지.”

“보고드렸습니다! 한데 성형수술 이후 으레 있는 일이라고 병원에 말해뒀으니 가보라는 말만 하셨잖습니까?”

“······.”

“저라고 마음이 편했는지 아십니까? 밤만 되면 하라는 전화해서 제발 잠만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울고불고 하는데 회사에서는 병원에만 가보라고 하고, 병원에 가면 반짝 괜찮았다가 또 반복되고.”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했으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팀장님도 짐작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귀찮았던 거 아닙니까? 인기는 점점 떨어지는 데 비해 멤버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많아지니······.”

“이 새끼가 진짜!”

송길동 팀장은 주먹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두삼이 그의 팔을 잡았다.

솔직히 그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회사 일은 더더욱 알고 싶지 않았다. 소란스러움은 좀 전의 일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이상 소란스럽게 하면 두 사람뿐만 아니라 걸크러시 멤버 전부를 병원에서 쫓아낼 겁니다.”

“······.”

덩치가 작은 자신에게 팔을 잡혔는데 꼼짝을 못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 건지, 아님 멤버들을 쫓아낸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 건지 송길동 팀장의 표정엔 불쾌감이 드러났다.

“믿기지 않는 모양인데 제가 고집을 피우면 장담컨대 KM과의 계약은 없었던 일이 될 겁니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실험해 봐도 좋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난 그저 조용히 환자를 치료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하죠.”

“고맙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두 분은 앞으로 특실 출입 금지입니다.”

“이 자식이야 그렇다 쳐도 난 왜······?”

“환각제를 준 매니저도 문제지만 프로포폴을 묵인한 당신도 믿을 수 없습니다. 24시간 붙어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제가 모르는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길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싫으면 떠나시면 됩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울 테니 걱정 마시고요.”

더 이상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기에 두삼은 단호했다.

***

“바로 달려들어서 막았다고?”

“네, 원장님. 갑자기 다가가 가슴을 움켜쥐기에 뭔가 했는데 엄지로 더 긋지 못하게 막은 거더라고요.”

민규식은 현 간호사에게 한방센터 특실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있었다.

“허어~ 그랬나? 고의로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다치진 않았나?”

“네. 장갑을 끼워줄 때 확인했는데 괜찮았어요.”

“후우! 아무리 한의사라고 해도 손이 얼마나 중요한데. 괜한 욕심에 큰일 날 뻔했네. 앞으로 문제가 생길 일은 맡기지 말아야겠어.”

한방의학센터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KM과 계약을 했다. 그리고 실력이 가장 확실한 두삼을 붙인 것이다. 한데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이야.

만약 다치기라도 했다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 한강대학병원에서 두삼의 가치는 대단했다.

나연섭을 고치면서 나경록에게 장애아동 의료비 지원 기금으로 1년에 100억씩 10년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거기에 현재 치료 중인 고연아를 고치게 된다면 약속된 금액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자신의 영업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두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삼을 어떻게 써야 가장 좋을 것인지를 생각하던 민규식은 문득 현 간호사가 아직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했다.

“더 할 말이 없음 나가보게.”

“네, 원장님. 참! 한 선생이 팀장과 매니저를 특실에서 내쫓았어요. 괜찮을까요?”

이유는 짐작됐다.

“나라도 쫓아냈을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현 간호사는 특실에 신경 써주게.”

현 간호사가 나가는 걸 확인한 그는 비서실장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한방센터 특실에서 누군가가 기록도 없이 프로포폴을 투여한 모양이야. 누가 했는지 알아보게.”

비서실장의 답은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현 간호사를 부르시기에 혹시나 싶어 영상을 확인했습니다. 성형외과의 서문희 선생이 주사했습니다.”

“서문희 선생이? 독립할 것 같다는 소문이 돌더니 사실인 모양이군.”

“···경고를 해둘까요?”

“아니네. 그동안 우리 병원에서 고생했는데 그 정도의 일로 기분 상하게 하면 안 되지.”

프로포폴을 기록도 없이 함부로 사용했다는 건 문제였지만 맞을 만한 사람에게 투여했고 그동안 병원에 기여한 것을 생각하면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근데 서문희 선생이 KM과 연관이 있는 줄 몰랐군?”

“서문희 선생 동기 중에 한 명이 KM과 전에 협력했던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쪽을 통해 알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인연을 만들고 싶으면 차라리 나에게 말할 것이지.”

“떠나는 게 미안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원장님께서 그동안 많이 챙겨주시지 않았습니까.”

VIP실에서 이루어진 성형수술 중 일부는 서문희가 담당을 했었다.

“챙겨주긴. 실력만큼 받은 거지. 떠나는 사람에게 해줄 것은 없고 인연을 원한다면 인연을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서 선생을 특실로 보낼 생각이십니까?”

“한 선생 부담도 덜어줄 겸 서 선생 독립 선물 겸 괜찮은 생각 아닌가?”

“한 선생에게 성형에 대해 알 기회를 주시려는 건 아니시고요?”

“자넨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아니, 한 선생을 과대평가하는 건가? 허허허! 아무튼 자네 말처럼 한 선생이 뭐라도 배우면 좋겠군. 한데 그게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말일세.”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민규식을 보는 비서실장은 그가 마지막에 언급한 이유 때문에 서문희를 특실로 보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 근데 한 선생에 대해 지난번에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아직까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자네가 아직까지 알아보고 있다니 알아내기가 어려운 모양이군?”

비서실장은 웬만한 일은 며칠이 지나기 전에 알아왔고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소문으로만 확 달아올랐다가 사라진 일이라 시작한 이를 찾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괜찮네. 혹시 한 선생에게 문제가 생길까 알아보라고 한 일일세.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데 무리해서 조사할 필요는 없네.”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습니다. 다만 확실히 해야 할 것 같기에. 조금 더 조사해 보고 아님 손을 떼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근데 찾은 게 뭔가?”

“태양한방병원 임 원장이 관여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임 원장이?”

“예. 당시 한의학협회가 아닌 의사협회 편을 들었다더군요.”

“음······.”

“당시 생약 개발 문제로 의사협회의 도움이 필요한 때라 알아서 편을 들었다는 얘기가 있긴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 문제는 자네의 판단에 맡기겠네. 난 한 선생 잠깐 보고 퇴근 할 터이니 이만 들어가게.”

점심도 못 먹고 일을 하고 있다니 저녁이라도 사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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