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93화 (91/122)

# 93

27. 배우는 게 남는 거다(3)

동의보감이라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허준이 뜸을 이용해 반위(암)을 낫게 하는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봤을 것이다.

하지만 뜸을 배우는 학생들은 현대 의학에선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를 잘 안다.

요즘은 배를 열고 암을 들어내면 된다.

또한 자칫 잘못하면 피부가 손상되고 그로 인한 환자의 불만과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뜸과 피부 사이에 소금 따위나, 혹은 별도의 안전 기구를 놓고 뜸을 뜨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엔 뜸의 열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잘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반드시 뜸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침으로 대체하는 것이 한의사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편했다.

“류 선생은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안으로 들어온 장인규는 류현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얼른 두삼이 나섰다.

“이왕 선생님의 교육을 받는데 혼자보단 둘이 낫지 않습니까. 게다가 류현수 선생 대학 때 뜸으로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 교육할 땐 반말로 할 걸세.”

“…네? 네네.”

황급히 대답한 류현수는 두삼을 돌아보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누차 말하지만 두삼은 눈빛을 읽는 재주가 없었기에 무시했다.

“뜸은 만들어왔나?”

“네, 선생님.”

“보여주게.”

두삼은 틈틈이 만들어둔 뜸을 꺼냈다.

뜸은 긴 원뿔 형태로 볼펜의 앞부분 정도의 크기였다. 양의 기운을 듬뿍 머금은 쑥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나?”

“열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직접구(뜸이 피부에 닿도록 하는 시술)로 시술하기 위해섭니다.”

“얼마나 태울 생각인가?”

“5분의 3을 태운 후 떼어낼 생각입니다.”

“류 선생 생각은 어때?”

“제가 보기엔 5분의 3을 태우면 피부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요. 절반만 태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류현수는 막상 교육으로 들어가자 진지하게 답했다.

“만져보게. 부셔봐도 좋아.”

장인규는 대답 대신 뜸 중 하나를 건넸고 류현수는 이리저리 만져봤다.

“뭐랄까, 상당히 무른 편이네요. 잘 부서지고요.”

“대답은 그게 단가?”

“…죄송합니다.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한 선생이 설명해 주게.”

나중에 발을 빼기 쉬우라고 류현수를 데리고 왔는데 왠지 짐이 될 것 같았다.

“일반 뜸과 달리 공기를 더 많이 넣어서 반죽했어. 즉, 타는 속도가 빠르고 열전달도 그만큼 좋아.”

“아! 피부가 손상되기 전에 빠르게 열만 전달하게 만들었다는 건가요?”

“맞아. 장 선생님께선 공동희의 양기를 북돋기에 좋은 뜸을 만들라고 하셨어. 뜸을 놔야 하는 혈의 위치의 피부가 연해서 은은하게 계속 자극하기보단 짧게 자극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만든 거야.”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근데 그냥 시중에서 파는 뜸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교육할 땐 반말로 한다고 해서 호통 치는 캐릭터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장인규가 나섰다.

“뜸을 열로만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그렇다면 굳이 뜸을 쓸 이유가 어디 있나? 열기구를 사서 그냥 따뜻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침으로 혈을 자극하는 것과 뜸으로 혈을 자극하는 것의 차이점은 뭔가?”

“구병(舊病)엔 뜸이다, 라는 말처럼 만성적인 질환과 통증에 효과가 좋다고 배웠습니다.”

“학생의 대답이군. 그게 끝인가?”

“아, 아닙니다. 기운이 너무 세약하여 침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뜸을 사용합니다.”

“이유는?”

“침의 경우 내부의 잠재된 기를 촉발시켜서 치료를 하는데 촉발시킬 기운마저 없는 환자에겐 오히려 독이 됩니다.”

류현수는 과거 뜸에 대해 배웠던 바를 열심히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에 반해 뜸의 경우는 침에 비해 환자의 기운을 사용하지 않는데 뜸이 가진 기운이… 아!”

“이제 기억나는가? 달달 외워서 전문의 자격을 따면 뭐 하나? 정작 의미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것 없어. 자네에게 진료 받는 환자들에게 미안해해야지.”

“…….”

“대량 생산된 뜸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 뜸이 가진 기운은 정확히 알고 써야지. 난 대량 생산된 뜸이 어떤 기운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더군. 자네는 아나?”

“…모릅니다.”

“그럼 직접 만들어야겠지? 물론 그전에 뜸에 쓰이는 약재가 어떤 기운을 품고 있는지부터 배워야 할 테고.”

그는 배워야 한다면서 흘낏 자신을 본다. 그래서 얼른 말했다.

“선생님 전 타고난 재주로 약초를 구분하는 거지. 특별한 구별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가? 나와 다른 방법이 있다면 나도 배울까 했는데 말이야. 안타깝군. 그럼 구별법은 다음 주에 수업하기로 하지.”

“저도요?”

“타고난 능력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야지. 그게 아니더라도 배워놓으면 좋다네.”

능력이 사라진다는 말에 뜨끔하다.

장갑을 통해서 갑자기 얻게 된 능력.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 없었다.

‘그래 자만하지 말자. 그리고 장갑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 실력을 키우자!’

느슨했던 마음을 조였다. 뜸의 대가가 자신의 지식을 나눠주겠다는 기회가 또 있을까.

“가르쳐 주신다면 기꺼이 배우겠습니다.”

“그럼, 뜸을 뜨는 것을 볼까. 공 팀장, 웃통 벗고 침대에 눕게.”

“…오늘만입니다.”

공동희가 ‘오늘만’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옷을 벗고 누웠다. 그러자 세 한의사는 그의 혈을 짚어가며 뜸을 놓을 곳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류 선생은 남자의 정력을 북돋기 위해 어디에다가 뜸을 놓을 건가?”

“기력이라면 큰 뜸을 단전에 놓거나 족삼리(足三理)에 놓는 게 좋다고 배웠습니다.”

족삼리는 무릎 외측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움푹 들어가 있는 자리에 위치해 있는데 ‘족삼리에 쑥뜸을 하지 않는 자와는 먼 길을 같이 가지 말라’는 옛말이 있을 만큼 하체의 튼튼함과 관련이 있다.

“혹시 자신에게 해봤나?”

“…네.”

“좋아지든가?”

“글쎄요,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자신이 없군. 그곳에 뜸을 놔봐야 기운을 조금 북돋는 거지 정력이 강해지는 건 아냐. 그럼 침이라면 어디를 놓을 건가?”

“침으로라면 발바닥에 있는 용천, 뜸을 뜨는 자리에 있는 관원, 족삼리, 귀와 팔의 하체와 생식기 반사구에 놓을 겁니다.”

“잘 아는군. 그럼 뜸은 왜 단전이나 족삼리에만 올려두나?”

“뜸의 상식이…….”

“쯧! 한의사가 상식 얘기를 하다니. 한 선생은 만든 뜸을 어디에 놓을 건가.”

“저라면 여기 관원, 기해, 그리고 다리와 이어지는 비관과 족삼리로 이어지는 혈을 자극할 겁니다.”

“용천혈은?”

“뜸 대신 침을 놓을 생각이고요.”

“침구를 동시에 쓰는 건 좋은 생각이네. 대부분의 한의원에서 그렇게 사용하지. 근데 정력을 북돋는 혈자리치곤 처음 보는군?”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의 진료 기록에서 본 겁니다.”

“오호! 결과를 보고 싶군.”

“시작하기에 앞서 선생님은 어떤 혈 자리를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내 경우는 수양명대장경을 주로 자극하네. 그리고 그와 만나는 임맥과 반사구에 뜸을 놓지.”

두삼은 그가 찍는 위치를 천천히 살폈다. 그리고 공동희의 몸에 손을 살짝 올려 기를 이용해 그의 시술의 타당성을 검토해 봤다.

‘할아버지의 시술과 비슷한 장기들을 자극해. 역시 세상은 넓다더니…….’

스스로 뜸의 시술 자리를 만들어낸 장인규를 다시 보게 됐다.

“왜 이 혈에 뜸을 놓으신 겁니까?”

두삼은 그의 지식을 최대한 얻어내기 위해 지금까지 수동적인 행동에서 탈피에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대화가 길어지면 질수록 괴로운 사람은 있었다.

“에취! …뭘 하든 빨리 좀 해주시겠어요?”

공동희는 윗옷을 벗은 채 한참 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 * *

“한 선생, 점심시간에 뭐 하나?”

다음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방익인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아시잖아요? 일단 애기 밥 먹이고 난 후에 남들보다 늦은 점심을 먹게 되겠죠.”

“…모르는데? 나 모르는 사이에 결혼해서 애 낳았어? 아님 애완동물?”

고연아에 대해 이방익은 아직 모르고 있음을 잠깐 망각했다.

“…후자요.”

“그럼 먹이주고 일식집으로 와. 원장님이랑 점심 같이 먹기로 했어.”

“무슨 일인데요?”

“우리 과에 좋은 소식.”

“…알겠습니다.”

과에 좋은 거지 자신에겐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 소속인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말 안 듣는 애완동물(?)에게 밥을 먹이고 일식집으로 향했다.

“어서 오게, 한 선생. 오늘 좋은 참치가 들어왔다고 해서 그걸로 주문해 놨네.”

“네, 원장님. 맛있겠네요. 근데 이 선생님 말론 좋은 소식이 있다는데요?”

“성격 참 급하군. 큼! …내 탓이기도 하니 넘어가지. 음식이 금방 들어올 테니 먹으면서 얘기해.”

그의 말처럼 맛있게 보이는 참치 회와 스시는 금방 나왔다. 그리고 보이는 만큼 맛있었다.

“맛이 어떤가?”

“훌륭합니다. 이 맛있는 걸 놔두고 거식증이라니, 지금 느끼는 바를 그대로 전해주고 싶네요.”

“먹으면서도 환자 생각인가?”

“아! 보모 같은 소릴 했네요. 화제를 바꾸죠.”

“허허! 내가 바꿔주지. 현재 안마과가 많이 바쁘다는 얘길 들었네.”

“제가 이방익 선생님만큼 환자를 소화하지 못해서 그런 거죠.”

“자네 바쁜 거야. 이 선생님도 알지 않나? 그래서 안마과에 새로운 한의사를 구할 생각이네.”

“오!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근데 안마과에 들어올 사람이 있습니까?”

이방익을 보며 물었다.

“있어. 내 조카. 원래 그 녀석에게 병원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뭔가 사고를 친 뉘앙슨데 착각인가요?”

“사고 쳤어. 환자에게 집적댔지.”

“아… 그럼 위험한 거잖습니까?”

이성의 맨살을 꽤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주무르고 만져야 하는 직업인데 사고를 쳤다니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방익을 믿기에 강력히 반대하진 않았다.

“그 때문에 2년쯤 쉬게 했더니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겠대. 그리고 여자들만 맡기면 돼.”

“네? 여의사가 환자에게 집적대다니…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깬 여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누가 여자야?”

“…에? 방금 여자만 맡긴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염색체상으로 보자면 남자야. 다만 호르몬이 문제인 거지.”

“……!”

이해했다. 쉽게 말해서 이방익의 조카는 성소수자라는 얘기였다.

“왜? 내 조카가 게이라서 같이 일하기 싫은 건가?”

“전혀요. 성적 취향에 대한 편견 따윈 없어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

“식구가 느는 건데 좋아해야죠. 조카분이 합류하면 여유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생각했는데 의사가 한 명 느는 게 끝이 아닌 모양이다. 민규식이 말했다.

“새로운 의사가 합류한다고 해서 여유로울지는 모르겠네. 한 가지 더 있거든요.”

그는 대뱃살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 KM엔터테인먼트 알지?”

“거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수, 배우에 이어 요즘 유명한 개그맨들도 싹쓸이해 가는 엔터테인먼트계의 공룡이잖습니까. 게다가 한방센터에 입원했었던 윤혜원 씨도 거기 소속이고요.”

경제에 대해선 잘 몰라도 연예계에 대해선 조금 아는 편이다.

“그렇지. KM에서 소속 연예인들을 우리 병원에 보내고 싶다고 전해왔네. 비만, 체형 관리, 건강을 전적으로 맡기겠다는군.”

“왠지 우리 과의 일처럼 들리는군요?”

“대부분은 안마과에서 책임져야겠지. 다만 한방센터든, 외과센터든, 모든 과의 협조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생각이네.”

“윤혜원 씨가 어지간히 얘기했나 보군요.”

윤혜원도 KM소속이었다.

“친한 가수들에게 자네 얘기를 한 모양이야. 그들이 다시 말을 옮겼고. 결국 연예인들이 회사를 움직인 거지.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군. 왜 힘드나?”

“힘들진 않습니다. 다만 굳이 KM 연예인들 케어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면 모를까 예약 스케줄을 짜기도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노형진의 다이어트가 TV에 방영되면 어떻게 될까.

‘으~ 그 전에 몇 가지는 끝나야 할 텐데.’

상상만으로 힘이 쭉 빠진다.

“허어~ 자네 남자 맞나?”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KM의 최고의 걸그룹 걸크러시를 안마할 수 있는 기회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들의 손이라도 잡으려고 노력하는지 아나? 나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했을 걸세.”

민규식의 머릿속은 여전히 피 끓는 청춘인가 보다.

“걸크러시가 최고라는 말은 옛말이죠. 이제 걸그룹이 아닌 미세스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만지면 부러질 것 같은 다리는 개인적으로 별로인지라…….”

청춘이 한 명 더 있었다.

“부러질 것 같은 다리가 아니라 잘 빠진 거야. 그리고 걸크러시만 있나 블랙스완도 있잖아. 연습생들도 엄청 많고.”

“…알아들었으니까 그만들 하세요. 대신 저한테 사인 받아달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안 해. 이미 받았거든. 허허허!”

“나도. 각 멤버들과 사진도 찍었어.”

저렇게 좋을까. 치료비는 제대로 받고 하는 건지.

하긴 자신도 남을 흉볼 처지도 아니다.

‘그나저나 요즘은 딱히 관심이 없구나.’

바빠도 챙겨보던 직캠을 안 본 지도 꽤 됐고, 직캠을 찍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 음식 솜씨 좋은 요리사 한 분 구해주세요.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더 이상은 힘듭니다.”

“그러지.”

“근데 언제부터입니까?”

“뭐가?”

“새 직원이 오는 것과 KM의 연예인들이 병원에 들이닥치는 게요.”

“다음 주. 차례차례 소속 연예인들 건강 체크에 들어갈 걸세.”

“빠르군요.”

“그쪽에서 급한 모양이야.”

“저에 대해 너무 잘 아시네요. 점심 잘 먹었습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까.”

“차는 안 마시고 가나?”

“1시 10분에 예약 환자가 있어서요.”

오후 일과의 시작은 병원까지 뛰는 걸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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