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84화 (83/122)

# 84

25. 다이어트(2)

병원에서의 허락은 하란의 감기가 떨어지듯이 금세 떨어졌다.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PD, 조연출, 작가, 카메라맨까지 모두 4명이 찾아왔다.

작가는 박기영이었다. 그가 나서서 소개를 시켜줬다.

“이분은 우리 프로그램 메인 PD님, 카메라 감독님, 연출팀 스태프.”

“안녕하세요. 한두삼입니다.”

“엄기형입니다. 박 작가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데 생각보다 엄청 젊으시네요.”

“감사합니다. 한약을 달이면서 좋은 기운을 많이 쐬어서 그런가 봐요.”

“오호~ 제 와이프에게도 한약 좀 달여달라고 해야겠네요.”

“그러실 필요가 뭐 있습니까. 저희 병원에 보내세요. 피부 관리와 한약은 꽤 잘합니다.”

“하하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잘 부탁드려요.”

방송계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았다.

보고를 했을 때 센터에서도 팍팍 밀어준다니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됐다.

“꼭 보내십시오. 근데 제가 뭘 하면 되죠?”

“일단 평소의 모습을 찍을 겁니다. 그러니 평소 하던 대로 편하게 하면 됩니다. 알려지기 꺼려하는 환자들의 경우 얼굴을 다 지워 드릴 거고요. 혹시 불편해하는 환자들의 경우엔 카메라를 끌 겁니다.”

PD는 스토리보드를 보여주며 설명을 이었다.

“그다음 환자의 신상 명세와 영상을 보여 드릴 테니 확인하고 환자에 대해 솔직히 말해주시면 됩니다. 그 후 환자를 만나고 직접 진료를 하면 됩니다.”

“오늘 환자를 볼 수 있는 겁니까?”

“네. 현재 병원에서 건강 문제를 체크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틈틈이 촬영이 있을 겁니다만 한 선생님에게 최대한 불편 없이 진행할 생각이니 불편한 상황이 오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그러죠.”

엄 PD의 말처럼 진료를 보는 데 불편한 건 없었다.

밖에서 촬영을 한다고 손님들에게 알렸기에 말 그대로 자신의 할 일만 하면 됐다.

엄 PD가 가끔 궁금할 걸 묻지 않았다면 있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조용히 있었다.

“한 선생님, 방금 전 환자에게 마사지를 한 거죠? 무슨 효과가 있는 겁니까?”

“좀 전의 환자의 경우 시술을 통해 지방을 제거한 후 피부 처짐으로 병원에 왔습니다. 늘어진 피부가 탄력을 되찾거나 사라진 지방층에 근육이 생겨야 처짐이 없어지는데 당장은 힘들죠. 그래서 피부가 당겨지는 시술과 함께 마사지를 통해 탄력을 생기게 만들었습니다.”

“방금 제가 본 건 마사지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피부가 당겨지는 시술을 하셨다는 겁니까?”

“네. 혈을 자극한 거죠. 물론 본 마사지는 위층에서 합니다.”

“침을 쓴 것도 아닌데……?”

“믿기지 않는 모양이시군요?”

“아니, 그보단 시청자들이 보고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간단히 보여 드릴게요. 기영이 형.”

두삼은 펜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박기영을 불렀다.

“쩝! 내가 실험체냐?”

“PD님은 너무 마르셔서 효과가 미비하거든.”

“쳇! 배 까면 되냐?”

“그럼 방송 불가잖아요. 오동통한 손 줘봐요.”

투덜거리며 손을 뻗는 그의 팔뚝에 지름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토끼를 그렸다.

“돼지냐?”

“…자! 이제 피부를 긴장하게 만들어볼게요. 이 시술 방법은 이방익 선생님께 배웠죠.”

가볍게 주무르며 손끝으로 혈을 자극했다.

“어! 돼지가 작아진다!”

토끼라니까요!

토끼가 지름 8센티미터 정도로 줄어들었다.

“…신기하네요.”

“아직 끝이 아닙니다. 침을 이용해…….”

“나 침 싫은데…….”

“움직이면 아파요.”

두삼은 재빨리 돼지, 아니, 토끼 주위에 침을 꽂았다. 그러자 토끼는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건 전기적 신호를 이용한 방법인데 추울 때 피부가 쪼그라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헐~ 대박! 근데 피부가 살짝 아픈 느낌인데.”

“그야 당연하죠. 형은 지방이 사라진 게 아니잖아요.”

엄 PD는 놀란 눈이 되어 카메라맨에게 찍었는지를 확인한 후에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한 겁니까?”

“신경을 자극하는 겁니다. 추위에 피부가 오그라드는 것을 더 강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처진 피부에 사용하면 좋겠군요?”

“그렇죠. 다음 환자가 대기 중인가 보네요.”

천 간호사가 신호를 보내왔기에 얼른 마무리를 짓고 의자에 앉았다.

정신없이 환자들을 받다 보니 어느새 오늘 예약을 끝마쳤다.

“후우… 이제야 끝났네요.”

“비만 때문에 찾는 환자들이 많군요?”

“저희 과에서 비만클리닉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죠. 거기에 소문까지 나서 일반 환자보다 비만클리닉에 오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자, 이제 환자에 대해 볼까요?”

“여기 있습니다.”

엄 PD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 첫 장을 폈다. 사진과 환자에 대한 프로필이 간단히 적혀 있었다.

노형진, 올해 25살. 몸무게 195㎏. 초고도비만.

이 정도면 병원에서 이미 수없이 경고를 했을 터.

‘이 정도면 다이어트를 생각해 볼 만했을 텐데. 죽어도 먹는 걸 참지 못하는 건가?’

‘물만 먹어도 살찐다. 비만 유전자가 있다’라는 말은 희대의 개소리다.

물의 칼로리는 제로. 신체에 따라 물을 제대로 배출 못하는 체질은 있어도 물 먹어서 살이 찐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비만 유전자는 비만 유전자와 관련된 유전인자를 발견은 했지만 연관성은 미비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두삼은 담배, 도박 따위와 마찬가지로 비만은 의지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살을 빼야 한다는 의지와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의지 중에 어느 쪽이 강하느냐에 따라 비만이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변명을 갖다 붙여도 결국은 의지의 차이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의지박약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누구든 약한 부분이 있다.

담배에 대한 의지는 약하지만 음식에 대한 의지는 강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둘 다 강하지만 도박에 약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심하군요.”

“외과 수술을 해야 할까요?”

“해서 고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걸 바라셨으면 저에게 부탁하지 않으셨을 테죠?”

“네. 환자 가족들이 위 수술에 대해서는 위험하다고 고개를 젓더군요.”

“위험하죠. 그리고 이제 20대에 불과한 청년에겐 너무 가혹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흔히 위와 식도를 십이지장을 지나고 난 쪽의 장과 연결시켜 버린다. 그렇게 하면 많이 먹을 수가 없다.

꾸역꾸역 먹다간 목이 막혀 버린다.

위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도 있지만 그 역시 좋다고 보기엔 힘들었다.

비만에 대한 외과적 수술의 목적은 팽만감을 줄이고 적게 먹게끔 하는 게 핵심 기술인데 두삼은 한의학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환자를 볼까요?”

“그 전에, 치료에 얼마나 걸릴까요?”

“PD님이 노형진 씨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

“방송에 보여질 노형진의 모습 말입니다. 가령 100㎏ 이하로 빼는 것만 생각하면 3, 4개월. 아주 멋진 근육질의 남자를 원하면 5개월 이상이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어떤 걸 원하시죠?”

“당연히 극적인 것이 방송엔 더 좋겠군요.”

“저나 병원을 위해서도 그 편이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한데 너무 길면 곤란합니다.”

“최대한의 시간을 상정한 겁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볼까요? 아! 그 전에 배달 음식을 먼저 시켜야겠네요. 치킨, 족발, 피자 같은 것들로요. 노형진 씨가 얼마나 먹죠?”

“얼마나 먹느냐가 아니라 음식을 손에서 안 뗀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그래도 포만감을 느끼는 순간은 있겠죠. 안마과 식구들 회식 겸 해서 주문해야겠네요. 아! 음식 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아니 제작비로 내도 됩니다.”

“그건 스태프분들끼리 쓰세요. 원래 TV에 나오려면 돈을 어느 정도 지불해야 한다면서요. 전 공짜로 나오는 거니 이렇게라도 써야죠.”

“…하하. 그건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을 때의 얘기죠.”

“엄 PD님이 맡으셨으니 인기가 있겠죠.”

솔직히 유명한 PD 한두 명을 제외하곤 누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박기영이 실력 있는 PD라고 했으니 맞을 것이다.

아무튼 조금 떨어져 있는 한방부인과에서 냄새를 맡고 올 정도로 많은 양의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 냄새가 배일 것 같아 자리를 휴게실로 옮겨 한 상 거하게 차려놓고 노형진이 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뒤룩뒤룩 살찐 노형진이 천 간호사와 함께 들어왔다.

“오늘 검사받은 결과입니다.”

천 간호사는 검사지를 건네고 나갔다.

“앉으세요, 노형진 씨. 이 앞에 음식들은 오늘 검사받느라 굶었을 테니 마음껏 드시라고 주문해 둔 겁니다. 그러니 편히 드세요.”

“…네? …치료를 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먹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은 했지만 이미 눈, 코는 음식으로 향하고 있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셨나 보네요. 그런 각오 좋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하고 드세요.”

“…그래도 됩니까?”

노형진은 엄 PD를 보며 물었다. 그에 엄 PD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조금만 먹겠다’는 말과 함께 피자 한 조각을 잡았다.

두삼은 그가 먹는 것을 지켜보다가 검사지로 눈을 돌렸다.

사실 볼 필요가 없었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관절 이상 등 언제 죽더라도 이상이 없을 정도로 몸은 엉망이었다.

검사지를 던져놓고 피자 조각 중 하나를 들고 입에 넣었다.

“PD님도 감독님도 드세요.”

엄 PD와 촬영 감독을 위해서 하나씩 빼서 건네줬다.

“근데 노형진 씨는 피자를 왜 좋아해요?”

“…맛있잖아요.”

“맛은 당연히 있죠. 근데 어떤 맛이요? 자세하게 설명해 줘요. 난 치즈의 고소함과 씹을 때 느낌이 좋아서 먹는 편이에요.”

“…치즈의 맛도 좋지만 토핑의 맛도 무시 못 하죠. 그리고 도우가 주는 고소함과 쫀득함은 갓 구은 빵은 먹는 느낌이고요.”

“듣고 먹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업체마다, 피자 종류에 따라서도 달라요. 단맛 강조한 것도 있고 짠맛을 강조한 것도 있죠. 맛이 없는 것도 있어요. 어울리지 않는 토핑을 마구 올린 것들은 균형이 없어요.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요.”

그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함께 음식을 먹으니 거부감이 없어진 건지 모르지만 피자 맛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치킨은요?”

두삼은 그의 옆에 바싹 붙어 등에 손바닥을 가볍게 대며 물었다.

어느 정도 먹었으니 이제 서서히 포만감을 느끼는 시점을 찾아야 할 때였다.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중 렙틴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노형진의 경우 렙틴 호르몬이 제 기능을 못하기에 전기적 신호를 통해 뇌의 시상 하부의 포만 중추를 직접 자극해야 했다.

이 방법은 뇌전증 치료제 연구를 위해 무수한 전기적 신호를 하나씩 찾다가 알게 됐다.

안타깝게 찾고자 하는 뇌전증 약효와 관련된 전기적 신호는 못 찾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전기적 신호를 응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뇌전증의 이상 세포처럼 계속해서 전기 신호를 내뿜도록 만드는 것이다.

노형진의 식욕은 대단했다.

피자에 이어 치킨 세 마리를 아작 내고 족발 두 개를 간단히 먹었다. 그리고 다시 피자로.

그의 먹는 속도가 확연히 떨어진 건 먹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난 후였다.

“포만감이 느껴지나요?”

“…네.”

“더 먹을 수 있다는 대답처럼 들리네요.”

“그렇긴 한데 더 먹으면 위가 아픈 느낌이 들어서요. 1시간쯤 쉬면 더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럼 위가 아픈 느낌이 들 때까지 드셔보세요.”

그 느낌은 싫은지 그는 깨작깨작 먹다가 더 이상은 못 먹겠다는 듯 절반쯤 먹은 피자를 내려놓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시술에 들어가죠.”

“…지금요?”

“네. 저기 보이는 침상에 누워 배가 보이게 옷을 들어보세요.”

그는 음식을 먹는 속도에 반비례하게 둔한 움직임으로 침상 쪽으로 향했다.

딱 봐도 심각해 보이는 뱃살이 드러났다. 두삼은 바로 손으로 배를 주물렀다.

‘헐! 위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려는데 혈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네.’

지방으로 된 갑옷이 혈을 짚을 수 없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스승님이 남겨둔 침을 꺼내 위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혈에 꽂았다.

이어 이왕 침을 꺼낸 김에 신경세포에도 침을 꽂아 전기적 신호를 잔뜩 주입해서 이상 신호를 발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두삼은 손을 뻗어 그의 코 부분을 만졌다. 그리고 그의 코를 마비시켜 버렸다.

강제로 포만감을 최상치로 만들고 위를 둔하게 만들어 일시적으로 안 먹게 만들었지만 입맛이 기억하는 대로 다시 먹다 보면 더 살이 찔 게 분명했다.

코가 제 기능을 못하면 어떤 맛도 느끼지 못한다. 만일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그가 음식을 먹으면 다른 장기의 기능도 둔화시키거나 수술을 하는 게 나았다.

“자! 됐습니다.”

“…이게 끝이라고요?”

“기본 시술은 마쳤어요. 이제 두 번째 시술을 할 겁니다. 위층 안마실로 가죠.”

두삼은 노형진을 데리고 안마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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