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83화 (82/122)

# 83

25. 다이어트(1)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수술을 마친 두목이 최익현이 사주한 범인이라는 걸 알아내고 얼마 되지 않아 최익현이 교통사고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걸 알게 됐다.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덤프트럭과 부딪혔지만 좋은 차를 타고 있었기에 즉사는 모면했다.

그러나 아무리 튼튼한 차라고 해도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서 멀쩡할 순 없었다.

민규식 원장과 혈관외과, 신경외과 의사들이 동시에 수술에 참여했고 두삼 역시 긴급 콜을 받았다.

“한 선생이 보기엔 어떤가? 중추신경을 살릴 수 있겠는가?”

비장과 찢어진 대장을 떼어낸 민규식이 조용히 와서 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리려는 세 명의 의사, 그들 때문에 억지로 일을 하고 있는 두삼.

“…아뇨.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돕는다면 가능했다. 하지만 돕지 않을 생각이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고자 의사가 된 거지 쓰레기를 살릴 마음은 없었다.

하나 조금 미안했다.

엉망이 된 상태에서 살고자 노력하는 최익현에게 미안한 것이 아니라 살리고자 하는 세 명의 의사에게 미안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런 표정 짓지 말게.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우리가 할 일은 다했네.”

자신이 안타까워한다고 생각한 건지 민규식은 힘내라는 듯 말하곤 수술을 하고 있는 전철희에게 다가가 ‘척추는 덮자’라고 말했다.

* * *

“오빠, 어서 와. 콜록콜록!”

일요일 아침, 현관에 마중 나온 하란이 기침을 했다.

“최익현 씨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나 보네? 감기 같은데 손 줘봐.”

“…비슷해.”

두삼을 건드리면 자신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쫓아내고 난 후에 바로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에 뇌까지 일부 다쳤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10여 년 동안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감기가 걸린 것이다.

“기운이 많이 불안하다. 오늘은 푹 쉬어야겠는걸.”

“오빠 덕분에 어느 때보다 건강한 상태니 내일이면 다 낫겠지.”

건강한 사람은 감기에 잘 걸리지 않지만 일단 걸리면 앓고 나야 낫는다.

사상의학에선 사람을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 네 체질로 나누는데 태양인은 폐대간소(肺大肝小)형으로 워낙 건강한 체형에 폐기능이 좋아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하란의 체질인 소양인은 비대신소(脾大腎小)형으로 감기를 앓게 되면 고열이 발생하고 몸살감기를 주로 앓는다.

태음인은 간대폐소(肝大肺小)형으로 호흡기 계통이 약해 감기에 자주 걸리는데 편도가 심하게 붓거나 기침, 가래가 많은 목감기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소음인은 신대비소(腎大脾小)형으로 코와 관련된 감기에 주로 걸린다.

“아닐걸. 이제부터 슬슬 열이 오를 거야. 몸도 축축 처지는 느낌일 테고.”

“…병원이라도 갔다 와? 일요일이라 연 곳이 있으려나 모르겠어.”

“오늘은 나한테 맡겨. 내일이면 건강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일요일인데 안 쉬어?”

“오늘은 네 집을 아지트 삼아 쉬면 되지. 잠깐 쉬면서 기다려. 효원이 봐주고 올라올게.”

최근 이효원의 치료는 계속 길을 깊게 파주는 것이 다였다.

현재 33퍼센트 정도의 기운이 재활용되고 있는데 수치가 올라가는 정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어제 드디어 트리플 러츠 성공했어요.”

“잘했어. 하지만 너무 무리한진 마. 아직까진 예전의 33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항상 생각해.”

혹시 몰라 그녀의 부러졌던 뼈와 발목에 상당한 기를 둘러 보호하고 있었다.

발목을 사용할수록 기의 양이 조금씩 줄었는데 확인해 보니 오늘은 절반 이상 사라져 있었다.

그만큼 충격이 전해졌다는 뜻이었기에 한 말이다.

“피이~ 잘 알고 있어요. 왠지 될 것 같은 기분에 해봤을 뿐이거든요. 그나저나 어느새 3퍼센트가 더 늘었네요?”

“그니까. 처음이 어렵지 점점 가속화되는 것 같아. 지금 이대로라면……. 아니다. 기대는 금물.”

“쳇! 무슨 말을 하다가 말아요. 김빠지게.”

“조급함이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거야.”

“…그건 누구보다도 잘 아네요.”

오늘날 그녀가 이렇게 된 것도 조급함 때문 아닌가.

“알면 됐다. 오늘도 바로 훈련장으로 가는 거야?”

“네.”

“일요일도 없구나. 고생해라.”

“그동안 많이 쉬었잖아요. 수고했어요, 오빠.”

이효원을 치료한 후 일단 집으로 갔다.

한미령에게 하란의 집에 머물 거라고 말해준 후 이것저것 챙겨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뭐 해? 콜록!”

“죽. 아침 거의 안 먹었잖아.”

“뭐야? 루시가 말했어?”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제가 두삼 님께 무슨 말만 하면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하셔서 인사만 해요.

“아까 손잡았을 때 위를 체크해서 안 거야. 일단 가서 소파에 앉아 있어. 볼이 상기된 거 보니까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네.”

“…솔직히 입맛이 없는데…….”

“그렇겠지. 하지만 하는 성의를 봐서 맛있게 먹어줬음 좋겠다.”

감기에 걸릴수록 잘 먹어야 하는데 나른하고 멍한 느낌에 입맛이 없다.

거기에 독한 약이라도 먹으면 속까지 버리기 십상이다.

안에 넣은 약재가 충분히 우러나올 때까지 끓이다가 마지막으로 쌀을 넣고 완성시켰다.

완성된 죽을 큰 그릇에 가득 담아 가져갔다.

“자, 다됐다.”

“이걸 다 먹어?”

“원하는 만큼 먹어도 돼. 일단 먹어봐.”

“…맛있네.”

“입에 넣자마자 말하면 신뢰성이 없잖아? 천천히 먹어. 입맛이 돌 거야.”

딱히 믿지 않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죽을 직접 끊여줬다는 고마움 때문인지 마지못해 천천히 먹었다.

한데 서서히 빨라지는 숟가락질.

“…맛있어.”

“몸이 원하는 거야. 더 있으니까 천천히 많이 먹어. 난 약 좀 끓일게.”

양의학이 들어오기 전에는 한의학으로 감기를 예방하거나 치료했다.

1년에 한 번 가을쯤 어린아이들에게 녹용(鹿茸)을 달여 먹이면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거나, 독감 증상엔 마황탕을, 땀이 나지 않는 증상에 갈근탕을 쓰는 등.

감기에 대한 자료가 제법 쌓여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감기약처럼 쓸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체질, 증상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서다. 또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덤이다.

그럼에도 두삼은 양약보다 한약을 선호했는데 정확한 진맥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쓰지 않게 만들었으니까 차처럼 틈틈이 마셔.”

다 먹은 그릇을 치우곤 따뜻한 약을 건넸다.

“이거 너무 잘해주니 부담스럽네.”

“동생한테 이런 것도 못 해줘?”

“동생이라서… 그게 다야?”

뭔가 훅 다가오는 느낌이다.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났다.

“그… 그럼 그게 다지. 다음 코스가 마사지니까 이 옷으로 갈아입어.”

“오호~ 그게 다구나. 그럼 마사지는 내 침실에서 받아도 되겠네? 어차피 동생이잖아?”

왜, 말이 그렇게 되는 건데? 동생이라도 친동생이 아니잖아!

하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왠지 한번 입이 열리면 좋아한다고 고백할 것 같았다.

고백하는 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고백했다가 실패한다면 그때부터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집을 드나드는 건 힘들 것이다.

‘혹시 하란이가 날 좋아하나? …설마.’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일단 고백부터 했었는데 과거의 일이 자신을 너무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오빠, 들어와.”

옷을 갈아입은 하란이 문을 열고 말했다.

집을 많이 드나들었지만 하란의 방을 구경하는 건 처음이다.

“내가 알던 학교 선배 방 같다.”

엄청 화려할 줄 알았는데 조금 독특할 뿐 평범했다.

두 면의 벽엔 드론과 요상하게 생긴 기계들이 멋지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고 TV, 공기청정기 같은 가전이 놓여 있는 게 다였다.

“오~ 대학교 때 좀 노셨나 봐?”

“그건 아니고…….”

상처받을까 그 선배가 남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침대가 엄청 크네?”

방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건 침대였다. 킹 사이즈를 두 개 이상 붙여놓은 것만큼 컸다.

“…좁은 기숙사 침대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침대는 큰 게 좋더라고. 밟아도 되니까 올라와서 편하게 해.”

“으응.”

머뭇거리는 게 더 이상했다.

“잠 오면 자도 괜찮아.”

어깨를 천천히 주무르며 차가운 기운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흐트러진 임독양맥의 기운을 바로 잡기 위해 소주천을 시켰다.

“왠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야.”

“그게 느껴진다니 열이 많이 나긴 하나 보다.”

의식적으로 소주천을 계속 돌리면서 마사지를 통해 내부 장기와 근육을 풀고 열을 식혔다.

하란의 경우 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약간 탁해지고 열이 나는 것에 불과했기에 사용한 기운의 대부분은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

하란은 20분쯤 지나자 새근거리며 잠들었다. 그러나 발끝까지 완전히 마사지를 해준 후에야 일어났다.

문득 땀에 젖은 머리가 눈에 거슬려 손을 뻗다가 멈췄다.

현재의 행동은 스스로가 말한 동생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여기저기 보는 눈도 많다.

“…푹 자.”

갈 길을 잃은 손으로 이불을 덮어준 후 거실로 나왔다. 점심은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루시에게 말했다.

“루시, 하란이 깰 것 같으면 말해줘.”

-오늘 하란 님 방은 들여다볼 수 없어요.

“…그래?”

-두삼 님의 방금 표정, 가끔 하란 님의 운동하는 모습을 볼 때와 같은…….

“…아무 표정 아니거든. 쓸데없는 소리 마.”

-이제 두삼 님마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말하는군요. 하지만 방금 표정은…….

깨톡!

“아! 메시지 왔다. 확인 좀 할게.”

곤란함에서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깨톡은 박기영 작가였다.

방청권을 줄 때 시간되면 잠깐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고 답장을 보낸 후 밖으로 나가자 그는 이미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왜 거기서 나와?”

“친한 동생 집이에요. 가까운 커피숍으로 갈까요?”

“그냥 가게에서 얘기하지, 뭐.”

“그래요.”

가게로 들어가 차를 놓고 마주했다.

“자! 이건 다음 주 방청권.”

“항상 감사합니다.”

“혹시 왔을 때 얘기나 할까 해서 살펴봤더니 다 다른 사람들이 왔더구먼.”

“형도 알다시피 제가 좀 시간이 없잖아요?”

집이 근처라 가끔 들러 차를 마시고 가다 보니 형, 동생 할 정도로 친해졌다.

“아직도 바쁘냐?”

“점점 더 바빠지고 있어요. 이방익 선생님은 물론 저도 예약 손님 받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요.”

“그래? 부탁 하나 하려 했는데 그럼 안 되겠네?”

“무슨 부탁인데요?”

“이번에 드디어 새로운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됐거든. 가제는 ‘새 삶을 드립니다’야.”

“예전에 참가자들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 성형해 주는 그런 프로그램요? 욕 많이 먹지 않았나요?”

“많이 먹었지. 성형수술 조장한다는 얘기도 많았고. 하지만 시즌5까지 갈 만큼 성공했어.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제법 있었고. 물론 우리가 그 포맷 그대로 간다는 건 아냐.”

“그럼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프로그램이야. 병원은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대신 이름을 방송에 알리게 되고, 우리는 그걸 그대로 방송에 담는 거지.”

“예능인데 너무 어둡지 않아요?”

“감동을 주느냐, 측은함을 주느냐는 연출팀이 신경 써야 할 영역이지. 넌 그냥 할 건지만 결정하면 돼.”

“음…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우선 시간 좀 주세요.”

거절하려던 두삼은 문득 하란을 떠올리곤 생각을 바꿨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그 갭을 줄이려 노력해 봐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병원과도 얘기를 해야지. 하지만 그 전에 네 생각을 듣고 싶어서 왔어.”

“음, 어떤 분야인데요?”

“당연히 네가 맡고 있는 분야지. 중증 비만 환자로 걷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야.”

“중증 비만 환자요? 해보고 싶긴 하네요.”

현재 찾아오는 손님 중 비만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자신의 몸을 좀 더 아름답고 예쁘게 가꾸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몸을 꾸미고 관리하는 것이 스스로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활기차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기껏 준비하고 있던 것들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방익 선생님껜 말씀드려 보셨어요?”

“이 선생님께는 전화로 해봤지. 그게 아무래도 예의일 것 같아서 말이야. 한데 1년간은 안 되신대.”

“아! 병원 팔아서 안 되시겠구나.”

“이 선생님도 널 추천하시더라. 나도 네가 하는 편이 더 좋고.”

“그래요?”

“당연하지. 이방익 선생님은 이미 유명해서 새로움이 없거든.”

이방익이 허락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언제까지 결정하면 돼요?”

“빠를수록 좋지. 이미 몇몇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시작했거든.”

하긴 치료가 하루 만에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몇 달은 기본으로 걸리니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맞다.

“알았어요. 일단 병원에 말한 후 연락드릴게요. 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오케이! 그리고… 그때 영상 사용해도 되지?”

“무슨 영상… 아! 그때 찍힌 거요? 근데 그걸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니가 몰라서 하는 말인 것 같은데 그 영상 지금 봐도 소름 돋아. 이번 프로그램도 솔직히 네 모습을 보고 기획한 거야.”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피 색깔만 보고도 정맥이 파열되었는지 구분할 수 있어요.”

“누가 뭐래? 그냥 그 장면이 극적이라 쓰겠다는 거야. 왜? 껄끄러워?”

“아뇨. 사용하세요.”

생각해 보니 어차피 병원에서도 곧 침을 이용한 마취를 공론화시킬 것이다.

그러니 파장은 있을지언정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기에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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