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77화 (76/122)

# 77

23. 개원(1)

뇌전증은 불치병은 아니다.

약물치료를 통해 60~70퍼센트의 환자가 나을 수 있고 약물로 치료가 되지 않는 환자들의 경우 다시 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고칠 수 있다.

즉, 전체 뇌전증 환자의 70~80퍼센트는 현재의 치료 방법으로도 완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는 동안 치료를 받는 이들이 허다하다.

또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환자의 경우 발작이 일어나면 발작으로 인해 2차 피해만 없길 바랄 뿐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에 김영태 교수는 그저 먹는 것으로 뇌전증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길 원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걸 보면 과연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두삼이 연구실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기존의 뇌전증 약이 뇌전증 환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실험에 참여한 환자들은 하루 3회 이상 복용을 하면서도 뇌전증이 계속 발생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복용을 하지 않으면 더 자주 경련과 발작이 일어났다.

즉, 복용한 약이 억제 효과는 확실히 있음을 보여주는 환자들이었다.

시간대별로 몸속에 들어간 각각의 약이 어떻게 뇌에 작용하는지 살펴보는 건 흥미로운 일임과 동시에 무척 고된 일이었다.

약에 포함된 성분이 몸에 흡수되면서 뇌를 자극하는 전기적 신호를 찾아야 하는데 위의 작은 움직임들 모두가 뇌의 신호와 관련이 있다 보니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했다.

물론 일일이 살펴보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령 위산을 나오게 전기적 신호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나중에 위산 과다 환자를 치료할 때나, 위산 과다 약을 만들 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의 신호만 더 살펴볼까.’

위로 올라가는 신호를 다시 찾으려는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김영태 교수였다.

“아! 벌써 끝낼 시간입니까?”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쉬엄쉬엄하게. 얼른 점심 먹고 자네 과로 가보게.”

“네. 근데… 제가 하는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어. 지난 5년을 연구해도 실패했던 일이네. 편하게 마음먹게. 그리고 뭔가를 찾았다면 말해줄 거 아닌가?”

“그야 그렇죠. 그럼 고생하십시오, 선생님.”

“고생했네. 허허!”

조급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사실 신호를 찾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신호를 찾으면 치료를 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야 했고, 물질을 이용해 약을 만든다고 해도 임상 실험을 걸쳐야 하니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김영태 교수의 말에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 두삼은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안마과로 향했다.

안마사 중 일부가 바로 교육에 참석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교육은 이번 주로 미뤄졌다.

바로 오늘이 자신이 교육하는 날이다.

“한 선생님 어서 오세요.”

“도 간호사님, 식사하셨어요?”

“네. 선생님은요?”

“먹었죠. 다음에 같이 식사해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시고요.”

푸드코트에 사온 먹음직스러운 조각 케이크를 건넸다.

“어머! 케이크네요? 고마워요, 선생님. 커피는 드셨어요? 타드릴까요?”

“에이~ 그럼 제가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사온 것 같잖아요.”

“그럼 어때요? 서로 윈윈인데요?”

그녀는 금세 커피를 타왔다.

“커피 정말 맛있어요. 참! 안마사 교육은 2층 맞죠?”

“네. 2층 치료실에서 하시면 돼요.”

“근데 그분들은 어떻게 오시나? 다들 병원 근처에 사시는 것도 아닐 텐데요?”

“출퇴근 할 수 있는 병원 버스가 따로 있어요. 이 선생님이 제안하자 원장님이 바로 버스를 구해주셨대요.”

“참 대단한 분이네요.”

누굴 가장 존경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할아버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민규식이라고 답할 것이다.

돈을 밝히는 것 같으면서도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말을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지 않았다면 함께 일할 일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시간이 다 되었기에 2층 치료실로 갔다.

남자 넷, 여자 넷. 그리고 따로 떨어진 한 명.

“안녕하세요. 한의사 한두삼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들은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인사했다.

“거기 따로 앉아 계신 분은 누구시죠?”

“도우미예요.”

“그러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교육할 것은 비만 클리닉 관련 위의 활동량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남는다면 어깨나 허리, 무릎 통증과 관련된 걸 배우겠습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이들은 손끝이 남들보다 훨씬 예민하고 뛰어났다.

“혹시 더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신 분들은 저에게 스스럼없이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각각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위의 활동을 늦추는 방법을 실습해 보겠습니다. 푸는 방법 역시 가르쳐 드릴 테니까 저녁에 입맛이 없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호호호!

시답지 않은 농담에 웃어주다니 참 너그러운 분들이었다.

“점자로 된 매뉴얼은 나눠 드릴 겁니다. 일단 임맥의 하완혈을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정도로 눌러줍니다. 하완혈의 3분의 2을 자극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은 족소양담경의 일월혈을 침으로 찌르듯이 삼 분의 일, 검지의 반 마디 정도 찔러주세요. 우진희 씨 손 끝에 좀 더 집중하세요. 그렇게 찔러서는 소용없습니다.”

“…네. 선생님.”

옷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 잘못된 부분은 지적을 해주며 설명을 했다.

그런데 실습을 하고 있는 젊은 남자 안마사가 손으로 거리를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며 혈을 찾는 듯한 행동을 했다.

‘후천적 시각 장애인가?’

조용히 다가가 그가 들릴 정도로 말하며 팔을 잡아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준호 씨, 방금 말한 혈의 위치는 여깁니다.”

“아! 죄송합니다. 아직 익숙하지 못해서…….”

“한데 시력이 있으세요?”

“…네, 아직……. 윤곽은 보이는 정도랄까요.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곧…….”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시력이 남아 있는 건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모르면 물어보세요. 처음부터 잘하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력이 당당함까지 앗아갔는지 이준호는 계속해서 저자세였다.

얼마 전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신경 써주기로 했다.

“자! 여기까지입니다. 잘됐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누워 있는 네 명에게 손을 올려 확인해 보니 1명은 확실하게 시술에 걸려 있었다.

“전공효 씨만 성공하셨네요. 다들 좀 더 집중해서 해보세요.”

“근데 선생님.”

전공효가 입을 열었다.

“성공했는지 어떻게 구분을 하는 거죠?”

“혹시 귀 반사요법 아세요?”

“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위 반사구를 눌러보세요.”

전공효는 누워 있는 안마사의 귀 반사구를 눌렀고 누워 있던 안마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아아~”

“자! 이번엔 풀어드릴 테니까 다시 한번 해보세요.”

몇 곳의 혈을 자극해 풀어버렸다.

전공효는 곧장 다시 반사구를 눌렀다. 그러나 이번엔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신기하군요.”

“다시 해보세요. 다시 성공하면 푸는 법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자자! 성공할 때까지 합니다. 집중하고 계속하십시오.”

네 사람이 하는 양을 지켜보며 부족한 부분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아!”

짧은 비명에 고개를 돌리니 전공효의 자리였다. 그는 두 번째도 성공했다.

“막았던 자리를 안마하듯이 주물러 주세요. 물론 집중을 하셔야 합니다.”

“집중하라고 말하는 건, 혹시 기를 이용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기를 이용한 안마는 눈에 보이지 않아 증명할 순 없습니다만…….”

“기는 존재합니다!”

전공효는 기가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가 잘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볼 순 없겠지만 그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한 후 다른 안마사들을 향해 말했다.

“기는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기가 없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믿으세요.”

‘내가 신이다!’라고 말하는 사이비 교주 같다.

“근데 아까와는 다르게 푸는 것 같았는데요.”

“그건 저만의 방법이랄까요. 원한다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만 주무르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안마사인데 주물러야죠.”

“저도 같은 생각으로 혈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풀고 나면 두 분은 위치를 바꾸세요.”

위의 움직임을 둔화시킬 방법을 찾다 보니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자신이 한다면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없지만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니 최대한 안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혹시나 이러한 안마법이 퍼져 나갔을 때를 대비해 실수를 하더라도, 해법을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성공하더라도, 안전해야 했다.

성공해도 사흘에서 나흘 정도 지나면 풀리고 꼼꼼히 마사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풀리는, 효과는 떨어지지만 안전을 고려한 방법이었다.

“아, 아~”

또 한 명이 성공했다. 우진희였다.

“풀고 다시 한번 해보세요. 성공하면 교대하시고요.”

이준호를 제외하고 세 사람이 성공했다. 그러자 그는 더 당황했는지 손이 더욱 어지러워졌다.

“천천히 해도 돼요. 일단 교체한 후에 유현 씨가 하는 거 몸으로 느껴보고 해봐요.”

“…네.”

교육은 세 시간이 넘게 진행된 후 끝났다.

일곱 명은 모두 두세 번씩 성공했고 이준호는 마지막에 한 번 성공했다.

“이틀 후에 확인을 다시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안 된다고 너무 기죽지 마세요. 금세 할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수업을 끝내고 진료실로 내려오자 이방익 과장은 도 간호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제법 친해졌기에 한마디 했다.

“어째 매일 도 간호사님과 수다 삼매경입니다?”

“할 일 없는데 진료실에서 처박혀 있으리? 그리고 방금 클리닉 관련 회의 마치고 온 거거든.”

“아직도 결정 안 났어요?

“오늘 결정 났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표정에 우쭐함이 가득한 것 보니 비만 클리닉은 하기로 했나 보네요.”

“…재미없는 놈. 조건부로 가져왔다.”

“웬 조건부요?”

“사상체질과에서 절대 포기 못 하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우리가 맡는 대신 클리닉 매출 순위 6개월간 3위 안에 들기로 했다.”

“못 하면요?”

“훗! 비만클리닉으로 3위 안에 못 들면 사상체질과에 넘기는 게 나아.”

“자신감이 엄청 나시네요?”

“왜? 넌 자신 없냐?”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지 않는 손님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걱정 말고 개원하는 날부터 이틀 동안은 오전부터 일해라.”

“그야 어렵지 않아요. 그거면 돼요?”

“하나 더. 네 실력은 인정하는데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겠다. 진맥을 통해 그 사람이 어디가 이상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

두삼은 볼을 긁적거리며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네.”

“그럼. 도 간호사 한번 진맥해 봐. 도 간호사는 맞는지 맞지 않는지 대답해 주고.”

“공짜 진료인가요? 자요!”

도 간호사는 냉큼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같이 일하는 도 간호사 몸이나 봐주자는 생각에 맥을 잡았다.

손이 하얗게 빛나고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제왕절개 하셨네요. 근데 수술한 의사가 좀 급하게 마무리했네요. 가끔 아랫배 부근이 불편하지 않아요?”

“어머! 맞아요.”

“그리고… 척추 추간판 탈출증이 있네요. 허리가 가끔 아프고 오른 다리가 저리겠네요. 심한 건 아닌데 오른쪽으로 가는 신경이 자세에 따라 눌려요.”

“에… 마, 맞아요.”

“신장이 조금 안 좋으세요. 부종이 심할 테고… 하체 비만이 있으시네요. 그건 몸이 차서 그런 거예요. 이럴 경우 생식기에 냉증이 자주 나타나죠.”

“…….”

“이런 경우 성관계를 통해…….”

“그, 그 얘기는 그만해 줄래요, 한 선생님!”

“아! 죄송해요. 그건 넘어가고… 요즘 무슨 걱정 있으세요?”

“…왜요?”

처음엔 놀라더니 이젠 슬슬 걱정이 되나 보다.

“간의 기운에 울증이 있어요. 보통 가슴이 답답하거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 일어납니다. 심하진 않는데 잘못하면 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그만해요. 점점 불안해요.”

“…위장 장애가 조금 있는 게 마지막입니다.”

“허어~ 도 간호사 반응을 보니 다 맞나 보네. 진맥만으로 그 정도까지 파악이 가능하다니, 의료기기가 필요가 없겠어.”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리고 설령 볼 수 있다고 해도 환자에겐 검사를 하게 할 겁니다.”

“좋은 생각이야. 비싼 의료기기 본전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록을 남겨두는 게 더 중요한 법이지. 자! 진료를 마쳤으니 이제 치료를 해야지. 진료실로 가세. 도 간호사도 가지.”

“…왠지 무서운데요.”

“한 선생 마시지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나 보군. 말했잖아 마사지 숍도 한다고. 또 해달라고나 하지 마.”

도 간호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진료실로 들어왔다.

그러나 마사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중목욕탕의 따뜻한 물에 들어간 사람처럼 묘한 소리를 냈다.

두삼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항상 맛있는 커피 타주시니까 오늘은 제가 서비스를 팍팍 해드리죠.”

“…지금이 좋은 거 같은데요.”

“아닐걸요.”

기운을 밀어 넣어 임독맥을 몇 바퀴 돌린 후 하체 쪽에 집중했다.

막혀 있는 부분을 일일이 다 뚫기엔 기운도 시간이 부족했기에 큰 맥 위주로 좁혀진 곳을 뚫어줬다.

“…와아~”

끝마쳤을 때 도 간호사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감탄사를 토했다.

“괜찮았어요?”

“괜찮았냐고요? 대단해요, 아니, 훌륭해요. 만일 내가 돈이 있다면 매일 마사지를 받을 거예요.”

최고의 찬사였다.

“좋았다니 기쁘네요. 울증은 약을 좀 먹어야 할 거예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기운을 보해야 해요. 제가 준비해 줄 테니 드세요.”

“비용은 내가 낼게. 임신했을 때 해주려고 했는데 그때 바빠서 제대로 못 해줬거든.”

“비싼 약재 팍팍 넣습니다.”

“그렇게 해. 근데 나 역시 한의사라는 걸 잊지 말게.”

“흠! 이 기회에 저도 한 첩 먹을까 했는데. 뭐 더 확인할 거라도?”

“됐네. 오늘 정도면 충분해. 그리고 한 첩 해먹어. 다만 각오해야 할 거야.”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각오하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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