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69화 (68/122)

# 69

20. 새로운 직원(2)

***

두삼이 열심히 뇌전증을 환자를 보고 있을 때 민규식은 임철호, 임동환 부자를 만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임철호는 자리가 무르익자 본론을 꺼냈다.

“어제 이사회는 잘 끝나셨습니까?”

“임 원장님의 덕분에 무사히 첫 인선이 끝났습니다.”

“허허!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무슨 말씀을 임 원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참 걸렸을 겁니다. 이사진이 한방의학계에 대해 잘 몰라서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밤늦게야 끝이 났습니다.”

“고생하셨군요.”

“고생은요. 제 일인데요. 참! 인선 명단을 가져왔는데 보시겠습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셨겠죠.”

말과 달리 임철호는 민규식이 건네는 서류를 받았다. 그리고 제일 처음 확인한 곳은 침구과.

‘있다!’

침구과 척추 및 관절, 마비질환 담당의 임동환.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내후년에 생기는 한강대 교수자리까지 앉을 수 있는 위치였다.

기쁨에 상 밑으로 아들의 손을 꽉 잡아 결과를 넌지시 알려주던 그는 바로 위에 있는 침구과 과장의 이름을 확인하곤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폈다.

‘꼭 필요할 거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혹시나 싶어 센터장에 이름을 올렸나 싶어 확인을 해봤지만 없었다.

탁고성을 밀려고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가까이는 침구과를 장악하고 멀리는 센터장까지 만들어 임동환의 디딤돌로 쓰려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큰 그림을 그리려 했는데 처음부터 삐걱거리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물론 기분을 완전히 내보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부드럽게 돌려서 물었다.

“탁고성 교수의 이름이 안 보이는군요? 침구과에선 그 사람만큼 대단한 사람도 드문데······.”

“아! 그 얘기라면 사연이 깁니다. 이사 중에 알력 다툼을 무척 싫어하는 이가 있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알력 다툼이라니요.”

“제 말이요. 얼토당토않은 말이죠. 저 같은 경우는 알력 다툼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주의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 양반이 임동환 선생과 같은 학교라는 점을 들어 반대를 했습니다.”

“···한의사계는 의외로 좁습니다.”

“저도 한의대의 숫자를 말하며 그렇게 설득을 했습니다. 한데 막무가내더군요. 거기에 다른 이사들까지 선동하며 임동환 선생과 탁고성 교수 둘 중 한 명만 선택하라고 하더군요.”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죠. 그렇다면 당연히 임 선생 아니겠습니까?”

“···그리 생각해 주니 감사합니다.”

“침구과 과장으로 선택된 분은 뜸을 위주로 하시니 임 선생과 겹치는 부분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실력을 펼치기엔 더 없이 좋을 겁니다. 허허허!”

임철호는 웃지 못했다.

찬찬히 인선 명단을 살펴보니 자신이 권한 이들도 있지만 아들의 앞날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없었다.

‘역시 대학병원 원장이 그냥 된 건 아닌 모양이군.’

기껏 여러 사람 만나가며 노력한 것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임동환을 자리에 꽂았다는 것으로 일단 만족해야 했다.

민규식과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는 차 안.

생각을 정리한 임철호가 임동환에게 말했다.

“최종 면접을 과장급에게 맡길 생각이라니 빠른 시간 안에 경해대병원에 얘기해야겠구나?”

“경해대의 경우 워낙 노리고 있는 애들이 많으니 말만 하면 금방 처리될 겁니다.”

“거긴 항상 T.O가 부족하긴 하지. 근데 네가 옮긴다는 거 사귀고 있다는 아가씨도 아냐?”

“예.”

“반대하진 않고?”

“제가 잘되는 일인데 왜 반대하겠습니까. 경해대병원 분위기도 잘 알고 있어서인지 꼭 합격하라고 응원도 해줬습니다.”

“철딱서니가 없는 건 아니라 다행이구나. 집안만 좀 더 번듯했으면 좋았을 텐데. 쯧!”

“······.”

임철호가 주해인과의 관계를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는 걸 알기에 임동환은 입을 닫았다.

“사랑이 얼마나 갈 것 같아? 여자가 남자의 능력을 보는 것이 나쁘지 않듯 남자가 여자의 배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만하시죠.”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후우~ 듣기 싫다니 더 말하지 않으마. 다만 민 원장에게 딸이 있다. 내년 1월에 전문의 시험을 보게 되는 아이지.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한······.”

“아버지!”

현재 살고 있는 높이에서 올라가면 올라갔지 결코 내려가고픈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건만 보고 싫은 여자와 억지로 살고픈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는 말이다. 말한다고 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존심을 살짝 긁었지만 무시했다.

“아무튼 도울 수 있는 건 돕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또한 민 원장이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알 순 없지만 비빌 언덕은 없어졌다. 이제부턴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

“···그러겠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명단을 보니 대부분 유한 인물들로 인선을 했더구나.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네 스스로 파벌을 만들 수도 있을게다.”

“반드시 자리를 잡겠습니다.”

“네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할 게다.”

서로 간에 잠시 언성을 높여서인지 임철호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

“총각, 천천히 먹어. 급하게 먹다가 체해.”

“네, 네.”

가게 할머니의 말에 그러겠노라 말하면서도 두삼의 손은 연신 앞에 있는 족발을 먹어치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중자 두 개를 먹어치운 후에야 숟가락을 놨다.

“하아~ 이러다가 살찌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이틀 연속 폭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말뿐인 걱정이다.

몸이 필요로 하는데 안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할머니! 족발 대자 두 개 따로 따로 포장해 주세요.”

가게에서 일하고 있을 두 사람과 화나 있을 한 사람을 위해 족발을 산 후 가게로 갔다.

먼저 들른 곳은 하란의 집.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하란이 마당에서 요가를 하고 있었다.

근데 하란의 주변에 떠 있던 드론들이 마치 주인을 지키는 개처럼 일제히 두삼의 쪽을 보며 경계를 취한다. 저러다 진짜 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애써 무시하고 인사를 했다.

“아침엔 약속 있어서 나갈 것처럼 그러더니 아무 데도 안 나갔네?”

“누군가가 자꾸 점심 약속을 안 지켜서 나갈 기분이 아냐. 근데 웬일?”

수영장에서 한 점심 약속을 바빠서 못 지키고 있었다. 그랬더니 기분이 상했나 보다.

“미안. 이거 주려고 왔어.”

“···뭔데?”

“족발. 아는 사람만 안다는 진짜 맛집에서 사온 거야. 그러니 용서해 주라. 아파하는 애들을 하루라도 빨리 덜 아프게 해주려고 그런 거야. 너도 그 애들 아파하는 거 봤음 이해했을 거야.”

구구절절 변명이 통했을까, 아님 족발 때문이었을까 한결 눈빛이 누그러졌다.

“설마 족발로 점심 약속 퉁 치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점심 약속은 당연히 따로 지켜야지. 저녁도 사준다.”

원래는 퉁 하려고 사온 건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껴 얼른 대답했다.

“그래? 그럼 용서해 줄까? 가지고 안으로 들어와.”

“···효원이도 없는데 괜찮겠어?”

당연히 들어가기 싫어 한 말이다. 30분 후 신혜경이 소개해 주겠다는 마사지와 약속이었다.

한데 다른 뜻으로 오해를 했나 보다.

“걱정 마. 이 드론들 나름 무기를 장착했어. 얜 마취제, 얜 전기충격기, 얜 ···비밀.”

비밀이라고 말할 때 눈빛이 사악해지는 걸 보니 독인지도 모르겠다.

먹는 동안만 있다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맛있다! 오빠도 먹어.”

“난··· 그, 그래!”

방금 전에 먹고 와서 괜찮다고 말하려다 보니 다시 댕긴다.

이러다가 입에서 발 냄새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먹었다.

“여사님은 여행 즐거우시대?”

“응. 사진 보내셨는데 볼래?”

배영옥은 여고 동창생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갔다.

중국의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 배영옥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행복해 보이시네.”

“다 오빠 덕분이야.”

“그런 소리 마. 대가는 분에 넘치게 받았으니까. 난 이만 일어나야겠다. 지금 새로운 마사지사 면접 좀 봐야 하거든.”

“오빤 여전히 바쁘게 사네.”

“이제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나쁘지 않아. 바쁘게 사는 덕분에······.”

말을 하다말고 멈췄다.

이어 나오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였다.

“말을 하다가 말아? 바쁘게 사는 덕분에 뭐?”

“하하! 뭔가 멋진 말을 생각한 것 같은데 까먹었다. 간다.”

혹시나 생각한 바를 들킬까 얼른 현관을 나섰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너와 함께하는 짧은 시간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려 하다니 미친 거 아냐? 정신 좀 챙기면서 살자, 두삼아!”

***

“다들 일하나?”

가게로 들어가자 카운터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현관을 지나면 들리는 차임벨 소리를 듣고 미령이 나왔다.

일을 하다가 나왔는지 손에 화장품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오빠 왔어요?”

“응. 카운터는 내가 볼 테니까 넌 일해.”

“네. 그럼 좀 이따 봬요.”

옷부터 갈아입자는 생각에 탈의실에 들어갔는데 걸어뒀던 유니폼이 없다.

“응? 안 가지고 왔나?”

2층에 올라가서 찾아봤지만 빨래 걸이에 걸어둔 여분의 유니폼밖에 없었다.

“아침에 분명 걸어놓고 나간 것 같은데, 아닌가?”

확신이 없다. 일단 빨래 걸이에 있는 옷을 입고 카운터로 내려갔다. 그리곤 양치를 하고 차를 마셨다.

“그나저나 온다는 사람은 아직 안 온 거야? 아님 내가 늦어서 그냥 가버린 거야?”

하란과 족발을 먹느라 5분쯤 늦었다.

후자라면 사과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신혜경이 일을 마치고 나왔다.

“고생했어요. 근데 오늘 온다는 사람은 안 왔어요?”

“아니, 왔어.”

“혹시 제가 늦어서 갔어요?”

“그게 아니라··· 지금 안에서 손님 마사지하고 있어. 미안! 갑자기 두 분의 손님이 오는 바람에 마사지를 하게 됐어.”

면접 보러 왔다가 일을 하고 있다는 건가?

혹자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두삼은 딱히 신경 쓰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건 상관없는데 손님 반응 봐서 돈은 받지 마세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걸.”

“도대체 누구기에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몇 번 방에 있어요?”

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자 일어났다. 한데 도착하기 전에 마사지룸 문이 열리며 덩치 큰 남자가 나왔다.

아주 잘 아는 얼굴이 자신의 유니폼을 터질 듯이 입고 있었다.

“어! 이 선생님! 선생님이 여기에 왜?”

과거에 다녔던 마사지 학원의 강사, 이진철이었다.

“왜긴, 직장 구하러 왔지.”

“학원은 어쩌고요?”

“내 학원이냐? 월급도 안 올려주는데 계속 있을 이유가 없지. 근데 계속 여기서 얘기할 거야?”

“아! 저쪽 테이블로 가죠.”

손님이 없을 때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먹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진짜 우리 가게에 오시겠다고요?”

“그럴까 생각 중이다.”

“음, 선생님이 오면 좋긴 한데······.”

이진철의 실력은 두삼도 인정한다. 덩치가 커서 다소 위압적으로 보이는 건 오랜 학원 생활에서 나오는 입담이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드냐?”

“아뇨. 월급이 마음에 안 들까 봐요.”

“학원 강사 월급이 많은 줄 아는구나?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형편없다. 그래서 그만둘 생각을 한 거고. 지금 혜경 씨가 받는 기본급에서 조금만 더 주면 돼.”

“···진짜요?”

“거짓말을 왜 해. 4대 보험도 다 해준다며? 게다가 열심히만 하면 많이 가져가는 구조잖아. 어설프게 가게 내는 것보다 여기서 일하는 게 훨씬 많이 벌겠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특히 가게를 하다 보면 별 거지같은 놈들이 많은데 그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도 적격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일은 언제부터 하실래요? 전 가급적 빠른 게 좋아요.”

“그럼 내일부터, 아! 내일은 일요일이구나. 월요일부터 할게.”

“학원에 그만둔다고 하셨어요?”

“응. 오늘 여기 오면서 그만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떨어졌으면 어쩌려고요?”

“어쩌긴 제발 고용해 달라고 싹싹 빌었겠지.”

“아깝네요. 선생님이 싹싹 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아야!”

이진철이 딱밤을 때렸다.

“이미 늦었거든! 그리고 앞으로는 그냥 음··· 그러고 보니 사장님인데 이렇게 호칭을 부를 순 없겠고··· 형이라고 할래? 혜경 씨 실력 보니까 네가 너한테 배워야겠더라.”

“가르침을 받겠다는 사람이 스승을 때리면··· 이크! 이번엔 피했네.”

다시 때리려 했기에 뒤로 슬쩍 물러났다.

“농담입니다. 알고 지낸 시간이 있으니 그냥 형, 동생 하기로 하고··· 그럼 월요일부터 나오는 걸로 알게요. 오늘은 족발 사왔으니까 먹고 가세요.”

“족발 좋지!”

“제가 가져올게요. 아참! 근데 형, 혹시 혜경이 누나랑 무슨 관계예요?”

“···가, 갑자기 무슨 소리냐?”

“아니, 혜경이 누나 학원 그만둔 지 몇 달 됐잖아요? 근데 형이 학원 그만두고 싶어 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해서요.”

“그, 그게 왜 궁금해? 내가 소개해서 너한테 보냈는데 잘 지내나 싶어서 그런 거지.”

“학원생을 걱정하는 마음이다?”

“그래!”

“아하~ 그렇구나. 난 형이 그렇게 학원생들을 위하는지는 몰랐네요. 그럼 미령이와도 연락하는지 물어봐야겠네요.”

“···이 자식이! 미령인 내 담당이 아니거든!”

얼굴이 빨개진 이진철은 갑자기 두삼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그리고 두삼은 관자놀이가 깨질 듯한 고통을 겪은 후에 비밀로 하기로 하고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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