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19. 진정한 의사(4)
“아~ 역시 피곤이 다 풀리는 느낌이라니까. 근데 한 사장,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냐?”
가게를 오픈하고 단골이 된 남자 손님이 마사지가 끝이 나자 가볍게 책망했다.
전에 방문했을 때 자신이 없어 신혜경에게 마사지를 받은 것이 불만이었나 보다.
“혜경이 누님도 잘하잖아요. 그리고 이성에게 받는 게 기운적인 측면에선 더 좋습니다.”
“그렇긴 한데 우리 마누라가 여자한테 받는다는 걸 알면 큰일 나.”
“그럼 오시기 전에 연락주세요. 아님, 사모님 한번 모시고 같이 오시던가요. 경험을 해보고 나면 달라지지 않겠어요?”
“아! 그 방법이 있었네.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
“씻고 나오세요.”
마사지실 밖으로 나오는 두삼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일주일 사이 세 번짼가?’
예약을 받지 않는 날이 많아지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빈자리를 느낀다는 건 문제였다.
아직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손님들의 불만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다 보면 서서히 망하는 것이다.
‘남자 마사지사를 구해야 하나?’
지난달 가게를 통해 번 돈을 생각하면 중견 마사지사를 고용해도 가게를 세놓고 내부 인테리어 비용의 감가상각비 정도는 나왔다.
‘문제는 괜찮은 실력자여야 하는데··· 일단 혜경이 누님이랑 미령이와 상의를 해야겠어.’
아무래도 더 바빠지기 전에 해결을 해야 할 것 같다.
생각을 마칠 때쯤 한미령이 다가왔다.
“오빠, 끝났어요?”
“응. 손님 오셨어? 그럼 5번 방으로 보내.”
“손님은 맞는데 마사지 손님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 청소는 내가 할 테니까, 넌 네 일해.”
“제 일 10분 전에 끝났어요. 손님과 얘기하면서 카운터나 좀 봐줘요.”
그녀는 같은 집에서 살게 되면서 친해져서인지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긍정적인 변화였기에 고맙다고 말한 후 카운터 쪽으로 갔다. 병약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자신을 보더니 대기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절 찾으셨다고요? 무슨 일로··· 아! 손님은!”
“기억납니까?”
위암이 있으니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던 남자였다.
“수술을 받으셨나 보군요?”
“덕분에 잘됐습니다. 오늘 퇴원했는데 아무래도 감사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감사는요. 제가 오히려 감사하네요. 안 그래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셨는지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해봐야하나 고민했습니다.”
마사지를 받을 때 등록해 둔 번호가 있었다.
“사실 이튿날 달려가서 검사를 받을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데 암이라고 나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발을 붙잡더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준비를 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민규식 병원장이 말했던 것인가.
“준비는 잘하고 병원에 가신 겁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그리고 회사와 연계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정말 위 바깥쪽에 암이 있더군요.”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수술 잘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보험 회사야 생돈 나가는 것이니 아쉽겠지만 어쩌겠는가. 병원이 아닌 이곳에서 암이 발견된 것도 그의 운이라면 운이었다.
“병원에서는 천운이라고 했지만 전 그 천운을 누가 줬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거라도······.”
그는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아닙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약소합니다. 돈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상품권으로 준비했습니다. 저희 가족의 은인에게 이 정도 성의도 주지 못한다면 평생 마음에 걸릴 것 같습니다.”
“이러시면······.”
그는 옷을 붙잡더니 강제로 넣는다. 완강히 거부할 수 있었지만 아픈 사람을 밀쳐낼 수 없었기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처음 발견한 신혜경 씨에게 주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십시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는 몇 번 더 고개를 숙인 후 도망치듯이 가버렸다.
봉투를 들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신혜경이 일을 마치고 나왔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이거 받아요.”
“뭔데?”
그녀는 봉투를 받더니 안을 살폈다. 근데 10만 원짜리 상품권 100장이 나오자 눈이 커졌다.
“이게 뭐야! ···이걸 왜 나한테 줘?”
“전에 누나가 마사지하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한 사람 있죠?”
“그랬었나? 내 나이가 되면 깜빡깜빡해.”
“왜 있잖아요. 누나가 그렇게 말해서 제가 진맥을 했었잖아요.”
“···아하~ 그,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간 중년 남자 말이지? 기억나.”
“그분 암이었어요.”
“에~ 진짜? 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 근데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가 왜 왔고, 왜 상품권을 줬는지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해줬다.
“그니까 암을 발견하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라는 거지? 그럼 나한테 줄 것이 아니라 동생이 가지는 게 맞지. 진찰을 한 건 동생이잖아.”
“누나가 아니었으면 진맥을 안 했겠죠.”
“그런 식으로 따지면 네가 나한테 마사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이상함을 못 느꼈겠지. 그럼 그냥 다 같이 나누자. 4:3:3 비율로 나눠. 물론 네가 4야.”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뭐가 4고 뭐가 3이에요?”
한미령이 끼어들어 또 다시 얘기가 길어졌다.
자신이야 버는 돈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다들 왜 그렇게들 돈을 싫어하는 건지. 아니, 혼자 가지기 염치가 없어서 그런가.
결국 상품권은 4:4:2로 나눴다.
“잠깐 옆집에 갔다 올게요. 손님 오면 연락주세요.”
“안 오고 즐거운 시간 보내도 돼. 문은 우리가 잠그면 되니까.”
“···일하러 가는 거예요.”
“일만 하지 말라는 거야. 파이팅!”
하여간 주책은 변함이 없다.
삑삑삑!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몇 대의 CCTV가 자신을 노려본다.
“저러다 무기까지 나오는 거 아냐?”
하란이 뭔가를 만들어 하나씩 설치했는데 점점 요새화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CCTV뿐만 아니다. 현관 앞에 이르자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기계음이 들렸다.
-어서 오세요, 두삼 씨.
“좋은 밤이야, 루시.”
하란이 만든 프로그램 목소리임을 알면서도 대답을 하게 된다.
-그러게요. 구름이 잔뜩 끼여 달을 볼 수는 없지만 좋은 밤이에요.
“헉! 마, 말을······!”
아침까지 없던 기능에 깜짝 놀랐다.
-업그레이드되었거든요. 하란 님과 효원 양은 현재 수영장에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에 올게.”
-들어오시라는데요. 다만 래쉬가드를 입고 있으니 실망 마시라네요.
···실망이다.
지하로 내려가자 유리로 된 문 뒤로 수영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란은 수영 중이고 이효원은 걷기를 하고 있었다.
“효원이 체크하러 왔어?”
검은색에 하얗고 짙은 회색빛 꽃문양이 그려진 래쉬가드를 입은 하란이 물속에서 나오며 물었다.
“···응.”
“래쉬가드라 실망한 표정이네?”
“시, 실망은 무슨!”
진짜 실망한 게 아니다. 래쉬가드를 입었는데도 물에 젖은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려서 얼굴이 굳었을 뿐이다.
“풉! 솔직하지 못하네. 오빠도 수영할래?”
“일하는 중에 온 거야. 효원아, 손.”
거의 다가온 효원을 향해 앉으며 손을 뻗었다. 한데 효원 대신에 하란이 손을 척하고 올렸다.
“···니가 손을 왜 올려?”
“이렇게 하려고!”
하란은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확 잡아당겼다.
‘버틸까?’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몸에 힘을 뺐다.
결과는 빤했다. 그대로 물에 처박혔다.
“깔깔깔! 시원하지?”
처음 시장에서 봤을 땐 차가워 보였고 배영옥의 치료 때문에 집에 머물 땐 어른스러워 보였다. 근데 지금은 아직까지 동심을 가지고 있는 소녀로 보였다.
나름 보기 좋았기에 잠깐 동조해 주기로 했다.
손을 이용해 물을 쏘았다.
“···이게 정말!”
“꺅! 효원아, 공격해!”
갑자기 벌어진 2 대 1의 물싸움.
처음엔 맞춰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자신도 즐기고 있었다. 두 여자의 집요한 공격에 결국 손을 들었다.
“하, 항복! 항복!”
“호호호! 이겼다!”
“물 먹었다. ···그렇게 좋냐?”
“당연히. 항복했으니까, 내일 점심은 오빠가 쏘기다.”
“내일은 안 될 것 같아. 민 원장님이 보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래 걸릴 분위기야.”
“무슨 일인데?”
“아마도 새로운 환자 치료.”
자세한 얘긴 하지 않았지만 영화관에서 일을 언급하는 것이 뇌전증 치료에 대해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상관없었다. 본래 조금 한가해지면 환자를 보게 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조금 빨라진 것뿐이다.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냐?”
“그동안 시간을 버린 벌이지. 점심은 모레 다 같이 먹기로 하자.”
“어쩔 수 없지.”
“물에 들어온 김에 여기서 보자. 효원이 손 줘봐.”
이효원의 손을 잡고 다리를 살폈다.
그동안 왼발에 비해 약해 있는 오른발의 근육 키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정은 아직 안 됐지만 양다리의 균형은 이룬 것 같으니 내일부턴 양다리를 고르게 훈련하자.”
“알았어요.”
“난 이만 간다. 내일 봐.”
수영장을 나와 비치된 수건으로 대충 닦고 올라갔다. 현관을 나가려 하자 다시 루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바로 옆집이야.”
-형식적인 인사예요.
“······.”
왠지 하란의 집을 드나드는 게 점점 무서워진다.
***
나연섭을 등교시키고 이효원의 운동을 체크해 준 후 병원으로 갔다.
“어서 오게. 녹차?”
“감사합니다.”
민규식은 다기에 녹차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권진영 환자, 자네가 극장에서 도움을 준 환자 이름이 권진영이네, 상황이 호전되었다네.”
“그렇습니까?”
“혹시··· 치료를 했나?”
어젯밤에 이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떻게 대답을 할지 고민했다.
신경의 흐름은 물론이고 신경세포가 보인다는 것을 말해야 할까? 아님 숨겨야 할까?
민규식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가 느껴지고 그를 이용하는 한의사는 ‘특별한 인간’정도로 치부될 수 있지만 몸의 전기적 신호와 세포 단위까지 볼 수 있다는 건 인간이라기 보단 정밀 기계, 혹은 특별함보단 두려운 존재로 생각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에 전기적 신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치료라기엔 애매합니다. 기를 이용해 뇌를 살피다 보니 뭔가 걸리는 것이 있더군요. 그래서 이상이 느껴지는 부분에 기를 투입해 봤습니다. 그에 안정을 되찾긴 했는데 치료까진 된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오호~ 그리 된 일이었군. 결국 실험을 몇 번 더 해봐야 정확히 자네의 기운 때문인지 알게 되겠어.”
“저 역시 해보고 싶습니다. 근데 권진영 씨의 일은 어떻게 아시게 된 겁니까?”
“그건 말이지······.”
민규식은 신경과 김영태 선생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런 분이 계셨군요?”
무협지를 보면 강호에 수많은 은거기인이 있듯이 의사들 중에도 의학과 환자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지. 하지만 자넨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네?”
“집요한 구석이 있으시거든. 아마 자네를 놔주지 않으려 할지도 모르겠어.”
“······.”
“허허. 너무 걱정 말게. 전철희 선생과 김진선 선생에겐 급한 일 말고는 자네에게 일을 맡기지 말라고 해두지. 그리고 김영태 선생님께도 자네 사정을 얘기함세. 일단 인사드리기 전에 신경과에 가서 분위기나 봄세.”
걱정을 하지 말라는데 더 걱정이 되는 건 왜일까. 불안함을 감추고 그를 따라 신경과로 이동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 신경과 입원실 복도엔 환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 중 특히 여성이 압도적이다.
“어째 소아과 분위기가 나네요.”
“잘 봤네. 신경과엔 소아과가 따로 없네. 언젠가는 분리해야겠지만 김 선생님이 계실 때까진 분리하지 않을 생각이네.”
“그렇군요. 근데 보호자들을 보면 유독 어린 환자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최근 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갈수록 선천적으로 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더군. 뭐 굳이 학계의 통계를 볼 필요 없이 병원의 통계만 봐도 그런 현상이 또렷하지만. 저기 계시군. 조용히 구경하세.”
회진을 돌고 있는 김영태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