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19. 진정한 의사(3)
***
한의사 지원자들에 대해선 면접 시간을 딱히 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1시간씩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때까진 시간을 할애했다.
“다 골랐습니다.”
원강대 한의학과를 나와 동(同)대학 한방병원 한방부인과 전문의 공부를 한 지원자가 보약 재료들을 골라왔다.
“이 조합이 갱년기에 좋은 보약이군요?”
“그렇습니다.”
“확인 잘 했습니다. 혹시 하실 말씀 있습니까?”
“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가는 그를 보며 이력서에 평을 간단히 적었다. 그리곤 한약을 원래대로 갖다놓기 위해 움직였다.
‘보약은 그냥 책에 적힌 대로 가져왔구나.’
같은 약이라도 계절, 환자의 상태, 약초의 상태 등에 따라 달리 쓰는 게 맞다. 외워서 한약을 만드는 것이라면 뭣 하러 한의원에 가서 비싼 약을 맞출까.
“잠깐만 앉아 계세요. 30초면 끝납니다.”
다음 지원자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기에 속도를 높여 약재를 원래대로 돌려놨다. 그리고 돌아보니 지원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헐~ 목소리랑 뒷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긴가민가했는데 형 맞구나!”
“벌써 너 차롄가? 반갑다.”
“반가워요. 근데 형이 왜 면접을 봐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대박! 혹시 아는 사람 가산점 있어요?”
“저기 영상 녹화되고 있다. 개인적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면접부터 볼까?”
“···농담이에요. 뭘 하면 될까요? 면접관님.”
“침구과 수련의 과정을 마쳤으니 일단 침 실력부터 볼까요? 침은 저기 있는 걸 사용하면 됩니다. 일단 삔 왼다리가 퉁퉁 붓고 있어요.”
“침대에 걸터앉으시죠.”
침대에 앉자 현수는 침을 가지고 와서 앞에 앉았다. 그리고 발을 잡고 잠깐 주무르더니 말했다.
“따끔할 겁니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로 삐었을 때 좋은 혈을 찾아 침을 꽂았다.
‘녀석, 환자 볼 땐 여전하네.’
평소엔 털털하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성격처럼 보이지만 실제 치료를 할 땐 꼼꼼하고 신중하다.
침의 자극으로 활성화된 기운과 피가 빠르게 맥과 혈관을 흐른다.
“끝났어요. 어때요?”
“하나 잘못 꽂은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요. 요 침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착각이십니다. 면접관님의 발엔 여기가 정확한 혈 자리입니다.”
“그래요? 어제 무거운 걸 들었더니 어깨가 결리네요. 여기까지 올리면 아파요.”
“아픈 곳이 참 많은 분이군요. 옷을 벗으시겠어요?”
옷을 벗었다.
“와우! 그동안 근육만 키웠나 보군요. 큼! ···죄송합니다. 아무튼 어깨는 여러 가지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침을 맞고 사흘쯤 약을 먹어본 후 그때도 아프면 검사를 해보죠. 시작하겠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어깨는 바로 효과를 보기 힘든 곳이다. 내부와 기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두삼에겐 쉬울 수 있지만 외부에서 정확한 위치를 정확한 깊이로 찌르는 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류현수, 많이 찔러서 효과를 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집중해.’
제대로 찌르는 것이 절반쯤. 한데 그 절반 중 50퍼센트는 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이래선 그냥 바늘로 피부에 구멍을 내는 것에 불과했다.
조금 전과 달리 너무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아 한마디 했다.
“좀 더 네 실력에 확신을 가져.”
“확신하고 있습니다만.”
“내가 어깨에 구멍 뚫고 싶어서 면접관이 된 거 같아? 방금 발목을 찌를 때와 전혀 달라.”
“···많이 달라요?”
“그래. 딴 사람 같다.”
“···면접관이 면접 도중에 이렇게 가르쳐 줘도 되는 거예요? 카메라도 있는데?”
“후배를 위해 한마디 한 게 뭐, 문제가 되겠어?”
“문제가 되면요?”
“카메라 지우면 돼.”
“음,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어깨에 담이 온 건 치료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심한 경우만 아니면 그냥 근육통 약만 먹어도 낫잖아요.”
“무슨 일 있었냐?”
“···많았죠. 욕도 제대로 먹어보고요. 처음엔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어요. 근데 안 낫더라고요. 손님은 올 때마다 짜증 내고 미치겠더군요.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물었죠. 근데 선생님마다 조금씩 달랐어요. 그래서 이리저리 따라 해봤죠. 그런데도 잘 안 되더라고요. 고친 적도 있긴 한데 나중엔 그게 약 때문이지 제 실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많은 한의사들이 겪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배운 대로 되지 않자 의심하게 되고, 이리저리 알아봐서 잡다해지고, 그러다가 자신감을 잃고, 우연찮게 낫는 걸 보고 현재의 침 자리가 맞는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의심하게 되고.
확신이 없는데 침에 기가 실릴 수가 없었다.
만일 다른 증상 치료와 혈 자리가 겹치지 않았다면 어쩌면 단 하나의 침에도 기가 맺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형은 정답을 알아요?”
“응.”
“진짜요?”
“그래. 일단 위부터 하자면 지금까지 본 지원자 중에 한 명도 제대로 어깨에 침을 꽂은 사람이 없었어. 그리고 정답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돼.”
“···배운 대로 했는데 왜 안 됐던 거예요?”
“그땐 네가 지금처럼 집중을 못 했겠지. 내가 전에 말했었지.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알아요. 형이 침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한 얘기잖아요.”
“그래. 네가 할 수 있는 한 집중해야 해. 그래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제대로 작동해. 네가 발목을 고쳤던 것처럼 말이야.”
“형은 그게 느껴져요?”
“응. ···아! 그러니까 그건 말이지······.”
아차! 싶어서 얼른 말을 바꾸려고 했는데 늦었다.
“어떻게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침을 놓을 때마다 솔직히 아직도 제대로 했나 걱정 돼요.”
“···전문의가 그리 자신이 없어서 어떻게 하냐?”
“형 앞이니까 그러지 환자들 앞에서 자신 있어 해요. 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얼른 말해줘요.”
“···맥을 잡아보면 알아.”
“아! 시작 전에 맥을 잡고, 끝나고 맥을 잡아 비교를 한다는 말이군요?”
“으응.”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맥을 아주 민감하게 느껴야 했다
“느끼기 쉽지 않겠지만 형이라는 증거가 있으니 열심히 하면 되겠죠. 아니 될 거예요. 고마워요, 형!”
“그, 그래.”
핑계치곤 허접했는데 알아서 해석해 주니 고마웠다.
“시간을 지체했다. 다음은 뜸에 대해 테스트해 보자.”
저녁 손님이라도 받으려면 얼른 서둘러야 했다.
***
VIP 병실의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민규식은 들어오자마자 TV를 켜고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두삼이 지원자들의 면접을 보는 영상을 틈틈이 확인하고 있었다.
[어? 선배님이 면접을 보는 거예요?]
[연인 아니랄까봐 반응도 비슷하냐.]
두삼과 막 들어온 지원자와의 대화를 지켜보던 민규식은 옆에 있는 지원서를 뒤적여 살펴봤다.
“훗! 저 아가씨가 친한 후배의 애인인 모양이군. 한방부인과를 지원했나? 응? 점수를 A+를 줬어?”
두삼은 지원서에 항목별로 점수를 준 후에 마지막에 총점을 학점처럼 매겨뒀다. 지금까지 대부분 B-, 잘해야 B+이었다. 류현수의 점수는 B+줬는데 이은수는 A+이라니 관심이 갔다.
영상만 봐서는 ‘잘하네’라는 한마디뿐, 뭘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민규식은 자신의 책장으로 가서 비밀리에 만들어둔 서류를 꺼냈다. 지원자들의 백그라운드를 정리해 둔 것이다. 참고용이라 만들어놓고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허~ 충청도 이가한의원 딸이었군.”
이가한의원은 조상 대대로 한의원을 한 집안으로 상류 사회 사람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특히, 한약은 ‘오래 살고 싶다면 이가한의원에서 지은 한약을 장복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민규식이 챙겨먹는 한약 역시 그곳에서 지은 것이다.
“한 선생은 이 사실을 알고 A+를 줬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여간 끝을 알 수 없는 친구라니까. 호박이 굴러오니 넝쿨도 줄줄이 따라오는군. 허허허!”
기분 좋게 웃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원장님, 신경과 김 선생님 오셨습니다.
“김 선생님이? 얼른 모시게.”
신경과의 김영태 교수는 2대째 오로지 의학 발전을 위해 애쓰는 이로 민규식이 자신의 스승을 제외하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자신과는 달리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질병을 없애기 위해 몰두하는 모습에 반했다.
“어서 오십시오, 김 선생님.”
“민 원장, 누가 보면 내가 원장인 줄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하신다면 기꺼이 양보를 해야죠.”
“허허! 농담을 못 하겠군요. 민 원장만큼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난 그냥 지금처럼 환자를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해요.”
“앉으십시오. 차는 어떤 걸로?”
“괜찮습니다. 부탁할 것이 있어 왔는데 얼른 애기하고 환자를 보러 가야죠.”
환자가 최우선인 양반이었다. 사실 근무 시간에 원장실에 왔다는 것 자체가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말씀하십시오.”
“이 안에 있는 영상 속 남자를 찾아줬으면 해요.”
김영태는 USB 메모리를 건넸다.
“사람을요? 잠시 틀어봐도 되겠습니까?”
민규식은 USB를 TV에 꽂았다. USB 안에는 날짜로 된 영상 하나밖에 없었다.
영상을 플레이시키자 45도 아래로 카페 같은 곳을 찍은 장면이 나왔다.
김영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TV가 있는 쪽으로 가더니 설명했다.
“여기 여자와 함께 있는 이가 내 환자인 권진영 씨입니다. 20년이 넘게 뇌의 심부에 뇌전증을 앓고 있죠.”
“20년 앓았는데도 바깥 생활을 하는 걸 보면 관리가 아주 잘된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한데 최근 1년 전부터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고 있습니다. 1, 2분에 불과했던 발작과 경직이 10분 넘게 이어지고 발생 빈도 역시 늘었죠. 게다가 뇌파 역시 점점 강해지고 있는 추세였습니다.”
말투가 과거형이다.
“···갑자기 좋아진 겁니까?”
“네. 바로 이날 이후부터라고 하더군요. 빈도가 줄고 발생해도 1분 정도에 불과하다더군요. 뇌파는 역시 3년 전으로 돌아간 듯 약해졌습니다.”
“선생님이 연구 중인 약이 효과를 본 건 아닙니까?
“이 환자는 그 약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약은 현재로써는 효과가 없습니다.”
얼마 전 중증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 결과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은 기억이 났다.
“언젠간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죠. 이제 발작을 시작할 겁니다.”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 속 권진영이 일어서다 말고 갑자기 부들부들 떨면서 통나무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앞에 있던 여자가 잘 잡아줘서 다치진 않았다.
“이 여성은 권진영 씨의 약혼자로 경찰이라고 합니다. 이 뒤에 앉아 있는 이가 지하철에서부터 힐끗거린다는 말을 듣고 흥분이 되면서 발작이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야 뒤에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권진영이 넘어지고 나자 얼른 주변의 테이블을 치우는 것을 보아 뇌전증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의 행동을 보면 오해였던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오해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찾아달라고 하는 이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음··· 너무 멀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군요. 이래선 찾기가······.”
화질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높은 곳에서 찍어서인지 얼굴을 확인할 정도는 아니었다.
“···역시 그런가요?”
“혹시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자신을 한의사라고 했답니다. 화면엔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발작이 심해져 혀가 안으로 말려들어가 목을 막으려는 찰나 남자가 한의사임을 밝히고 권진영 씨의 목 부분을 만집니다.”
남자가 등을 지고 앉아 뭔가를 하고 나자 경직되어 부들거리던 몸이 축 처진다.
“아! 발작이 멈췄군요.”
“여자 친구의 말에 의하면 전신마취를 했다는군요.”
“에? 전신마취를요?”
자리에 앉아 권진영을 살피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한데 그 짧은 순간에 전신마취를 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한의사는 민규식이 알기론 한 명 밖에 없었다.
‘이제 보니 한 선생을 닮은 것 같군.’
TV에 얼굴을 들이밀며 두삼이라고 생각되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남자가 만진 지 5분도 되지 않아 권진영 씨가 일어납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제가 볼 땐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
“만일 그가 무슨 수를 써서 뇌전증을 고친 거라면 10만 뇌전증 환자를 위해서라도 민 원장께서 찾아주셔야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뚫어지게 TV를 보던 민규식은 자세를 바로 한 후 검지로 자신의 볼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말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그러겠습니다.”
김영태가 나간 후 민규식은 전화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