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64화 (63/122)

# 64

19. 진정한 의사(2)

***

첫 실습 면접은 일부러 오후 예약을 받지 않은 목요일로 잡았다.

“이곳에서 면접을 보면 됩니다. 제가 준비를 해봤는데 혹시 더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면접을 위해 서문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인사행정과의 직원인 공동희 대리가 면접 장소를 안내했다.

의자, 의료용 침대, 각종 기기, 한쪽으로는 1회용 침 세트와 뜸, 실습 과정을 녹화할 카메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져온 상자들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딱히 없을 것 같은데요. 아침부터 고생하셨네요.”

공동희와는 사흘 전에 인사를 나눴다.

“제 할 일인데요. 물리치료사 지원자들은 오전에, 한의사 지원자들은 오후에 진행되도록 잡았습니다.”

구면이니 가볍게 응수할 만한데 딱 자신이 할 말만 하는 그. 두삼도 딱히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공동희는 정말 철저하게 자신의 일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자연 두삼의 말도 딱딱해질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면접 시작까진 15분쯤 남은 겁니까?”

“예. 커피? 차? 어느 걸 드시겠습니까? 원장님이 한 선생님이 최대한 편하게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하라 하셨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에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그럼 잠깐만 재킷을 벗고 여기 앉아보시겠습니까?”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곧장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말입니까?”

“네. 10분 정도 손을 풀려고요. 주물러도 될까요?”

“면접을 보는 분이 왜 손을··· 예, 좋을 대로 하십시오.”

두삼은 그의 딱딱한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앞으로 계속 볼 건데 친하게 지내요. 당장 그러자는 건 아니고요. 저도 요즘은 낯을 가리거든요.”

“······.”

“너무 긴장하면서 살면 없던 병도 생겨요. 가끔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어깨와 팔, 등까지 주무르던 두삼은 등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다 풀렸어요. 5분 뒤부터 지원자 들여보내 주세요.”

“···예. 그러죠.”

일어서서 재킷을 입는 공동희의 표정은 묘했다.

‘손을 풀었다는 건지 내 어깨를 풀었다는 건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실력이 대단해. 고작 어깨를 10분 주물렀을 뿐인데 온몸이 편해졌어. 원장님이 왜 그를 실습 면접관으로 썼는지 이해가 되네.’

그는 밖으로 나가다말고 우뚝 섰다.

‘설마··· 내 다리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나?’

그는 아기 때 걸린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에 후유증이 남았다. 그에 약간 쩔뚝거렸는데 부단한 노력으로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가 됐다.

다만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퇴근을 하고 나면 온몸이 뻐근했다.

‘에이~ 그냥 해준 거겠지. 원장님 말고는 아무도 눈치를 못 챘는데.’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밖을 나온 그는 여직원을 향해 지원자를 들여보내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물리치료사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혼자 멀뚱히 앉아 있는 두삼을 다소 이상하게 봤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으세요. 한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12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선동현 씨.”

“예.”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다쳤습니다. 수술도 잘됐고 뼈도 잘 붙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가 고통과 함께 제대로 굽혀지지 않습니다. 한 달간 전임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받은 상태이고요. 치료 방향과 어떤 식으로 치료를 진행할 것인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한강대학병원에 있는 모든 의료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고요. 이해 되셨어요?”

“됐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아아~ 제발! 제 다리 좀 제대로 걷게 해주세요. 선생님. 아야~ 당장 걷게 해달라는 건 아니고요. 으으~”

민망함에 얼굴이 잠시 빨게진다.

“침상에 잠시 누워보실래요?”

그의 말에 따라 침상에 누웠다.

“일단 간단히 테스트를 해볼 테니 누워요. 이상이 있는 부분은 말해주고요.”

면접 시간이 12분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그는 당장 치료를 하기보단 두삼에게 더 많은 내용을 듣길 바랐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야. 하긴, 정답은 없는 문제니까.’

어떻게 면접을 볼지 많이 고민했다.

한 명, 한 명과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실력을 볼까, 아니면 경력을 기준으로 뽑을까, 그것도 아니면 젊은 사람들을 뽑을까.

그러나 적게는 수 년, 많게는 이십 년이 넘는 물리치료사를 한정된 시간에 아무런 실수도 없이 검증할 방법은 없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래서 답이 없는 문제를 만들어 그들의 치료 과정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실력 있는 이를 떨어뜨리고 말발 좋은 이를 선택하는 실수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종 면접의 과장들의 눈을 믿을 수밖에.

‘달랑 혼자 던져둔 민 원장님 탓도 있고.’

“지금 자세에서 양팔을 든 상태에서 오른쪽 다리를 들어보세요. 어떤 느낌이 납니까?”

‘기본에 충실한 분이네. 문제를 내려면 확실하게 내라는 말인가?’

선동현은 환자의 상태를 더 자세히 알길 바랐다. 물론 해답은 아니지만 환자의 상태에 대해선 말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증상을 상정해 두고 있었다.

“허리와 종아리가 무릎이 당기면서 아픕니다.”

“왼발을 구부리고 그 위에 오른발을 살짝 올리세요. 팔을 밀 테니 버텨보세요.”

현재 자세에서 허리나 무릎에 이상이 있으면 뻗은 손을 살짝만 바깥으로 밀어도 밀린다. 정상이라면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말이다.

환자들을 운동시키는 걸 보면 저 정도는 나도 하겠다 싶지만 실제로는 지금 상황처럼 간단히 발을 굽혔다 펴는 동작에도 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물리치료학은 무척 재미있는 학문이다.

일시적 혹은 영구적 장애를 갖게 된 환자에게 운동 치료와 물리적인 요소, 가령 물, 전기, 열, 빛 등을 이용해 손상된 기능을 회복시키는 일을 배운다.

그중에 근골격계와 신경계를 진단하는 방법은 꽤 신기하다.

그가 팔을 살짝 밀 때 힘을 뺐다.

“···음, 물리치료삽니까? 아님, 진짜 환자?”

“저에 대해선 신경 쓰지 마세요. 현재는 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그럼 진짜 환자 대하듯 하죠.”

그는 10분 가까이를 검사에 투자했다. 그리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면접관님은 아무래도 무릎 MRI를 찍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에? 수술할 때 찍었었는데요?”

“현재 의심이 되는 것은 무릎 연골 파열이 아닐까 생각 중입니다. 그땐 눈에 띄지 않게 살짝 금이 가 있던 것이 수술 후 재활 치료 과정에 커졌을 가능성 역시 있습니다.”

“전 물리치료사님은 허리 쪽이라고 했는데······.”

“제가 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릴 테니 상의를 해보십시오. 현재로써는 재활 훈련을 하면 할수록 상처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는 할 말을 끝내고 잠깐 머뭇거리다가 끝났음을 알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실습은 끝났으니 가셔도 좋습니다.”

자신 있게 끝났다고 말하던 두삼은 돌아서 나가는 선동현을 보며 살짝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문제가 너무 단순했나?’

답은 없지만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답을 첫 번째 사람이 해버리니 약간 불안했다. 면접을 했는데 변별력이 없다면 그 면접은 하나마나였다.

하나 두 번째, 세 번째 지원자를 면접할수록 변별력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기우임을 알았다.

치료사마다 제각각이었는데 엄청 실력이 좋아 배울 점이 있는 이들도 있는 반면 이력서에 적힌 이력이 진짜일까 싶은 이들도 있었다.

17명의 물리치료사 지원자들의 면접을 끝내고 점심을 먹었다.

“후··· 오후 면접 때문인지 입맛이 없네.”

사실 전문의 과정도 거치지 못한 자신이 전문의 과정을 마치거나, 마친 이들을 면접 보는 게 걱정됐다.

“무슨 일 있어요? 얼굴 표정이 영 안 좋네요?”

식판을 든 민청하가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근데 얼굴 표정이 안 좋다고 묻는 그녀의 얼굴이 더 엉망이다.

“면접 때문에요. 근데 청하 씨 얼굴이 더 엉망인 거 알아요?”

“···알아요.”

“왜요? 공부가 잘 안 돼요?”

“아뇨. 후배 중에 별명이 앰뷸런스인 애가 있어요. 근무만 섰다 하면 앰뷸런스가 몰려온다고 붙여진 별명인데 걔가 어젯밤 근무였어요.”

“수술할 사람이 부족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어제 야간 담당 의사가 제 담당 선생님이셨어요. 그 분은··· 책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에요. 물론 예왼 없죠. 조금 전에야 마무리가 됐어요.”

“밑에 사람 부려먹는 건 이 병원 선생님들 특징인가 보네요.”

“훗! 맞아요.”

“얼른 먹고 가서 쉬어요.”

“잔뜩 긴장된 상태라 잠이 올까 싶어요. 환자는 방금 안정을 되찾았는데 전 아직까지 안정이 안 되네요. 술이라도 한잔해야 할까 봐요.”

“지금 상태로 술을 먹으면 엄청 먹을 텐데요?”

“자주 있는 일이에요. 그래도 오늘은 죽진 않았으니 조금 덜 먹겠죠.”

드라마처럼 응급실에 들어오는 이들이 모두 살아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도착 시간이 늦어 혹은 조치를 취하다가, 또는 병원에서 수술할 의사가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해 죽는 경우가 많다.

의사도 사람이다. 알게 모르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저 익숙해져 괜찮아 보일 뿐이다.

그러한 스트레스를 어떤 이들은 술로 푼다.

‘나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었지. 그땐 어떻게 이겨냈더라?’

바다를 보다가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술을 줄인 기억이 나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적당히 마시면 약이니 끊으라는 얘긴 못 하겠군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요.”

“그렇게 말할 때 넌지시 방법을 말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방법이라······.”

잠깐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마사지 받아봐요. 얼굴마사지도 좋아요.”

“영업하는 거예요?”

“하하! 그렇게 들렸나?”

“좋아요. 지금 맛보기로 간단히 받아보고 정식으로 받기로 해요.”

“에? 지금이요?”

“얼른 먹고 가요.”

그녀의 채근에 후다닥 몇 숟가락 더 뜨고 일어났다. 그리고 의국 휴게실로 갔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곳인지 퀴퀴했다. 그리고 자고 있는 이들도 두 명이나 있었다.

“가운을 벗고 누울까요?”

원래는 의자에 앉히고 간단히 해줄 생각이었다. 한데 아무래도 정식으로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둘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편하게 생각했다.

“그래요. 편하게 엎드려요.”

“잘 부탁해요, 한 선생님.”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요.”

“그건 일단 받아본 후에 생각할래요. 좋으면 계속 해달라고 할지도 몰라요.”

“···하하. 이거 잘해야 할지 고민이군요. 머리부터 시작할게요.”

물론 장난으로 할 생각은 없다.

가볍게 머리의 혈을 자극하는 것으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목, 어깨로 내려갔다.

‘음, 몸이 많이 상했네. 수련의 기간이 가장 한가하다는데 지금 이 정도면 한창 힘들 땐 어땠다는 거야?’

특별한 이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몸의 기운이 탁하고 내부 장기들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이거야, 원. 민규식 원장님 덕에 얻은 것이 많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생각하자 기운이 뭉텅이로 빠져나가 그녀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맥을 돌며 탁해진 기운을 깨끗하게 만들고 내부 장기에 스며들었다.

단숨에 좋게 만들진 못하겠지만 자연 치유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스트레칭을 하면 되지 ···왜 마사지를 받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네요. ···완전 ···좋아요. 앞으로 계속··· 받고··· 크으~ 크으~헝~”

말을 하다말고 잠이든 민청하.

“훗! 업어 가도 모르겠네.”

침까지 천천히 떨어지는 모습에 얼굴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허리와 다리를 마저 주물러준 후에 조용히 휴게실에서 나왔다.

“오후 면접까지 15분 정도 남았네.”

달달한 커피로 기분을 조금 업시킨 후 양치질을 하고 면접실로 갔다. 그리고 오늘 오면서 가지고 온 박스들을 열었다.

여러 가지 약재들로 면접을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약재를 책상 위에 진열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준비되셨습니까?”

공동희가 물었다.

“네.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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