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57화 (56/122)

# 57

17. 진상들(1)

“아~ 날씨 좋다. 이런 날은 야외에 나가야 좋은데.”

한가한 토요일 오후, 푸른 하늘을 보니 공연장에 가고 싶어진다.

물론 마음뿐이다. 마사지 숍의 손님이 없다 뿐이지 할 일은 많았다.

길게 하품을 하던 신혜경이 말했다.

“아함~ 여자를 사귀어봐.”

“야외에 나가고 싶다는데 여자 얘기가 왜 나와요?”

“혼자 나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게 낫지 않나? 옆집 아가씨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하란이와 야외에 나가는 걸 상상해 버렸다.

“···별소릴 다하네요. 행여나 하란이 듣는 데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전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잘 산다고 생각해요.”

사랑을 1+1=3이 되는 더하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두삼은 빼기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가진 성격이든, 욕심이든 하나씩 빼나가면서 서로에게 맞춰가는 것.

한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빼야 하는 경우라면 막말로 본전 생각이 날 수 있다.

“사랑을 하다가 데인 적이 있나 보네.”

“······.”

“네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결혼은 현실이니까. 근데 너무 멀리 보면 아무것도 못 해. 한 스텝씩 밟다 보면 극복할 수 있어. 그리고 설령 극복 못 하면 뭐 어때. 사랑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누나의 사랑학개론 잘 들었어요. 근데 그걸 들으니 더 나가고 싶어지네요. 우리 그냥 토요일도 확 놀아버릴까요?”

“사장이 놀자면 직원들이야 얼씨구나 하지. 근데 우리 착한 사장님이 망하는 건 못 보겠다.”

“망하지 말라고 손님이 오시네요.”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 최 실장님, 아니,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하셨으니 최 사장님이라고 해야겠네요.”

하란의 회사 직원인 최익현이었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네. 여긴 웬일이세요? 하란이 네는 옆집인데.”

“마사지 숍에 뭐 하러 왔겠어요. 마사지 받으러왔죠.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찌뿌듯하네요.”

“아! 그러네요. 잘 오셨어요. 서비스 팍팍 해드릴게요. 우리 누님 잘하니까······.”

“두삼 씨에게 받았으면 하는데요.”

“그래요, 그럼.”

여자 마사지사를 꺼리는 이들도 있었다.

족욕을 시킨 후 간단히 발마사지를 한 후에 마사지실로 이동했다.

최익현의 몸은 여느 직장인과는 조금 달랐다. 운동을 많이 하는지 탄탄한 근육질에 균형 잡힌 몸매였다.

편히 쉬라고 묵묵히 하고 있는데 최익현이 물었다.

“두삼 씨는 애인 없어요?”

왜 이렇게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 건지.

“없어요.”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어요?”

“딱히··· 사는 게 바빠서 그런지 연애 세포 활성화가 안 되네요.”

“우리 대표님은 어때요?”

좋은 토요일 기분을 망치게 하려고 작정들을 한 모양이다. 솔직히 사람들이 하란과 연관을 지으려 할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내색하지 않고 답했다.

“언감생심이죠.”

“하긴. 두삼 씨 말대로 언감생심이라는 표현이 맞겠군요. 어마어마한 자산가에 연예인보다 더 아름다운 외모,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몸매. 웬만한 남자라면 기가 죽을 겁니다.”

“······.”

이 인간이 싸우자는 건가?

말하는 싸가지가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물론 천성적으로 남을 생각 못 하는 인간들이 있긴 하다.

“근데 최 사장님은 애인 있습니까?”

“없습니다.”

“좋아하는 분은요?”

“있습니다. 두삼 씨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어째 대화의 흐름이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다.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여인 옆에 다른 남자가 나타나자 ‘네가 넘볼 여자가 아냐!’라고 경고하는 드라마 속 찌질한 남자 같다고나 할까.

왜 찌질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자신은 마치 그 수준이 되는 듯 구는 것이 웃기고, 수준이 되면 경고할 시간에 고백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지 알겠네요. 하란이군요?”

“맞습니다. 2년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파이팅 하세요.”

“···응원해 주시는 겁니까?”

“하하. 저 같은 사람이 응원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그저 고백하려면 빨리 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왜요?”

“하란이를 보고 반하지 않을 남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제가 아는 친구도 하란일 보고 반했거든요. 그 친구는 연예인 얼굴에, 모델 몸매에, 집안도 엄청 좋거든요. 조건으로 따진다면 하란이와 가장 잘 어울릴 겁니다. 게다가 당장이라도 고백할 것 같던데요.”

“······.”

나이 차이가 난다는 얘긴 굳이 하지 않았다.

자신이 말해준 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건지 최익현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괜한 심술을 부린 것 같아 살짝 미안했지만 고소함이 더 컸다.

최익현의 마사지를 마치고 나오는데 평소 조용하던 가게가 무척 시끄럽다.

“멍이 들었잖아요! 내일 당장 치마를 입을 일이 있는데 이래서 어떻게 입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죄송합니다. 손님께서 느낌이 없다고 강하게 하라고 하셔서 압이 조금 강했나 봐요.”

신혜경은 젊은 아가씨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뭐라고요! 그게 내 탓이라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말하는 게 그렇잖아요! 강하게 해달라고 해도 다른 곳에서 한 번도 생기지 않던 멍이 왜 여기서 생기냐고요. 본인이 실력이 없음을 탓해야지 왜 엄한 내 잘못으로 모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예요?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장사하는 사람의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장사가 쉽지 않음을 표현해 주는 말인데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계약 갱신 때마다 올라가는 월세, 아르바이트생의 무단 결근, 마이너스인 통장 등등.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기운을 떨어뜨리는 것은 가끔 나타나는 진상들이 아닐까 싶다.

이틀 전 왔던 손님이 살짝 멍이 든 걸로 불만을 표하러 온 것이다.

‘오늘은 다들 왜 이렇게 심기를 긁는지······.’

신혜경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쯤 되면 나서야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3년간 수많은 불평불만을 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중 절반은 손님 측이 옳은 말을 했고, 나머지 절반은 생떼였다.

생떼를 부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의 말에 논리가 약해지면 말꼬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실례합니다. 제가 이 가게 사장입니다.”

“오! 마침 잘 왔네요. 이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녀는 허벅지 안쪽에 멍든 자국을 보여줬다.

“멍이 들었군요. 마사지를 받다 보면 멍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죠.”

“···내가 여러 곳에서 받아봤지만 이번이 처음이에요!”

“손님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릅니다. 혈액 순환이 되지 않는 경우나 마사지를 받을 당시 몸에 힘이 들어가면 멍이 생기죠.”

“하아~ 이 사람들 좀 봐. 지금 날 가르치는 거예요?”

“아뇨.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뇨?”

“찾아오신 이유를 묻는 겁니다.”

“진짜,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야! 오늘 치마 입을 일이 있는데 이것 멍 때문에 못 입게 됐다고요. 이 일을 어쩔 거냐고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책임을 져야죠!”

“그니까 그 책임을 어떻게 지냐고요?”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귀찮음에 돈을 돌려주고 만다. 이 여자도 책임 운운 하는 걸 보니 돈을 돌려받고 싶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두삼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돈 돌려줘요. 그럼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는 건 좀 생각해 볼게요.”

“신고하세요.”

“···네?”

“마사지를 받다가 멍이 들었다고 신고하시라고요. 제가 볼 때 우리 직원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이 멍을 보고도 잘못이 없다고요?”

“그 정도 멍이라 그러는 겁니다. 우리 직원이 잘못한 것이 명확하다면 마사지 비용은 물론 보상금 역시 지불해야 옳겠죠. 근데 마사지라는 게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가끔 그런 증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주의 사항을 이곳저곳에 붙여두지 않았습니까?”

주의 사항엔 ‘강하게’ 마사지를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적어뒀다. 읽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내가 소비자보호원은 물론이고 인터넷에 오늘 있었던 일 다 올릴 거야! 내가 못 할 것 같지?”

“하세요. 대신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고소합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 올리세요.”

“···이, 이······!”

진상은 잠시 노려보다가 씩씩거리며 가버렸다.

“그냥 돌려주지 왜 그랬어? 저러다 진짜 하면 어쩌려고? 내 월급에서 빼도 상관없는데······.”

“진짜로 할 사람이라면 경찰을 부르지 저렇게 가지 않아요. 그리고 진짜로 해도 상관없고요.”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소비자보호원을 들먹이지만 소비자보호원에서 하는 중재는 ‘권고’일 뿐이다. 즉, 법적 효력이 없어서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물론 법적으로 들어가면 살짝 골치가 아프긴 하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법적 다툼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제로였다.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처음 겪는 일이라 기가 죽어 있는 그녀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갔다.

“누나, 세상은 넓고 진상은 많아요. 물론 착한 사람이 더 많으니 장사를 하고 먹고 사는 거겠지만요.”

“···나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당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여기서 많이 겪어보세요. 필연적으로 겪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어떤 식으로 가게를 할지 기준을 정확히 세우세요.”

“기준?”

“네. 저 같은 경우는 ‘손님은 손님일 뿐이다’라고 세웠어요. 손님은 왕? 웃기는 소리예요. 돈 몇 푼에 스트레스 받으면 그게 더 손해예요. 솔직히 오늘 같은 일 한 번 겪고 나면 사람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며칠은 손에 일이 안 잡혀요. 당장 때려치우고 싶고요.”

“안 그래도 기운이 쭉 빠지네.”

“진상들은 두 번째 와도 진상이에요. 그러니 돈을 주든 안 주든 아예 못 오게 만들어야 해요. 방금 그 사람이 다시 오겠어요?”

“안 오겠지.”

“우리 직종의 경우는 10퍼센트의 손님이 8, 90퍼센트의 매출을 만들어줘요. 사실 아무리 손님이 몰려와도 하루에 10명 이상 받기 힘들잖아요. 그러니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나아요.”

3년의 경험이 결코 많다고 할 순 없지만 아는 대로 말해줬다.

간접적으로 듣는 거니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나중에 가게를 할 때 실수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고마워. 어째 나보다 네가 더 어른 같다.”

“경험이 조금 더 많은 것뿐이에요. 제 말이 정답은 아니니 누나 나름대로 꼭 기준을 마련하세요.”

“알았어. 근데 진상들 처리는 아까처럼 하면 돼?”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요. 아까처럼 했을 때 물러나면 좋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우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물건을 부수는 사람도 있어요.”

“에~ 진짜?”

“그럼요. 그땐 저도 술 한 잔 안 먹고 말겠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돈을 줘서 보내요.”

최익현이 나왔기에 진상에 대한 얘기는 끝내야 했다.

“마사지 잘 받았어요. 팁은 넉넉하게 줬으니 직원들과 식사나 하세요.”

“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아무튼 주신 거니 직원들과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제가 한 말은······.”

“걱정 마세요. 마사지실에서 들은 얘기는 나오는 순간 봉인합니다.”

“고마워요.”

인사를 하고 최익현이 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신혜경이 물었다.

“무슨 얘기했는데?”

“드라마 얘기요.”

“웬 남자들이 드라마 얘기? 그나저나 저 사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왜 그렇게 생각해요?”

“네 표정. 아까 진상 손님 봤을 때랑 똑같아.”

“그래요? 착각이겠죠.”

착각이 아니다.

그는 내 머릿속에 진상으로 저장!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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