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51화 (50/122)

# 51

15. 뜻밖의 부고(2)

말기암이었던 배영옥, CRPS였던 백희진을 치료하면서 1년을 넘게 인체를 살펴봤지만 아직 자세히 안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집중을 하면 할수록 더 세밀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지금 보는 판막도 마찬가지다. 판막이 크게 확대되자 판막에 흐르는 미세 혈관과 세맥, 신경 따위가 마치 대동맥이나 독맥, 임맥처럼 보였다.

이러니 어떻게 자세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때요?”

집중을 한 지 시간이 꽤 지났을까, 김진선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고 현실로 돌아왔다.

“방광 요관 역류입니다. 둘 사이에 있는 판막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기 엄마가 듣지 못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당의가 김진선인 이상 그녀가 부모에게 정확하게 말하는 게 좋았다.

“아기 등을 토닥이고 있었을 뿐이지 않아요······?”

“네, 진맥을 한 겁니다.”

“그래요? 진맥으로 혹시 판막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했나요?”

“글쎄요.”

방금 전에 본 판막의 모습을 떠올렸다.

판막으로 내려오는 혈관에 비해 판막 안으로 들어가는 혈관이 조금 좁았던 것 같다.

“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약간 헐거운 느낌이랄까요? 묻는 이유를 알면 더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이들의 경우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경우가 있어요.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역류를 막기 위해 판막을 튼튼하게 만드는 수술을 해야 해요.”

“그렇다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말했다.

“흠··· 그래요?”

김진선이 고개를 끄덕일 때 조용히 듣고 있던 민규식이 나섰다. 그는 어깨를 잡아끌며 병실 구석으로 두삼을 데리고 갔다.

“김진선 선생이라면 최신 장비를 통해 50분 정도면 작은 절개로 수술을 쉽게 할 수 있네. 하지만 수술을 하기까지 아기가 무척 힘들 거야. 일단 열을 내려야 하고 역류 검사도 제대로 하게 되겠지. 기간도 한 달 족히 걸릴 테고.”

“저한테 방법이 없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있나?”

“수술 방법을 듣고 나니 몇 가지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은 떠올랐습니다. 물론 확인하기 위해 며칠 방문해야 하고요. 그래도 되죠?”

민규식이 해달라고 부탁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한의사라고 편견을 가진 듯한 김진선 선생에게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 선생에겐 내가 알아서 설명하지.”

“감사합니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피가 잘 통하도록 혈관을 넓히는 거고, 다른 하나는 기를 이용해 판막을 팽팽하게 만드는 거다.

‘둘 다 병행해야지.’

안고 있는 아이의 등을 쓸데없이 꾹꾹 누르며 뭔가를 하는 척하며 치료했다. 다시 집중하는 게 어렵지 기를 이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치료를 마치자 연신 힘없이 펄럭이던 판막은 방광이 만들어내는 압력을 훌륭하게 버티며 더 이상 역류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의 요도조임근이 풀렸다. 그 순간 축축이 젖어오는 가슴팍.

“아! 서, 선생님. 오줌이······.”

아기 엄마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아기의 소변은 팬티를 지나 신발까지 젖게 만들었다.

***

일요일 아침, 간만에 스케줄이 없어 늦게까지 잘 계획이었는데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 무서워.”

어젠 정말 힘들었다. 아침을 먹자마자 일을 시작해 밤 12시에 가게를 정리했다.

기운을 평소보다 2배 이상 돌린 다음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머! 일요일인데 더 자지 않고?”

“향희 누님은 왜 일찍 일어나셨어요?”

오향희. 유모의 이름이다.

한 집에 사는데 부르는 호칭도 없이 어색하게 지내는 게 싫어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마침 신혜경과 동갑이라 서로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고, 그 기회에 두삼 또한 모두와 호칭을 재정리했다. 북적북적, 가족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늦잠 잘 것 같아서 간만에 아침을 준비하려고 했지.”

“점심, 저녁은 누님이 준비하잖아요. 연섭이나 깨워주세요. 제가 마저 준비할게요.”

아침 식사는 두삼이 정해놓은 식단으로 차렸고, 점심, 저녁은 오향희가 맡았다.

1주일 치 재료가 날짜별로 정리가 되어 있었고, 대부분 간단히 삶고, 찌고, 오븐에서 굽는 음식들이라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침을 차렸을 때쯤에 나연섭이 부스스한 머리로 방에서 나왔다.

“···형, 일요일을 만든 건 쉬라고 만든 거예요.”

“매일이 휴일인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일단 화장실부터 갈래?”

“팩폭이 지나치시네요. 먹고 갈게요. 근데 오늘도 운동 갈 건 아니죠?”

“왜 아니겠냐.”

“미세먼지 많을 땐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던데요.”

“오늘 없단다.”

“···하늘도 안 도와주네요.”

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한데 식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연섭이 다시 입을 놀렸다.

“참 희한해요.”

“뭐가?”

“형이 해준 음식은 딱히 맛있거나 하지 않거든요. 진심 예전이었다면 젓가락질도 안 했을 거예요. 요 나물은 심심하고, 요 나물은 밍밍하고, 요 버섯은 어정쩡해요. 근데 신기하게도 계속 먹게 돼요. 가을이라 그런가?”

“네 몸이 원해서 그래.”

“제 몸이 원한다고요?”

“사람마다 과하거나 부족한 게 있거든. 너 같은 경우엔 양기가 강하고 음기가 부족해. 그러니 자꾸 음기가 있는 음식에 손이 가는 거야.”

“누가 한의사 아니랄까봐. ···어? 그러고 보니 엄마가 먹는 건 다른 것들이네?”

나연섭은 오향희를 엄마라 불렀다.

나연섭의 아버지 나경록이 가게에 왔을 때 우연찮게 오향희와 얘기하는 모습을 봤는데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오묘한 것이 있었다.

실제 엄마가 될지도.

아무튼 저들의 가정사는 저들에게 맡겨두고 식사를 마저 했다. 차를 마신 후 나연섭이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설거지를 마쳤다.

“가자.”

“네네. 어? 옆집 철벽이 사라졌네요?”

“어제 낮에 제거됐어.”

하란의 집 안전 펜스가 사라지고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누가 올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미인이면 좋겠죠?”

“미인이 와서 내가 사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럼 넌 쫓겨나는 거야.”

“풉! 형, 거울 좀 보세요. 미인이라면 저 정도는 돼야 유혹할 수 있지 않겠어요?”

솔직히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연섭에 비하면 조금··· 아니, 많이 부족하다. 원래도 잘난 얼굴이었는데 끔찍한 부작용을 남긴 수술을 한 후 더 잘나졌다.

인정하면서도 분함에 한마디 했다.

“미성년자 주제에······.”

“어린 것도 무기죠. 헤헤.”

얄밉게 구니 왠지 약올려주고 싶어진다.

“좋아! 옆집 미인이 먼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내기하자.”

“미인이 아니면요?”

“취소지.”

“좋아요! 혼자 있을 때는 인정 안 해요. 둘이 같이 있을 때 먼저 인사 받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해요.”

“미리 작업하는 건?”

“인정해야죠. 내기인데 노력을 해야하는 거예요.”

“오케이. 내기는 무엇으로 할래?”

“돈내기는 조금 그러니까··· 일요일 날 늦잠 인정, 운동 제외 어때요.”

“대신 내가 이기면 운동 두 배다.”

“하하하! 좋아요.”

지금은 웃지만 나중엔 무효라고 징징댈 것이다.

운동은 스트레칭 후 달리기 30분,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처럼 간단한 것들이다.

그 다음에 하는 일은,

“배를 좀 더 내밀고 더 푹 꺼지게.”

벤치에 누워 복식호흡처럼 배를 내밀고 홀쭉하게 만들기 반복한다. 위장의 운동을 극대화하여 튼튼하게 하는 것으로 조임근 운동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시키는 중이다.

“으~ 배가 당겨요. 배도 살살 아픈 것 같고요. 참! 요즘 배변 냄새가 장난 아니게 심해요.”

“네 장속에 그런 찌꺼기들이 머물러 있다는 거야. 조금만 더하면 변이 황금색으로 나올걸.”

“···황금색이든 똥색이든 제 의지대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자식이 또 우울한 소리 하네. 배는 멈추고 정신을 네 항문과 요도에 집중해. 위치를 집어줘야 아는 건 아니지?”

“제발, 사람들 많은 데서 그러지 마세요, 형!”

처음 할 때 어디냐고 묻기에 콕콕 집어줬다.

“좋아. 그럼 집중하고 쪼여! 옳지··· 풀고, ···쪼여!”

“···형 목소리라도 좀 작게······.”

딱! 딱밤을 때렸다.

“집중해! 연예인 한다는 녀석이 사람들 시선만 신경 쓰면 어떻게 하냐.”

“그래도 이건 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집중하면 네 몸의 다른 부분은 확실하게 움직여. 난 그걸 캐치해서 조임근에 전달될 방법을 찾는 거고. 치료한다고 생각해.”

“···네네.”

수의근이란 말 그대로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근육. 그렇다면 훈련을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부분이 확실하게 움직인다는 건 아직까진 거짓말이다. 그저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감지할 뿐이다.

노력을 하고는 있었지만 순식간에 벌어지는 신호를 감지할 능력은 없는 듯 집중을 해도 잡아낼 수가 없었다.

“됐다. 여기까지 하자.”

15분 정도 하다가 끝을 냈다.

“에휴~ 이거 달리는 거보다 힘들어요.”

“엄살은······.”

“엄살이 아니라 진짜라니까요! 온몸이 긴장돼서 한동안 목이 뻑뻑하다고요!”

집에 온 후 마사지 몇 번 받더니 엄살이 늘었다.

“음, 오늘은 한가하니까 해줄게.”

“진짜요? 헤헤. 형이 해줘야 해요. 혜경 아줌마가 해주는 것도 좋은데 솔직히 형이 해주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행여나 혜경이 누나 앞에선 그런 소리 마라.”

“제가 어린앤가요. 헤헤.”

“어른은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공원에서 천천히 걸어내려 오는데 하란의 SUV가 옆집에 서는 것이 보였다.

“어? 옆집 사람인가 봐요. ···가만, 그림자가 여잔 거 같은데요. 오! 내린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던 차가 멈췄다. 그리고 하란이 차에서 내렸다. 아무래도 자신을 본 모양이다.

“우와! 대박! 진심 장난 아니신데요? 게다가 얼굴은··· 세상에··· 소속사 누나들이 저분 옆에 있으면 오징어가 되겠어요. 어어? 이쪽으로 온다! 형, 아까 내기 기억하세요!”

성큼성큼 다가오는 하란을 보며 열심히 머리와 옷매무새를 만지는 나연섭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온다! 저한테 손을······.”

“두삼 오빠, 운동 다녀오는 길?”

“······!”

황당한 표정이 되어 빤히 보는 나연섭을 무시하고 하란에게 인사했다.

“응. 여행은 잘 다녀왔어?”

“오늘 새벽에 도착했어.”

“피곤하겠네.”

“비행기에서 내내 잤는데? ···누구?”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연예인 지망생 동생.”

“귀엽게 생겼네요. 반가워요.”

“···아, 네, 네! 나연섭입니다.”

“하란이에요.”

“마,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게. 참! 여행가서 선물 샀는데 차에 있어. 줄게.”

“나까지 생각해 주고 고맙네. 근데 공사 다 끝났나 봐?”

“응. 가구 몇 가지만 들어오면 끝이야. 이사는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며칠 뒤에나 할 것 같아.”

“시간될 때 가게로 와. 조금 피곤해 보인다.”

“그럴게. 여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뭘 살까 하다가 지갑 하나 샀어.”

“마음만으로도 고마운데··· 음, 혹시 필요한 거 없어? 이사 선물로 해줄게.”

“그래? ···갑자기 생각하려니 떠오르질 않네. 나중에 생각해 보고 말할게.”

“그래. 들어가.”

“네~ 오빠도.”

차에 오르는 하란을 본 후 대문 앞으로 갔다. 열쇠로 문을 열려는데 나연섭이 호들갑이다.

“저 누나랑 아는 사이에요? 어떻게 알게 됐어요? 나이는 몇 살이래요? 남친은 있대요?”

“···그보다 다음 주 일요일 날 두 배로 운동할 걸 걱정해야 하지 않겠냐?”

“아······! 무효예요! 알고 있는 사이라는 걸 말했어야죠. 이사 올 사람이 빤히 아는 사이면서도 그런 내기를 걸다니, 형 완전 사기예요.”

“내기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내기를 하기 전에 한 노력이잖아요. 아무튼 인정할 수 없어요.”

“차라리 미인이 아니라고 하지?”

“그건··· 흠흠, 제 양심이 거부하네요.”

내기에 대해 한참을 티격태격한 끝에 지금처럼 운동을 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키고 오랜만에 메일을 정리했다. 수백 개가 넘어 정리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띠룽!

모두 지우고 닫으려는데 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들렸다. 정크메일이라 생각하고 체크를 하는데 메일의 제목이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교수님······.”

[(부고) 경해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일교 교수님.]

두삼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클릭했다.

***

주위의 대부분이 등을 돌렸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줬던 이의 죽음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직 연세도 그리 많지 않으신 분이 갑자기 왜······?”

중얼거리다 생각해 보니 갑자기는 아니었다.

과거 사건이 마무리되었을 때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5년이 지났다.

모든 것을 잊고자 경해대 근처도 가지 않았다지만 은사이자 은인인 김일교 교수까지 멀리했어야 했느냐는 후회가 밀려온다.

컴퓨터를 끄고 일어났다. 그리고 옷장을 열어 오래된 검은색 양복을 꺼냈다.

“···이 양복을 다시 입게 될 줄이야.”

대학교 2학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입은 양복이었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당신의 죽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맞춰주고 간 양복이기 때문이었다.

부고를 듣고 고향집에 도착했더니 할아버지의 관 앞에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랄까.

작지 않을까 생각하며 입었는데 몸에 맞춘 듯이 딱 맞았다. 게다가 철 지난 양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선견지명이 있으셨나?”

가끔 보고픈 마음에 눈물샘이 자극되곤 하지만 슬픔보다 그리움만 남았기에 싱거운 농담을 할 수 있었다.

오향희가 준 쇼핑백에서 두 뭉치의 돈다발을 꺼내 품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누가 돌아가셨나 보네?”

점심을 준비 중이던 오향희가 복장으로 짐작했는지 말했다.

“은사님께서 돌아가셨답니다.”

“마지막 인사 잘 드리고 와. ···참! 연섭이 불러올 테니 요도는 풀어주고 가.”

깜박 잊고 있었다. 하마터면 나연섭의 방광을 터뜨릴 뻔했다. 요도조임근을 푼 후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경해대병원이요.”

경해대병원 옆에 장례식장이 있었다. 택시기사의 운전 솜씨 덕분인지 20분 만에 경해대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병원으로 안 들어가고요?”

“괜찮습니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정면으로 경해대 정문이 보였다. 정문 좌측이 병원이었고 주차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장례식장이었다.

“5년 사이에 많이 변했네. 심시티라도 하는 건가?”

6년간 드나들었던 정문 옆에 못 보던 건물들이 많이 생겼고, 병원도 과거와 달리 건물이 복잡해졌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지금도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다.

문득 학창시절 캠퍼스와 병원에서 공부하던 때가 생각났다. 좋았던 기억,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하지만 곧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털어냈다.

좋았고 아름다웠던 기억들 중 은사님의 기억을 제외하곤 모두 배드 엔딩이었다.

“후······.”

한숨을 내뱉고 장례식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병원에서 내리지 않고 학교 입구에서 내린 건 장례식장에 들어가서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참 무의미한 두려움이다.

고작 자신을 알아본 이들이 소곤거리는 게 듣기 싫다고 은사님의 마지막까지 안 볼 순 없지 않은가.

게다가 적어도 50퍼센트는 아는 얼굴일 게 분명했다.

느릿하던 두삼의 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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