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15. 뜻밖의 부고(1)
‘···좋지 않아.’
심사위원도 아니고 피겨스케이팅을 찾아서 볼 정도로 열성적이지 않지만 이효원의 안무가 이상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안무를 펼치는 이효원 자신도 그게 느껴지는지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리고 트리플 러츠를 시도하려는 순간이었다.
왼발로 뒤로 타다가 오른발 끝으로 얼음을 찍고 반동을 얻어 점프, 3회전 후 오른발로 착지하는 기술.
한데 오른발로 찍고 공중에 오른 그녀는 돌지 않고 그대로 착지했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허리를 숙였다.
코치가 달려 나가 뭔가를 묻는 것 같은데 대답을 하는 표정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았다.
두삼은 차분히 기다렸다.
잠시 후 이효원은 링크에서 나와 다가왔다.
“···예전과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점프 높이도 확연히 차이가 나고요.”
“오랜만에 해서 그런 걸 수도 있을 거야. 너무 실망하지 말고 손 좀 줘볼래?”
괜스레 동조를 했다간 울 것 같았기에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엔 악수하듯 손을 뻗었다.
손을 잡고 다리를 살폈다. 아까와 달리 발에 기가 몰려있었다. 한데 왼발처럼 순환이 안 되니 머물다가 스미듯이 사라질 뿐이다.
물론 아직까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가 없었다. 망가졌던 맥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때요?”
“아직 뭐라 말할 수가 없네. 실망은 이르니까 계속 훈련을 해.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 사흘 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보자.”
“···네.”
실망하는 모습이 걱정되진 않았다. 평창에서 봤던 모습대로라면 곧 이겨내려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
딩동!
아침을 먹고 병원에 가려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형, 저예요!
뜻밖에도 나연섭이다.
“···니가 여긴 웬일이냐?”
-형이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을 것 같아서 제가 왔어요. 문 안 열어주실 거예요?
“아! 미안······.”
대문을 열어주고 아래로 내려가자 유모와 함께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가 형이 말하던 가게군요. 꼭 카페 같은데요?”
“그래, 고맙다.”
“2층이 형이 지내는 곳이에요? 구경해도 돼요?”
“물론이지. 밥은 먹었냐?”
“병원에서 나올 때 먹었어요. 와! 좋네요. 여기 형 집이라고 했죠? 뭔가 클래식하면서··· 나무 냄새가 나는 게 별장 같기도 하고요.”
과장된 행동과 말투, 어설픈 칭찬, 연신 자신의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 싸한 느낌이 들었다.
유모를 흘낏 보니 어색하게 웃는다. 그 모습에 왜 찾아왔는지 짐작이 갔다.
‘후··· 혼자 조용히 살 팔자는 아닌가 보네.’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직 어린 나연섭이 자신에게 점수를 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와아~ 발코니도 있네요. 삼겹살 구워먹으면 딱 좋겠어요.”
“왜? 형네 집에서 지내고 싶냐?”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생각했을까 움찔하곤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다 휙 돌아서며 물었다.
“···그래도 돼요?”
“형 여자 친구 생길 때까지다.”
“당연하죠! 그럼 앞으론 소변도 조절 가능하겠네요?”
“그래. 해줄 순 있는데 너무 참진 마라. 그러다 방광이랑 신장 둘 다 나빠질 수 있어.”
개개인의 생활 패턴에 따라 다르지만 소변은 하루 10회 이하가 정상이다. 만약 그 이상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니 병원을 찾는 게 좋았다.
평균적으로 본다면 5, 6회. 귀찮긴 해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오늘 할 일부터 하자. 화장실은 여기다. 난 내 방 화장실 쓸 테니 여긴 네가 써. 근데 기본적인 물품은 있어?”
“가져왔어요.”
이제야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이 보인다.
변기에 앉은 나연섭의 조임근을 풀어준 후 밖으로 나왔다. 유모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해요.”
“익숙한 일이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숙식과 치료비는 지불할게요. 이건 한 달 비용입니다.”
그녀는 작은 쇼핑백을 주려 했다.
“아, 아닙니다! 원장님께 드리면 알아서 주실 겁니다.”
“전화해 보시면 알겠지만 원장님께선 퇴원으로 처리했으니 더 이상 자신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했어요.”
“하아, 그러면 곤란한데··· 아무튼 원장님과 얘기를 한 후에 말씀드릴게요.”
“이럴 줄 아셨는지 안 받으려고 하면 이 말도 전하라고 하더군요. 두삼 씨의 실력은 결코 싼 게 아니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받으라고요. 얼른 받으세요.”
“······.”
조금 이따가 병원에 가서 얘기해 보기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았다. 한데 쇼핑백 속 금액을 보고 놀랐다. 오만 원 지폐로 가득했다.
“···너무 많습니다.”
“두삼 씨에겐 많을지 모르지만 사장님께선 연섭이를 위해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는 돈이에요. 그리고 완치만 시켜주신다면 포상금도 생각하고 계세요.”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한데 고작 치료비로 목돈이 들어오니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준다는데 받자. 대신 못 고칠 때를 대비해서 쓰진 말자.’
완치를 시킨다면 그땐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받아두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저도 같이 머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 준비와 청소는 제가 할게요.”
“···정말 연섭이를 아끼시는군요?”
“연섭인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럴 것 같았다.
“머무셔도 좋습니다. 다만 식사는 제가 못 할 경우만 부탁드립니다. 청소는 시간 나는 사람이 하는 걸로 하고요. 방은 세 개 중에 아무거나 사용하시면 됩니다.”
이왕 함께 살게 되었으니 먹는 것으로도 치료를 해볼 생각이다.
요도와 항문을 막아주고 두삼은 병원으로, 나연섭은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고 집을 나섰다.
***
병원에 도착하니 민규식은 수술 중이었다. 그래서 먼저 환각지 환자를 치료한 후에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두삼이 뭐 때문에 왔는지 알겠다는 듯 먼저 말을 했다.
“얼마나 주던가?”
“한 달 비용이라고 5,000만 원을 주던데요.”
“나쁘지 않게 줬군. 왜, 적나?”
“···아뇨. 원장님이 전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병원 손님을 제가 뺏은 것 같기도 하고요.”
“병원 걱정은 말라고 했을 텐데, 그 친구도 참 어지간하군. 훗! 내 밑천을 보여줘야 미안해하지 않을 텐가?”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연섭 군의 아버지, 나경록 사장은 우리나라에서 0.1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부자네. 자네에게 준 치료비는 그가 하룻밤에 쓰는 술값에 불과하고. 그래서 부담가지지 말라고 한 거네. 그리고 우리 병원은 그에게 후원금을 받기로 했어. 자네를 소개시켜 준 것에 불과한데도 자네보다 수십 배, 장기적으론 수백 배 많은 돈을 후원받을 걸세.”
“아!”
“이왕 속마음을 꺼냈으니 좀 더 말해주지. 내가 자네에게만 VVIP 환자, 혹은 돈이 되는 환자를 소개시켜 주는 건 아니네. 병원에서 붙잡아 두고 싶은 사람에겐 반드시 하는 일이네.”
“왜 굳이 그렇게··· 혹시 다른 직원들과의 차별성 때문에 그런 겁니까?”
실력 있는 이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누가 연봉을 얼마나 받는지 비밀로 해도 금세 알려지고 결국 다른 구성원의 불만이 커진다.
“맞네. 자네가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 아마 연봉 7천에서 1억 정도, 많으면 1억 5천쯤 받게 될 걸세. 자네 나이와 직위엔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니까. 더 받게 된다면 자네를 시기하는 이들이 생기겠지.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따로 챙겨주고 있네.”
“···대단하시네요.”
까도, 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양파 같은 사람이다.
“근데 제가 병원에 얽매이기 싫다고 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솔직히 자네를 대체할 사람을 찾을 때까진 지금처럼 맡길 수밖에 없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네. 자네가 현재는 갑(甲)이네. 허허허.”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병원장에 앉게 되니 꼼수만 늘더군. 아무튼 자네는 실력으로 버는 돈이니 부담 가질 필요 없네. 그리고 병원에 들어오면 알겠지만 그렇게 챙겨주는 대신에 돈이 안 되는 일도 시킨다는 것도 알아두게.”
“돈이 안 되는 일이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은가. 병원에서 지원할 환자는 넘쳐나는데 그 혜택은 소수만 누릴 수 있다네. 그래서 가끔 개인적으로 돕는 환자가 있는데 그땐 공짜로 부려먹을 수밖에 없지. 물론 강제네.”
마지막 말에서 민규식이 어떤 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참! 지금 시간 있나?”
“1시간 30분쯤은 남습니다.”
“잘됐군. 그럼 좀 도와줄 수 있나?”
“네, 괜찮습니다.”
민규식이 일어났기에 같이 일어났다. 그가 안내한 곳은 소아 병동이었다.
복도를 걷는데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왠지 모르게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안쓰러운가 보군?”
“편치는 않네요. 이곳에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의사가 된다고 해도 소아과는 선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때 뒤에서 약간은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렸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소아과로 오는 게 어때요?”
돌아보니 160㎝ 되는 키에 안경을 끼고 있는 여의사가 서 있었다. 일견 어려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40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오! 김진선 선생. 가던 참인데 여기 있었군.”
“잠깐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원장님.”
“허허! 항상 바쁘군.”
“충원을 안 해주시니 바쁠 수밖에요.”
“의사가 없는데 내가 어쩔 도리가 있나. 자네가 알고 있는 의사가 있으면 데리고 와도 좋네. 그리고 여긴······.”
“알고 있어요. 마취과 이 선생에게 들었어요. 한의사라면서요?”
그녀가 시선을 돌려 두삼을 보며 물었다. 민규식이 귓속말로 마취과 이진석과 부부라고 말해줬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두삼입니다.”
“김진선이에요. 근데 아까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못 들었네요.”
까칠하기도 하셔라.
“제가 한의사라······.”
“한의사도 의사예요. 키 크는 약 팔 때만 아이를 상대하나요?”
“워워~ 이 선생 왜 이러나. 한 선생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내가 다른 병원에서 스카우트라도 해서 데리고 올 테니까 그만하게나.”
“···잠을 못 자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나 봐요. ···미안해요, 한 선생님.”
민규식이 말리고서야 쏘아보던 눈빛을 거뒀다.
“아닙니다. 직접 할 자신도 없으면서 말로만 대단하다고 떠벌렸네요.”
“알면 됐어요. 다음부턴 연민보다 움직이는 사람이 되길 바랄게요.”
교수 같은데 수업 듣는 학생들이 꽤나 괴롭겠다 싶다.
“한데 무슨 일이세요, 원장님?”
“자네 말처럼 움직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 왔지. 어제 회의에서 나왔던 환자 상태는 어떤가?”
“여전해요. 항생제를 변경해서 투여해도 잠깐 좋아졌다가 다시 열이 나요. 검사를 하고 있긴 한데 제대로 파악하기엔 아기가 너무 작아요.”
“들었지? 태어난 지 6개월도 되지 않는 아기인데 열이 심해. 일단은 소변 시료를 통해 세균 감염이 되었음을 확인했네. 신장 초음파 결과 신우신염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정확한 건 아니네. 그래서 핵의학 검사를 시도했는데 마취를 시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불가능했거든. 현재는 항생제가 듣질 않아서 열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네.”
“아이의 상태를 봐달라는 겁니까?”
“그랬으면 하네. 혹시나 신장에 이상이 생길까 걱정스럽군.”
“아기는 처음이라 잘된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일단 움직여야죠. 김 선생님 말씀처럼.”
처음이란 말에 인상을 찌푸리던 김진선은 뒷말에 표정을 풀고 병실로 안내했다.
“으앵~ 으앵~”
“울지 마렴, 해인아. 울면 더 아프단다. 착하지, 우리 딸. 엄말 위해서라도 울지 마렴.”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고 있었다.
가운을 입고 있었기에 얼른 나서며 말했다.
“어머니, 아기 상태를 보러 왔습니다.”
“아기가 울고 있어서······.”
아기 엄마도 울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안을게요.”
엄마는 조심스럽게 아길 건넸고 두삼은 링거선이 걸리지 않게 조심스레 안았다.
열을 내리기 위해서인지 옷을 걸치지 않은 아기는 수액을 맞고 있는데도 뜨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체온이 높았다.
엄마의 품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까 아기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으애앵~ 으애앵~”
“괜찮아. 삼촌이 잘 봐줄게.”
살펴보기도 전에 아기가 기절할 것 같아서 일단 기운을 차갑게 만들어 아이의 몸속에 넣었다.
오른손으로 나간 차가운 기운은 아이의 몸을 한 바퀴 돌고 약간 따뜻해져 왼손으로 들어왔다.
1분 정도 지속하자 자지러지게 울던 아기는 점점 조용해졌다. 그리고 몸이 조금 편안해졌는지 어깨에 고개를 대고 잠이 들었다.
그 상태로 10분 정도 더 돌리자 거친 아기의 숨소리 역시 점점 낮아졌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김진선은 아기의 이마에 손가락을 갖다 댄 후 물었다.
“열이 떨어졌네요. 어떻게 한 거예요?”
“···제 몸이 좀 차갑거든요. 잠깐 살펴볼게요.”
“······.”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건지.
김진선이 물러나고 아이의 몸에 집중했다. 팔뚝만 한 아이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단점은 너무 오밀조밀해 어른들을 탐색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이고, 장점은 맥이 막힌 곳이 거의 없어 세맥까지 상세히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변에서 세균 감염이 발견되면 요도염, 방광염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경우에 따라 신장까지 세균 감염이 일어날 수 있었다.
흔한 경우가 소변 역류로 인한 감염이라 신장부터 요도관까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연섭이 때문에 공부한 것이 도움이 되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요도와 항문에 대해 외우다시피 공부를 했더니 아기의 신장, 방광, 요도를 보는 데 도움이 됐다.
‘신장이 붉어. 염증이 생겼어. 요관, 방광도 마찬가지고. 심하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군.’
염증은 붉게 보였다. 심하면 검붉게도 보였는데 그럴 경우는 상태가 아주 심하다는 뜻이었다.
‘원인은 역시 소변 역류 때문인가?’
한참 보고 있는데 신장에서 처리한 노폐물(소변)이 방광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려간 소변이 판막을 지나 방광으로 들어갈 때였다.
이미 방광에 있던 소변과 만나 일정량이 되자 방광에 순간적으로 압력이 높아졌고 그 순간 소변이 판막을 거슬러 역류했다.
‘아! 판막!’
판막을 자세히 보기 바라자 마치 현미경의 배율을 높이듯이 쭉 당겨지며 판막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