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47화 (46/122)

# 47

14. 바쁘다, 바빠(2)

얼른 밖으로 뛰어 나갔다.

한미령이 말한 이는 정확하게는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양팔과 양 무릎으로 엎드린 채 꿈쩍도 못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마, 만지지··· 윽! ···마세요. 119 좀 불러주세요”

“그러죠.”

스마트폰을 꺼내는데 한미령이 남자에게 외쳤다.

“우리 사장님 마사지 숍을 하고 있지만 한의사예요!”

“······.”

“······.”

두삼도, 남자도 순간적으로 ‘그래서 뭘 어쩌라고’라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한미령이 무엇을 기대하고 한 말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딱 봐도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럴 때 나서봐야 오지랖 넓은 사람 취급밖에 받지 못한다.

“하하··· 우리 직원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짐작건대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직업이시죠?”

“···그렇습니다만.”

“허리 척추가 일자가 되어서 그런 겁니다. 컴퓨터를 오랫동안 하는 사람들이 주로 걸리죠. 이런 경우 가벼운 재채기에도 근육이 긴장되어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됩니다.”

“마, 맞습니다. 방금 재채기를 하다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고 주사 맞으면 한결 좋아질 겁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지금은 응급실로 가셔야 할 테니 이리저리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요?”

다시 119를 누르려는데 이번엔 남자가 말을 걸었다.

“혹시 선생님도 하실 수··· 크으~ 있으십니까?”

“글쎄요. 제 예상이 맞다면 가능하지만 아직 살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요. 예능 작가인데 오늘 원고를 안 보내면 큰일 납니다. 가능하다면 저 좀 치료해 주세요. 치료비는 당연히 지불하겠습니다.”

“으음··· 그럼 한번 살펴봐도 될까요?”

“사, 살살 부탁드립니다.”

“그냥 허리에 손만 올리면 됩니다.”

손을 올려서 살펴봤다. 역시 척추가 일자로 서면서 척추기립근이 잔뜩 긴장해서 발생한 문제였다.

“가능하겠네요. 마사지가 끝나도 약간의 통증은 남을 수 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미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둬야 했다.

“···움직일 수만 있게 해주세요.”

“그럼 일단 안으로 옮길게요. 긴장 푸시고 저한테 몸을 기대세요.”

“···해볼게요. 근데 혼자 하시려고요?”

“그편이 편합니다.”

장갑 때문인지, 임독양맥이 타동이 되어서인지 모르지만 힘이 부쩍 세졌다.

냉장고도 요령 없이 혼자들 수 있을 정도인데 7, 80킬로 되는 사람쯤은 훨씬 쉬웠다.

“아! 아악!”

비명을 두 번 정도 지를 때쯤 남자를 안고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마사지실로 향했다.

사실 마취를 시킨 다음에 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남자가 겪고 있는 증상은 눈물 찔끔 나게 제대로 아프고 나서야 고칠 수 있는 병이다.

왜 굳이 고통을 겪어야 하냐고?

스스로 자세를 바로 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영원히 안 낫기 때문이다.

지금은 척추기립근이 긴장을 한 것뿐이지만 일자 척추가 되면 척추의 힘이 30퍼센트 이상 줄어들면서 척추에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았다.

“이런 경우 현추, 명문, 지실, 신유, 요안혈을 자극해서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현추와 명문혈은 손가락 3분의 1마디가 들어갈 정도로만 눌러주시고 나머지는······.”

“크윽!”

“이렇게 신음이 날 정도로 강하게 자극해 줍니다. 그리고 목부터 허리까지의 근육들 역시 평소처럼 풀어주면 긴장이 풀리며 허리 통증이 줄어듭니다.”

좋은 교육 실험체(?)가 생겼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두 사람을 들어오게 해 교육 마사지를 했다.

“물론 단번에 풀릴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단번에 풀 수 있는 마사지사는 많지 않습니다. 그땐 다시 방금 언급한 혈들을 자극하세요.”

기를 이용하면 10분 정도면 가능했지만 가급적 적은 기로 아프게 30분쯤 마사지를 했다.

혈을 눌러도 신음 소리가 나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다는 비음이 났다.

“이제 한번 움직여 보시겠어요?”

예능 작가라는 남자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다가 아프지 않자 큰소리로 말했다.

“···이제 안 아픕니다!”

“다행입니다. 하지만 일자가 된 척추는 그대로입니다. 한 가지 자세를 가르쳐 드릴 테니 틈틈이 하세요.”

“네!”

“엎드린 상태에서 양팔을 가슴 쪽에 둡니다. 그리고 천천히 밀어주세요. 요가의 뱀 자세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입이 천장을 보도록 꺾어주세요.”

“이렇게요?”

“네. 처음엔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세요. 열을 센 후 원상태로. 이걸 다섯 번 반복하세요. 그럼 오늘과 같은 일은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머리 식히러 나왔다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남자는 두어 번 따라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매무새도 제대로 하지 않고 카드부터 꺼냈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이미 컴퓨터 앞이었다.

“잘 치료하고 왜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계산을 마치고 부리나케 나가는 남자를 보고 있는데 신혜경이 묻는다.

“저 사람 다시 볼 것 같아서요.”

“왜 다 낫지 않았어요?”

“원인은 일자 척추예요. 한데 경직된 근육만 풀어줬으니 다시 같은 증상이 생기겠죠.”

“가르쳐 준 요가 자세를 하면 일자 척추가 괜찮아지지 않나?”

“그야 그렇죠. 근데 안 하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두삼의 예상이 맞았다.

그는 정확히 일주일 뒤 다시 가게를 찾아왔다.

***

오픈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게는 생각보다 잘됐다.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손님이 밀려드는 건 아니지만 일당 벌이는 된달까.

특히 한 번 온 손님이 지인들을 데리고 다시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망이 밝은 징조였다.

가게가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하루 일과도 점점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기운을 몇 바퀴 돌리고 일어나 해가 좋으면 옥상에 약초를 말려놓고 동네에 있는 공원으로 가 가볍게 운동을 했다.

그리고 식사 후엔 할아버지가 남긴 의료 기록이나 의학 서적을 읽었다.

개중엔 대학교 때 본 서적도 있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당시엔 그저 외우고 지나갔던 것들이 이젠 이해가 됐다.

쳇바퀴 같은 삶이라고 하겠지만 누군들 그렇게 살지 않을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여행이 직업인 이들도 살펴보면 똑같은 쳇바퀴다.

다만 자신이 주도해서 도는 건지, 타인에 의해 도는 건지의 차이일 뿐.

오늘은 쳇바퀴에서 잠시 내릴 날인가 보다. 커피를 타서 책을 펴려는데 민규식에게 전화가 왔다.

“네, 원장님.”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언제 가면 될까요?”

아직 병원 일을 할지 말지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누군갈 돕는 것은 마다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와주면 고맙겠네.

알겠노라 대답하고 곧장 오토바이를 타고 한강대학병원으로 달렸다.

“허~ 빨리도 왔군.”

“오토바이를 타면 금방입니다. 효원인 잘 있죠?”

“곧 퇴원할 거야. 근데 수술할 때 마취와 출혈 말고 다른 뭔가를 했나?”

“아뇨. 없습니다. 근데 왜요?”

수술 완료 후 발에 기운을 왕창 불어넣어 주긴 했다.

“아니. 수술 부위의 아무는 속도가 남달라서 말이야. 기를 이용한 수술이라서 그런 건가?”

“혈기 왕성한 나이잖습니까.”

“꼭 늙은이처럼 말하는군. 자네도 아직 어리거든. 얼굴은 20대 같은데 생각하는 건, 영~”

“잔소리하려고 부른 건 아니실 테고 무슨 일입니까.”

“이거 보게. 어제 들어온 환자야.”

민규식이 내미는 차트를 받아 읽었다.

“이름 나연섭. 올해 나이 열일곱. 입원 이유가··· 자살 미수네요?”

“응. 가수 지망생인데 회사에서 성형수술을 권해서 했다가 부작용이 일어났어. 휴우~ 그 때문에 벌써 세 번째 자살 미수야.”

민규식은 자신의 아들이라도 되는 듯 안타까워했다.

“여기에 있는 사진은 성형수술 전 사진인가? 잘생겼는데 왜 고쳤죠.”

“부작용이 얼굴에 나타난 게 아니야.”

“에? 그래요?”

얼른 차트를 넘겼다. 그러자 병명이 보였다.

“Urethral Sphincter, anus Sphincter Incompetence?”

요도조임근(괄약근)과 항문조임근의 무능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다.

요실금은 Urinary incontinence.

변실금은 Fecal incontinence.

단어 뜻으로만 생각해 본다면 괄약근의 기능이 저하되어 요실금, 변실금과 비슷한 증상이 일어난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병명은 신경 쓰지 말게. 마땅한 병명이 없어서 전에 입원한 병원에서 적어둔 거니까. 증상을 말하자면 조임근이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

역시 한글이 좋다. 바로 이해가 됐다.

“조임근 기능이 전혀요?”

“응, 전혀.”

마음이 이해가 됐다.

물만 먹어도 줄줄 새는데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건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고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원인은요?”

“양악 수술을 한 후부터 증상이 일어난 걸 보면 수술 부작용은 확실한데 뭘 건드린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그래서 자네를 불렀어.”

“봐야 알겠지만 오영애 씨 때처럼 금방 고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아예 못 고칠 수도 있고요.”

“물론이네. 평생 배변 주머니를 차든지, 아님 극단적인······. 아무튼 그 어린 아이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고 싶을 뿐이네.”

“알겠습니다. 일단 보죠.”

“신경이 많이 곤두서 있으니 유의하게.”

“자살 시도를 했는데 괜찮은 겁니까?”

“손목을 그었는데 도우미가 빨리 발견한 모양이야. 원래 가던 병원이 있었는데 안 되겠다 싶었던지 그 부모가 우리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그 전에는 어디에 있었는데요?”

“현성병원.”

대기업이 만든 병원으로 한강대학병원과 마찬가지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민규식은 위층 버튼을 눌렀다.

“잘사는 집 자제인가 보군요?”

원장실 위층은 VVIP 병동이었다.

그저 밍숭맹숭 있기 뭐해 한 질문인데 민규식은 다르게 판단한 모양이다.

“지난번 치료비가 좀 적었지?”

“네? 아닙니다. 고작 그거 하고 떼돈 벌 생각 없습니다.”

“아니긴. 이해하게. 평범한 사람이 무슨 돈이 많겠나. 이번엔 조금 다를 걸세. 환자 아버지가 현성건설 사장이니 치료비 걱정은 말게. 듬뿍 챙겨줄 거니까.”

“아··· 네, 알아서 주십시오.”

아니라고 해봐야 믿을 것 같지 않았기에 그냥 수긍했다.

나연섭 환자의 병실로 가기 위해선 VVIP 병동의 구석에 위치한 문을 한 번 더 통과해야 했다.

“여긴 더 조용하네요?”

“자해를 할 수 있는 환자의 입원실이지.”

“아! 이제 보니 창문도 없군요.”

병실이라기보단 고급 감금 시설인 모양이다.

복도를 걷다 우측으로 꺾자 문이 나타났다. 문 앞 의자에 양복 차림의 중년인이 앉아 병실 내부를 비추고 있는 모니터를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나 사장님 오셨군요?”

“···아! 민 원장님. 이 친구가 어제 말했던 한의사인가 보군요?”

“한두삼 선생입니다. 인사하게. 나연섭 군 아버질세.”

“처음 뵙겠습니다. 한두삼입니다.”

“나연섭 애비 되는 사람이오. 뛰어난 실력의 한의사라고 들었소만.”

“원장님이 좋게 봐주신 겁니다.”

“민 원장님이 그렇게 봤다면 맞겠죠. 병명에 대해서는 들었소?”

“네.”

“지금 연섭이의 정신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오. ···자살에 실패해서 더욱 그렇소. 심하게 욕을 할지도 모르고 폭력을 휘두를지도 모르오.”

병실 내부를 비추는 모니터를 봤다.

푹신한 벽에 머리를 박고 바닥에 누워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모습이 보였다. 한데 혼자가 아니었다.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저 여성분은 누굽니까?”

“갓난아이 때부터 돌보던 유모입니다. 이상이 생긴 후로 다른 사람에겐 모질게 굴어도 유모에겐 아무 말도 않고 얌전히 굴어서 부탁했소.”

“알겠습니다. 감안하죠. 그럼 들어가서 연섭 군의 상태를 볼까요?”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나연섭의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이러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원장님, 문 좀 열어주세요.”

“과격하게 말은 해도 천성이 착한 애더군.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되네.”

민규식은 툭툭 어깨를 토닥인 후 문을 열었다.

화면상으로 삐쩍 말라보이지만 17살이면 항상 혈기 왕성할 때였다. 거기에 정신 상태까지 온전치 않으니 혹시 모른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치료가 아니라 마치 싸우러 가는 기분이네.’

심장이 살짝 빨라지긴 했지만 긴장하지 않았다.

한의사이니 말랑말랑하게 살아왔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두삼 또한 사고뭉치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야이! 씨발! 나가!”

휘익!

뭔가가 빠르게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연예인 지망생이 아니라 프로야구 지망생인가 싶을 만큼 빠르고 정확한 투구, 투컵(投Cup)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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