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45화 (44/122)

# 45

13. 상처를 주는 이도, 낫게 하는 이도 사람이다(5)

손 소독을 마치고 수술실로 들어가자 간호사가 장갑을 끼워줬다.

“수술에 앞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간단히 인사를 하지. 여긴 오늘 수술을 도울 한두삼 한의사. 저기 매서운 눈빛으로 자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필 마취과 이지석 과장.”

“원장님도 참, 어떻게 마취시킬지 궁금해서 왔다니까요. 그리고 수술 기록지에 제 이름 올린다면서요. 그러니 당연히 들어와야죠. 이지석입니다. 원래 눈이 이렇게 생겨먹었습니다.”

이지석은 날카로운 생김새와 달리 말투는 서글서글했다.

“사람은 좋은데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걸세. 여긴 의사 면허만 없을 뿐이지 웬만한 의사보다 아는 게 많은 나정연 수간호사.”

“반가워요, 한 선생님.”

“반갑습니다. 나 수간호사님.”

나정연은 40대 초중반의 인상 좋은 옆집 아주머니처럼 보였다.

민규식은 소개를 마치자 이효원을 보며 말했다.

“효원 양, 수술은 한 시간쯤 예상하고 있어요. 수술하는 거에 신경 쓰지 말고 가급적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음악을 듣고 있을게요. 잘 부탁드려요.”

“최선을 다하죠. 한 선생, 시작하지.”

“예.”

두삼은 이효원의 오른쪽으로 갔다. 그리곤 지금까지완 달리 허벅지와 무릎 쪽의 혈을 빛나는 검지로 꾹꾹 눌렀다.

사실 어느 부위든 잡고 내부로 기를 보내면 됐지만 그러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황당하고 많은 의문을 줄지 알기에 방법을 바꾼 것이다.

설명하기도 쉽고 나중에 다른 이들에게 가르칠 때도 이편이 나았다.

“됐습니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볼게요.”

“다됐다고요? 테스트는 내가 해봐도 될까요?”

손가락으로 몇 번 찌르는 것으로 끝났다니 이지석은 믿기지 않는 듯 나섰다.

뒤로 물러나자 그는 뾰족한 것으로 이효원의 발바닥을 꾹 찌르며 물었다.

“효원 씨, 느낌이 있어요?”

“없어요.”

“지금 제가 뭘 하고 있죠?”

“글쎄요?”

몇 가지 더 테스트 하던 이지석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채 물러났다.

민규식은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빙긋이 웃곤 두삼을 보며 물었다.

“시작해도 되겠나?”

두삼은 이효원의 손을 잡은 후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잡은 건 내부의 혈관을 막기 위함이었다. 수술하는 와중에 혈관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 찌르는 건 괜스레 번잡했다.

잡은 손으로 뻗어간 기운은 이효원의 다리로 가는 혈관들을 일단 느슨하게 막았다.

스윽!

수술용 칼이 이효원의 발의 피부를 절개했다.

‘기가 막히게 자르네.’

근육에 손상이 가지 않게 근막까지만 정확하게 자랐다. 살짝 피가 방울져 나왔지만 그게 끝이다.

“살짝만 벌리고 있어. 내시경.”

내시경이 절개된 곳으로 들어가 첫 번째 이물질이 박혀 있는 곳으로 갔다.

“이 정도로 작으니 내시경으로 보지 않은 이상 찾을 수가 없지. 석션.”

내시경이 보여주는 화면엔 작은 뼛조각이 근육과 근육 사이에 박혀 있었다. 석션이 내시경을 따라 들어갔고 곧 뼈 앞에 이르렀다.

석션이 작동을 했고 뼛조각은 잠시 반항하듯이 꿈틀대다가 석션의 구멍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하나 더 제거하지.”

다시 내시경을 조작한 민규식은 금세 다른 하나를 찾았고 제거했다.

옆에서 보면 아주 쉽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기운을 통해 발을 살피고 있는 두삼에겐 민규식의 뛰어난 실력이 그렇게 보이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봉합하고 바로 다음 절개로 들어가지.”

나 간호사가 바늘과 실을 건넸고 1.5㎝ 크기의 상처는 순식간에 봉합됐다.

‘대단해!’

수십 년간 일류 외과의로 살아온 민규식의 손은 소름이 돋을 만큼 깔끔했다.

대체적으로 나이가 들면 손이 무뎌지고 느려진다. 민규식 역시 나이를 속이진 못하는지 손이 빠르진 않았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랐다.

필요 없는 동작이 일체 없다고 할까.

세 번째, 네 번째 이물질이 차례차례 제거됐다.

1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네 개의 이물질을 제거하기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만일 마지막 이물질이 근육 깊숙한 곳에 박혀 있지 않았다면 20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네 개가 끝인가?”

수술을 끝내기 전 다른 이물질이 있는지 물었다.

“네. 없습니다.”

“찾아낸 사람이 없다고 하니 맞겠지. 마지막 봉합은 민 선생이 해. 수고들 했어. 난 원장실에 가 있을 테니 마무리 짓고 오게.”

민규식이 나가고 2분도 되지 않아 민청하가 봉합을 끝냈고 나 간호사는 세 곳의 수술 부위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발랐다.

그동안 오른발 전체 마취를 풀고 종아리 아래의 통증만 없앴다. 그리곤 나 간호사에게 말해줬다.

“하루 동안은 종아리 아래로 통증이 없을 겁니다. 그 이후엔 서서히 아플 테니 병원에서 하시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네. 담당 간호사에게 그리 전할게요.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이 선생님, 청하 씨 수고하셨습니다.”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다음에 할 때도 불러주세요.”

“전문의 시험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아! 이번 달부턴 동기들끼리 단체로 모여 공부하기로 했지. 끝나고 봐야겠네요.”

“스트레스 받으면 우리 가게로 놀러 와요. 서비스로 두피마사지부터 발마사지까지 해줄게요.”

“약속하는 거예요! 꼭 갈 거니까 각오해요.”

전문의 시험은 높은 합격률로 인해 당연히 붙는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는 시험이기도 했다.

끝으로 이효원에게 갔다. 어수선함에 수술이 끝난 걸 알았는지 이어폰을 빼고 있었다.

“고마워요, 오빠.”

“이상 증상이 안 생기면 그때 고마워해도 돼.”

“분명 없어졌을 거예요. 느낌이 그래요.”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병원에 있다가 재활 훈련 시작하면 연락해.”

“그럴게요. 그리고··· 손잡아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편안하게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응. 이제 병실 가나 보다. 다음에 봐.”

손을 흔드는 사이 침상은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일단락 지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효원과 친한가 봐요, 한 선생?”

“헉! 이, 이 선생님! 아직 안 가셨어요?”

“뭔가 허전하고 허무해서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어서 말이죠.”

“아, 네. 효원이랑은 이번 일로 알게 됐어요. 혹시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상하게 안 봐요. 그냥 친해 보여서 물은 겁니다.”

왠지 기분이 살짝 나쁘다.

“그럼 전 이만. 원장님이랑 갈 곳이 있어서.”

“원장실로 가는 겁니까? 그럼 같이 갑시다. 나도 마침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

아무래도 뭔가 물어볼 것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물었다.

“한 선생, 한 가지 물어봅시다. 아까 오른쪽 다리를 마비시키기 위해 눌렀던 곳을 나 같은 사람이 눌러도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까?”

“아뇨. 대충 누르는 것처럼 보여도 누르는 곳마다 누르는 정도가 다릅니다. 그리고 손가락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를 이용해야 한다는 걸 집중해야 한다는 말로 바꿔서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침술을 이용해 혈을 찌르는 한의사들 중 일부는 집중을 통해 침에 기를 실어서 찌르는 것이다.

처음 침술을 배울 때 눈썰미와 손끝의 감각이 좋아 교수님이 하는 대로 똑같은 깊이로 똑같이 시술을 했는데도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 역시 이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마사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자 마사지사가 여자를, 여자 마사지사가 남자를 마사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나, 마사지사가 집중해서 마사지를 하고 나면 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드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다.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증명할 수 없을 뿐이지 기는 분명 존재하고 무의식중에 사용하고 있었다.

“···역시 그런가요?”

“침을 이용하면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데 그 역시도 대충 찌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그럼 편하게 할게. 근데 침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

“네. 한데 굳이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선생님의 분야인 마취통증의학만 해도 보통 발달된 것이 아니잖습니까. 사실 오늘 제가 한 일은 국소마취제의 역할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외과의 발전은 마취 의학의 발전에 의한 것이라 할 만큼 마취통증의학은 중요하다.

독일의 유명 성형외과의 인 디펜바흐는 에테르의 마취효과를 처음 경험한 후.

‘환자의 통증을 없애려는 놀라운 꿈이 드디어 실현되었다. 통증은 우리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불완전한 육신의 가장 분명한 감각이었으나, 이제는 그것이 인간 정신의 힘과 에테르 증기의 힘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고 감격했다 한다.

사실 최신 마취 기계와 약물이 있는 대학병원에서 굳이 침으로 마취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한해 마취를 잘못해서, 마취의 부작용으로, 마취를 유지할 수 없어서 사망하는 환자들이 얼마나 될 것 같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마 상당할 거야. 테이블 데스(수술대 위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것)의 경우 온전히 수술 담당의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꽤 있고.”

“···모든 걸 제어할 수 있다면 의사가 아니라 신이지 않겠습니까?”

“그야 잘 알아. 하지만 안전한 마취법이 있다면 환자를 위해 그 방법을 사용하는 게 옳지 않겠어?”

끼리끼리 논다고 어째 이지석 역시 민규식과 비슷한 부류 같다.

‘아니, 이런 사람이니까 민규식이 중히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이지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자신 역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진료와 치료를 위해 양의학을 공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 사람이 모든 걸 할 순 없다.

“굳이 선생님이 공부하는 것보다 한방의학과가 생기면 한의사들과 협업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음, 그런 방법이 있었네. 한데 한의사들 중 자네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지?”

“···글쎄요?”

대학교 때 방학마다 중국에 가서 배웠는데 그때 우리나라 학생들은 몇 명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몇 명 중 끝까지 함께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자신이 다녔던 전후로 들은 사람들이 많았을 수도 있고 할아버지처럼 숨은 실력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은 희박했다.

한의사 중 수술실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본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평생 한 번도 없을 일에 시간을 낭비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중국만큼 많진 않지만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한데 드물 거야. 그러지 않다면 양의학의 영역을 넘보는 한의학계에서 내버려 뒀을 리가 없지. 분명 기사화해서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려고 했을 거야.”

맞는 말이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한방의학과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협업을 할 수 있다면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면 협업은 할 수 없다는 말 아니겠어? 게다가 당장 내일 그런 실력자가 필요할 수도 있고······.”

“정 급할 땐 저한테 연락······.”

애쓰는 것이 안쓰러워 위로의 말을 건네다가 왠지 모르게 싸한 기분이 들어 말을 멈췄다. 그러나 이미 낚시 바늘을 문 물고기 꼴이었다.

“그렇지! 그 방법이 있지! 한 선생이 그렇게 해준다면 내가 굳이 배워야 할 필욘 없지. 필요할 때 연락할 테니 꼭 도와줘.”

“······.”

“이런, 내 정신 좀 봐. 다음 수술이 있는데 이러고 있었네. 전화번호는 원장님께 물어볼게. 8585가 내 전화번호 뒷자리니 꼭 받아. 담에 보자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도망가듯이 사라지는 이지석. 8585가 파닥파닥처럼 들렸다.

터덜터덜 원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소리쳤다.

“원장님이 시킨 일입니까?”

“응? 들어오자마자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아닙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었다.

“원, 싱겁긴. 오영애 환자 지금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가세.”

넓은 병원을 가로질러 오영애 환자의 병실로 갔다.

오영애는 침대에 앉아 죽을 먹고 있었는데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얼굴이 제법 좋아졌다.

“한 선생님?”

“네. 이는 안 아프세요?”

“전혀요! 어제까진 죽을 것 같았는데, 신기해요.”

“몸은 어떠세요?”

오영애는 숟가락을 놓더니 두삼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담당 선생님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고 했는데 컨디션은 좋아요. 어제 마사지도 선생님이 해주신 거라면서요? 여기저기 쑤시던 것도 말끔해졌어요.”

마사지를 할 때 몸 상태가 너무 엉망이라 기를 잔뜩 넣어줬는데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에요.”

“네. 다행이에요.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게 되다니······. 제가 선생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를 거예요. 우리 아이들··· 햇님이와 달님이···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아이를 잃었다면 저도 살지 못했을 거예요. ···정말 감사드려요, 선생님. 감사해요.”

밝은 모습으로 말하던 그녀는 쌍둥이 얘기를 하면서부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곧 두삼의 손에 이마를 대곤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기쁨의 눈물이 따듯하게 손을 적신다. 그리고 그 따듯함이 잊고자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던 과거의 일부를 사르르 녹였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를 사람에게 치료를 받다니 아이러니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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