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13. 상처를 주는 이도, 낫게 하는 이도 사람이다(4)
치아는 딱딱한 겉과 달리 내부에 치수라고 불리는 신경과 혈관이 풍부한 부드러운 조직이 있다. 이가 아프다는 것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치아를 보호하도록 치수의 신경이 반응하는 것이다.
흔히 치과에서 하는 신경 치료는 내부의 연조직인 치수를 제거하고 그 빈 공간에 대체 재료를 넣는 것이다. 즉, 치수의 신경과 혈관을 막는다고 해서 이상이 생길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일단 치근 부분을 막아버리자.’
조치를 취한다고 말하려고 민규식을 돌아보자 마치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심조심.’
의사들이 치수를 제거하지 못한 이유는 치근의 끝부분에 혈관과 신경이 있어 혹 치수를 제거하다가 혈관과 신경이 다칠까 저어해서였다.
하지만 두삼은 둘 사이에 기를 밀어 넣어 살짝 벌린 후 윗부분을 집게처럼 막아버리면 됐다.
“아!”
신경이 눌리면서 순간적으로 아팠는지 가볍게 비명을 질렀지만 그게 끝인지 눈을 뜨진 않았다. 그리고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잠꼬대처럼 말했다.
“···엄마가 주물러 줘서 그런가? 이의 통증이 사라진 것 같아. ···엄마, 미안한데 전체적으로 주물러··· 크으응~ 크으응~”
그리곤 다시 잠들었다.
치료가 끝났지만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허벅지와 팔을 주물러줬다.
궁금했는지 민규식이 물었다.
“치료가 된 건가?”
“일단 치근 부근을 꽉 조여놨습니다. 상태를 봐야겠지만 지금으론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런가? 역시 자네라면 가능하리라 믿었네!”
“제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이를 낳은 후에 생각해 보기로 하죠.”
“제거까지 가능하면 더할 나위가 없지. 고생했네, 고생했어. 허허허!”
“원장님··· 지금 치료가 됐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환자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완전히 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치통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저 마사지만 했을 뿐인데······.”
어머니는 도무지 믿기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몇 달간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문제가 젊은 의사가 잠깐 주물렀다고 해결되었으니 믿기는 게 더 이상했다.
“이 친구가 재미난 재주를 가지고 있거든요. 일단 깨어난 후에 천천히 알아보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민규식이 어떻게 변명을 하나 들어봤는데 얼렁뚱땅 넘기는 수준이었다.
피식 웃었지만 자신 역시 설명할 길이 없었기에 마사지에 집중했다.
‘오늘은 엄마한테 전화를 드려야겠어.’
마사지를 하면서 느껴지는 쌍둥이, 편안해진 표정으로 자고 있는 쌍둥이 엄마, 그리고 치통이 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고 있는 딸을 보고 있는 어머님. 이 네 사람, 삼대를 보고 있자 왠지 어머니가 떠올랐다.
***
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월요일 혹은 화요일에 쉬는 게 가게를 위해 더 좋지 않느냐는 신혜경의 의견이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쉴 때 같이 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쉬는 날을 일요일로 정했다.
집이 있고 월세 역시 나가지 않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휴일인데 마냥 쉴 수는 없었다.
이효원의 수술이 오늘이었다.
“나가려니 비가 오네.”
마른장마가 계속되다가 장마가 끝났다고 뉴스에서 떠들고 나니 비가 오는 건 뭔지.
헬멧을 벗고 안전 장비를 벗어 거실 앞에 두고 우산을 찾았다.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탈 수도 있지만 수술 날 컨디션을 위해 택시를 타기로 했다.
빵!
대문을 열고 나가자 육중한 SUV가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차창이 스르륵 내려가며 조각과 같은 얼굴이 나타났다.
“하란 씨 여긴 웬일이에요?”
“작업실 공사 현장 둘러보러 왔어요. 다 둘러보고 병원에 가려는데 비가 와서 두삼 씨랑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란은 옆집을 슬쩍 보고 말했다.
“에? 공사하는 옆집이 하란 씨 작업실이었어요?”
옆집은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공사 중이었다. 부지도 제법 돼서 빌라를 짓나 싶었는데 하란의 작업실이었다니.
“네. 투자사 그만두게 되면 저곳에서 연구하려고요.”
“네? 투자사를 그만둔다고요?”
만나자마자 여러 번 놀라게 한다.
“대답은 조금 이따 듣고 일단 타세요. 비가 거세지고 있잖아요.”
우두둑 쏟아지는 비에 신발이 젖을 것 같아 사양하지 않고 올랐다. 그리곤 어색함을 덜고자 말했다.
“비 온다는 얘기도 없었는데 웬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지 모르겠네요.”
“태풍이 빠르게 북상 중이래요. 수건 여기 있어요.”
“고마워요. 근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투자사를 그만둔다는 건 무슨 얘기예요?”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게 해뒀거든요. 인공지능형 자동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라 하루에 한두 번 인터넷으로 접속해 확인만 해도 충분해요.”
“하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단하다는 느낌은 드네요.”
“호호! 그냥 농땡이 피우기 쉽게 알아서 굴러가게 해둔 거라 생각하면 돼요.”
“그렇군요. 그럼 이제부터 뭘 하려고요?”
“엄마랑 쉬엄쉬엄 여행이나 다니면서 취미 활동이나 할까하고요.”
“취미가 뭔데요?”
“이것저것 잡다한 걸 연구하는 거요.”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백수구나’ 할 텐데 하란 씨가 한다니 어떤 게 나올까 궁금하네요.”
“언제든 구경 와요. 두삼 씨라면 환영이에요. 참! 근데 이제 우리 말 편하게 하는 게 어때요? 이웃사촌도 됐잖아요. 저 올해 서른한 살이에요.”
“전 서른셋. 사회에서 열 살 터울까진 친구라는데 친구할까요?”
“그럴 순 없죠. 오빠라고 부를게요.”
“···그래요.”
“오빠, 말 편하게 해. 나도 편하게 할게.”
“으, 응.”
참 부러운 성격이다.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과거엔 자신도 저랬던 것 같은데······.
처음 봤을 때 근심이 있어서 차갑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배영옥이 낫고 근심이 사라져서 그런지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다.
“오빠 취미는 뭐야? 지난번에 카메라 좋은 거 있던데 혹시 사진?”
“아니··· 직캠.”
“직캠?”
“···왜 있잖아, 아이돌 가수 공연하는 영상 찍는 거 말이야.”
떳떳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하란에게 말하려니 왠지 부끄럽다.
두삼이라고 사회적 시선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한데 하란은 생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 그거. 오빤 즐겁게 사는구나.”
“응? ···이상한 건 아니고?”
“이상할 게 뭐 있어? 물론 오빠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사람들의 시선을 말하는 거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살 순 없지. 하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잖아. 직캠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공유를 통해 오히려 사람들을 즐겁게 하잖아.”
“하하··· 마치 직캠 카페 카페지기 형처럼 말하네.”
“사실 나도 예전에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일반적인 건 아니었어.”
“뭔데?”
“코스프레.”
하란이 헐벗은 애니 캐릭터들을 코스프레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얼굴이 화끈해진다.
일본의 코스프레와 미국의 코스프레는 조금 다른데 왜 일본 쪽으로 생각되는 건지.
“···방금 이상한 상상했지?”
“아, 아니!”
“표정이 영 이상했는데?”
“착각이야. 근데 말투가 왠지 못 해봤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닌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속아주는 것 같았다.
“맞아. 못 했어. 다른 사람의 시선이 어떨까 싶기도 했고, 한국에서 일하는 엄마 생각에 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포기했어.”
“지금이라도··· 하지 그래?”
“내 나이에 하면 욕먹네요. 그리고 이젠 다른 취미에 몰두를 하고 있어서 괜찮아.”
하마터면 ‘누가 욕을 해!’하고 소리를 칠 뻔했다. 하지만 곧 더 좋은(?) 취미 활동을 하고 있을 수 있기에 물었다.
“요즘 취미는 뭔데?”
“3D프린터로 물건 만드는 거나 드론 만들어 날리기. 한 2년간은 못 했지만 다시 시작하려고.”
“······.”
“어째 실망한 표정이네?”
“실망은··· 재미있겠다 싶어서.”
“그럼 다음에 같이할까?”
“그, 그래.”
즐겁게(?) 얘기를 하는 동안 병원에 도착했다.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왔어.”
“효원이 수술 잘 부탁해, 오빠.”
엘리베이터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두삼은 원장실로, 하란은 이효원의 입원실로 갔다.
“안녕하세요, 두삼 씨.”
원장실로 들어가자 커피를 마시고 있던 민청하가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보조가 필요해 청하를 불렀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지 않겠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청하 씨.”
“어제 세 생명을 구했다는 얘길 듣고 제가 지원했어요. 직접 보고 싶거든요.”
“그저 신경 치료를 한 것뿐입니다.”
“겸손하시네요. 앉으세요. 수술 준비 끝마치고 나면 연락이 올 테니 그 전에 커피 한 잔 하세요.”
그녀는 일어나 탕비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민규식은 흐뭇하게 보며 중얼거렸다.
“내 딸이지만 참 잘 자라지 않았나?”
“누굴 보고 배웠겠습니까?”
“입도 실력 못지않군. 허허허!”
“느낀 대로 얘기했을 뿐입니다. 오영애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까지 전혀 아프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니 잘된 것 같아. 환자가 수술 끝나고 봤으면 하더군. 퇴원하기 전에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모양이야.”
“정식으로 일하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내키지 않아 거절하려는데 민청하가 커피를 가져오며 말했다.
“치료비는 못 받아도 감사 인사는 꼭 받으라는 말이 있어요.”
“···처음 듣는 소린데요?”
“그렇겠죠. 하지만 우리 병원에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에요. 그렇죠, 원장님?”
“그 말은 내가 했지만 딱지가 앉도록 얘기하진 않은 것 같다만?”
민청하가 한 말은 민규식이 자주 하는 말인가 보다.
민규식을 보자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병원 종사자들이 고생하는 거에 비하면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자존감이라도 높여야 하지 않겠나.”
의사의 평균 월급은 천이삼백 정도, 간호사의 평균 월급은 삼백만 원 정도다. 그래서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데 착각이다.
모든 곳이 그렇지만 양극화가 심해져 상위 10퍼센트가 대부분을 번다.
의대 6년 이후, 인턴 레지던트 5년간 병원마다 다르지만 300전후다. 심지어 200만 원을 받는 곳도 있다. 살인적인 노동 시간과 비교하면 최저 임금 수준이다.
얼마 전 경기도 한 병원에서 월급 700만 원을 주는 자리가 났는데 경쟁률이 20 대 1이 넘었다.
간호사의 경우는 말이 필요 없다. 일의 강도도 강하고 감정 노동의 강도도 강하다. 이직률만 봐도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알 수 있다.
“난 의사와 간호사가 가져야 하는 윤리 의식을 백번 강조하는 것보다 환자가 해주는 한 번의 칭찬이, 진심이 담긴 감사가 그들의 마음을 울릴 거라고 믿는다네. 우리 병원 이직률이 전국 최저인 이유가 이 때문이라면 착각이려나? 물론 그렇다고 월급을 짜게 주는 건 아니네. 허허허!”
‘이상을 이루기 위해 현실에 충실한 부류인가?’
이제야 민규식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에 대한 호감이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호감도가 깊어졌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수술 준비 중이니 지금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 수다는 이만하고 일어나지.”
두삼은 민규식을 따라 수술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