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13. 상처를 주는 이도, 낫게 하는 이도 사람이다(3)
“위기를 넘기고 나자 그다음부터는 쉬웠습니다. 꾸준히 맥을 뚫자 암 덩어리들이 서서히 사라지더군요.”
“사례가 모인다면 좋은 자료가 되겠군. 이거 한의학을 제대로 공부를 해봐야 하나?”
“점점 극복해 가고 있는 양의학을 두고 한의학을 공부하다니요. 절대 권하지 않습니다. 그저 행운이 몇 번 겹치며 일어난 기적인지도 모릅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네. 알아두면 한방의학과 의사들과 협조할 때 좋지 않겠나.
“그렇긴 하죠. 이상입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밑밥을 까나 싶다.
“···뭐가 말입니까?”
“자네의 실력 말이야. 난 한의학의 잣대에서 조금 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위에 있었어.”
“과찬이십니다. 이효원 씨의 수술만 봐도 한계가 뚜렷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양의학의 한계도 뚜렷하지. 수십억짜리 기계가 못 찾는 일을 자넨 5분도 되지 않아 찾아내지 않았나.”
하여간 말로는 못 당하겠다. 그냥 알아서 판단하라고 두는 게 나겠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왜, 가려고?”
“손님들이 몰려왔을지도 모르는데 가봐야죠.”
더 오래 있어봐야 귀찮기만 할 터. 한 단락 끝났을 때 일어나는 게 이로웠다. 가게에 간다는 핑계를 댔으니 그도 잡지 못할 것이다.
한데 과소 평가는 두삼이 하고 있었다.
“이효원 환자 수술에 대한 얘기가 길어졌으면 어쩌려고 했나?”
“그야······.”
“몇 가지 질문에 더 대답해 주고 가게. 자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군. 같이 일할 사람끼리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하지 않겠나.”
‘나이 든 아저씨가 그런 말해봐야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만······.’
속마음과 달리 차라리 다 말해주고 떠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말해주지 않아도 뒷조사로 다 알아낼 가능성이 높았다.
“···마음껏 물으십시오.”
“허허! 진즉에 포기하지 그랬나.”
“······.”
“허허허! 놀리는 재미가 있는 친구군. 아! 미안하네. 그만 놀리고 묻지. 말기 암 환자 말고 고친 병이 또 있나 궁금하군.”
“환각지 환자 다섯 명과 CRPS을 치료했습니다.”
“맙소사! 환각지는 치료 방법을 알아낸 거군. 어떤 식으로 치료를 한 건가?”
앞서 배영옥의 치료에 대해 얘기할 때 능력에 대해 언급을 충분히 했기에 환각지와 CRPS의 어떻게 접하고 어떻게 치료했는지에 대해선 간략하게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자네가 치료한 사례로 보면 자네의 능력은 기를 이용해 신체 내부를 보고 맥과 혈을 이용해 치료를 한다는 것이군. 가만··· 피를 멈추게도 할 수 있으니 맥과 혈로 한정을 지으면 안 되겠군.”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얘기 도중 언급한 말을 통해 두삼의 능력을 추정하고 있었다.
“음··· CRPS 얘기할 때 신경을 봤다고 했으니 신경 역시 조절을 할 수 있다는 얘기겠군.”
“맥과 혈을 이용하지 신경계는 웬만해선 손을 대지 않습니다만······.”
신경에 대해선 지식이 부족했다. 그래서 혹시나 혈관처럼 눌러놨다가 아예 신경이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할까 저어해 만지지 않았다.
희진이를 치료할 때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맥과 혈을 통해 마비를 시킨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안 한 거지 못한 건 아니잖아. 자! 잠깐 자네 솜씨 좀 보여주게.”
그는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네?”
“설마 말로만 때울 생각이었나? 실력을 직접 보여줘야 안심하고 수술할 수 있지 않겠나.”
“···믿는다면서요?”
“믿네. 다만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나?”
말이나 못 하면······.
민규식을 만나 이효원의 일이 손쉽게 풀린 걸 생각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일어나 그를 뒤따라갔다. 특실 손님을 보나 싶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특실에서 벗어나 일반 병실 쪽으로 향했다.
“허허허! 고생들 많네.”
지나가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인사를 할 때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러다 보니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못하고 따라갔다.
“산부인과?”
한참 꼬불꼬불 걷다가 도착한 곳엔 산부인과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왜? 산부인과에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나?”
“아뇨. 뜻밖이라. 환자들이 넘쳐나는 병원에서 여기까지 올 이유가 있었나 싶어서요.”
“이왕 자네의 솜씨를 보는 김에 도움이 절실히 사람에게 가는 게 낫지 않겠나.”
“그야 그렇죠.”
“어째 말투가 조금 이상하군. 내가 환자를 차별하는 것 같나?”
“···저 역시 알게 모르게 차별을 하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의사도 인간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빈부,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모든 환자를 똑같이 보고 철천지원수가 환자라는 이유로 성심을 다해 치료를 해야 하는 성인이 아니다.
적어도 평범한 인간인 두삼은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지난 버스 사고와 뉴스 매체에서 본 민규식의 모습은 달랐다. 성인이라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그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만큼 훌륭했다.
자신은 하지 못하면서 민규식은 그랬으면 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지 두삼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선 ‘그는 그래야 한다’고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려 했던 건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두삼에겐 ‘세상은 아직 살 만해’라고 말할 만한 예시가 필요했는데 그 예시를 은연중에 민규식으로 잡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투덜거리면서 자신이 했던 치료와 실력에 대해 말해준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눈앞의 민규식도 다르지 않다는 것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민규식의 말에 성급한 판단이었음을 깨달았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이를 공평하게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가급적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네. 하지만 이곳은 차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중치를 줘야 하는 곳이네. 두 사람이지 않은가.”
“···아!”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건가? 지금 이 시간에도 환자는 아프다네.”
“···예, 예!”
오해한 것이 부끄러워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발걸음은 조금 전보다 훨씬 가벼웠다.
“오영애 환자 차트를 보여주게.”
민규식은 산부인과 접수대에 이르자 간호사에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원장의 출현에 간호사는 놀랄 경황도 없이 오영애 환자의 진료 기록을 띄운 태블릿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원장님.”
“고맙네. 보게.”
간호사에게 받은 태블릿을 두삼에게 내밀었다.
임산부들은 아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 많은 불편함과 위험에 노출된다. 단순한 감기에도 약 대신 수액을 맞아야 하고, 평소라면 별것 아닌 지병에 산모, 아이 둘 다 위험해질 수 있다.
임신중독? 심혈관 질환?
무슨 병일까 생각하며 진료 기록을 확인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충치? 치과에서 다뤄야 할 문제 같은데요.”
“자세히 보게.”
얼핏 보면 사랑니가 썩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음 장에 있는 사랑니 사진을 살펴보던 두삼의 미간이 좁혀졌다.
안쪽으로 비스듬히 난 우측 사랑니 밑에 머리로 올라가는 온목동맥이 자리하고 있고 신경까지 요상하게 얽혀 있어 치료를 하다간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했다.
“사랑니가 무사히 자란 게 신기할 정도네요.”
“그렇지. 입안이 작은 사람들의 경우 종종 옆으로 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지. 사랑니가 자랄 때 이상이 생겼으면 차라리 쉬웠을 것을. 운이 없는 케이스랄까.”
민규식의 안쓰러워하는 말을 들으며 계속 넘겼다. 임산부가 산부인과에 왜 입원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썩은 이를 치료를 못해 치통이 계속되자 안 그래도 민감한 임산부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니 없던 병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쌍둥이네요?”
“그래, 세 사람이지. 치과를 통해 입원한 지 한 달이네. 이대로라면 산모가 허락하지 않겠지만 아이들을 버려야 할 수밖에 없네. 어떻게 방법이 없겠나?”
버린다는 말이 심장을 옥죈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내야 할 판이다.
“볼 수 있을까요?”
“옷부터 갈아입게.”
“···그러죠.”
탈의실로 이동해 민규식이 건네는 흰 티와 의사 가운을 입었다.
‘오랜만에 입어보네. 평생 다시 입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거울 속 가운을 입은 자신을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기분이 어떤가?”
“···옷 갈아입는 걸 보는 취미가 있으신 줄 몰랐습니다.”
“사내 놈 갈아입는 걸 봐서 뭐 하게. 그나저나 잘 어울리는군. 조금 큰 것 같으니 한 치수 작은 걸로 준비해 둬야겠군.”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한다고 한 적 없는데요.”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가끔 와서 도와주게. 가운도 입어보고 얼마나 좋나.”
“지긋지긋한 옷이 뭐가 좋다고요. 가시죠. 원장님 말씀처럼 환자가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좋은 마인드군.”
탈의실을 나가 병실로 이동했다.
똑똑! 노크를 왜 하는지 모르게 반응이 오는 걸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쉬익! 쉬익!
환자는 불룩한 배 때문에 힘겹게 숨을 내뱉으며 자고 있었는데 도저히 임산부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
사랑니가 난 곳에 동맥과 신경이 왜 모여 있는지 주먹만 한 환자의 얼굴 크기를 보자 이해가 됐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인지 얼굴이 반쪽이라 더 작아 보였다.
치렁치렁 달린 링거 줄이 환자의 현재 상태를 대변하는 듯하다.
“···원장님, 오셨어요.”
환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민규식에게 인사했다.
“오영애 씨는 좀 어떻습니까?”
“어젯밤부터 못 자다가 몸을 방금 죽 몇 숟가락 뜨기에 주물러 줬더니 잠들었어요. 한데 중절 수술 때문에 오셨어요? 전 했으면 좋겠는데 그 얘기만 나오면 벌벌 뛰니······.”
어머니 속도 말이 아닌지 구구절절 애타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아닙니다. 아주 실력 좋은 의사가 있어서 혹 도움이 될까 데려왔습니다.”
“그럼 이분이···? 선생님! 제발 저희 애 좀 부탁드려요.”
꽉 잡은 두 손으로 간절함이 전해온다.
“잠,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막 잠들어서 좀 더 잔 후에 하는 게······.”
“영애 어머님, 걱정 마세요. 이 친구 마사지도 기가 막히게 합니다. 한 선생, 마사지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살펴줄 수 있겠나?”
“네. 그러죠.”
가까이 다가가 보니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 보였다. 조심스레 다리에 손을 올렸다.
근육은 거의 없는 말랑말랑한 살이 만져졌다. 일견 생각보다 마르지 않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임신중독증 초기 증상이었다.
‘위험한 상태야.’
두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영양제로 버티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두삼은 하얗게 빛나는 손으로 다리를 주물렀다. 일부는 다리의 곳곳에 스며들었고 나머지 일부는 맥을 통해 빠르게 이쪽으로 올라갔다.
태블릿에서 본 사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선명하게 사랑니 주변이 그려졌다.
치주골에 사이에 있어야 할 사랑니가 반은 치주골에, 반은 밖으로 나와 혈관과 신경과 얽혀 있었다.
‘지독히 아팠을 텐데 견딘 게 용하네.’
치아 내부 치수의 신경과 치아 바로 밑을 지나가는 있는 신경이 벌겋다. 두통도 장난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버틴 건지······.
새삼 ‘어머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두 조각으로 쪼개면 혈관과 신경을 다치지 않게 하고 뽑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이들을 낳고 난 후에 생각하면 되겠지. 일단 치수에 있는 신경과 혈관부터 막아야겠어.’
두삼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