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13. 상처를 주는 이도, 낫게 하는 이도 사람이다(2)
“정 간호사는?”
“씻는 데 좀 더 걸리잖아. 근데 여사님이랑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기에 얼굴이 빨개졌냐?”
“어? 아! 날씨가 더워서 그래. 네 얼굴은 그게 뭐냐? 모기가 낙상하겠다.”
얼른 화제를 돌렸다.
“미령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기에 매주 얼굴마사지를 하는데 피부가 더 나빠지는지 의아해하더라. 그래서 비누로 빡빡 씻는다고 했더니 오늘은 씻지 말고 내일부터는 그냥 물로만 세수하라더라.”
“헐! 기껏 묵은 피부 벗겨내고 비싼 화장품으로 영양을 공급해 줬는데 그걸 비누로 씻어냈단 말이야?”
“내가 알았냐. 그리고 난 뽀득뽀득 씻는 게 좋은 줄로만 알았지.”
“하긴. 네가 잘 아는 것도 이상하다. 아무튼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아! 정 간호사 나왔다. 얼른 가라 여사님 오래 기다리셨다.”
정 간호사가 나오고 세 사람을 내쫓듯이 보내고 나서야 당혹감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여사님도 참,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실 건 뭐야.”
“여사님이 뭐라 하셨는데요?”
“헉! 깜짝이야. 어, 언제 나왔어요?”
뒤에서 들리는 신혜경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방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나왔는데 뭘 그리 놀라지? 근데 다들 갔나 봐요?”
신혜경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던 것인지 더 캐묻지 않았다.
“네.”
“문덕이 녀석, 점심 산다더니 그새 잊어버렸나 보네. 그런 정신으로 무슨 경호원을 한다고.”
“번잡해서 제가 보냈어요. 점심은 제가 살게요. 뭐 드실래요?”
“음··· 시원한 물냉면 어때요, 사장님?”
“좋죠. 미령 씨, 점심에 냉면 먹기로 했는데 미령 씬 뭐 먹을래요?”
“전 비빔냉면요.”
마사지실에서 나오는 한미령의 의견까지 취합해 주문을 했다. 근처에 위치한 집이라 그런지 10분이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이젠 식사하는 장소로 변해 버린 된 발코니가 냉면 빨아들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참! 다음 주에 문덕이랑 정 간호사 오면 두 사람 역할 바꿔서 해요.”
“응? 갑자기 왜요?”
“두 사람 나중에 같이 일할 거라면서요? 따로따로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두 가지 다 가지고 있으면 훨씬 편하잖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찮게 두 사람이 하는 얘기 들었어요.”
“···기분 나쁘진 않고?”
“제대로 월급을 주면서 가르쳤다고 해도 나간다는 사람을 어떻게 잡아요? 하물며 기간을 정하고 싼값에 부리는데 기분 나쁠 이유가 없죠. 아무쪼록 얼른 열심히 배워서 실력을 갖추세요. 그땐 정식으로 월급 줄게요. 그리고 나갈 때 되면 기쁜 마음으로 보내 드릴게요.”
두 사람의 인생은 두 사람의 것이다. 그들이 필요하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서 잡아두면 되는 것이다.
“더 미안해지게, 엄청 쿨하네? 근데 만일 우리가 남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언젠가 말하려 했던 사안인데 지금 해야겠군요. 제가 제시하는 월급이 마음에 들면 남으시면 돼요. 다만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두 사람을 자를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세요.”
“켁! 콜록콜록!”
자른다는 말에 놀라 매운 냉면이 목에 걸렸는지 한미령이 콜록거렸다.
“일단은 걱정 말고요. 가르친다고 약속한 이상 제가 인정하는 수준이 되기 전까진 그만두게도, 자르지도 않을 거니까요.”
두 사람이 함께 일하려 한다는 걸 모른 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속닥거려 봐야 서로간의 거리만 생길 뿐이다.
같이 일하는 동안이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 개인적인 욕심이었다.
두삼이 말한 바를 곰곰이 생각하던 두 사람은 나름 괜찮다 생각했는지 밝은 표정으로 다시 냉면을 먹었다.
“고마워요, 두삼 사장님.”
식사 후 차를 마시는데 신혜경이 말했다.
“뭐가요?”
“이것저것 다죠. 얼핏 들으면 서로에게 좋아 보이지만 결국 선택권을 우리에게 준 거잖아요.”
“그런가요? 예전에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할 때 내가 가게를 내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보는 거예요. 만약 손해를 보면 다음 들어오는 사람부터는 다르게 할 거예요.”
“다음 사람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손해를 끼치면 안 되겠네. 열심히 할게요.”
“하하! 그래요.”
조금 전에 한 말은 절반만 진실이었다. 신혜경과 한미령의 인간성이 나빴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 이제 슬슬 나가봐야겠네요. 오늘은 두 사람이 고생해 주세요.”
“아! 오늘이 이효원 입원일인가?”
사흘 전 이효원이 신혜경과 한미령이 있을 때 방문하는 바람에 조용히 수술을 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서 재활 훈련을 시작하면 어차피 알게 될 거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해줬다.
“네.”
“잘해요. 그 선수 우리나라의 보물이잖아? 아! 그러고 보니 사장님이 그런 보물의 재활 훈련을 돕게 되는 거네요. 대단해라.”
“···결정된 건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근데 TV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머리가 요만해가지고 진짜 인형처럼 생겼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마른 몸으로 금메달을 두 개나 딴 건지 신기해요. 특히 다리 길이가 왜 그렇게 긴 건지, 허리도······.”
또 시작이다.
언제쯤 신혜경의 수다에 익숙해지려나. 의문이다.
***
“어서 오게.”
민규식이 알려준 대로 지하 주차장에서 별도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직접 마중을 나와 계셨습니까?”
“그게 무슨 대수라고. 가지, 환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만나본 후에 얘기하도록 하지.”
그를 뒤따라가며 둘러보니 병원이 아니라 고급 호텔처럼 되어 있었다. 그는 두리번거리는 두삼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물었다.
“고급스럽지?”
“예. VVIP룸입니까?”
“맞네. 비밀리에 병원에 오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만든 곳이야. 하룻밤에 수백에서 수천이 넘지. 아! 이효원 선수에 대한 걱정은 말게. 비밀을 요할 일이 꼭 환자에게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왠지 저한테 청구할 것 같네요.”
“왜? 청구하면 주려고?”
“······.”
“허허허! 표정이 재미있군. 걱정 말게. 내 손님으로 입원시켰으니까. 그리고 수술비의 일부도 줌세.”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래서야 쓰나. 여기네. 들어가지.”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하란과 이효원이 재미있는 얘길 하고 있었는지 웃고 있었다.
민규식 원장은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수술 끝나고 쉬는 동안 그동안 못 먹은 거 실컷 먹자는 얘기하고 있었어요. 두삼 오빠, 어서 와요.”
두삼은 손을 들어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먹을 땐 먹어야죠. 내가 근처에 있는 맛집들은 섭렵하고 있으니 전화번호 필요하면 말해요. 대신 사인과 사진은 찍어줘야 해요.”
“좋죠. 호호호!”
“근데 옆에 앉은 숙녀분은 낯이 익은 분인데······. 아! 작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왔었죠?”
“···네, 기억하시네요. 우하란이에요.”
“어머니께서 말기 암이셨죠. 그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여기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불가능하다고 했었는데요. 그리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여기가 제일 열성적이었어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당시 입원을 한 후 타병원에서 검사한 자료를 보여주자 모든 교수들이 모여서 수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물론 결과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수술 불가였다.
“민간요법을 해보겠다고 떠났는데 어떻게······?”
당연히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물었다. 그때 길어야 6개월이었다.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가 나왔다.
“다 나았어요. 그렇죠, 두삼 씨?”
“······!”
민규식은 얼굴의 주름이 다 펴질 만큼 놀란 표정이 되어 두삼을 바라보았다.
왠지 귀찮아질 것 같은 강력한 예감. 그러나 발뺌하기엔 이미 늦었다.
두삼은 검지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아, 네.”
***
“이게 이효원 환자의 다리 X-ray와 MRI 사진을 3D화시킨 것일세. 방사능 양 때문에 계속 검사를 하는 건 무리라 다른 병원에서 찍은 것이라 흡족한 수준은 아닐 걸세. 위치를 이 펜으로 찍어보겠나?”
조금 전 병실에서 다시 한번 살펴봤기에 망설임 없이 사진 위에다가 점을 찍었다. 머릿속에서 구체화된 다리를 사진에 겹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어려울 것 없었다.
다만 민규식을 위해 설명을 해야 했다.
“이 이물질은 안쪽 복숭아 뼈 중심에서 11시 방향으로 2.1㎝, 깊이는 1.5㎝ 위치에 있습니다.”
“음, 그럼 이 이물질은 바깥쪽 복숭아 뼈에서 위로 3㎝, 깊이는 1㎝ 정도겠군. 이건 바닥에서 15㎝ 높이의 아킬레스 건 옆쪽일 테고.”
“···정확합니다.”
민규식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한정적인 자료들을 보고도 3D화시킨 발을 머릿속에 그렸음이 분명했다.
30년을 넘게 현역으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외과 의사의 내공이랄까.
‘그나저나 안 물어보니까. 더 답답하군.’
당장 물어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효원의 병실을 나온 후 그는 배영옥의 말기 암 치료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남의 상처를 후벼 파면서도 묻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가 조용하니 오히려 이상했다.
“음, 아무래도 그냥 세 곳을 절개해야겠어. 적게 절개하는 것이 회복엔 좋겠지만 무리하다가 근육과 신경을 건드리면 더 곤란하겠다.”
“시술에 대해서는 원장님께 맡겼으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럼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이젠 직접 열어서 확인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만하고 휴게실에 가서 커피 한잔씩 하지. 왠지 단 게 당기는군.”
이만 가보겠다고 하려는 찰나 붙잡혔다.
시럽을 탄 라떼 하나씩을 들고 마주했다.
“우리 병원 의사들이 모두 고개를 저은 말기 암을 어떻게 고쳤는지 들어볼 수 있겠나?”
“운이 좋았습니다.”
“감안하겠네.”
“······.”
민규식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어서 말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승부욕이 강한 거야? 호기심이 강한 거야? 아님, 둘 다인 건가?’
욕심이 인간을 망치기도 하지만 때론 아니기도 하다. 민규식의 욕심은 후자로 그가 흉부외과 전문의이면서도 신경, 정형, 성형까지 모든 외과 분야와 심지어 다른 분야까지 고루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혹자는 전문 분야만 평생 파도 부족한데 이것저것 다하는 그가 깊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병원장에 오르고 업적 역시 충분히 쌓은 그가 보기엔 한 분야도 제대로 못하는 자들의 시기심에 불과했다.
“환자를 처음 봤을 때의 상태는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습니다.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도 막막한 상태였죠. 그래서 저는 한의학적으로 접근을 했습니다.”
“어떻게?”
“거의 모든 맥과 혈이 막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뚫어보자고 생각했죠.”
막상 입을 열자 당시의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을 차근차근 말해줬다.
“뜸과 기를 이용해 하나하나 뚫어갈수록 미약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너무 미약해서 그저 하루하루를 연장하는 것에 불과했죠.”
“굳어버린 맥과 혈을 그렇게 뚫을 수 있는지 몰랐군. 한데 침을 이용했으면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저처럼 기를 이용할 수 없다면 침이 훨씬 유리하긴 하죠. 아무튼 부족한 기 때문에 죽을 맛이었습니다. 산에서 캐온 약초는 다 먹었죠.”
“오오! 하긴 기가 무한하진 않을 터이니. 그래서?”
듣는 사람의 반응이 좋으니 하지 않아도 될 얘기까지 하며 임맥과 독맥을 뚫는 얘기까지 했다.
“정말···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독맥과 임맥이 연결되자 환자의 몸이 스스로 치유 활동을 시작하더군요. 물론 그동안 먹었던 약들과 치료들이 효과를 봤을 수도 있을 겁니다.”
“신기하군.”
민규식은 무언갈 생각하는지 골몰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