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38화 (37/122)

# 38

12. 지우고픈 과거(2)

한미령이 나가고 나자 두 손님은 수다를 떨었다.

“한의사가 마사지사를 한다니, 거짓말 같지?”

“그렇겠지. 그냥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한 말 같아. 진짜라면 너 오늘 그날인 거 바로 아는 거 아냐?”

“에이~ 설마. 진짜 한의사라고 해도 말하지 않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만일 안다면 인정한다.”

“하긴. 그나저나 괜찮아?”

“너무 아파. 해가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는 것 같고. 이제 매달 생리일이 다가오는 게 두려울 지경이야··· 게다가 데스크에 서서 손님들 상대하다 보면 그냥 앉고 싶은 생각뿐이야.”

“나도 아프긴 한데 너처럼 심하게 아파하는 애는 처음 본다.”

“아무튼 실력이 좋았으면 좋겠다. 지난번에 간 마사지 숍은 너무 형편없었어.”

“맞아. 받고 나니 오히려 아프더라.”

두 사람이 15분쯤 떠들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두삼과 신혜경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발마사지 해드릴게요.”

두삼은 자신이 담당할 여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족욕통에서 오른쪽 발을 꺼내 천천히 지압을 하며 주무르기 시작했다.

“발이 많이 부었네요.”

“···아, 네.”

대번에 생리로 인해 발이 부었음을 알게 됐다. 물론 모른 척하곤 설명을 했다.

“붓기를 빼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할 건데 많이 아플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네. ···아!”

손님은 발에서부터 시작되는 고통에 절로 신음 소리를 냈다.

“평소 서 있는 직업이시죠?”

여자 발에 있는 굳은살과 근육의 상태만 봐도 평소 뭘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 아아! ···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하이힐을 싣고 서 있는 건 무척 중노동이죠. 발목, 무릎, 허리가 나빠져요. 아니, 정확하게는 나빠지고 있어요. 아마 매달 고통이 심해지고 있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호텔 데스크에서 일해요.”

여자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짐작하고 자신이 생리 중임을 알고 있는 듯한 두삼을 보며 놀라워했다.

“느껴지네요. 아직까진 심각하진 않은데 계속 이대로 두면 나중에 더 크게 아플 거예요. 다음은 왼발을 주무르겠습니다.”

“아! ···자, 자주 마사지를 받아야 하나요?”

“아뇨.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에요. 자세를 바꾸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직업상 어쩔 수 없다면 서 있는 동안 의식해서 운동을 하는 게 좋습니다. 끝나고 방법을 가르쳐 드릴 테니 틈틈이 하세요. 그럼 한결 좋아지실 겁니다. 자, 이제 마사지를 하러 들어갈까요? 참! 피부마사지는 건식마사지부터 끝내고 하세요. 지금은 해도 좋은 효과를 보긴 힘들 겁니다.”

“···그러세요.”

단숨에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간단한 발마사지를 했을 뿐인데 한결 편해진 느낌이 드는 것이 절로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마사지실로 옮겨 시작된 마사지.

마사지사의 손이 몸을 한 번 주무르면 잔뜩 긴장되어 있던 근육이 스르르 풀린다. 두 번 주무르면 근육에 쌓여 있는 피로 물질이 녹아내렸다. 세 번 주무르면 시원함이 일대로 퍼졌다.

방금 전까지 끌고 다니기도 힘들었던 몸인데 컨디션이 아주 좋았던 날처럼 가뿐해지는 느낌이다.

“하아~ 좋네요.”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감탄.

직업 때문에 집 근처에 있는 많은 마사지 숍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시원한 손은 처음이었다.

‘그 아가씨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어. 집에 구비해 놓고 피곤할 때마다 받고 싶네.’

눈이 절로 감기며 잠이 들려 할 때였다.

“이제부터 붓기를 빼고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만들 겁니다. 혹시 위험하다 싶으면 손을 드세요.”

웬 위험?

뭔 소린가 싶었는데 갑자기 손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의 손이 몸통에서 허리 쪽으로, 종아리에서 허벅지 쪽으로 문지를 때마다 몸속에 있던 피가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와 함께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껏 몸이 달아올랐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것과는 조금 다른데 다른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몸은 점점 뜨거워졌다. 이러다가 신음 소리라도 낼까 싶어 입술을 꼭 다물었다.

‘이 사람, 혹시 변태 아냐?’

딱히 다른 사람보다 더 깊은 곳까지 마사지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곧 그가 뭘 위해 마사지를 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 생겼다.

하체에서 뭔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이, 이러다가 넘치겠어. 아까 말한 위험이 이 위험이었구나.’

부끄러웠지만 손을 살짝 들었다.

“저 잠시 찜질팩 좀 가져올게요.”

두삼이 자리를 뜨자마자 여자는 일어나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처리(?)를 하고 자리에 다시 눕자 그제야 다시 들어와 찜질팩을 허리에 올려줬다.

“이제부터 얼굴을 해드릴게요.”

“···얼굴 마사지도 직접 하세요? 아까 보니 다른 분이 계시던데.”

“지금 민감한 상태라 조심할 필요가 있어서요. 아는 제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원하신다면 미령 씨를 불러 드릴게요.”

“아, 아니에요. 해주세요.”

얼굴마사지는 얼마나 잘할까 궁금했다.

따뜻한 수건이 얼굴을 덮는다. 그리고 얼굴이 적당히 따뜻해져서 모공이 열렸을 때 수건이 걷히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부가 원래 참 좋으세요.”

“···고마워요.”

“근데 민감성에 생활 습관 때문인지 많이 상했어요. 오늘 받고 나면 며칠 동안은 화장을 옅게 하고 너무 심한 클렌징은 하지 마세요.”

“그럴게요.”

“경락마사지를 병행할 테니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네요. 아프면 말하세요.”

그리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었다.

‘···졸려.’

건식마사지를 받으며 우여곡절이 있어서인지 금세 잠들었다.

“희아야, 희아야!”

“으···, 큼! 응? 왜?”

“끝났어, 가자. 깰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출근 시간 때까지 잘 것 같아서 깨웠어.”

“아우~ 얼마나 잔 거야?”

“1시간.”

“지루했겠다. 깨우지 그랬어?”

“나도 잤어. 아줌마 솜씨 괜찮더라. 찌뿌듯한 게 말끔히 나았어. 넌 어때?”

“나? ···완전 좋아.”

“그래 보인다. 얼른 씻고 나와. 여기 화장품 마음껏 써도 된다더라.”

씻고 나온 희아는 화장을 하면서 몸 상태는 물론이고 얼굴 상태도 꽤 좋아졌음을 알게 됐다.

“편히 쉬셨어요? 서서 운동하는 법 가르쳐 드릴 테니 틈틈이 하세요.”

정말 간단한 방법이었다. 언젠가 선배에게 들었던 방법과 유사했다.

“간단한 스트레칭이 몸에 좋다는 건 누구나 알아요. 근데 귀찮아서, 혹은 너무 사소해서 안 하죠. 하지만 그 작은 실천이 쌓이면 건강이 나빠지는 건 막을 수 있어요. 그러니 틈틈이 하세요.”

한의사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한의사가 되었어도 잘했겠다.’

말투와 행동에 신뢰가 가는 사람은 참 오랜만이다.

“결제 도와드릴게요.”

데스크 아가씨의 말에 정신을 차린 여자 손님은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10회 이용권으로 할게요. 그럼 회원으로 10퍼센트 DC되죠?”

아무래도 자주 찾게 될 것 같았다.

***

낮에 마사지 숍에 오는 손님은 아주머니들이 많다.

집안 살림을 하느라 힘들어서, 몸매 관리를 위해, 갱년기에 접어들며 절로 아픈 몸 때문에,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길지 않은 마사지로 생활의 활력을 얻는다.

반면 저녁에 접어들면 술 마시고 회사 생활의 피곤을 풀기 위해 오는 남자들이 많다. 2차를 가느니 마사지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아~ 시원하다. 술까지 말끔히 깼네. 사장, 아줌마 실력이 좋아. 종종 올게.”

“예, 부장님. 들어가세요. 병원에 가보시고요. 역류성 식도염은 계속 놔두면 안 좋아요.”

“오케이, 오케이!”

손을 흔들며 터덜터덜 가게를 떠나는 부장을 보며 두삼은 씁쓸하게 웃었다.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심각해지고 나서야 갈 것이 빤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중년 가장 중 사소하다곤 해도 병 한두 개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는 게 뭔지······.”

“응? 뭐라고 하셨어요, 사장님?”

비틀어진 팻말을 바르게 하던 한미령이 혼잣말에 반응을 했다.

“혼잣말이요. 오늘은 이만 문을 닫는 게 좋겠어요.”

“한 팀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정쩡하게 오면 12시 넘어요. 자자, 얼른 퇴근할 준비하고 나와요.”

“정리는 해야죠.”

“괜찮아요. 내일 해요.”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는 건 괜한 욕심이다. 일할 때 가장 짜증 나는 일이기도 했고.

“사장님, 편히 쉬고 내일 봐요~”

“사장님, 수고하셨어요. 내일 뵐게요.”

“내일 봐요.”

두 사람을 보내고 조명을 끄고 청소를 했다. 내일 하자고 했지만 이 시간 이후로 딱히 할 일 없었기 때문이다.

청소를 마치고 올라와 TV를 켰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는 채널에 놔두고 맥주를 가져왔다.

“으, 좋다.”

예전에는 술을 마셔도 피곤이 풀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술을 마시면 하루의 피곤이 날아가는 기분이다.

돈을 벌려고 아옹다옹하는 건 마찬가진데 말이다.

우우웅~ 우우웅~

“이 시간에 웬일이지?”

하란이다.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살짝 설렌다. 하긴 지금 TV에 나와 춤추는 연예인보다 예쁜 여자의 전화인데 설레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여보세요.”

-하란이에요. 지금 일하세요?

“아뇨. 끝내고 맥주 한 잔 마시고 있어요.”

-그럼 저랑 같이 한잔할래요?

“상관없긴 한데······.”

-아는 동생도 있는데, 음··· 같이 데려가도 되나요?

“물론이죠. 근처에 괜찮은 하우스 맥주집 있던데 예약해 둘까요?”

-그냥 집 발코니에서 마셔요. 맥주는 사갈게요.

“그래요, 그럼.”

전화를 끊자마자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정리를 했다. 거의 잠만 자고 1층에서 생활했기에 오래지 않아 끝났다.

“안주나 시켜둘까?”

그러나 주문하기도 전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대문을 열어주자 여자 둘이 들어왔다. 하란이 키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지만 늘씬한 건 똑같았다.

“어디서 본 듯한 체형인데.”

창으로 보다가 내려갔다. 두 손 가득 들고 오는데 마냥 기다리기 뭐했다.

“뭘 이렇게 사오셨어요. 근처에 맛집이 있어서 그냥 주문해서 먹어도 되는데. 이리 주세요.”

“맛집은 배달이 안 되잖아요.”

그런가.

“여긴. 제가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에요.”

그제야 눈이 갔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는 순간 눈이 커졌다.

“어? 어! 이효원 선수!”

“어! 평창에서 본 팬인 척한 아저씨.”

“응?··· 뭐야? 두 사람 아는 사이었어?”

“아! 고향에서 서울 올라올 때 평창에 들렀는데 우연히 만났어요.”

“언니! 그 사람이에요. 이 아저씨가 그 사람이에요!”

“그 사람?”

“제 발목에 아직 뼛조각이 남아 있다고 한 사람이요!”

세 사람이 이리저리 말을 하니 정신이 없었다. 발코니로 이동 후 정리가 됐다.

“그러니까 평창에서 효원이 네 발에 뼛조각이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두삼 씨라는 거지?”

“네, 언니.”

“근데 두삼 씨는 뼛조각이 있다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진료라도 한 거예요?”

“그게 껴안았을 때 저도 모르게··· 아! 안았다는 게 아니라 효원 씨가 도로에 넘어져 있어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려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근데 지금 왜 변명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발에 뼛조각은 확실히 있는 거예요? 효원이가 두삼 씨 말을 믿고 병원마다 돌아다니고 있는데 없대요. 오늘도 병원 다녀오는 길이에요.”

“···그래요? 워낙 순식간에 봐서. 효원 씨, 괜찮다면 발목 만져봐도 될까요?”

“···돌아다니느라 발 냄새가 나서 지금은 곤란해요.”

“효원아, 부끄러움은 잠깐일 뿐이야. 그리고 얼마 돌아다니지도 않았잖아.”

“그래도······.”

“씻으면 되죠. 제가 족욕통 갖다 드릴 테니 잠깐 발 담그고 있어요.”

맛있게 생긴 족발을 어서 먹고 싶었으나 자신이 한 말 때문에 고생을 했다니 확실하게 하는 게 좋았다.

족욕통을 갖다 준 후에야 맥주와 족발을 먹을 수 있게 됐다.

“하란 씨는 효원 씨랑 어떻게 안 사이에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인연이 있었어요. 사실 제가 미국 생활을 포기할까 할 때 힘을 준 멘토이기도 하고요.”

“하란 씨가 포기를 하려 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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