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11. 개업 준비(2)
이진철이 소개해 준 아주머니는 제법 덩치가 있는 이로 굉장히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학원을 다녀볼까 한다고요? 그럼 잘 온 거예요. 여기 강사님 실력이 끝내줘요. 무엇보다도 발이 넓어서 그런지 취업률도 꽤 높고요.”
“···아, 네.”
“학원생이라고 해서 걱정되나 보네요? 걱정 말아요. 스포츠마사지, 지압, 오일 마사지, 타이마사지 다 배웠어요. 어디 불편한 데 있음 말해요. 아주 시원~ 하게 풀어줄게요.”
얼른 시작했으면 좋겠다.
옆자리에 누워 있는 학원생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평소에도 꽤 말이 많은가 보다.
“요즘 머리 때문에 다들 걱정이 많잖아요. 젊었을 때부터 두피마사지를 해주면 탈모에 많은 도움이 돼요. 일단 두피마사지부터 시작할게요.”
그녀의 손이 머리에 닿았고 두피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건가, 노력한 건가. 잘하네.’
두삼은 그녀의 지압 방법과 손가락의 위치를 느끼며 그녀의 실력을 파악했다.
사실 마사지를 처음 받는 사람도 마사지를 받고 나면 마사지사가 초짜인지 경력자인지 알 수 있다. 마사지를 자주 받는 사람들의 경우는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 가능하다.
몸이 느끼는 것이다.
하물며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두삼은 어떻겠는가. 잠시만 봐도 실력 파악이 가능했다.
‘음, 혈에 대한 지식도 있는 것 같은데······.’
두피마사지는 단순하게 보면 그저 두피 전체를 자극하는 것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머리에 있는 혈을 자극해 두피는 물론 눈, 코, 귀, 입 등 머리 전체와 크게는 몸 전체를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한데 아주머니, 신혜경의 손가락은 묘하게 혈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물론, 정확하지 않았고 어설프긴 했다. 그러나 그저 선배가 가르쳐 준 대로 마사지를 따라하는 경력자들보다 훨씬 나았다.
“이제 목을 할게요. 이 오일 비싼 건데 후배님이 될지 모르니 특별히 해줄게요.”
‘영업도 잘하겠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선심을 쓸 때 말하지 않으면 손님들은 모른다. 그래서 작은 선심을 쓰더라도 대단한 것이 양 말하는 것 역시 장사를 할 땐 필요하다.
두삼이 부족한 것인데 신혜경은 자연스럽게 했다. 말이 많다는 단점을 덮고도 남을 정도다.
마사지는 목, 어깨, 등으로 이어졌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 꽤 만족스러웠다.
“어때요?”
끝나고 나자 물어왔다.
“잘하시네요. 근데 혈 자리 누르는 건 다른 사람에게 배운 거예요?”
“배운 것도 있고 책 보고 독학한 것도 있어요. 근데 혈 자리에 대해 알아요?”
자신에 대해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이진철이 다가오며 말했다.
“혜경 씨, 이 친구 수강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직원 구하러 온 거야. 혹시 긴장할까 봐 그렇게 말했어.”
“···그래요?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됐는데.”
“120에 건 당 50퍼센트. 영업은 아직 시작 전이고. 괜찮은 조건인데 어때?”
“글쎄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걸 좀 더 배워볼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실전을 하며 이 친구한테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이 친구 한의대 다녔어. 왜 한의원이 아닌 마사지 숍을 내려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요?”
신혜경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봤다. 그러다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두삼을 보며 말했다.
“마사지를 받아볼 수 있을까요? 솔직히 사정이 있어 일을 하게 되면 돈이 안 된다고 해도 실력으로 유명한 선생님 밑에서 일을 하려고 했거든요.”
“이해합니다. 저도 테스트를 했으니 혜경 씨도 테스트를 해봐야겠죠. 엎드리세요.”
사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마음에 드는 직원을 구하는 데 마사지 한 번이 뭐가 어려울까. 옷을 입고 손을 가볍게 풀며 신혜경이 엎드리길 기다렸다.
“혜경 씨가 했던 대로 해볼게요.”
두삼은 그녀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
“보통 반사요법이라 하면 인체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다른 부위에 반사 반응을 일으키는 걸 말합니다. 흔히 손, 발, 귀 반사요법이 많이 알려져 있죠. 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설명과 함께 지압을 하면 백회혈에서 조금 뒤쪽에 떨어져 있는 낙각혈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신혜경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파했다.
“아아~”
“어디를 눌렀는지 아시겠어요?”
“···위치로 보면 정신을 안정시키고 눈과 머리 쪽의 열기를 내려주는 효능을 가졌다는 곳인데······.”
효능은 알지만 이름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효능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솔직히 혈 자리의 이름은 너무 어렵다.
“낙각혈이에요.”
“아, 맞다! 낙각혈. 근데 아픈 거 보니 어디가 안 좋은 가요?”
“신장이요.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안 좋은 편이에요.”
“어? 낙각혈에 대해 알아볼 때 그런 말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낙각혈이 족태양방광경에 속한 혈이라 그곳을 누름으로써 짐작할 수 있는 거죠. 왜 짐작할 수 있는 거냐고 말했냐 하면 신장이 안 좋다는 건 얼굴색을 보고 파악한 거거든요. 사실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등에 있는 지실혈을 자극해 보는 게 더 정확해요.”
“휴우~ ···어렵네요. 마사지를 할 때 혈 자리는 신경 쓰지 말라는 건가요?”
“아뇨. 아까 두피마사지를 할 때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사람들이 두피마사지를 받는 이유는 머리가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에, 두피가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죠.”
“아!”
“그러니 독맥과 족태양방광경과, 족소양담경의 머리에 있는 혈 중 몇 개만을 중점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돼요. 이렇게요.”
강간혈, 풍지혈, 낙각혈 등 머리를 맑게 하고 두피에 좋은 혈들을 자극하며 두피마사지를 했다.
“어때요?”
끝나고 물었다.
“끝내줘요! 머리가 마치 설악산의 눈꽃을 구경할 때처럼 맑고 깨끗해요. 늘 있던 편두통도 없어졌고요.”
“······.”
쌀밥 한 숟가락 먹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만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표현이다.
이번 두피마사지엔 기를 사용하지 않고 혈 자리를 자극한 것밖에 없었다.
“이제 목과 어깨를 할게요. 목과 어깨의 경우는 스트레스나,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 사용,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가장 빠르게 신호가 오는 곳으로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가장 시원함을 느끼죠. 시간이 될 때 근육에 대해 공부해 두는 게 좋아요.”
입으론 설명을 하며 손으로 마사지를 했다.
“으음~ 전문가의 손길은 이렇구나. 동기들에게 받는 것과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몸이 절로 녹는 것 같아요. ···이대로 한숨 자고 싶어져요.”
말 그대로 됐다. 목과 어깨가 끝났을 때 신혜경은 코를 골면서 잠이 들어 있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이진철이 등은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깨울까요?”
“내버려 둬라. 더 이상 안 해도 너 따라간다고 하실 것 같다. 그리고 저렇게 잠드는 것도 교육이지. 넌 사무실에 가 있어라. 깨면 보낼게.”
고개를 끄덕인 후 손을 씻고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30분 뒤에 신혜경이 왔다.
“어떻게 결정하셨습니까?”
“이진철 강사님 말씀처럼 취직하면 가르쳐 주실 건가요? 물론 월급은 백만 원이면 돼요.”
“물론 그럴 거예요. 근데 돈까지 적게 받으면서 배우려는 거 보면 혹시 가게를 낼 생각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맞아요. 이진철 강사님은 그만둘 걸 티내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얼마나 할 생각인데요?”
자신의 가게를 내겠다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다. 다만 기껏 가르쳐 쓸 만하게 만들었는데 나가 버린다고 하면 곤란했다. 최소 1년은 해야 했다.
“일단은 1년 6개월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 정도라면 괜찮네요. 그만두기 3개월 전에만 말해주세요.”
“그야 당연하죠.”
“언제부터 가능하세요?”
“내일부터라도 가능해요.”
“개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는 건 어떠세요?”
“그럴게요.”
가게의 위치를 알려주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일어났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 날 뵐게요.”
“네. 아! 근데 선생님.”
“그냥 두삼 씨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가르쳐 줄 분이고 사장님께 그럴 순 없죠. 혹시 얼굴마사지에 대해서도 잘 아세요?”
“네. 그것도 배웠어요. 물론 제 방식대로 가르쳐 드릴 생각이고요.”
“그럼 혹시 교육생을 받을 생각 없으세요? 가게 청소나 일을 돕는 조건으로요. 물론 돈은 필요 없어요. 그냥 식사만 제공해 주시면 되는데?”
“교육생이요?”
아직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가르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두삼의 표정에서 거절하려는 걸 읽었을까 신혜경은 얼른 설명을 더했다.
“싹싹하고 얼굴도 괜찮아서 안내 데스크를 맡겨도 괜찮아요. 그리고 배웠다고 금방 다른 곳에 가진 않을 거예요. 그건 제가 보증해요.”
“···글쎄요.”
“한번 만나기라도 해보세요. 미용 학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있는데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면서 고생만 하는 것 같아 안쓰러워서요. 열심히 살려는 앤데······.”
열심히 살려고 한다는 말이 두삼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때 자신 역시 기회를 잡고자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던가.
“알겠어요. 그럼 월요일 날 데리고 오세요.”
얼굴을 보게 되면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
악양에서 간판 하나만 걸고 시작하던 것과는 달리 준비할 것이 많았다.
그땐 오면 좋고 안 오면 말고 식이었다면 이젠 마사지사로 제대로 자리를 잡자는 생각이랄까. 그래서 정신없이 움직였다.
간판과 명함을 만들고 틈틈이 뿌릴 광고 전단지도 만들었다. 또한 마사지를 할 때 필요한 물건들도 사야 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월요일이 됐다.
신혜경이 오늘부터 출근을 하지만 당장 개업할 생각은 없었다. 먼저 그녀의 실력을 어느 정도까진 키울 생각이다.
딩동!
점심을 먹고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저희예요, 선생님.
아무래도 호칭에 대해선 다시 얘기해 봐야겠다. 선생님이라니, 낯 뜨겁다.
문을 열어주고 얼른 현관으로 내려갔다. 신혜경과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함께 들어왔다.
“와아~ 여기가 가게예요? 너무 예뻐요. 제가 꿈꾸던 가게예요. 내부는 어때요? 인테리어하는 데 얼마나 들었어요? 보증금은 얼마예요?”
“먼저 소개부터 시켜주시는 게······.”
“아! 내 정신 좀 봐. 전에 말했던 친구예요.”
“···한미령이에요.”
“반가워요. 차라도 마시며 얘기하죠.”
두 사람을 발코니로 데리고 갔다.
“마실 건 뭐로 드릴까요? 커피? 시원한 음료수?”
“선생님이 마시는 차 색깔 예쁘네요.”
“직접 끓인 오미자찬데 입맛에 맞을까 모르겠네요.”
두 사람에게 차를 끓여준 후 자리에 앉았다.
한미령은 머뭇거리다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요.”
“뭐예요?”
“이력서예요. 필요하실 것 같아서.”
“아! 네.”
대수롭지 않게 펼친 A4용지 한 장으로 된 이력서는 한미령에 대한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