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34화 (33/122)

# 34

11. 개업 준비(1)

***

“여행은 즐거웠어요?”

사무실로 들어가자 하란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덕분에요. 여사님은 방금 보고 왔어요.”

서울에 도착해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배영옥의 집으로 가 치료를 했다. 그리고 하란을 보러 온 것이다.

“앉으세요. 엄만 어떤가요?”

“제가 파악하기론 위에 조금 남아 있는 걸 제외하곤 사라진 것 같아요.”

“병원에선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저한텐 느껴지는 게 있어서.”

두삼이라고 완벽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위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확실히 있었다.

“기계보다 두삼 씨 말을 믿어요. 계속 치료해 주세요. 아무튼 건물을 보러가기 전에 일단 계산부터 할까요?”

하란은 제법 두툼한 보고서를 보여줬다. 한데 숫자와 생소한 단어들이 많았다.

“뭔가 복잡해 보이네요.”

“천천히 읽어보면 될 거예요. 간단히 설명을 해드리자면, 여기 10억이 제가 두삼 씨에게 주기로 한 돈이에요. 이게 집을 구매하는데 사용한 금액. 이게 인테리어에 들어간 돈. 이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쉽게 설명해 주는데 신기하게 그녀의 길고 하얀 손과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인테리어 비용까지 다 제하고 나니 2,500만 원 남았어요. 알겠어요?”

“···아, 네.”

“그리고 다음 장은 2,500만 원을 투자한 것에 대한 손익계산서예요.”

하란이 서울에 새롭게 만든 회사는 투자 회사로 인공지능형 투자프로그램을 이용한다고 했다.

사실 투자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히 듣긴 했지만 현재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이 정도였다.

“지금 남아 있는 금액은 이 정도예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7,000만 원이 넘는 돈이 찍혀 있었다.

“네? 2,500만이 이렇게 됐다고요?”

불과 몇 달 만에 웬만한 사람 연봉만큼 돈이 늘었다.

“정확하게는 인테리어 비용을 결재하기 전까진 투자금으로 썼어요. 회사 수수료는 역시 뺐고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면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 아닌가요?”

“호호!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도 있어요. 물론 희박하지만요. 원한다면 두삼 씨에 한해서는 수수료 없이 지금처럼 투자해 드릴게요.”

“그럴 수야 없죠. 수수료가 얼마나 되는데요?”

“첫 수수료 투자금의 30퍼센트, 매달 수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계산하면 대충 이 정도 나오겠네요.”

그녀는 현재 얻은 수익을 역산출했다.

단지 수수료를 넣었을 뿐인데 7,000만 원이 반 토막이 나는 기적을 봐야 했다. 물론 그마저도 적은 이익은 아니었지만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지금처럼 부탁드립니다.”

해준다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럴 거예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하거든요. 다음 장엔 저희 회사 홈페이지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있으니 접속해서 입금이든 출금이든 가능해요. 이제 집을 보러 갈까요?”

“네.”

그녀의 회사에서 나와 한남대교를 건너 장충체육관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약수역에 도착하기 전에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서 천천히 달리던 차는 큰 철문이 막고 있는 단독주택 앞에 섰다.

“여기예요. 내리세요.”

차에서 내린 하란은 철문 앞으로 갔다.

“평소에는 여기 작은 문으로 다니면 돼요. 그리고 영업을 할 땐 이렇게.”

그녀는 커튼을 여는 것처럼 철문을 양옆으로 밀었다.

드르륵! 차가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철문이 열리자 서너 대의 차가 주차할 수 있는 마당과 리모델링한 2층집이 보였다.

“와······!”

하란이 서류로 보여줬던 집과 똑같았다. 다만 사진에서 느낄 수 없던 감동이 있었다.

물론 자신의 집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1층은 원하는 대로 네 개의 마사지실, 두 개의 탈의실과 샤워실, 두 개의 대기실로 되어 있어요. 좌측은 여자 전용, 우측은 남자 전용이죠. 저기 끝에 있는 방이 사무실인데 그곳에서 어느 마사지실로 갈수 있게 되어 있어요.”

구색을 갖추려다 보니 각 방의 크기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간을 제대로 활용해서인지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란은 과거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MC처럼 구석구석 설명해 주었다.

“샤워실과 화장실, 마사지실을 제외한 모든 방에 CCTV를 설치해 뒀어요. 이제 2층으로 갈까요?”

1층보다 앞으로 지낼 2층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며 2층으로 향했다.

11. 개업 준비

집이 바뀌어서인지 한참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침대 앉은 채로 몸의 기운을 단전으로 모아 소주천을 몇 바퀴 돌렸다. 몽롱하던 정신이 깨고 오랜만에 침대에 자서 찌뿌듯한 몸도 가뿐해졌다.

침대에서 내려가 남산이 보이는 창을 바라보고 스트레칭을 했다.

“일찍 일어나면 등산이나 해야겠네.”

스트레칭을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1층의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현대 인테리어라면 2층의 인테리어는 고풍스러운 한옥 인테리어였다.

물론 곳곳에 자리한 가전제품과도 묘하게 잘 어울렸다.

가전제품의 경우 하란이 집들이 선물이라고 몽땅 준비해 준 것이다. 하나같이 고급으로 가격이 엄청났다.

“···아무래도 부담스럽단 말이야.”

배영옥의 병을 고쳐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이미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음···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다고 했으니 이번까지만 눈감고 받자.”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부엌으로 갔다. 어제 해둔 국을 데우고 사둔 반찬을 꺼내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노혜자가 해주던 정성 어린 아침이 그리웠지만 독서실에 살 때를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차를 들고 2층 발코니로 나갔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베란다와 발코니의 중간 형태지만 명칭이야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발코니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 좋다!”

두삼은 발코니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서울 시내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을까. 특히 옆집은 뭔 공사를 하는지 높게 안전 펜스를 세우고 있어 철판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힘든 생활을 할 때 이렇게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룬 것이라 좋았다.

발코니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운 두삼은 슬슬 가게 개점을 위한 준비를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갔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여자 마사지사를 구하는 일이었다.

원래 혼자 하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면 구할 생각이었는데 어젯밤 곰곰이 생각하니 아무래도 여자 마사지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손님들이 여자 마사지사를 선호하는 것도 있지만 마사지 숍의 밀폐된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일단 마사지사협회에 들어가 볼까?”

올해의 구인 공고가 10개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며 두삼은 인상을 찌푸렸다. 협회에서 올려놓은 공지사항은 넘기고 개인이 올려놓은 글을 보았다.

역시 예년에 비하면 줄었지만 그래도 제법 있었다. 다만 구인하는 업체의 경우 거의 경력자를 찾고 있었고 구직자들의 경우는 신입이 많았다.

“경력자는 구하기 힘들겠는데.”

보통 적혀 있는 연봉이 2,500만 원에서 3,000만 원. 현재로써는 맞춰줄 수 없는 금액이다.

악양에서는 할아버지의 과거 명성 때문에 손님이 왔고 거기에 운이 좋아 영업이 잘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선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건 적은 돈을 주고 쓸 수 있는 초보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점심 먹고 학원에 가야겠어.”

어느 학원에서, 어느 선생님 밑에서 몇 개월간 배웠다는 이력서보단 직접 확인하는 게 나았다.

“이건 뭐야?”

한참 페이지를 넘기며 보고 있는데 자신의 이름이 적힌 글이 보였다.

“이 새끼, 진짜로 올려놨네.”

[한두삼을 고용하려는 분들에게]라는 글 제목이었는데 작성자 아이디가 Won_moon인 걸 보니 작년 요양병원에서 함께 일한 문희원이 쓴 글이었다.

문득 당시가 떠올라 화가 났다. 외제차를 사서라도 잘난 척하고 올까 싶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그깟 놈에게 감정을 허비한다는 것 자체가 낭비야. 악연이 있다면 만나겠지. 지금은 같이 일할 직원을 구하는 게 우선이야.”

물론 만나게 된다면 받은 걸 고스란히 돌려줄 생각이긴 하다.

점심을 먹고 12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대문을 열고 나오면서 가게 겸 집을 보니 왠지 뿌듯해지는 느낌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마사지를 배웠던 종로에 있는 학원으로 갔다.

오랜만에 보는 학원은 예전과 포스터만 바뀌고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두삼을 가르쳤던 강사 역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 선생님.”

“어? 넌······.”

점심을 먹고 에어컨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이진철은 얼굴이 기억나는지 반가운 기색이다. 다만 이름까진 기억을 못하는지 말끝을 흐린다.

“한두삼입니다.”

“아! 한두삼. 원투쓰리라고 불렸었지? 한의대생이라는 것과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한다.”

“잘 지내셨어요? 이건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근처 마트에서 사온 음료수를 건넸다.

“자식, 기본이 됐네. 나야 만날 애들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지. 앉아라. 커피 줄까?”

“감사합니다.”

그는 1회용 컵에 믹스커피를 넣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줬다.

“넌 뭐 하고 지내냐? 한의원 냈냐?”

“···아뇨. 마사지사와 물리치료사로 여기저기서 일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론 졸업하고 공중보건의로 간다고 학원 그만뒀던 것 같은데··· 아닌가?”

그 양반 기억도 좋다.

“지나가다가 들른 것 같진 않고. 다시 학원에서 마사지 배우려고? 아님, 학원 강사라도 해보려고?”

“그게 아니라 같이 일할 사람이 있을까 하고 찾아왔어요. 장충동에 작은 가게를 열었는데 아무래도 여자 마사지사가 필요해서요.”

“오! 가르친 게 헛되지 않았나 보네. 근데 이왕이면 경력자가 더 낫지 않냐?”

“경력자 월급 줄 정도는 아니고요.”

“초짜로 영업하면 오히려 손님이 떨어질 텐데?”

“아직 개점도 안 해서 떨어질 손님도 없어요.”

“가르치면서 할 생각이구나? 음, 여자 마사지사 중에 괜찮은 사람이 있나? 요즘은 취미로 마사지를 배우는 이들이 많아서 있을까 모르겠다.”

그는 책상에 꽂혀 있던 학원생 명부를 살폈다.

“나이는?”

“가급적 30, 40대가 좋을 것 같아요.”

“퇴폐 영업을 하는 건 아닌 모양이네.”

“선생님도 참.”

“간혹 그런 놈들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야. 혹시라도 그럴 생각이면 그냥 가는 게 좋을 거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와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그럴 생각이다. 가만있자. 이 아주머니가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급여는 어떻게 생각 하냐?”

“요즘은 얼마나 해요?”

“신입 같은 경우 인턴으로 1년 정도는 기본 100만 원에 건수 당 약간의 퍼센트를 받아. 한데 넌 대형 마사지 숍은 아니니 120만 원은 줘야 할 거다.”

“저 때랑 비슷하네요. 사실 기본은 120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대신 건수 당 순이익의 50퍼센트를 주려고요.”

“괜찮네. 그럼, 이번 달에 졸업하는 이들 중에 마흔 둘인 아주머니가 있는데 만나볼래? 소개는 시켜주지만 설득은 네가 해야 한다.”

“그렇게만 해주시는 걸로 충분해요.”

“오늘 1시 30분 반에 와서 타이 마사지 실습하니까 그때 실력을 봐보던가.”

“···실습용으로요?”

“너도 아주머니 손을 봐야 되지 않겠어?”

학원생들이 마사지 실습할 땐 서로 돌아가면서 한다. 한데 실력이 없을 땐 마사지를 받고 나면 오히려 몸이 아픈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꺼려지긴 했지만 같이 일할 사람이라면 실력을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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