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10. 상경 길에 만난 이들(3)
착한 일을 한 것에 대한 보답인지 갑작스럽게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가 뛰어왔다. 그가 가리킨 곳을 보니 피투성이의 여성이 누워 있었다.
먼저 반응한 것은 질문을 했던 중년 신사였다.
“이런! 돕고자 내려와서 내 욕심을 차리고 있었군. 일단 갑시다.”
“의, 의사십니까?”
“그렇습니다. 청하야, 챙겨서 따라오너라.”
“예! 아빠!”
두 부녀는 아주 익숙한 듯 여자 환자에게 가서 치료를 시작했다.
물끄러미 두 사람의 하는 양을 지켜보니 왜 사람들이 양의사는 의사, 한의사는 의원이라고 구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영역이 다른 것도 있지만 의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임상 경험을 통해 얻어진 실력은 두삼이 봐도 감탄이 날 정도였다.
사실 한의학을 공부할 때 양의학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에 책을 보기도 했지만 경험이라는 장벽에서 결국 손을 놓아야 했다.
아마 한의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양의학을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사지나 열심히 하자.’
남이 가진 걸 욕심내는 것보다 자신이 잘하는 걸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나았다.
피투성이의 여자 환자는 불행 중 다행으로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그저 베이고 머리가 깨져 외관상으로 심각해 보일 뿐이었다.
두 의사가 구급 상자를 들고 움직이자 버스에서 나온 이들의 치료는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이만 갈까?’
더 이상 급한 환자는 없어 보였다. 때마침 119 구조대와 구급차도 속속 도착했다.
냇가로 가서 손과 피를 적당히 닦아냈다.
“저기요. 이거 좀 도와주시겠어요. 무리해서 그런지 팔에 힘이 안 들어가네요.”
구급차와 119가 도착했지만 계곡 위로 옮기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일반 시민들이 돕고 있었는데 그중 40대 초반쯤 된 사내가 도움을 청했다.
“아! 네.”
얼른 환자 이송용 침대의 한쪽을 잡았다. 그리고 언덕을 올라갔다.
“으이쿠!”
“조심하세요.”
도움을 청했던 아저씨가 자꾸 발을 헛디뎠다.
“아저씨, 그러다 다치시겠어요. 놓아도 될 것 같으니 쉬고 계세요.”
“아무래도 그래야겠군요.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는데 몸이 겁을 먹었나 봐.”
말에서 이상함을 느껴 물었다.
“혹시 사고 버스에 타고 계셨어요?”
“그렇긴 한데 평소 운동을 해서 그런지 멀쩡해요. 하하하! 사람들을 구하느라 너무 힘을 썼나 봐요. 아무래도 청년 말대로 좀 쉬어야겠네요.”
아저씨는 머리를 만지며 침대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아저씨. 이거 옮기고 난 다음에 저 좀 볼 수 있을까요?”
“할 말이라도 있나 보군요. 그럽시다. 그럼 나 먼저 올라가 있을게요.”
비적거리며 언덕을 올라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힘쓰자!’ 소리에 일단 침대를 올리는 것에 집중했다.
위에서 몇 명의 청년들이 도우니 침대는 도로 위로 금세 올라갔다.
“수고했습니다. 김 소방사, 이 구급차 떠나고 나면 15분 후쯤에 다른 구급차가 도착할 거야. 급한 환자 있으면 연락하고 경상자는 모두 위에 올려놔.”
“알겠습니다!”
빠릿하게 움직이는 소방 공무원들을 뒤로하고 조금 전의 사내에게 갔다. 그는 가드레일을 기댄 채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왔군요. 환자는 무사히 올렸어요?”
“네. 혹시 사고 당시에 부딪힌 곳 없으세요? 가령 머리라든가.”
“어? 어떻게 알았어요? 오른쪽 머리가 부딪혔는데. 하지만 혹만 났을 뿐이에요.”
사고가 났을 때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병원에 가서 철저하게 검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두삼은 두 손의 검지와 중지를 내밀며 말했다.
“잡아보세요.”
“응? ···문제가 있는 겁니까?”
“테스트를 하는 겁니다. 얼른 잡아보세요”
사내는 어리둥절해하면서 손가락을 잡았다.
“힘줘보세요. 더, 더, 더, 더!”
운동을 하는 사람답게 악력이 강했다. 다만 오른손가락만 아팠다.
그의 뇌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손가락에서 기가 빠져나가 빠르게 그의 뇌 쪽으로 향했다.
‘젠장! 뇌출혈이 시작됐어.’
머리가 부딪히면서 약해졌던 혈관이 터진 것이다. 그로 인해 뇌의 압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제 막 터졌다는 정도.
“잠깐 기다리세요. 거기 구급차 세워요! 거기 구급차 세우라고요!”
두삼은 떠나려는 구급차를 향해 뛰었다.
***
탕탕탕!
“멈춰요!”
막 움직이려는 119 구급차를 쳤다. 다행히 차가 멈추며 119 구급대원이 내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급한 환자가 타고 있는 차량입니다. 급한 일이 아닌 경우 법적으로······.”
“급한 환자가 있습니다!”
“어디요?”
“저기 앉아 있는 분이요. 뇌출혈로 인해 최대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저분은 아까부터 저흴 도와주신 분인데, 뇌출혈이라고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것이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막 다시 설명을 하려는데 좀 전에 봤던 중년의 의사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오?”
“아! 의사 선생님. 저기 저분 뇌출혈입니다. 벌써 증상이 나타나고 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구급대원이 들을 수 있도록 의사라는 말을 강조했다.
“저런! 구급대 양반. 난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원장을 하고 있는 민규식이요. 뇌출혈이라면 가장 급할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네네.”
구급대원을 설득한 민규식은 뇌출혈 환자에게 뛰어갔다. 하지만 민규식과 두삼이 도착하기 전에 환자는 스르륵 옆으로 쓰러졌다.
“이런······!”
민규식은 눈을 까서 눈동자를 확인하고 숨을 체크했다. 그때 그의 딸이 슬며시 물었다.
“뇌출혈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몇 가지 확인했어요.”
“테스트한다고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대단하네요. 근데 어느 병원에서 근무해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의학을 배웠습니다.”
“···아! 한의사였어요? 그, 그렇구나.”
당황한 표정이다. 그 덕에 대화가 끊어졌다는 점에선 나쁘지 않았다.
“내 소견으로도 뇌출혈이 의심되는군요. 구급대원 양반. 이 사람부터 데리고 갑시다.”
어느새 구급대원도 와 있었다.
“선생님, 근데 그게··· 저희가 가려는 병원에 신경외과가 없습니다.”
“이 사람 급해요! ···어쩔 수 없군. 그럼 대원 중 한 명만 붙여주시오. 내 차로 데리고 가겠소.”
“그건 가능합니다. 김 소방사! 이분들 따라가.”
“참! 한데 신경외과가 있는 병원은 어디에 있소?”
“원주까지 가셔야······.”
“허어~ 적어도 1시간 30분은 걸릴 텐데.”
뇌출혈이 무서운 건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한 후유증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두삼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나섰다.
“출혈 부위는 제가 일단 막겠습니다.”
본래 구급차에 타면 몰래 막으려고 했는데 분위기상 어쩔 수 없었다.
자신도 사고를 당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던 사내 모습이 능력을 말하게 만들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비장의 혈관을 막았던 방법인가? 부탁하네.”
민규식은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고 자리를 비켜줬다. 다만 어떻게 하는지 보려는지 옆에 딱 붙었다.
‘음, 부담스럽네.’
민규식뿐만 아니라 그의 딸, 구급대원, 웬일인가 싶어 모여든 사람들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알아서들 상상하라지. 집중하자.’
사내의 얼굴에 올린 손이 은은히 빛났다. 그와 동시에 천천히 사내의 머릿속이 그려졌다.
이미 한 번 봤던 곳이라 출혈 부위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혈관을 호스로 생각하면 호스에 구멍이 뚫려 있는 모양새였다.
‘이제 양쪽을 막으면··· 가만!’
기로 혈관을 눌러 막으려는데 문득 피가 공급이 되지 않으면 산소 역시 공급되지 않음이 떠올랐다.
뇌는 4분만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그 말인즉 막으면 피가 통하지 않는 쪽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구멍만 막을 수 있을까? 떠내려가진 않겠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혈관 안에 둥근 기를 만들어 막을 수 있다면 구멍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혈관 지름의 절반 정도 되는 기를 만들어 뚫린 구멍 쪽으로 유도해 막았다. 그리고 제대로 머물러 있는지를 확인했다.
통로가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빨라진 혈류에 의해 버티지 못하고 떠내려가 버렸다. 좀 더 크기를 키웠다. 그렇게 서너 번 테스트를 한 결과 약간의 피는 흐르되 떠내려가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휴우~”
“···끝난 거요?”
민규식은 의문과 놀람이 섞인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서너 시간 후엔 다시 출혈이 시작될 겁니다. 그리고 혹시 휴대용 산소호흡기 있으십니까?”
“그건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김 소방사라 불린 구급대원이 말했다.
“틈틈이 100퍼센트 산소호흡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혈류량이 적은 대신 산소 순환량을 증가시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면 옮겨도 되겠습니까?”
“같이하시죠. 민 선생님, 차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 이쪽으로······.”
민규식의 차는 운전사까지 딸린 고급차였다.
먼저 뇌출혈 환자를 넣고 민규식과 구급대원이 탔고 청하가 보조석에 앉았다. 내가 올라탈 생각을 하지 않자 민규식이 물었다.
“한의사 양반은 안 갑니까?”
“오토바이가 여기 있어서.”
“환자의 증상이 심해질 경우는 어떻게 하라고?”
“너무 늦게만 도착하지 않으면 될 겁니다. 그럼.”
“자, 잠깐! 이름이 뭡니까?”
“한두삼입니다, 민 선생님.”
오늘 민규식의 행동을 보면 꽤 괜찮은 의사라 생각됐다. 그래서 알려주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보세.”
그의 말에 빙긋이 웃어주곤 꾸벅 인사를 하고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섰다.
***
“아빠, 환자분 출혈이 멈췄다는 말 믿어져요? 한두삼이라는 사람은 손만 잠깐 올리고 말았잖아요.”
사이드미러로 멀어지는 사고 현장을 보고 있던 민규식은 딸 민청하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믿는다.”
“···무슨 말이 그래요?”
“나도 스승님께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다.”
“고 여선호 선생님께요?”
여선호는 젊은 시절 독일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의료계, 특히 외과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응. 스승님이 마흔 살 때, 지금으로 따지면 40년이 훨씬 더 지난 얘기구나. 아무튼 스승님은 당시에 살 확률이 1퍼센트도 되지 않는 말기 암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단다.”
“그 정도라면 지금도 수술을 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그렇지. 하지만 환자가 워낙 정재계에서 유명한 사람이고 본인이 강력히 원해서 어쩔 수 없었다더구나.”
자신의 물음과는 상관없는 듯한 옛 얘기였지만 그녀도 의사였기에 귀를 기울였다.
“스승님은 환자의 의료 기록을 샅샅이 살펴보며 어떻게 수술을 해야 할지 일주일이 넘게 고민했단다. 하지만 위에서 시작해 간, 소장, 대장 등 온몸으로 번진 암을 제거할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지. 다만······.”
“다만?”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확률을 높일 수 있겠다 싶었지.”
“조건이 뭔데요?”
“장시간을 버틸 환자의 체력, 최소한의 출혈, 그리고 수술 후의 행운.”
“피이~ 다 불가능한 거잖아요.”
말기 암 환자가 체력이 넘칠 리 만무했고, 긴 시간 다양한 곳을 수술하다 보면 몸 전체의 피가 바뀐다고 할 만큼 많은 출혈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마지막 행운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괜히 성공 확률이 1퍼센트가 아니다.
“그렇지. 그래서 스승님은 환자한테 그 얘기를 했어. 그랬더니 그건 알아서 하겠다고 했대.”
“다른 의사가 있었나 보네요. 하지만 당시라면 여선호 선생님이 최고셨잖아요.”
“외과에선 그러셨지. 어쨌든 그래서 수술 날이 왔고 수술실에 웬 남자가 들어왔대. 그리고 그때부터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셨대.”
“무슨 경험이요?”
“침으로 전신마취를 하고, 환자의 정신이 멀쩡한 채로 수술하고, 수술 중 수혈이 필요 없을 만큼 피가 적게 나오고. 웃긴 건 수술 중 그가 한 일이라곤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뿐이라는 거야.”
“그게 가능··· 잠깐! 아까 그 사람도 그랬다는 거예요? 도무지 믿기지 않는데요.”
“나도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거다. 너도 봤잖니. 비장 파열 환자. 그리고 이··· 환자.”
“그야 그렇지만······.”
민청하가 듣기엔 너무 황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반론을 제기하자니 같이 확인한 일 아닌가.
‘아빤 그 사람을 스카우트할 생각인가?’
과거에 비해 현대 의학에선 그런 요상한(?) 실력의 필요도가 떨어졌다. 기계로 몸속을 볼 수 있고 치료 방법은 한의학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긴급을 요하는 환자가 들어왔을 때 느긋하게 검사만 하고 있을 순 없듯이 이용하기에 따라 환자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있었다.
‘하긴 한방의학과 신설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니. 얼굴도 그만하면 잘생겼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병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녀석,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헤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그 환자는 살아났어요?”
민규식은 의료를 돈으로 보는 걸 싫어했다. 아이러니하게 그 때문에 출세 지향적인 이들을 모두 제치고 병원장이 되었지만 말이다.
“응. 살아났으니 우리 병원이 있는 거 아니겠냐. 그분이 초대 이사장님이셨다.”
“에? 진짜요?”
“그런 일로 왜 거짓말을 하겠냐. 아무튼 그 친구에 대해 조사를 해봐야겠어.”
“병원에 데리고 오려고요?”
“그랬음 하는데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르지.”
“그럼 어떻게 해요?”
“상황을 봐야겠지. 도저히 못 데리고 올 것 같으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허허허!”
언제나 그렇듯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이다.
‘아빤 언제나 저렇다니까. 병원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꽉 잡아야죠.’
미래에 자신이 병원을 물려받을 때를 생각해서라도 인재 영입은 미리 해두는 게 좋았다.
민청하의 머릿속은 두삼을 어떻게 영입할 것인지에 대해 복잡하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