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31화 (30/122)

# 31

10. 상경 길에 만난 이들(2)

***

“오토바이 타기 좋은 날이네.”

희진의 치료가 잘되어서인지, 아니면 시원한 바람 덕분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다.

건물은 공사 중이라 당장 서울에 올라가도 여관을 전전해야 했기에 느긋하게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첫 목적지는 삼척이었다. 장미 축제 때 좋아하는 가수가 온다고 하니 겸사겸사 가는 중이다.

“일단 합천에 가서 점심을 먹을까. 먹고 해인사 구경해도 되잖아.”

목적지를 삼척으로 잡았지만 급하게 갈 이유는 없었다. 제 시간에 도착하면 직캠을 찍는 거고, 아님 장미만 구경해도 충분했다.

악양의 경험으로 자존감이 회복되며 병적으로 매달리던 일도 취미로 바뀐 모양이다.

합천을 거쳐 대구로 가 야시장을 구경하고 안동으로 가 하회마을을 구경하며 북상했다. 가끔 비가 와서 원두막이나 시골 동네의 나무 밑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태백산 국립공원 근처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두삼은 느긋하게 일어나 주차장으로 갔다.

“서두르면 제 시간에 도착하겠네.”

말과 달리 오토바이를 탄 두삼은 도로 규정 속도에 맞게 느긋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좋던 기분은 짜증으로 바뀌었다. 고속도로가 잘 뚫려서인지 국도엔 오가는 차는 많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가끔 위험하다 싶을 만큼 쌩쌩 지나갔다.

특히 관광버스가 지나갈 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속도를 80㎞까지 높였지만 그보다 빨리 지나갔다.

더 높였다간 국도가 워낙 꾸불꾸불해 절벽에 처박히거나 옆의 개울에 처박힐 것 같은 두려움에 결국 백미러를 흘낏거리며 뒤에서 차가 오면 한쪽 구석으로 피해주었다.

빠아아아아아앙!

다시 관광버스가 지나갔다. 나무 옆에 바싹 붙어 있음에도 경적을 울리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으~ 먼지! 작작 밟아라. 그러다 사고 난다.”

이미 사라진 버스를 보며 투덜거린 후 다시 손잡이를 돌렸다.

샛길이 나오면 그쪽으로 빠져서 가야겠다. 그러나 외길이라 그런지 샛길은 나오지 않았다.

대여섯 대의 차를 더 보내고 좌측으로 돌자 능선 너머로 연기가 보였다.

“···설마 말이 씨가 됐나? 그걸 바라고 한 소린 아니었는데······.”

대수롭진 않지만 뱉은 말이 있어서인지 제발 별일이 아니길 바랐다.

다시 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코너를 돌았다. 그러자 여러 대의 차들이 좌우로 주차되어 있고 사람들이 나와 5미터쯤 높이의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보자 계곡 아래 아까 지나갔던 관광버스가 흉하게 부서진 채 뒤집혀 있었다.

“······!”

몇몇 남자가 아래로 내려가 불이 붙은 부분을 계곡물로 끄고 있었고 몇몇은 깨진 창문 사이로 다친 사람을 꺼내려 하고 있었다.

문득 자신도 모르게 오토바이를 옆에 대고 내려가려던 두삼은 걸음을 멈췄다.

[늙은 노인네들 침만 놔주는 한의사가 의사야? 니가 뭔데 우리 아버질······!]

과거의 기억이 발을 잡았다.

‘···내가 내려가 봐야 할 것도 없잖아.’

해주고도 한의사라는 걸 알면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게 빤했다.

불은 잡혔다. 이젠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만 끄집어내면 되는데 지금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그냥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오토바이에 열쇠를 끼워 시동을 걸었다. 한데 안절부절 바라보고 있던 남녀의 대화가 다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꺅! 저 사람 피 봐. 어떻게 해?”

“저 정도면 구급차 오기 전에 죽겠는데······.”

몇 사람이 막 버스에서 한 명을 끄집어내고 있었는데 멀리서도 피가 바닥을 적시는 게 보일 정도였다.

‘···나완 상관없는 일이야. 그냥 한 말인데 그 때문에 책임을 질 이유는 없잖아.’

하지만 생각과 달리 두삼은 헬멧을 벗어 오토바이에 걸어두고 가드레일을 넘었다.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눈앞의 환자를 외면하면 의사라고 불릴 수 없다.’

“···이제 마사지사에 불과하다고요!”

머릿속에서 빙긋이 미소를 지은 채 쳐다보는 할아버지를 향해 말하곤 서둘러 다친 이에게로 뛰어갔다.

***

“···이 사람 이대로 둬야 하나요?”

청년은 간절하지만 생기를 잃어가는 눈빛으로 힘없이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환자를 보곤 중얼거렸다.

이대로 손을 뿌리치면 마치 그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청년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버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양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네가 의사는 아니잖아. 119에 신고를 했으니 구급차가 빨리 오길 기도하세나.”

“하지만······.”

“아직 버스에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된 거야.”

“······.”

구구절절 옳은 얘기였다.

돕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내려온 자신을 탓하며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며 걸음을 뒤로 뺐다. 그를 잡고 있던 환자의 손은 힘없이 빠져 아래로 떨어졌다.

자갈밭에 떨어지겠다 싶어 ‘아차!’ 하는데 환자의 손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헐레벌떡 달려온 두삼이었다.

“헉헉! 이분은 제가 볼게요.”

“의, 의사세요?”

청년은 마치 구세주라도 나타난 듯 표정을 풀며 물었다.

“···뭐, 비슷합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아, 네······.”

청년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전에 자신이 했던 생각이 부끄러웠다.

‘자책은 일단 여기부터 해결하고.’

“손 좀 올리겠습니다.”

환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상처가 난 배에 손을 올렸다.

두삼의 손이 은은하게 빛나며 환자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기가 환자의 몸에 퍼지며 몸의 내부가 사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쯧! 비장에 유리가 박혔어.’

음료수 병이 사고가 나면서 배 안으로 파고 들어간 모양이다.

비장은 면역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적출을 해도 생명엔 지장이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살아가는 동안 평생 동안 세균 감염에 주의를 해야 하지만.

제거하지 않고 저절로 치료되도록 돕는 방법이 최선이지만 유리가 박힌 정도를 봤을 땐 적출이 답이었다.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닌데······.’

비장으로 향하는 혈관을 완전히 막지 않고 숨통은 틔워놓을 수 있었는데 그럼 나중에 의사가 보고 확인하고 살릴지 아님 적출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출혈량을 보면 그러다 죽을 수도 있었다.

‘완전히 막자!’

구급차가 지금 도착해도 위험했다.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할 순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두삼은 기를 이용해 혈관을 막았다. 희진이를 치료하면서 수없이 했던 일인지라 순식간에 끝났다.

뚫린 배에서 솟아나던 피가 멈췄다. 다만 환자는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정신이 없었다.

“혹시 메모지랑 펜 있는 사람 있습니까?”

도우려는 건지 계곡 아래로 내려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여기요!”

청바지 차림의 여자가 메모지를,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가 펜을 줬다.

환자의 상태를 간단히 적은 후 가슴에 붙였다.

“잘 썼습니다.”

“···아, 아닙니다. 가지세요.”

돌려주려는데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생각해 보니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구조된 이들을 훑어봤다. 대부분 넋을 놓고 앉아 있거나 비교적 멀쩡한 사람은 피를 흘리면서도 다른 승객들을 구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 중 유독 멍하게 있는 중년 여성에게로 갔다.

표정을 보면 황망한 일을 당해 멍하니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끔찍한 상처가 보였다.

왼쪽 종아리뼈가 부러져서 근육과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글쎄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현실감이 없어요.”

그녀는 마치 마약성 약물을 복용한 사람처럼 어눌하게 말했다.

일견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 꽤 위험한 상태였다.

현재 고통과 현실을 잊기 위해 마약성 호르몬이 그녀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만일 저 상태에서 호르몬의 분비가 멈추면 상처 때문이 아니라 쇼크로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서둘러야 했다.

“허리에 손 좀 올려도 될까요?”

“···상관없는데 ···왜요?”

“왼쪽 다리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려고요.”

“···그럼 다리를 만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척추에 신경이 있었나? 음······. ···잘 모르겠네요. 알아서 하세요. ···근데 총각, 참 잘생겼네.”

“···감사합니다.”

횡설수설하는 그녀의 말을 받아주면서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서둘러 왼쪽 다리를 담당하는 감각을 마비시켰다.

“···신기해요. ···찌릿한 느낌이 사라졌어요.”

“다행이네요. 근데 다리 지금처럼 놔두면 안 좋은데 맞춰 드릴까요?”

시각을 통한 쇼크까지 감안해야 했다.

“···아프지 않은 건가요? 아···! 마비됐다고 했죠? 그래주세요.”

“그럼 불편하겠지만 좀 누우세요. 자면 더 좋고요.”

“···심장박동이 점점 빨리지는 것 같아 잠이 올 것 같진 않은데.”

“손하고 머리 좀 만질게요.”

“···잠들게 하는 방법도 있나 봐요. 젊은 의사선생님이 능력이 대단하시네.”

“비슷한 겁니다.”

수면혈(睡眠穴)은 존재한다. 합곡혈과 삼간혈의 연결선에서 중간에 있다. 다만 무협지처럼 누른다고 단숨에 잠들지 않는다.

그 외에 비슷한 효과를 보이는 혈들이 있는데 백회혈의 경우도 따뜻하게 하면 잠이 온다.

왼손으론 수면혈을 자극하고 오른손은 머리에 올려 백회혈 따뜻하게 만들었다.

기란 신기해서 불을 연상하면 뜨겁고 얼음을 생각하면 차가웠다. 그런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는지 중년 여성은 1분도 되지 않아 코를 골며 잠들었다.

“이제 뼈를 맞춰볼까. 오랜만이네.”

방학 때마다 중국에 갔는데 그때 접골에 대해 제법 실습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었는데 이젠 내부까지 살필 수 있음에야 어려울 것 없었다.

“음, 물이 있어야 하는데······.”

상처가 지저분했다.

그때 얼굴이 닮은 것이 부녀지간으로 생각되는 나이든 남자와 여자가 다가왔는데 남자의 손에 2리터짜리 물 6개가 들려 있었다.

“실례합니다. 상처를 씻고 접골을 하려는데 물 좀 쓸 수 있을까요?”

“환자들을 위해 가져온 거니 그러시오. 위생 장갑도 쓰시오. 근데 마취 없이 제대로 씻기 힘들 텐데.”

환자가 깰 거라 걱정하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깨지 않을 겁니다, 그럼.”

수술 장갑을 끼고 물을 부으며 더럽혀진 상처를 닦았다. 사실 위생적으로 보면 구급차를 기다리게 옳았다. 하지만 혹시 모를 위험은 차단하는 게 좋았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나요?”

딸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목소리를 죽였지만 워낙 가까이에 있어서 다 들렸다.

“치료할 사람이 없다면 그게 최선이지. 하지만 저 환자의 얼굴색과 호흡을 보면 쇼크의 위험이 높아.”

“저대로 두면 자신의 상처를 보고 쇼크로 인한 심정지가 올 수 있으니 치료를 한다는 얘기네요?”

“그렇지.”

“한데 그런 판단을 정확히 할 수 있는 건가요?”

“경험, 혹은 본능? 정확한 건 없다. 다만 나라고 해도 저 젊은 의사처럼 했을 거다. 깨끗이 씻은 것 같으니 소독용 에탄올을 뿌려주려무나.”

“···제가요?”

“그럼 내가 하리?”

“네~네~ 손 조심하세요. 뿌릴게요.”

여자는 가방에서 소독용 에탄올을 꺼내 상처 부위에 골고루 뿌렸다.

천만다행이었다. 작은 모래 따위의 이물질이야 기를 이용해 찾아 제거할 수 있지만 감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다 됐어요. 한데 깔끔하게 부러지긴 했지만 단면이 날카로운데 어떻게 접골을 할 생각이죠? 상처를 벌리는 건······!”

여자가 말하는 사이에 잡고 있는 다리를 쭉 뺐다. 그리고 바로 뼈를 맞췄다.

내부가 훤히 보이는데 망설일 필요 없었다.

“도와주신 김에 저기 나무랑 붕대 있음 주시겠어요?”

“···아, 네.”

1미터가 넘는 나뭇가지를 반으로 부러뜨린 후 양쪽으로 대고 붕대를 감았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확인하고 종이와 펜으로 여자의 상태를 적어 어깨에 붙였다.

“비장 파열 된 사람을 고친 것도 당신이군요?”

여자의 아버지가 물었다. 메모지를 붙이는 걸 봤는데 변명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지나는 길에 우연히 사고 현장에 도착해서 빈손인 것 같은데, 혹시 출혈을 어떻게 잡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손을 넣어 실 같은 걸로 묶은 것 같진 않던데. 허허허! 나이가 드니 궁금한 게 많아져서.”

“······.”

훅 치고 들어오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얼버무리면 단번에 눈치챌 것 같은데.’

마음씨 좋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눈빛만은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한의사라고 말한 후 능력에 대해선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진실에 거짓을 섞는 방법인데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전······.”

“여기요! 우리 와이프 좀 봐주십시오. 상태가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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