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10. 상경 길에 만난 이들(1)
***
강력한 물줄기가 꼬인 호스를 풀 듯 강한 기의 흐름이 꼬인 세맥을 푼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계획에 앞서 꼬인 세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꼬인 맥을 아예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바로 시도를 해도 됐다.
평범한 사람들도 기의 도로라는 맥이 다치는 경우가 있다. 주요 맥의 경우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세맥의 경우 나이가 들어감에 저절로 막혀 버리기도 했기에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진의 나이가 어리다는 점과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 있었기에 시간을 더 투자하기로 했다.
보름 동안 열심히 꼬인 세맥을 자극했고 기운을 스며들게 만들어 보름 만에 제법 튼튼해졌다.
착한(?) 마음을 먹어서인지 배우는 바도 있었다.
지금까지 감각적으로 알고 있던 맥을 외부에서 막는 것과 내부에서 막는 것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게 됐다.
맥을 호스라고 생각했을 때 호스 외부를 눌러 기의 흐름을 막으면 반영구적으로 막을 수 있고, 호스의 안쪽을 막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막아둔 기가 피시술자에게 스며들면서 뚫리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기의 밀도를 조절함으로써 막는 시간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10의 기운으로 막으면 하루, 20의 기운으로 막으면 이틀간 지속되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험 결과에서도 거의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아무튼 세맥이 어느 정도 튼튼해진 것을 확인한 두삼은 오늘 꼬인 것을 풀기로 했다.
“···전 밖에서 기다릴게요.”
오늘 시도하는 일에 대해서 잘 아는 형수는 보고 있는 게 힘든 모양이다. 어쩌면 밖에서 기도를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세요.”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마찬가지였기에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형수가 나가고 얌전히 침상에 누워 있는 희진에게 말했다.
“시작할게.”
“삼촌, 파이팅!”
“하하! 그래 파이팅이다.”
도리어 환자인 희진이 긴장을 풀어줬다.
손을 뻗어 그녀의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기운을 손에 집중했다. 손이 새하얗게 빛났다.
물론 빛은 두삼의 눈에만 보이는 빛이었다.
두삼의 기운은 희진의 단전에 들어가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단숨에 몰아치듯이 보내야 했기에 기운이 웬만큼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
‘이 정도면 되겠지. 간다!’
두삼은 자신의 기운이 4분의 1쯤이 빠지자 때가 되었음 알고 두 곳의 꼬인 세맥을 향해 기운을 보냈다.
단전에서 빠져나간 기운은 지난 보름 동안 닦아둔 총 네 개의 맥을 통해 빠르게 달렸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모습에 마치 ‘쏴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순식간에 목적지 앞까지 도착했고 곧장 꼬인 세맥으로 진입했다.
으득!
꼬인 세맥이 동시에 빵빵하게 부풀었다. 당장이라도 풀릴 듯이 꿈틀거렸다.
‘풀어버려!’
간절히 바랐지만 기운이 다 지날 때까지 꼬인 세맥은 형태를 유지했다.
첫 시도는 실패였다.
실패한 기운을 돌려 다시 단전으로 들어오게 했다.
남은 기운은 80퍼센트 정도. 기운을 추가해서 처음의 120퍼센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시켰다.
다시 꼬인 세맥을 통과할 때였다.
“아악!”
희진이 뾰족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댔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집중해서 내부를 봤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맥이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다.
마취를 해뒀는데 왜 고통스러워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첫 시도 때 과한 기운이 돌면서 막아뒀던 기운이 흔들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희진아, 조금만 참으렴.’
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드득!
꼬인 세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터지지 마!’
“아아! 삼촌 아파요!”
“조금만 참으렴! 이번만 성공하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
꼬인 세맥이 풀리려고 할수록 신경은 더욱 압박됐고 희진의 비명 소리는 커졌다.
이곳이 CRPS의 원인임을 확신했다.
‘제발!’
풀리라고, 터지지 말라고 바랐다. 그리고 넣은 기운이 3분의 2쯤 지나갔을 때였다. 버티던 꼬인 세맥 두 곳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꺅! 사, 삼··· 아악!!”
멈춰야 하나 싶을 만큼 희진의 비명이 커졌다.
그때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나 싶을 만큼 꼬인 세맥이 휘릭! 풀렸다.
“하아······!”
“으으······.”
아랫배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주저앉은 두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희진은 고통에서 벗어난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괜찮니?”
“···네. 이젠 안 아파요. ···간만에 너무 아팠어요.”
“미안하다. 삼촌이 예상을 못 했구나.”
“···괜찮아요. 근데 치료는 끝난 거예요······?”
“생각대로 됐는데 어디 한번 확인해 볼까?”
“···아픈 거라면 내일 했으면 좋겠는데요.”
“간단한 거야. 옆으로 돌아보렴.”
수건으로 그녀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준 후 등에 손을 올렸다.
‘역시 막아뒀던 기운이 약해졌어.’
다음에 이런 일이 있다면 좀 더 강하게 막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척수신경을 막아뒀던 기운을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팔과 다리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어때?”
“어? ···문지르는 느낌은 드는데 아프지 않아요.”
“이건?”
이번엔 손톱으로 등을 살살 긁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시원하게 느낄 강도였다.
“시원해요, 삼촌! 어렸을 때 간지러울 때 엄마가 긁어주는 느낌이에요! 저··· 혹시 나은 건가요?”
희진도 몸의 변화를 느끼는 모양이다.
“아마도. 몇 가지 더 실험해 볼게.”
살짝 꼬집어보기도 하고, 뾰족한 물건으로 몸 이곳저곳을 찔러보기도 했다.
또한 풀린 세맥이 다시 꼬일까도 살펴봤지만 굵고 튼튼해진 세맥 덕분에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20여 분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 내린 결론은.
“이젠 집에 가도 되겠다.”
“진짜요! 나은 거예요? 진짜로 나았어요, 삼촌? 정말이요?”
희진은 같은 물음을 반복했다.
“응.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완전히 나았다고 보인다.”
“이제 안 아픈 거죠? 그렇죠? 학교도··· 계속 다닐 수도 있고, 병원도 안 가도 되고······.”
방금 전까지 기쁜 표정으로 묻던 희진은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그리곤 상체를 일으키며 두삼의 목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삼촌! 흑!”
“···그동안 고생했다.”
두삼 역시 그녀를 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10. 상경 길에 만난 이들
“···이 사람은 뭘 하기에 전화도 없어.”
오늘 중요한 치료가 있는 날이라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다 할 소식이 없으니 답답했다.
일만 없었다면 당장 달려갔을 것이다. 한데 ‘운수 좋은 날’의 상황처럼 새벽부터 지금까지 일이 계속되니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
전화를 해보자는 생각에 단축 번호를 누르려 할 때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다.
“응! 어떻게 됐어?”
통화를 누르자마자 결론부터 물었다.
-나았어요! 이젠 괜찮대요!!
“진짜? 내가 당장 갈게.”
-집으로 와요. 두삼 씨가 이젠 괜찮다고 집까지 데려다 줬어요.
“더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바로 갈게.”
재발하면 어쩌나 걱정됐지만 어련히 알아서 보냈겠지 싶었다.
단숨에 집으로 달려갔다.
“나 왔어! 희진인 어때?”
“나도 믿기지 않아 여러 번 테스트 해봤는데 이젠 멀쩡해요.”
“어디 있어?”
“안에서 친구들이랑 전화하고 있을 거예요.”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희진의 방으로 갔다.
옷도 입지 못하고, 침대에 눕지도 못하던 희진이 옷을 입은 채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모습만으로도 나았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인은 필요했다.
“희진아 아빠가 좀 만져볼게.”
“히잉~ 꼬집진 마세요. 삼촌도, 엄마도 엄청 꼬집어서 그거 때문에 아파요.”
“···으응, 당연하지. 그냥 만져만 볼게.”
꼬집어보려던 생각은 접어야 했다.
아팠던 곳을 구석구석 만지며 느낌을 물어본 후 나았음을 확신했다.
희진의 방에서 나온 백만수는 현관으로 향했다.
“어디가요?”
“두삼이 술 한 잔 사주고 오려고.”
“그렇게 해요. 참! 간 김에 치료비는 얼마나 줘야 하는지 얘기해 봐요.”
“아······!”
나가려던 백만수는 신발을 벗고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통장에 얼마나 있어?”
“돈이 어디 있어요. 지금까지 희진이 병원비가 좀 들어갔어요?”
“하긴··· 집을 담보로 빌려야 하나.”
“은행 대출 된다고 해도 2천 이상은 힘들 거예요······.”
대지가 넓지만 대한민국에서 싸기론 첫 손가락에 드는 곳이다 보니 많은 돈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2천이라. ···혹시 돈 빌릴 곳 있어?”
“오빠한테 말하면 오백 정도는 빌릴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모아둔 돈 없어요?”
“농한기나 돼야 들어와. 하지만 그것으론 택도 없지. 쩝! 아버지한테 손을 벌려야 하나.”
그의 아버지는 예전에 사업을 해서 제법 돈이 많았다. 하지만 결혼을 할 때, 희진이 일로 병원에 다닐 때 번번이 손을 벌렸기에 염치가 없었다.
“그러지 말고 술을 먹으면서 가볍게 얼마쯤이면 되는지 말해보면 어때요? 솔직히 희진이를 낫게 해줬으니 너무 터무니없지만 않다면 얼마를 원하든 맞춰주는 게 맞지 않겠어요.”
터무니없이 달라고 할 녀석도 아니었다.
고민을 하던 백만수는 결국 두삼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형.
“결국엔 고쳤구나. 고맙다.”
-하하! 고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에요. 후우~
“뭐 하기에 그렇게 힘을 쓰냐?”
-별거 아니에요.
“힘쓸 일 있으면 불러라. 그나저나 오늘 같이 기쁜 날 술 한잔해야 하지 않겠냐?”
-제 몸 상태가 별로라 술은 좀 그렇고 내일 점심이나 같이해요. 아! 형 이만 끊어야겠어요.
“왜? 무슨 일 생겼냐?”
-아뇨. 아무튼 내일 봐요!
서둘러 전화를 끊는 두삼. 서둘러 끊는 것 같아서 조금 이상했지만 바쁜 일이 생겼나 보다 하고 넘겼다.
“우리 오늘 애들 데리고 외식할까?”
“두삼 씨랑 술 먹는다면서요.”
“몸이 안 좋대. 내일 점심 같이 먹기로 했어.”
희진이 아프고 난 다음부터 외식 한번 편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고생한 와이프를 위해서라도 오늘은 외식을 하고 싶었다.
“같이 술도 한잔하고.”
“훗! 그래요.”
백만수 부부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이 떠올랐다.
***
푸다다다다다!
백만수는 두삼과의 점심 약속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매계리로 향했다.
대문 앞에 도착한 그는 헬멧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 기사 어디 갔나?”
공터에 트레이드마크처럼 서 있던 고급 외제차가 보이지 않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본채로 올라갔다.
“오늘은 유독 조용하네. 두삼아! 두삼아!”
문은 다 닫혀 있었고 마루에 상자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막 두삼의 방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뒤에서 이봉래가 다가오며 말했다.
“두삼이 아침에 서울 갔다.”
“어? 아저씨 안녕하세요. 근데 서울이요? 언제 내려오는데요?”
“내년 할아버지 제사 때나 내려오겠지.”
말인즉, 완전히 올라갔다는 소리다.
“갑자기 왜? ···아!”
이유를 묻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치료비 때문에 고민할 거라 생각하고 올라간 게 분명했다.
“치료비는 오토바이로 충분하다고 전해주라더라. 혹시 더 주고 싶으면 조카들 용돈으로 주래.”
“···무슨 애들 용돈을 그렇게 줘요.”
“나야 모르지. 다만 짐작컨대 서울에서 쫓기듯이 내려왔을 때 돈도 받지 않고 오토바이를 준 것이 고마워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
“점심은 다음에 내려올 때 먹자더라. 그리고 저기 박스 가져가라. 하나는 네 처 기가 약하다고 먹이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희진이 아토피 치료 입욕제란다. 전할 말 전했으니 난 일하러 간다.”
아무 말 없는 백만수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툭 치곤 이봉래는 돌아섰다.
“···나쁜 자식!”
미안하고, 고마웠다.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거칠게 중얼거린 그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전화라도 걸어 인사도 없이 가느냐고 한마디라도 해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이봉래가 전하지 않은 말이 있는지 뒤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참! 욕할 사람이 있어서 전화는 일주일 동안 꺼놓는다고 하더라.”
“······.”
백만수는 통화 버튼을 눌러봤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