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9. 마무리를 짓다(1)
“이렇게 많이 오시면 하루 종일 해도 다 못 합니다.”
“헐~ 기껏 생각해서 데리고 왔는데 못 한다고?”
“30분 코스로 한다면 다른 예약 다 취소하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럼 30분씩이라도 해줘. 설마 못 하겠다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이 친구들 평소에는 착한데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말하는 깡패를 제외하고 10명이 동시에 인상을 쓰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과거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빤히 보이네. 너희가 자초한 일이니 날 탓하지는 마.’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비겁하다 싶을 만큼 수동적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를 받는 것까지 용납한다는 것은 아니다.
“해드려야죠. 들어오세요. 예약을 취소해야 하니 30분쯤 후에 시작하기로 하겠습니다.”
깡패들을 안으로 들여보낸 후 배영옥과 희진이에게 갔다.
분위기 때문인지 나문덕과 정 간호사도 함께 모여 있었다.
“여사님과 희진인 오늘 외출하셔야 할 것 같아요.”
열한 명이나 와서 마사지만 받고 가진 않을 터. 분명 마사지를 하는 동안 여기저기 돌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려 들 것이다.
“···괜찮겠어?”
“괜찮지 않을 것 같으면 내가 먼저 도와달라고 했을 거다.”
나문덕은 두삼을 지키는 일 또한 하란이 지시한 일이라며 남으려 했지만, 배영옥 곁에 있는 게 더 안심이 될 듯하여 고개를 저었다.
“희진이도 엄마랑 재미있게 놀다가 오렴.”
“네! 삼촌! 저 바다에 가보고 싶어요.”
사정을 모르는 건지 어른들의 심각한 모습에 모른 척하는 건지 희진은 해맑게 대답했다.
빙긋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막혔던 혈을 풀어줬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막았다.
‘오늘 밤엔 다른 방법으로 재워야겠네.’
사람들이 외출 준비를 하는 걸 보고 마사지실로 들어갔다.
열한 명의 덩치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강심장인 두삼에게도 꽤나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시작하죠. 먼저 받으실 두 분은 족욕부터 하시죠.”
“기다리기 지루한데 나가 있어도 되나?”
“물론이죠. 단, 아래 사랑채 쪽은 출입을 삼가주세요. 거긴 이곳과 상관없는 가정집입니다.”
“그냥 심심해서 둘러보는 거야. 왜? 우리가 사고라도 칠까봐 걱정돼?”
“조금요.”
“훗! 쫄기는.”
쫄리는 게 아니라 지킬 것이 있어 조심스러운 것뿐이다. 물론 저들이 볼 땐 겁먹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마사지를 시작했다.
“우리 바쁜 사람들이야. 얼른 해줘.”
“점심이 중요해? 우리들도 굶었거든.”
깡패들은 중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도 못 주겠다는 듯 바쁘다는 말로 두삼을 밀어붙였다. 어디서 김밥을 먹고 왔는지 이에 김을 붙인 채 말이다.
두삼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묵묵히 열한 명의 마사지를 했다.
“으음~ 어제보다 더 좋은데.”
“···두 번째라 그런 걸 겁니다. 사실 한 시간 받아서는 오랫동안 뭉쳐 있던 근육을 다 풀긴 힘들거든요.”
“그런가?”
거짓말이다.
지금 그가 기분이 좋은 건 그의 기운과 신체의 능력을 강제적으로 극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신체의 주요 혈을 막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겉은 멀쩡하지만 속이 망가져 버린다. 일상생활은 문제없지만 힘자랑하면서 사는 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미 독하게 마음을 먹었음에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했다. 한데 약간의 미안함마저 사라지게 하는 말을 했다.
“근데 조심해야겠어.”
“···뭘요?”
“아까 심심해서 주변을 돌아봤는데 집근처에 마른 풀들과 나무들이 많더군. 건조할 때 불이 나면 이 집도 위험하겠어.”
멈칫!
두삼의 손이 멈췄다. 당장에라도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지 손이 부르르 떨렸다.
깡패는 두삼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꽤나 소중한 곳인 모양이네. 아무튼 주변 청소라도 잘해두라고. 요즘 산불이 유행처럼 번지잖아.”
엎드려 있는 깡패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두삼은 다시 마사지를 하며 말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응? 원하는 거라니? 마사지 받으러 온 사람이 원하는 게 뭐가 있겠어?”
“문을 닫으면 되는 겁니까?”
모르쇠로 나왔지만 두삼은 무시하고 다시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은근히 속내를 내비쳤다.
“문을 닫으려고? 쩝! 괜찮은 마사지 업소를 찾았다 했는데··· 오가는 사람이 없으면 불날 일은 없겠네.”
“월요일 날 폐업 신고 하죠.”
불을 지르고도 남을 놈들이다.
하란에게 받은 돈으로 다른 곳에 가게를 낼 수 있는데 더러운 협잡에 굴하지 않겠다고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가득한 곳을 잃을 순 없었다.
“겁이 많은 친구군. 아무튼 아쉽게 됐네. 참! 마음이 바뀌면 연락해. 다시 올 테니까. 하하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다 됐습니다.”
“수고했어. 오늘 비용은 깎지 않고 줄게. 하하하!”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언제까지 저렇게 웃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
오동춘은 진주의 문산사거리파 행동 대장이다.
전국구 깡패는 아니지만 그래도 진주에서는 힘깨나 썼다. 특히 군수의 껄끄러운 뒷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웬만한 일로는 경찰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나오셨습니까!”
“형님이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동생들의 인사에 대답할 겨를 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두영의 방 안으로 빠르게 다가섰다.
“형님, 저 왔습니다.”
“그래. 악양 일은 어떻게 됐어?”
“영업 그만한다는 확답을 듣고 왔습니다.”
“말귀가 어두운 놈은 아니었나 보군. 확실한 거야?”
“오전에 전화를 해봤더니 오늘 세무서에 가서 페업 신고를 한다더군요.”
“폐업 신고까지 확인한 후에 말해줘.”
“알겠습니다.”
말하는 내내 이두영의 표정이 풀리지 않았기에 오동춘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이두영은 담배를 물고 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후우~ 점심 먹기 전에 애들 데리고 가서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말만 하십시오.”
“어제 막내가 돈 받으러 갔다가 당했다. 병신 같은 게 노인네 한 명도 처리 못해서, 쯧!”
“혹시 고현철?”
“맞아. 확실히 처리하고 와.”
고현철은 업계 선배(?)로 요새 부딪힐 일이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를 처리하기 위해 조직원 여덟 명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차를 타고 고현철이 운영하고 있는 고물상으로 향했다.
“문 막아.”
도착하자마자 우르르 차에서 내려 고물상 문부터 닫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절뚝거리며 고현철이 나왔다.
그는 예상을 하고 있었는지 오동춘 패거리를 담담한 표정으로 보며 입을 열었다.
“점심 먹고 올 줄 알았는데, 부지런들 하군.”
“이 바닥에 대해 잘 알 테니 저희가 찾아온 이유도 잘 알죠?”
“알지. 다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손 놓고 맞아본 적이 없어서 반항을 할 걸세.”
눈짓을 보내자 기합과 함께 동생이 먼저 움직였다.
퍼억!
빠르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고 정확히 턱에 꽂혔다.
주먹이 맵기로 유명한 녀석이라 싱겁게 끝날 줄 알았다. 한데 고현철의 고개가 약간 돌아가는 정도에 불과했다.
때린 동생 녀석도 뭔가 이상한지 자신의 주먹을 보며 어리둥절해했다.
“병신 새끼!”
적을 앞에 두고 넋을 잃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오동춘이 중얼거리는 순간 고현철의 두툼한 주먹이 동생의 명치를 후려쳤다.
스르르 무너지는 동생.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조져!”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동생들이 싸우는 사이 오동춘 역시 고물상에서 적당한 몽둥이를 구한 후 달려들었다. 그리고 틈을 봐서 그의 등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어? ···뭐지? 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몇 번을 더 휘둘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오동춘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사이 동생들은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현철과 그 자신만 남았다.
그러자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뭔가 잘못됐어. 파,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 참 안 됐군. 아니 나에겐 잘된 일인가? 아무튼 싸움을 마무리 짓도록 하지.”
“자, 잠깐···!”
오동춘은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라도 가지고 싶었지만 고현철이 든 쇠파이프는 용서 없이 날아왔다.
***
우득!
뼈 부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웬 아저씨가 샐러리가 담긴 봉지를 밟은 모양이었다.
샐러리 주인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티격태격 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세무서 직원이 말했다.
“폐업 처리 됐습니다.”
사업자 등록 신고도 쉬웠지만 폐업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벗어뒀던 겉옷을 다시 입은 후 세무서에서 나왔다. 그리고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으~ 문덕이가 차 태워준다고 했을 때 타고 올걸.”
버스를 기다리고 갈아타기가 귀찮아서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너무 추웠다.
뼈까지 시리게 만드는 찬바람을 맞으며 악양면에 도착했다.
그대로 매계리로 가려던 두삼은 스스로가 왠지 꼬리를 만 강아지처럼 느껴지는 것에 화가 났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세웠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생각해서 폐업을 했지만 사실상 무서움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복수를 소심하게나마 했다. 다만 그것이 몸통이 아닌 꼬리에게 한 것인지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건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경고 정도는 해둬야겠지?’
오토바이를 좌측으로 돌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혁한의원.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데스크에 앉아 있던 간호사가 반겼다. 전에 왔을 때 발 디딜 수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휑한 느낌이다.
“진료 받으러 오셨으면 접수 도와드릴게요.”
“아, 네.”
“이름과 주민번호 부탁드릴게요.”
이름과 주민번호를 말해 접수를 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
“이쪽 목과 어깨가 결려서요.”
“치료실로 가셔서 들어가세요. 선생님 금방 나오실 거예요.”
간호사의 말에 치료실로 들어가자 다른 간호사가 옷을 벗고 기다리라고 했다.
T셔츠 하나만 남기고 벗고 기다리자 김장혁이 왔다.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다가오다가 두삼의 얼굴을 보더니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라는 표정이 아닌 ‘네가 여긴 어떻게?’라는 표정이다.
‘이 녀석도 알고 있었군.’
경찰에 신고를 하고 깡패를 보낸 것이 김광도의 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놀라는 표정을 보니 김장혁과도 무관하진 않은 모양이다.
예상 내였기에 침착하게 말했다.
“어깨랑 목이 결려서 왔어요. 근데, 혹시 내 얼굴 몰라요? 한두삼이라고 하는데.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고 할아버지 댁에서 가끔 봤었잖아요?”
“···한두삼? 그, 글쎄···요.”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 나나 보네. 만나서 반가워요. 아프면 종종 올게.”
“···네.”
“말 편하게 하자. 초등학교 동창끼리 존대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래. 치료할 테니 옷 벗어. 이쪽이 결린다고?”
길게 얘기하기 싫었는지 그는 적당히 대꾸를 하곤 등으로 갔다.
제발이 저렸을까 뒤로 돌아가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어깨를 누르는 손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어떻게 얘기를 꺼낼까 생각하다가 일단 김장혁의 실력부터 보기로 했다.
흔히 한의원에서 쓰는 침은 1회용으로 재사용하면 법에 저촉된다.
장점은 위생적이라는 것이고 단점은 혈의 위치에 따라 굵기와 길이가 다른 침을 써야 하는데 비용 때문에 그러지 않는 한의원이 더 많다는 것이다.
김장혁 역시 한 가지 침만 이용해서 치료를 했는데 그가 침을 꽂는 곳을 살펴보니 실력이 제법이었다. 물론 그 나이에 비해서이지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쓰레기 같은 짓을 할 시간에 실력이나 키울 것이지.’
속 좁은 놈에게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간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에 속으로 삭였다. 다만 더 이상 건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경고는 은근히 할 생각이다.
“오! 실력 좋네. 벌써부터 괜찮아지는 느낌인데?”
“···그리 말해주니 다행이네.”
“참! 난 할아버지 댁에서 마사지 숍을 하고 있어. 아니 했었어가 정확한 표현이겠구나. 오늘 폐업 신고를 했거든 그래도 혹시 몸이 찌뿌듯해지면 와. 영업은 못해도 친구한테 공짜로 마사지하는 것은 괜찮겠지.”
“······.”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불법 의료 행위를 했다고 신고하질 않나, 깡패들이 찾아와서 분위기 살벌하게 하질 않나. 도저히 계속 할 수가 없더라고.”
김장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침을 꽂다가 잠깐씩 머뭇거리는 것이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내가 할아버지만큼만 실력이 있었으면 다 발기 불능으로 만들어 버렸을 텐데. 예전에 할아버지께 들은 얘긴데 몇 군데 혈만 누르면 가능하대. 웃기지 않냐? 툭하고 스치기만 해도 발기 불능으로 만들어 버린다니 말이야. 하하하!”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그렇겠지? 하지만 혈이라는 게 신기하잖아. 아직까지 모르는 게 더 많고.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혹시나 더 귀찮게 하면 할아버지의 진료 기록을 샅샅이 살펴봐서라도 꼭 그렇게 만들어줄 거야.”
“······.”
“뭐, 이제는 그만뒀으니 다시 건들 일은 없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죽자 사자 덤벼들면 상대해 주겠지만 이제야 정상적으로 돌아온 인생을 허비하긴 싫었다.
“···다 됐어. 15분 있다가 뽑을게. 그동안 침상에 엎드려 있어.”
“응, 수고했다.”
김장혁은 원적외선 램프를 등 쪽에 비추어주곤 도망치듯이 치료실을 나갔다.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겁은 나는 모양이다.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곤 중얼거린 두삼은 침상에 기댄 채 15분이 빨리 지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