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25화 (24/122)

# 25

8. 호사다마(3)

집에 있던 배영옥 일행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올 정도로 은호현이 큰소리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두삼은 돌아보지 않았다.

성인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었다.

“고쳐만 준다면 1,000만 원 줄게!”

따라오면서 돈 얘기를 해서일까? 두삼은 돌아보지 않고 단지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

“제 가치를 낮게 보니까 안 줘도 되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치료의 가치를 제대로 봤다면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죠.”

은호현은 생각 없이 말을 뱉은 입을 원망하면서 두삼을 다독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두삼의 말처럼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의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모기만 물려도 밤새 잠을 설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환각지는 그 수십 배는 강력하게 간지러웠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간지러워도 간지럽다고 느껴지는 곳이 존재하지 않아 긁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천만 원!”

4년간 겪었던 환각지의 고통이 공포가 되어 다가왔다. 설령 1억 원을 달라고 해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제발······!”

두삼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은호현은 진심으로 절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쯤 해서 용서할까.’

독하게 마음을 먹었지만 못할 짓임에 틀림없었다.

두삼은 측은지심을 가진 성인도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사람에게 모질게 대할 만큼 나쁜 놈도 아니었다.

“두 번의 기회는 없으니 지금의 마음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의미로 이천만 원을 주신다니 화해의 의미로 기꺼이 받도록 하죠.”

“······.”

물론 실리는 확실히 챙겼다.

***

“두삼아! 두삼아!”

백만수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치료 중인 배영옥과 하란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었다.

“왜요, 형?”

“일하고 있었냐?”

“예. 거의 끝나가요. 한데 오토바이 가게는 어쩌고 왔어요?”

“와이프한테 맡기고 왔다.”

“어라? 형수 왔어요? 오늘이라도 인사드려야겠네요.”

형제처럼 지내는 백만수였다. 그래서 몇 번이고 그의 와이프에게 인사를 하려 했었다. 한데 아이들과 친정집에 가 있다고 해서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인사야 천천히 하면 어때. 일단 일봐라.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급한 일 아니에요?”

“마음은 조급하지만 당장 급하진 않아.”

“제 방에서 기다려요. 금방 끝내고 넘어갈게요.”

두삼은 서둘러 배영옥의 치료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본채로 다가오는 두 명의 사내 때문에 백만수에게 바로 달려가지 못했다.

“한두삼 씨?”

앞에 선 사내가 품속에서 경찰 배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그런데요?”

“불법 의료 행위를 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도대체 누가 신고를······?”

“궁금한 점은 서에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가시죠.”

말이 동행이지 잡아가겠다는 듯 두 형사는 좌우에서 양팔을 잡았다. 알아서 가겠다고 말했지만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한 선생님!”

“두삼아!”

하란과 백만수가 잡혀가는 두삼을 보곤 화들짝 놀라 달려왔고 두삼은 안심시키려는 듯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걱정 마세요.”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릴게요. 예약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날에 오라고 해주시겠어요? 전화번호는 업무 일지에 있어요. 그리고··· 다녀올게요.”

두 사람에게 걱정 말라고 다시 말하려 했지만 그래봐야 안심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차에 올랐다.

***

“불법 의료 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만.”

꽝!

끌고 와선 일언반구 없이 제 할 일만 하는 형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컴퓨터에 서류를 작성하던 형사는 책상을 치며 대답했다.

“조용히 해! 정리되면 말해줄 테니까.”

“···그러세요.”

육체의 건강이 정신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 걸까. 예전에는 경찰서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전전긍긍했을 텐데 지금은 동사무소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하고 있는데 서류 작업을 끝마친 형사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얼씨구 구경 왔네, 구경 왔어.”

“전에 와서는 제대로 구경을 못 했거든요.”

“하아~ 동종 전과가 꽤 있나 보네?”

“저에 대해 조사를 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데려온 겁니까?”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일단 신변 확보가 우선이지. 아주 전문가 포스가 풀풀 풍기네. 이름.”

두삼의 말을 잘못 이해했나 보다.

“그게 아니라······.”

“안이고 밖이고, 이름!”

형사라는 쥐꼬리만 한 권력도 권력이라고 어지간히 강압적으로 굴었다.

“한두삼.”

“주민번호.”

“XXXXXX-XXXXXXX.”

“주소.”

일단은 지켜보기로 하고 묻는 질문에 답해줬다.

호구조사가 끝나자 본격적인 질문이 나왔다.

“언제부터 불법 의료 행위를 한 거야?”

“마사지를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설령······.”

“허어~ 이 친구 안 되겠네. 치료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 이를 거야?”

상대가 경찰이라 가급적 좋게 설명을 하려고 했는데 말을 못 하게 하니 짜증이 났다.

“이봐요, 형사님. 사람 말을 끝까지 들으세요. 설령 의료 행위를 했다고 해도 불법은 아닙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어쩜 너희 범죄자놈들은 만날 똑같은 말을 하냐? 그리고 넌 용가리 통뼈냐? 왜 불법이 아냐?”

“그건······.”

“한두삼 씨는 한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엔 형사가 아닌 뒤쪽에서 말을 끊었다.

돌아보니 누가 봐도 변호사로 보이는 장년인을 필두로 우하란과 백만수가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형사도 장년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한두삼 씨 변호인입니다. 한두삼 씨가 한의사 면허증이 있다는 것도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불법 의료 행위를 했다고 무작정! 경찰서로 데려왔다는 얘길 듣고 왔습니다. 참고로 현 창원지검의 지검장이 제 후뱁니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압적으로 공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을 무척 싫어하죠.”

“그, 그게··· 그러니까······.”

작은 권력으로 호가호위하는 사람은 보다 큰 권력 앞에선 꼼짝도 못 했다.

형사 역시 그런 부류인지 변호사의 명함과 지검장이라는 말에 쩔쩔맸다.

“참! 한두삼 씨, 아까 구속 영장은 확인하고 경찰서로 연행되신 거죠?”

“확인 못 했습니다.”

“···여, 연행이 아니라 민원이 들어와서 조사 차원으로 데려··· 모셔온 겁니다.”

“들어오면서 봤을 땐 마치 겁박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원래 말투가 좀 거친 모양이군요?”

“···그,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조사는 끝났습니까?”

“······.”

“더 할 말 있음 저도 함께 듣기로 하죠.”

“아, 아닙니다. 끝났습니다. 가셔도 됩니다. 하핫!”

비굴하다 싶을 만큼 저자세인 형사를 보고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와 대화를 마친 변호사가 말했다.

“두삼 씨, 끝났으니까 가시죠.”

“네. 근데 혹시 누가 신고를 했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혹시 의심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뇨.”

“그럼 먼저 내려가 계세요. 제가 알아보죠.”

누가 신고를 했는지 모르지만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설마 김광도 그 인간은 아니겠지?’

신고를 당했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그였다.

“괜찮아요?”

우하란의 말에 상념에서 깼다.

“덕분에요. 한데 변호사를 빨리 구했네요?”

“서울에 있는 변호사님께 연락을 했더니 바로 소개를 시켜주셨어요.”

“고맙습니다. 들어간 비용은 제가 낼게요.”

“아니에요. 제 어머니를 위한 일인데요. 로펌 전부라도 기꺼이 고용했을 거예요.”

주겠다고 해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배영옥에게 좀 더 신경 써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기로 했다.

“만수 형, 형까지 번거롭게 만들었네.”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서 깜짝 놀랐다. 근데 너 한의사 자격증이 있으면서 왜 한의원이 아닌 마사지 숍을 낸 거냐?”

“···사정이 있어요. 면허증은 있는데 쓸 수 없다고나 할까요. 참! 형은 무슨 일로 왔어요? 급한 일인 것 같은데 말하세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얼른 말을 돌렸다.

“···다른 건 아니고··· 우리 첫째가 아파서 너한테 부탁 좀 하려고.”

“어디가 아프기에요?”

“CRPS.”

“아!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어쩌다가······.”

유명 연예인이 걸려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된 병으로, 특정 부위가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신경병성 통증을 말한다.

신경 손상 유무에 따라 작열통, 혹은 교감신경 위축증으로 구분되는데 아직까지 명확한 진단 방법이 없다.

두삼이 CRPS에 대해 아는 것도 이 정도였다.

“희귀난치성질환이라는 건 아시죠?”

“···당연히 알지. 가는 곳마다 그 소리부터 하더라.”

“미안해요.”

습관처럼 말했음을 깨닫고 사과했다.

“이해해. 솔직히 고칠 거라는 기대는 크게 없다. 다만 혹시나 해서 봐달라는 거다.”

“그러죠. 제가 집에 갈게요. 변호사님 나오셨네요. 잠시만요.”

정문에서 나오면 변호사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됐습니까?”

“서장에게 지시가 내려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서장을 만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더군요. 원하신다면 더 알아봐 드리죠.”

“아닙니다.”

“누군지 짐작하시나 보군요?”

“짐작일 뿐이죠.”

“혹시나 다음에 도움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라도 연락을 주세요.”

명함을 건네는 변호사. 법무법인의 대표였다.

“변호사님을 부를 만큼 여유롭지 못합니다만.”

개똥같은 현실을 예를 들지 않아도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건 어린애들도 안다. 돈이 있어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하! 돈을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솔직히 돈은 벌만큼 벌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은 건강이 더 신경 쓰입니다. 몸이 아프면 돈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실력 있는 의사를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를 겁니다. 아! 너무 속물적으로 말했나요?”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되자는데 얘기였다.

“아닙니다. 저도 솔깃한 얘깁니다. 다만 전 마사지사에 불과합니다.”

“실력 있는 마사지사죠. 언제 한번 마사지 받으러 가겠습니다.”

손해 볼 것이 없었기에 알았다고 말한 후 악양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떻습니까?”

김장혁은 치료를 마치고 들어온 손님에게 의자를 권한 후 진료 차트를 확인했다.

“선생님 덕분에 어깨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올라가지 뭡니까. 허허허.”

“다행이네요. 하지만 어깨의 염증이 다 사라지게 된 게 아니니 계속 나와야 합니다. 제가 권한 약재도 한 재 더시는 게 낫고요.”

“···일하는 사람이 계속 오갈 수가 있나. 아무튼 한약 먹는 건 생각해 보죠. 그보다 약이나 이주일치 넉넉하게 처방해 줘요.”

약을 넉넉하게 지어달라는 건 더 이상 오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쯧! 약값이 아까운가 보네. 이래서 돈 없는 곳이 싫다니까.’

잘 치료해 주려고 해도 어느 정도 괜찮아지면 돈과 시간을 핑계로 더 이상 오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죠. 가보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실력을 키우려고 온 곳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음 손님 들어오라고 해요.”

손님을 보내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한데 머뭇거리다가 죄지은 사람처럼 말했다.

“···기다리는 손님은 없습니다. 원장님.”

벌써 퇴근 시간이 다 됐나 싶어 시계를 봤는데 이제 세 시였다.

겨울이라 노인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손님이 많이 줄었다.

“그럼 나가서 쉬어요. 손님 오면 연락주고요.”

“알겠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속으론 열불이 났다.

‘빌어먹을! 이러다가 직원을 또 줄여야 할지도 모르겠네. 이게 다 두삼이 그 자식 때문이야.’

두삼과 우하란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이후로 모든 일을 두삼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화를 삭이고 있는데 차 실장의 전화가 왔다. 드디어 눈엣가시 같은 두삼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목소리엔 승자의 득의양양함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아무래도 시간을 좀 더 줘야겠다.

“···실패했습니까?”

-실패라기 보단 정보 수집을 소홀히 했어.

기분이 나빠져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러나 불만을 표할 순 없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정보 수집이라니요?”

-그 친구 마사지 자격증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의사 면허증이 있더군.

“네? 두삼이 그 자식이 한의사라고요?”

-그래. 경해대 출신이야.

경해대라면 한의학과 중에 유일하게 서울에 위치한 대학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1위로 꼽혔다.

김장혁도 성적이 모자라 갈 수 없었던 곳이었다.

“···공부도 못하던 놈이 어떻게?”

-그야 모르지. 아무튼 그놈 백도 있나 보더라. 지청장 출신 로펌 대표가 왔대.

“그 여자가 데려왔나 보군요.”

-응?

“아닙니다. 그래서 그대로 보고만 있을 생각입니까?”

-아니. 다른 방법을 써야지. 걱정 마라. 내가 확실하게 문 닫게 해줄 테니까.

“···확실하죠?”

-나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아냐? 한 번 목표로 잡은 놈은 놔주질 않아. 대신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같은 곳에 한시라도 같이 있기 싫었다. 하지만 어쩌랴 일단 믿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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