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24화 (23/122)

# 24

8. 호사다마(2)

***

매계리에서 악양천을 따라 섬진강까지 내려와 19번 도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50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면 남원시였다.

두삼은 하란에게 차를 빌릴까도 생각하다가 괜스레 찔려 중무장(?)을 한 채 오토바이를 탔다.

목과 팔목, 발목 등 옷과 옷 사이가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춥다는 점을 제외하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퀵 서비스 하는 분들이 존경스럽군.”

겨울에는 오토바이로 먼 거리 이동은 자제하는 편이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남원공설시장 근처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시장으로 들어갔다.

간만에 얻은 휴일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남원의 먹거리를 알아보고 온 두삼은 시장 내 유명한 추어탕 집으로 들어갔다.

“특대로 주세요.”

예전이었다면 돈 때문에 보통을 시켰을 테지만 지금은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임독양맥이 뚫리고 난 후부터 왠지 모르게 먹는 것이 즐거워진 그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추어탕이 나왔다. 두삼은 가장 먼저 몽글몽글한 시레기와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미꾸라지 맛이라고 생각되는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삼키자 따뜻한 기운이 목을 지나 위에 이르렀다.

그 순간 미꾸라지가 가지고 있던 따뜻한 양기와 겨우내 겨울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축척된 시레기의 음기가 몸에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묘해.’

음식의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것도 좋았지만 음식이 가진 기운이 몸에 흡수되는 과정 또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이상으로 좋았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시게나. 먹는 것만 봐도 장사하는 맛이 나네그려.”

“네, 사장님.”

추어탕을 먹고 나자 추위는 말끔히 날아가 버렸다. 약속 시간 20분 전에 행사 준비가 한창인 곳을 서성이고 있는데 뒤에서 닉네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쓰리고!”

“쓰 소령!”

돌아보니 양손에 커다란 가방을 든 남자 셋과 여자가 서 있었다.

“원 대장님! 후 대령님! 오 중령님!”

누가 들으면 군인들이 만나는 줄 알겠지만 닉네임 앞 글자와 카페의 계급을 붙여 부르는 것이었다. 각각 ‘원더보이’, ‘후니사랑’, ‘오빠는너흴믿는다’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는 몇 살씩 위였다.

“오랜만이다. 복귀 축하한다.”

“연락 못 해 죄송합니다.”

“다들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거지. 그건 그렇고 얼굴이 예전보다 더 어려졌다? 산골에서 지낸다더니 산삼이라도 캐먹은 거냐?”

“그런가요?”

임독양맥이 뚫리면서 자신의 모습이 젊어졌다는 걸 두삼은 못 느끼고 있었다. 그저 피부가 조금 좋아졌다는 정도로 알 뿐이었다.

“근데 이분은······?”

남자 세 사람은 아는 얼굴이었지만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 처음이지? 인사해. 이쪽은 다련천사. 한 달 전에 들어왔고 계급은 소위야. 그리고 이쪽은 예전에 소령까지 단 쓰리고.”

“안녕하세요, 소위님. 다련이라면 그룹 스타일의 팬인가 보네요.”

“차로 오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맞아요. 스타일의 광팬이에요.”

그녀는 악수를 청하며 앞으로 자주 보자는 말을 건넸다. 두삼은 그러자고 말하며 손을 잡았다.

‘이 여자··· 역시 그런 건가.’

다련천사에 대한 궁금증을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어서였을까. 손을 잡는 순간 그녀의 기운이 느껴졌다. 음의 기운보단 양의 기운이 그녀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장갑의 기능은 몇 가지나 되는 걸까?’

두삼은 다련천사가 남성성이 강하다는 것보다 장갑의 새로운 기능에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기엔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직캐머들이 상당히 많아졌군요.”

VIP좌석 좌우로 벌써 상당한 수의 직캐머들이 카메라를 설치해 놓거나 설치하고 있었다. 일행은 원 대장의 도움을 받아 괜찮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제4회 지리산 눈꽃축제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시장님의 개회사를 듣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두삼은 카메라에 달린 화면에 신경을 쓰면서도 무대를 보는 걸 잊지 않았다.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걸 눈으로는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오길 잘한 것 같아. 종종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고향에 내려오면서 알게 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행사장의 열기에 녹아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삼은 심장을 울리는 커다란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거리며 행사를 즐겼다.

***

깨톡!

메신저 특유의 알림 소리에 걸음을 멈춰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제 행사 후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잘 들어갔냐는 문자를 보냈는데 그에 대한 원더보이의 답변이었다.

[무슨 문자를 꼭두새벽에 하냐? 아무튼 어제 간만에 보니 좋더라. 종종 보자. 그게 안 되면 카페라도 자주 들어오고. 그리고 어제 저녁 잘 먹었다. 맛있더라. 오늘 좋은 하루 보내라.]

‘네. 대장님도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후 멈췄던 걸음을 옮겨 치료실로 갔다.

환기를 시키고 간단히 청소를 마쳤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일정표를 확인했다.

“오늘도 오전엔 손님이 없네. 아무래도 영업 시간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시간이 빌 때마다 치료하는 배영옥을 제외하고 두 건의 예약이 있었는데 모두 늦은 오후였다.

오전에 치료하던 이들이 모두 퇴원을 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앞으론 숙식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굳이 오전에 일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집주변 청소나 해야겠다.”

책을 읽을까도 했지만 한동안 산을 타지 않아 찌뿌듯한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마당을 쓸고 집 구석구석 굴러다니는 낙엽을 한쪽으로 모아 불태웠다.

불을 쬐며 고구마를 구워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문으로 달갑지 않은 손님이 들어왔다.

“여어~ 사장. 약속한 날보다 조금 늦었지? 일이 어제 끝이 나서 지금에야 왔어.”

두삼이 장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중년 사내였다. 그는 두 번 오면 단골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주 살갑게 대했다.

두삼은 속마음을 숨기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오셨습니까? 간지러운 건 좀 어떻습니까?”

“여, 여전해. 다 나았다면 올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러네요. 들어오세요.”

그가 나았음에도 성공 사례금을 주기 싫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추측에 불과했다. 그래서 여느 손님과 같이 대하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먼저 짐을 놔두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으면 하는데. 지난번 방을 쓰면 되나?”

“죄송하지만 이제 저희 숙박과 식사 제공은 하지 않습니다.”

“···에?”

“악양면에 여관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거나 모텔을 이용하려면 하동읍에 나가면 될 겁니다. 아! 그리고 마사지에 대한 것도 달라졌습니다.”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성공 보수 개념은 사라지고 오로지 일반 마사지와 특수 마사지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일반 마사지는 가격표에 그대로, 특수 마사지의 경우 기본 십만 원에 재료비와 시간에 따라 비용이 추가됩니다.”

“자, 잠깐만. 그럼··· 고치지 못해도 돈을 받겠다?”

“병원에 가서 병을 고쳐야 돈을 지불합니까? 못 고치더라도 진료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돈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사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마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리라.

“주인이 그러겠다는데 약자인 손님이 뭐라 할 수 있나. 아무튼 치료를 받으러 왔으니 치료는 받아야겠지.”

“마지막으로 꼼꼼히 읽어보시고 서명란에 사인을 해주십시오.”

“이건 또 뭔데? 정말 치료 한번 받기 힘들군.”

“조금 전에 말로 했던 걸 문서화한 겁니다. 간혹 딴소리 하는 분들이 계셔서요.”

이왕 장사꾼이 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하는 게 좋았다.

두삼은 사내가 사인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사인을 받고 서류를 챙기고 나서야 특수 마사지를 시작했다.

특수 마사지는 말과는 달리 그리 특수하지 않았다.

단 며칠이면 고칠 수 있는 증상을 값어치만큼 돈을 벌 때까지 시간을 끌며 고치겠다는 것이었다.

만일 사람들이 이런 두삼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부도덕한 일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욕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두삼은 염치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을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이었다면 환각지를 고쳐주겠다면서 1억을 요구했을 것이고, 지불 능력이 되는 사람만 고쳤을 것이다.

찌질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당하면서 살 바에야 돈만 밝히는 나쁜 놈이 되는 편이 나았다.

***

‘드디어 폭발하는 건가?’

날씨가 포근해 마루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식식거리며 다가오는 중년 사내가 보였다.

일주일간 치료를 받았는데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으니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고작 70만 원 투자하고 나을 생각을 하다니 웃기네.’

두삼은 중년 사내의 환각지를 치료하는 값어치를 2천만 원으로 보았다.

본래 성공 수당 500만 원이 너무 싸다고 생각해 1,000만 원으로 올렸고 거기에 괘씸죄로 1,000만 원을 더한 것이다. 즉, 그는 최대 200일은 죽으나 사나 치료를 받아야 나을 수 있었다.

100번을 방문하면 절반을 낫게 할 것이고 200번을 방문하면 그때 완치가 될 것이다.

물론 그전에 자연스럽게 낫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한 사장.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중년 사내는 두삼을 보자마자 날선 목소리로 불만을 표했다.

“뭐가요?”

“도대체 왜!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차도가 없는 거야? 어제 밤새 한숨도 못 자다가 새벽녘에야 잠들었어.”

다크서클과 쾡한 눈만 봐도 그가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환각지가 괜히 불치병이라고 불리겠습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란 말이야.”

“그야 치료를 할지 말지는 온전히 은호현 님의 몫이죠. 다만 저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놀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은호현이 거짓말을 했다고 100퍼센트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고, 기존의 치료법이 맞지 않다는 전제하에서 새로운 치료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최선은 됐고······. 요즘 지난번과 다른 치료법을 쓰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지난번처럼 해줘. 그땐 잠도 잘 자고 간지럽지도 않았어.”

은호현은 간지러움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두삼에게 절대 말하지 말아야 비밀을 언급하고 말았다.

두삼은 그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지난번엔 간지럽지 않았다고요? 그때 전혀 효과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 그게··· 그러니까, 그게······.”

은호현은 ‘아차!’ 싶어 변명을 하려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은호현도 처음부터 사기를 칠 생각은 없었다.

환각지만 없어지게 만들어주면 수만금이라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였다.

한데 4년간 고생했던 병을 단 며칠 만에 몇 번 주무르는 것만으로 고쳐 버리니 겪어왔던 고통의 시간을 망각한 것이다.

그에 간단한 감기를 고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면서 성공 사례금이 아까워져 간지러움이 사라졌음에도 스스로 상처를 내면서까지 연극을 한 것이었다.

“미안해! 내가 돈이 아까워져서 가당치도 않은 짓을 했어. 환각지가 재발하고 나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느끼게 됐네. 오자마자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용서해 주게. 정말 미안하네.”

은호현이 고개를 숙이며 몇 번이고 사과했다.

두삼은 잠시 얼굴을 찡그리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큰 동요는 없었다.

두삼이 의외로 담담하자 얘기가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었다.

“특별한 걸 바라진 않을게. 그저 지난번 치료가 다른 사람들만큼 오래갈 수 있도록 해줘 그럼 당장 성공 사례금 500만 원을 줄게.”

은호현은 성공 사례금을 준다면 넙죽 허락할 줄 알았나 본데 착각이었다.

“싫습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한 사장······.”

“돈 좀 아껴보겠다고 고쳐준 사람을 바보로 만든 이를 위해 아등바등했던 제가 병신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런데 이제 와서 고쳐달라고요? 더 이상 할 의욕이 사라졌습니다. 아낀 돈으로 다른 곳에 가서 환각지를 고치시면 되겠네요.”

“정말 미안해. 어떻게 해야 용서를 해주겠나? 무릎 꿇고 빌까?”

“은호현 씨의 무릎이 무슨 가치가 있는데요? 괜스레 나이 많은 사람 무릎 꿇렸다는 악소문이나 날 뿐이죠.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이만 가세요.”

두삼은 더 이상 얘기하기 싫다는 듯 돌아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