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22화 (21/122)

# 22

7. 소문(3)

***

두 부류의 손님이 늘었다.

하나는 이영호가 환각지로 고통 받는 이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글을 올리면서 환각지 환자들이 늘었고, 다른 하나는 여성 마사지 손님이었다.

때마침 임독양맥이 연결되면서 기가 넘쳤기에 손님이 늘었어도 지금까지처럼 약초를 입에 달고 살 필요는 없었다.

그저 밥 잘 먹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기력이 넘쳤다.

그리고 양기와 음기의 결합도 번거롭게 음기를 받아들여 양기와 합친 후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음기를 받아 음양순환일소주천(흔히 소주천)을 하면 조화로운 기가 되었고 그걸 넘겨주면 되었다.

즉 하루에 여러 명의 여자 손님을 받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

그러나 할아버지가 일주일에 한 명에게만 해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두삼 역시 일주일의 한 명에게만 성인용(?) 마사지를 해줬고 나머진 그저 기분이 좋은 정도로만 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었다.

“여전히 간지러우세요?”

두삼은 잘린 팔이 간지럽다고 찾아온 중년의 손님에게 물었다.

“예. 약간 좋아진 것 같긴 한데 예전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음······.”

두삼은 잘린 팔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고민을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정말 심리적인 문제인 건가?’

이영호를 포함에 환각지 손님은 이번이 네 번째.

앞서 찾아온 세 명의 경우 외부로 흐르는 기를 차단하는 것으로 고통과 간지러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 한데 이 중년 사내의 경우는 차단을 했음에도 여전히 간지러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에 원인을 찾아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마땅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다가도 깹니까?”

“예. 어제도 깼습니다. 여기 보시면 긁은 자국 보이시죠. 피가 나야 조금 시원해지거든요.”

어제까지 없었던 선명한 핏자국이 그가 얼마나 긁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자다가 깼다면 완전히 심리적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네.’

사람이 제각각이듯이 같은 증상을 가졌다고 해서 항상 같은 치료법으로 치료가 되지 않았다.

“일단 며칠 더 지켜보죠.”

아무래도 며칠간 할아버지의 지하 서재의 책을 더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저··· 근데 내가······.”

사내가 주춤거리며 뭔가를 말하려 할 때 밖에서 우하란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서울에 있는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다 온다더니 이제야 도착을 한 모양이었다.

“잠시만이요. 한 10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중년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환하게 웃고 있는 배영옥과 하란의 모습에서 결과를 먼저 짐작할 수 있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결과는 어떻답니까?”

“어떨 것 같아요? 맞춰봐요!”

우하란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글쎄요. 궁금하니까 얼른 말해봐요.”

두삼은 좋은 분위기를 굳이 망칠 이유가 없었기에 적당히 보조를 맞췄다.

“전이가 완전히 멈추고 암이 점점 작아지고 있대요. 아예 사라진 부분도 있고요. 현재 상태로 진행된다면 1, 2년 안에 완전히 나을 수 있대요.”

치료를 한 사람이 바로 두삼인데 배영옥의 상태를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확인시켜 줄 방법이 없었기에 병원에서 확인하고 오라 한 것이었다.

“잘됐군요.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이게 다 한 선생님 덕분이에요.”

우하란이 갑자기 껴안았다.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뭘 감사하단 건지 그의 말투가 애매모호했다.

하란은 너무 오버했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떨어지며 변명을 했다.

“미, 미안해요. 미국에선 흔한 인사이지만 한국에서 좀 다르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네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각국 문화는 존중받아야죠.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네?”

“···핫핫핫! 자꾸 헛소리가··· 아무튼 다녀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마지막 손님 보고 있으니 아예 밥 먹고 진료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쇠뿔도 당긴 김에 빼랬다고 좋아지고 있는 배영옥의 치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것이 좋았다.

“어? 왜 나와 계세요?”

치료실로 가는데 중년 손님이 나와 있었다.

“할 말이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치료도 지지부진한데 오래 머물러 있기도 뭐하고··· 갔다가 해결되고 나면 다시 오겠습니다. 한 사나흘이면 충분할 겁니다.”

옳은 말이었다.

딱히 치료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우스웠다. 그리고 손님 스스로가 떠난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미묘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치료비였다.

이영호에게 치료가 완료된 후 치료비와 소정의 성공 사례금을 한꺼번에 받았는데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각지 손님도 그것을 기준으로 받았었다.

한데 성공을 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던 것이 막상 실패를 하자 미묘해졌다.

성공 사례금이야 당연히 못 받는다고 해도 이곳에 숙식을 하며 머문 가격을 산정을 하려니 얼마로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사흘 뒤에 온다는데 신경 쓰지 말자.’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살펴본 후에 다녀오시는 걸로 하십시오.”

“그러죠. 그럼 난 쉬겠습니다.”

중년 손님과 헤어진 후에 배영옥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취소된 김에 얼른 해버리고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일찍 오셨네요? 엄만 씻으러 갔어요.”

배영옥 대신 하란이 반겨준다.

“있던 일이 취소됐습니다. 그래서 빨리 하고 편하게 저녁을 먹으려고요.”

“차라리 그게 낫겠죠. 한데 얼굴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

“별거 아닙니다. 치료를 받던 손님이 바쁜 일이 생겨 집에 다녀온다고 해서 쓸데없는 고민 좀 했습니다.”

“치료를 했는데도 계속 간지럽다는 손님 말인가요?”

“네.”

벌써 두 달이 넘게 외진 시골집에 다 같이 모여 살다 보니 손님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었다.

“제가 볼 때 그 사람 좀 이상하던데.”

“어떤 점이요?”

“글쎄요. 꼭 집어서 말하긴 그렇지만 처음 왔을 때에 비해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아요. 마치 다 나았는데 연극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요.”

“에이~ 설마요.”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으면서도 나쁘게 보면 지금까지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설명이 되기는 했다.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겠죠. 근데 한 선생님 보기보다 허점이 많다는 거 아세요?”

“헐~ 불똥이 왜 갑자기 저에게 튑니까? 어떤 면에서 그리 허점이 많은지 들어봅시다.”

“가진 능력에 비해 장사는 너무 못해요.”

가게를 처음해서 능숙하게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저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특히 하란 씨에게 성공 수당을 받으면······.”

“제가 안 주면 어쩌려고요?”

“···아!”

두삼이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걸 생각하지 못해서 그렇지 바보는 아니었다.

지금까진 장갑의 기능에 대해서 알아가며 실력을 키우고 치료를 하는 데 전념했었다. 한데 하란의 말에 의원이 아닌 자영업을 하는 사장으로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름 돈을 벌기 위해 머리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깨닫고 보니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하란 씨 말이 맞아. 그녀가 제시한 성공 수당 10억은 주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할 말이 없어.’

그녀는 암이 나았을 때 10억을 준다고 했었다. 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암이 사라졌다고 완치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

돈을 주기 싫은 사람이라면 완치의 기준을 재발하지 않는다는 조건까지 내걸 것이다.

그럼 완치 판정은 족히 수년에서 십 년이 걸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설령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준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면 받을 수가 없는 돈이었다.

환각지 손님도 마찬가지.

나았지만 낫지 않았다고 말하면 땡전 한 푼 못 받을 수도 있었다.

하란은 두삼이 충분히 생각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전 약속을 지킬 테니 걱정 마세요. 그저 한 선생님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한 얘기예요.”

“그렇습니까? 비싼 수업료 지불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돈을 너무 쉽게 포기하면 안 되죠. 그리고 오늘 병원에서 1년은 넘게 사실 거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 통장을 만들어왔고요.”

하란은 두삼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건넸다. 그곳에는 1억 원이 들어 있었다.

“성공 수당은 암이 없어지면 드릴게요. 당연히 재발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을 거고요.”

“방금한 말 계약서로 써주면 고맙겠군요.”

“기꺼이요. 그나저나 학습이 빠르네요. 호호호!”

“가르쳐 준 선생님이 마음도, 얼굴도 예쁜 사람이니까요. 하하하!”

상대의 약점을 약점으로 보지 않고 또한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언급해 일깨워 주는 하란은 정말이지 멋진 여자였다.

두삼은 하란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자영업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

“다 됐습니다. 역시 간지러움의 원인이 될 만한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두삼은 중년 손님의 팔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사나흘 뒤에 봅시다.”

“네. 그리고 이건 영수증입니다.”

두삼은 아침에 일어나 계산해서 작성해 둔 영수증을 중년 손님에게 건넸다.

방금 전까지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마사지를 받던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게 뭡니까?”

“지난 여드레 동안의 숙식비와 마사지, 약초 사용 비용입니다.”

두삼은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내 말은 이걸 왜 받느냐는 겁니다. 들어올 때 분명 치료에 성공하면 성공 사례비로 오백만 원에 치료비를 주기로 했잖소? 근데 성공했소?”

두삼은 살짝 눈을 좁혔다. 어제 했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까진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기에 침착하게 대답했다.

“성공을 못 했으니 당연히 성공 사례비는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숙식비와 마사지 비용 1일 3만 원과 치료에 사용한 약초의 원가는 지불하셔야죠.”

“···좋소. 숙식비야 적당한 가격이니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마시지 비용과 약초는 성공을 위해 투자를 한 거 아니오. 그런데 성공을 하면 성공 사례를 받고 실패를 치료비를 받겠다는 말이오?”

사내의 말투가 점점 거칠게 바뀌었다. 그러나 두삼은 계산서를 작성하면서 질문에 대한 대답도 어느 정도 생각해 둔 상태였다.

“그냥 웬만한 병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한데 아직까지 불치병이라 불리는 환각지를 고치는 데 치료비와 약초 값을 안 받고 무작정 시간과 돈을 투자하라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 아무튼 내 입장에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돈만 지불해야 하는 것이니 억울하지 않소. 성공 사례금이 싼 것도 아니고.”

성공 사례금 500만은 절대 비싸 게 책정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오직 두삼만 할 수 있는 일. 몇 천을 받는다고 해도 분명 치료를 받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유언인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말만 아니었다면 입맛대로 가격을 책정했을 것이다.

‘염치가 없는 인간이군. 정말 줄이고 줄여 계산한 것인데도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식비 한 끼 5천 원, 숙박비 하루 3만 원, 몇 시간씩 경락의 경로를 바꾸느라 고생한 일도 마사지비라는 명목으로 일일 3만 원, 마지막으로 약초는 원가.

두삼은 더 이상 싸우기 싫었다.

애초에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도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에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럼, 마사지비는 빼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험험! 그 정도라면 나도 이해할 수 있소. 5개월로 해주쇼.”

사내는 아깝다는 표정으로 카드를 건넸다. 그리고 결제를 하고나자 챙겨놓은 짐을 들고 휑하니 가버렸다.

“돈은 잘 받았어요?”

떠나는 그를 보고 있는데 하란이 궁금했는지 다가와 물었다.

두삼은 말없이 들고 있던 영수증을 그녀에게 건넸다.

“뭐예요? 숙박비가 제가 내는 돈의 삼분의 일도 안 되네요?”

영수증을 본 하란은 입을 삐죽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하루 10만 원씩 내고 있었다.

“숙박을 하는 마지막 손님이라 그렇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곳에서 숙박은 불가합니다.”

“에? 저희보고 숙소를 구하라는 소린가요?”

“아뇨. 하란 씨 일행은 가게 손님이 아닌 제 손님으로 머무는 겁니다.”

“휴우~ 다행이네요. 순간 옆에 집을 지어야 하나 했거든요. 근데 저 사람은 다시 올까요?”

“아마 올 겁니다.”

“안 올 것 같은데요?”

“내기해도 좋습니다.”

오늘 아침 마사지를 하며 반영구적으로 막아뒀던 혈을 느슨하게 만들어뒀다. 아마 보름 정도면 다시 뚫리며 이곳에 오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약속대로 사나흘 후에 바로 온다면 최선을 다해 고치려 노력하겠지만 보름 이후에 온다면 당신의 행동에 걸맞게 대해 줄게요.’

장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두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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